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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409회 | 공장에서 일하던 소녀, 연매출 20억 자기 소유의 공장을 세우다 | 유혜광 유혜광돈까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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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일하던 소녀, 연매출 20억 자기 소유의 공장을 세우다

 

 

  • 항암 치료를 받으신 분인데 다른 돈가스를 먹으니까 몸이 가렵고 두드러기 나는데, 저희 돈가스를 먹었는데 몸이 가렵지도 않고 두드리기가 안 났다는 거예요. 이런 돈가스를 팔아줘서 고맙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문자가 왔는데요.
  • 그동안에 제가 힘들어서 버틴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당신의 장사를 성공으로 이끄는 세 가지 선한 전략

 

 

안녕하세요. 

유혜광 돈가스 대표 유혜광입니다.

맨땅에 헤딩으로 연매출 20억의 돈가스 공장을 세우기까지요.

참 많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요. 그동안에 고생 참 많았다고 저한테 박수 한번 부탁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제가 세바시 프로그램을 보기는 했지만, 핸드폰으로 보기만 했지만 실제로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그래서 이 자리가 지금 굉장히 떨리고요. 

돈가스만 만들던 아줌마가 강연이라니 진짜 꿈만 같습니다.

 

 

저는 가정 형편이 좀 어려워서요.  어릴 때 공장에서 일을 했는데요. 참 정말 많이 힘들었고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월이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세월이 참 빠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지난 한 40년간 세월을 돌이켜보니깐요. 그동안에 살면서 깨달았던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주변을 기쁘게 하는 것이 나에게 돌아온다데요.

사업이든 장사든 뭐를 할 때는 아이템이 필요로 하죠.

제가 뭐를 먹고 살지 또 뭘로 돈을 벌어야 할지 고민들이 참 많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거든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제가 돈가스라는 아이템을 선정하게 된 계기를 말씀드려볼까 해요?

결혼을 한 후 저는 남편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슈퍼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들은 몸이 굉장히 약했었어요. 

찬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감기 걸려서 일주일도 알아 넘는 건 예사고요.

병원은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했고요. 

근데 또 누구를 닮아서 고집이 센지, 편식이 얼마나 센지, 입에 맞지 않는 반찬이 있으면 3일을 안 먹는 것도 예사였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까 삼시 세끼 밥 챙겨주는 것이 진짜 불가능하더라고요.

근데 일 따로, 살림 따로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건강하게 키우는 것을 제가 목표로 삼고 좋은 제철 농산물을 먹이면서 팔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제가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서 좋은 거를 가지고 와서 팔다 보니까 장사가 잘 되더라고요. 

그러다가 저에게 위기가 찾아옵니다.

 

장사가 잘 되다 보니 목돈이 좀 있잖아요. 남편이 주식에 투자를 하게 됩니다.

정말 아 이렇게만 살아주면 좋겠다 이렇게 탄탄대로 걸어주면 정말 행복하겠다 그 생각을 했었는데요.

IMF가 와서 저희들이 투자했던 기업이 무너지면서 가세가 완전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뭔가를 해야 되겠는데, 어떤 아이템이 생각나는지 생각이 잘 안 났었습니다.

근데 아이들을 한창 키울 때니까 우선 밥이라도 잘 먹이자는 생각을 했고, 그 당시 식당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서 제가 아이들한테 물어봤거든요. 뭐를 먹고 싶을지 또 어떤 게 좋은지 물어봤더니 돈가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 내가 원재료만큼은 좋은 걸 가지고 해야 되겠다 그 생각을 그때부터 하였고요.

제가 그렇게 돈가스를 하게 된 시작이고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았던 이유입니다.

 

 

 

온라인 판매 이것도요.

제가 주변 사람들 기쁘게 해주려고 하다가 이걸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는데요.

어느 날 저희 식당에서 맛있게 드시던 분이, 이모 조카가 밥을 잘 안 먹는데, 돈가스를 택배로 보내주면 안 되겠나 이러시더라고요. 뭐 저야 뭐 장사하는 사람은 돈을 버는 욕심에 당연히 보내드렸죠.

내 며칠이 지났는데 "이모 우리 동생이 글 카는데 돈가스가 맛있어 니 택배로 장사 한번 해봐라"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 그때 당시는 한 2010년쯤이었는데 개인이 온라인으로 이 음식 장사를 할 때가 아니었었습니다.

