제2의 인생! 행복 팡팡 터뜨리며 사는 법 | 손병용 예그린 대표 | 세바시 1673회 #귀농 #팝콘 #동기부여
서울 강남에 돈 잘 버는 청년이 수염이 덥수룩한 용천 일꾼을 변했으니 후회가 얼만데 하지 않겠어요?
아내는 서울 사람과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많이 그죠?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귀농한 지 5년째 드디어 사과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수학을 앞둔 며칠 전 여느 날과 같이 아침 일찍 과소원에 간 저는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연사 소개
- 손병영, 팝콘 만드는 농부
- 충주에서 사과 발효 팝콘(사과 팝콘) 개발
- 국무총리상,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 등 수상
- 충주의 팝콘 체험 마을 운영자
🔹 도시에서 농촌으로
- 잠실 출신 강남 청년 → 대기업 퇴사 후 창업 성공
- 귀농 교육 참여 후 충주로 귀농
- 현실은 이상과 달랐고 초기엔 후회와 좌절도 많았음
- 사과나무 심고 첫 수확 앞두고 돌풍 피해로 낙과 발생
🔹 사과 팝콘의 탄생
- 버리려던 낙과로 아내의 아이디어로 발효액을 만들게 됨
- 우연히 영화관에서 팝콘 먹다 떠오른 아이디어
- 사과 발효액을 팝콘에 활용 → “사과 팝콘” 개발
- 국산 팝콘 옥수수와 결합하여 체험 프로그램 기획
🔹 창업과 수상
- 체험객의 긍정적 반응으로 제품화 추진
- 농식품 아이디어 경진대회 대상(장관상, 상금 2천만 원)
- 제조시설 완공, 제품 다양화(고추 팝콘, 우유 팝콘 등)
- 농식품 창업 콘테스트 국무총리상(상금 1억 원) 수상
🔹 마을과 함께 성장
- 마을이 농촌 융복합 산업으로 재도약
- 전국 1천 개 체험마을 중 최고등급 ‘으뜸촌’ 선정
- 충주 마을은 국내 유일의 팝콘 마을로 자리매김
🔹 미래 비전
- 인삼 팝콘 출시 예정, 다른 농가들과 협업 진행 중
- 국산 팝콘이 수입산보다 더 많이 팔리는 날을 꿈꿈
- 언젠가는 세계 영화관에서 한국 팝콘이 팔릴 것
🔹 핵심 메시지
“떨어진 사과도 다시 피어난다”
실패에서 기회를 만들고,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삶의 기술이 진짜 성공이다.
감사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팝콘 만드는 농부 손병용입니다.
혹시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팝콘이 얼마큼 많이 판매되는지 아시나요?
1년간 1년에 한 5천억 정도 판매된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좀 많죠?
팝콘 하면 대부분 기본적인 오리지널 팝콘, 캐러멜 팝콘, 치즈 팝콘 같은 영화관에서 파는 팝콘이 떠올리실 텐데요.
제가 살고 있는 충주에는 유명한 과일이 하나 있습니다.
혹시 뭔지 아시나요? 다 아시네요. 네 맞습니다.
저는 새콤달콤한 사과를 직접 농사 짓고 있고요.
충주 사과와 팝콘옥수수를 농사 지어서 세상에 없던 사과 발효 팝콘이라는 걸 개발했습니다.
세상에 없던 사과 발효 팝콘을 만들어서 현재까지 저희가 국무총리상 농민부 장관상 등 많은 상장과 상금으로만 2억이 넘게 지금 받은 대단한 파크을 만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농촌에서 많은 상과 상금을 받은 선도 농업인인 제가 평생 농부로만 살아왔을까요?
네 아닐 것 같죠? 네 맞습니다.
저는 2008년까지는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8살에 부모님과 서울에 올라와 30년을 서울 잠실에서만 살았던 강남 청년이었죠.
한마디로 차도남이라고 그러나요? 차가운 도시 남자 웃으신 분들이 많으신데요.
제가 뭐 그렇게는 안 보이시죠?
뭐 좀 세월이 좀 흐르기도 했지만 저는 30살 중반 귀농 전까지는 그 수입 오픈카를 타고 다니는 도시나무로다가
사진이 나오고 있죠? 좀 비싼 겁니다.
농부라는 직업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삶을 살았죠.