저 역시 그때 나이가 50이었는데요. 

돈가스 판매한다는 걸 아이템으로 생각도 못 해봤고요.

그냥 저는 단순히 식당에서 그냥 애들 잘 먹여 살려야 되겠다 그 생각만 했었거든요.

그저 단골손님한테 조카한테 주겠다고 시작한 것이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입니다.

 

 

 

그동안 제가 했던 사업을 되돌아보니 그게 다 내 가족이나 내 단골손님을 기쁘게 해주려고 했던 일인 것 같아요.

슈퍼를 10년 동안 운영하면서 정말 품질 좋은 채소를 팔았고요.

돈가스 식당을 10년 하면서 정말 좋은 재료로 만들고,

또 지금 하는 온라인 판매를 통해서 10년 동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돈가스를 맛보게 해 왔습니다.

30년 동안 해온 저 사업은 그저 제 주변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장사나 사업 아이템이 필요하신 분들은요. 

주변을 기쁘게 해주는 일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입니다. 

 

제가 식당을 할 때였어요. 재료값은 춤을 추는데 메뉴판 가격은 춤을 출 수가 없잖아요.

3천 원 하던 계란 한 판이 언젠가 1만 2천 원 되기도 하고, 5500원 하던 고깃값이 1만 2천 원 될 때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저희가 아직은 작은 업체이다 보니까 고기를 한 장 한 장 사람이 포를 뜨는데요.

고기가 얇아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반응이 바로 나오더라고요.

 

어느 날 손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어? 이 집 돈가스 변했네 고기가 왜 얇아졌지"

이 말을 듣는데요. 아차 싶었습니다.
이때 맛뿐만 아니라 우리 제품을 생각보다 더 세심하게 봐주신다는 분들이 많고 믿고 구매해 주신 분들이 많다는 걸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겪고 나니까 사람들이 제품을 찾아주는 데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을 텐데, 이 마음에 제가 배신을 하면 안 되겠다고 더욱 생각하게 되었던 계기가 됐습니다.

만든 사람보다 찾으시는 분들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이신다는 걸요.

그때도 장사에는 이때 매출이 크게 좌지우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로 계란값이 아무리 오르고 고깃값이 아무리 올라도 늘 같은 품질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어느 때는 재료값이 너무 올랐어요. 한 박스를 팔면 3천 원이 손해 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배웠던 교훈을 중심에 두고 저는 흔들리지 않았어요.

고객들은 정확하고 고기의 두께도 알 정도니까. 내가 제대로 길을 간다면 진심을 다한다면 그것을 알아줄 것이라고 제가 믿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요 정말 알아주시는 분이 계셨는데요.

하루는 저에게 장문의 글이 문자로 왔습니다. 

근데 그때 한 20대쯤 젊으신 분이었던 것 같아 그걸 기억하는데요.

항암 치료를 받으신 분인데, 돈가스를 다른 돈가스를 먹으니까 몸이 가렵고 두드러기가 나는데, 저희 돈가스를 먹었는데 몸이 가렵지가 않고 두드러기가 안 났다는 거예요.

이런 돈가스를 팔아줘서 고맙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문자가 왔는데요.

저도 아파봤기 때문에 정말 감동은 배가 되었습니다.

그동안에 제가 힘들어서 버틴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조금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제 돈가스 이름은 제원 돈가스였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이 생기고 이런 문자를 받아보니까 오랫동안 준비한 올림픽에서 제가 메달을 딴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제 나도 나를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 이름을 건 "유혜강 돈가스"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힘든 날이 많이 오겠지만 늘 한결같이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세 번째는 깨달음은 꿈이 있어야 힘이 난다입니다.

참 힘든 날도 많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날은 더더욱 많았습니다.

진짜 죽을 뻔도 했습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어두운 삶이지만 꿈이라는 빛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저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자말자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텃세가 있어서 20살인 사회초년생이 버티기는 참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우리 부모님 빚을 갚아드리겠다는 꿈이 있어서 열심히 하다 보니, 3년 후쯤엔 제가 한 100여 명을 관리하는 반장으로 승진을 하게 되고요. 저한테 텃세했던 핍박을 줬던 언니들한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29살에는 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결혼 전날 그동안에 모아뒀던 돈이 담긴 통장을 제가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결혼 자금으로는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제 일생에 가장 잘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다들 그러시겠지만 잘 살아보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근데요. 생각대로 사다라지지가 않더라고요. 제가 식당을 할 때 홀 장사와 배달 장사를 같이 했습니다.