하지만 지금은 차도남이 아닌 농부로서 보람되고 즐겁게 사는 농부가 되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에 혹시 귀농을 생각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네몇 분 계시네요.
지금 귀농이 아니더라도 혹시 뭐 다른 삶을 꿈꾸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분들께 오늘 제 얘기가 작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군대 제대 후 대학을 마치고 대기업 반도체 회사에 3년을 다니다가 창업의 꿈을 품고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 전부터 좀 준비를 많이 해서 퇴사 후 바로 창업을 할 수 있었는데요.
그런데 퇴사 후 한 달 만에 IMF가 터졌습니다. 운도 없는 것 같죠?
네 많은 회사가 문을 닫고 창업자들이 망에서 자살을 하거나 귀농을 한다는 기사가 매일 뉴스에 나오는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도 전혀 귀농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창업한 매장은 잠실 놀이동산 바로 앞에 그 정문 앞에 있어 가지고 장사가 IMF 시기에도 잘 됐어요.
그러다 보니 IMF도 무사히 잘 넘어갔고, 오히려 돈을 좀 더 벌어서, 가락시장 앞에 맥주바를 한 개 더 오픈을 하게 됐습니다.
목표한 대로 직장 다닐 때보다 수입은 훨씬 더 좋았죠.
그런데 그렇게 밤낮을 이러다 보니까 나만의 시간, 쉼이라는 것이 아예 없더라고요.
그때부터 좀 어려서 뛰어놀던 시골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 빨리 돈을 벌어서 시골에 가서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해야겠다.
그때부터 뭐 시골에 관한 책도 사서 보고, 농촌에 대해서 조금씩 간접 경험을 했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도시민 상대로다가 귀농 교육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홍보글을 보게 됐어요.
무려 4개월 동안 합숙하면서 농촌에 대해 현장 교육도 하고, 농산물 재배 같은 다양한 교육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커리큘럼이 너무 좋더라고요.
이때가 아니면 이런 교육을 언제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매장 두 개는 매니저들한테 위임하고 귀농 교육에 참가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언젠가는 농촌 가서 할 건데 무료로 교육해 준다니까 이게 웬 행제냐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육에 제가 참여를 했는데요.
4개월 동안 전국에 선도 농가도 다녀보고, 농촌 체험마을과 유명한 관광 농원 그런 데를 다니면서 성공한 농업인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그만 농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그래! 나도 내 고향에 가서 농촌 체험도 하고, 농산물 유통도 하면서, 농촌 생활을 하며 그렇게 살면 참 좋겠다.
그래서 귀농 교육이 끝나자마자 바로 수료식을 하고 귀농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4개월이나 배웠는데, 매일같이, 그런데 막상 그 농촌에 내려가니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저의 농촌에 대한 환상은 점점 후회로 바뀌어 가고 있었죠.
그런 농촌의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아! 책상의 이론과 농촌의 현실은 차이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농부도 아니니 일당은 주는 대로 받거나 아니면 그냥 농촌 경험만 쌓는다 치고 무급으로 일을 했습니다.
불과 1년도 안 돼서 서울 강남에 돈 잘 버는 청년이, 수염이 덥수룩한 완전 농촌 일꾼으로 변했으니 후회가 얼만데 하지 않겠어요?
어떻게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도 했지만,
서울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농촌으로 내 왜 내려오냐며 완강하게 반대하시던 아버지를 간신히 설득하고,
또 마을에서는 제가 서울에서 사업이 망해서 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을 극복한 지 불과 1년 만에, 농촌 생활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간다는 것은,
제가 다시는 고향 농촌으로 못 올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좀 마음을 다잡고 1년의 시간을 좀 더 노력해서 농업 후계자에 선정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후계자 자금으로 5천만 원을 대출을 받아서 사과과수원 4천 평을 조성을 했어요.
사과나무는 심고 3년 동안은 수입이 전혀 없습니다.
남으면 잘 키워야 되거든요. 과수원을 조성하고 농기계도 구입해야 되고 또 저장고도 설치하고
그러다 보니까 서울서가 가지고 온 돈은 이제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끝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불안한 마음에 제가 이제 예민해졌습니다.
뭐 그러다 보니까 만만한 게 바로 옆에 있는 아내죠.
아내에게 짜증 내는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아내가 말해줘서 좀 알았지만,
아내가 그때 좀 우울증도 오고 혼자서 서울로 올라갈 생각도 여러 번 했다고 하더라고요.
또 아내는 특히 또 고등학교까지 농촌 생활을 해서 농촌이 싫었다고 합니다.
서울 사람과 결혼해서 서울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많이 지금도 생각하면 아내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갑자기 지금 아내가 앞에 있어가지고 지금 미안해서 막 눈물이 날려고 그래요, 네 저를 쳐다보는 눈이 되게 애처롭게.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귀농한 지 5년째 사과 나무 심은 지 3년이 되던 해, 드디어 사과가 달리기 시작했어요.
추석 명절에 주로 선물하는 홍로 사과는 더 잘 자라서 이제 한 달 뒤면 수확을 해서 드디어 귀농 후 첫 수입이 생기기 직전이었죠.
이쁘지 않나요?
서울서 알던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미리 선물용 주문도 많이 받아서,
아 그동안의 투자가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수학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매일 아침 해가 뜨면 과수원으로 달려가서 까치들을 쫓아내고 입을 따주면서, 정성을 다해 하루하루 수확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수학을 앞둔 며칠 전 여느 날과 같이 아침 일찍 과소원에 간 저는 주저앉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전날 밤 돌풍이 불어 가지고, 주먹만한 사과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죠.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닌 수많은 사과가,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었죠. 낙과 사과를 빨리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그 사과가 썩으면 병충해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죠.
그때만 해도 경험이 없다 보니 무조건 사과를 모아서 묻어버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어려서 시골 살 때 장모님이 다양한 농산물로 만들었던 발효액을 기억하고
그걸 버리지 말고 일단 발효액을 담가보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어 그래 좋은 생각 했을까요?
네 맞습니다.
반대했죠.
설탕도 사야 하고, 통도 사야 하고, 시간과 돈이 추가로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이번에는 아내가 좀 고집을 부리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사과 발효역을 담그게 되었습니다.
뭐 가을이 지나 힘든 한 해가 지나고 겨울이 되니 사과 발효액은 잘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많은 발효액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저희한테 없었습니다.
가공 허가도 없었고요.
사람들이 쉽게 구입할 제품도 아니었죠.
견과류에도 말라보고, 여러 가지 실험을 해봤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또 한숨만 쉬는 날이 많아졌죠.
그러다가 농촌에 와서 처음으로 저희 부부는 영화관에 갔습니다.
영화관에는 빠질 수 없는 게 하나 있죠? 네 맞아요.
팝콘입니다.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었는데 이게 좀 남은 거예요.
우리 남는 팝콘은 어떻게 하죠? 보통 이제 버리죠 대부분
근데 저희는 이제 아까워서 집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저녁에 그 팝콘을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시간 지난 팝콘이 맛있나요? 눅눅하고 맛이 없잖아요.
그런데 아내가 준 팝콘은 맛이 좋더라고요. 응 왜 그렇지? 그랬더니
그거는 영화관에서 먹은 팝콘 맛이 아니었어요.
바로 사과 발효액을 팝콘에 발라서 만든 사과 팝콘이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죠.
그래서 그 다음 날 마트에 가서 팝콘 옥수수를 사다가 직접 팝콘을 튀겨서 사과 발효육을 발라봤는데, 역시 맛이 아주 좋았어요.
그 그 후에 아내와 함께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서 사과 발효 팝콘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었고,
그리고 때마침 20년의 긴 연구 끝에 우리나라 강원도 옥수수 종자 연구소에서 국산 팝콘 옥수수를 개발이 되었어요.
그동안은 다 수입산이었죠.
제가 사는 충주에서도 충주시 농업기술센터의 지원으로 제가 팝콘옥수수를 재배하게 되었습니다.
저한테 너무나 좋은 기회가 온 것이었죠.
우리나라 종자로 우리나라 농부가 직접 재배한 옥수수로 세상에 없던 사과 팝콘을 만드는 체험을 진행하니까
체험객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서울에서 제가 맥주발 할 때는 멀쩡한 사람을 손님으로 받아가지고 취하게 해야만 돈을 벌었는데,
이 농촌 체험은 농촌의 소중함도 알리고 사과 팝콘을 만들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같은 돈을 벌어도 사람들에게 진짜 기쁨을 주는구나 하는 보람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농촌에 내려온 지 3년이 지나 마을 이장이 됐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주민들과 함께 더 이렇게 좀 잘 가꿔 가지고 농촌 체험마을로 지정이 됐어요.
그랬더니 체험 계획이 이렇게 많아지더라고요.
근데 체험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사과 팝콘을 가지고 저희가 특허를 2개를 등록하게 되었어요.
또 특허를 받고 나니까 새로운 또 목표가 생기더라고요.
체험객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걸 과자로 만들어서 편의점이나 마트를 통해서 판매하면 대박이 날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식품 가공에 대해서는 제가 문외안이었던 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또다시 운명 같은 기회가 저한테 찾아왔어요.
바로 농협에서 주최하는 농식품 아이디어 경영대회였습니다.
그때 전국에 200개 업체가 참여했는데요.
저는 그 주민들과 함께 국산 파코 옥수수를 직접 재배하고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발표를 통해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농림축산부식품 장관상과 함께 상금 2천만 원도 받게 되었죠. 그것도 현금으로.
그 후에 여러 힘든 일이 좀 있었지만 결국 1년 만에 타콘 제조 시설을 준공하게 되었습니다.
사과 팝콘을 시작으로 마을에서 생산되는 고추로 고추 파권도 만들고, 또 마을 목장에서 나오는 우유로 우유 팝콘도 만들게 되었어요.
현재는 이제 두 가지에서 다섯 가지를 유통하고 있는데요.
이 세 가지 제품들로 2019년에는 농식품 창업 콘테스트 대회에 나와 가지고 국무총리상 수상과 상금 1억이라는 엄청난 상도 받게 되었습니다.
대단하죠?

벼농사만 짓던 저희 마을은 농산물을 재배하고 직접 제품도 만들고, 나아가 체험 관광도 할 수 있는 농촌 융복합 산업의 우수 사례가 되었고, 많은 체험객들이 방문하는 농촌 체험마을이 되어서 전국에 1천 개가 넘는 농촌 체험 마을 중에 최고 등급인 으뜸촌으로 선정되는 결과도 갖게 되었습니다.
엄지 척입니다.

저는 처음에 농촌 생활을 목표로 하고 시골에 오면서 큰 돈을 벌자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즐겁게 일하고 좀 여유로운 삶을 살자는 단순한 꿈을 가지고 내려왔죠.
하지만 처음에는 정말 상상했던 것과 달리 농촌에 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이나 수입이 없다가 겨우 첫 수확을 앞둔 사과가 다 떨어진 걸 봤을 때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아내는 그 떨어진 사과로 사과 팝콘을 만들었고, 제조 시설도 설치하여
그 사업이 잘 진행되어 지금 저희 마을은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는 농산물로 팝콘을 만드는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팝콘 마을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마을의 파코는 이제 전국의 다양한 농산물을 만나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간식으로 자리 잡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 제품으로 충남 금산의 젊은 농부와 협업한 인삼 콘이 곧 출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현재도 전국의 몇 개 마을과 농가에서는 저희의 기술을 배워서 그 지역의 농산물을 발효해서 팝콘을 만드는 체험을 하고 계세요.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다 보면 5천억 원 팝콘 시장에서 우리나라 농부들이 직접 생산한 팝콘이 수입산 팝콘보다 더 많이 팔리는 날도 곧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전 세계 영화관에서 한국 팝콘이 불티나게 팔리는 날도 오리라 생각합니다.
귀농을 하면서 저는 여러 가지 삶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서두른다고 농산물이 빨리 나오는 게 아니듯이,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할 것,
그 꾸준한 끝에 내가 예상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실현에 지지 않을 것,
그렇게 하나씩 목표를 이루어가다 보니 어느새 귀농한 지 15년이 되었고요.
저는 처음엔 상상도 못한 성과를 지금 이루게 되었습니다.
또 도시에서와는 다르게 농촌에서는 이 성과가 개인의 것뿐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 모두의 것이라는 보람도 있습니다.
혹시나 제2의 인생을 꿈꾸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리고 생각처럼 준비가 되지 않아 힘든 분들이 있다면,
오늘 제 얘기를 듣고 용기를 내시면 좋겠습니다.
떨어진 사과가 사과 팝콘으로 팡팡 피어나듯이 여러분의 시련도 더 좋은 일로 돌아올 겁니다.
지금까지 팝콘 만드는 농부 손병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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