배달 장사를 하다 보면 정말 급할 때는 배달도 해야 했는데요.

어느 날 비 오는 날 배달을 하다가 제가 터널에서 뺑소니를 당하게 됩니다.

 

 

갑자기 제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제가 사람은 이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터널에서는 CCTV가 없어서 범인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제가 입원을 하여 치료를 받고 있는데요.

저희 일하는 직원이 갑자기 다른 데 일을 하러 가야 된다면서 못 나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저는 아직 몸이 완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며칠만 기다려 달라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 말이 허용이 되지를 않더라고요. 

제가 다시 일을 하기 위해서 퇴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요. 출근을 하려다가 화장실에서 씻고 노는데 제 생각엔 살짝 미끄러진 것 같은데 갈비뼈와 엉치뼈가 대여섯 개가 부러지고 금이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이 갈비뼈가 사람이 움직이면 내장을 찌르기 때문에 그러면 피투석을 해야 하고 사람이 죽음에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이제 일을 할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어서

그날부터 저는 죽은 사람처럼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정말 눈만 말똥말똥 뜬 채로요. 

 

제 형편상 저는 일을 많이 해야 아이들을 키울 수가 있었고요.

제가 또 제 삶을 포기하면 남겨진 아이들 생각에 눈물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평생에 우려했던 눈물을 그때 다 흘렸던 것 같습니다.

물려줄 게 빚밖에 없었거든요. 

정말 이 악 물고 버티고 또 버텼습니다.

그때 제 몸무게가 39kg까지 빠지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퇴원을 하게 되는데요.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근데 이번에는 제가 몸에 혹이 생겨서 이거 혹을 적출을 하지 않으면 암으로 변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시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이 모든 게 1년 안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몸은 너무나 쇠약해졌는데 당장에 한 달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요. 

제가 쌀 살 돈이 없어서 옆집 식당하는 언니에게 시간이 나면 나물도 떠듬어주고 설거지도 한번 해주고 그렇게 밥도 얻어먹고 반찬을 얻어서 그다음 날 끼니도 때우기도 하고요.

제가 가게 임대료를 내야 되기 때문에, 저녁부터 새벽까지 다른 식당을 다니면서 설거지도 하고요.

그리고 새벽이 되면 아이스팩을 수거하려 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떻게든 100원이면 100원, 500원이면 500원 아끼며 버티며 살았습니다.

 

제가 그때는 돈이 너무 없어서 사람을 고용할 수도 없었는데요.

주문이 조금만 들어오면 식당을 하다가 와서 돈가스를 만들기 때문에 제가 22~23시간을 버티는 것도 허다했고요.

제가 이렇게 일을 하면서도 자식들을 얼굴만 쳐다보면 웃음이 나고 제가 죽을 뻔했기 때문에 한계라고도 알고 있지만 힘을 내서 정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계속 이렇게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정말 힘들어가죠.

 

 

저도 모르고 모르게 좌절도 하게 되고 포기도 하게 되고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도 많고요.

이 아이들이 아프니까 어떻게든 건강하게 키워야 되는 게 제 꿈이었어요.

그래서 슈퍼 10년을 하고, 식당 10년을 하면서 제가 밝혀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꿈은 어둠을 밝혀줍니다. 저는 지금도 꿈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뭔지 한번 물어봐 주실래요? 

각 가정에 우리나라 전국의 각 가정에 그 냉동고에 유혜광 돈가스를 킵해 넣고야 말겠다는 제 꿈이 있습니다.

저는 그 꿈을 달성하기 위해 또 열심히 달려갈 예정입니다.

저처럼 원치 않아도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요.

저보다도 훨씬 아픔과 고통을 겪으시는 분들도 물론 많으실 테고, 내가 하고 싶은 길을 가더라도 중간중간 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으신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사실 혼자서는 막막하고 버티기가 힘들 때가 많은데요.

그때 주변을 돌아보면 나를 믿어주는 가족도 있고 친구 있을 겁니다.

그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이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된 것은요. 제 능력만이 아니라 큰 서포트가 있습니다.

저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면 방법도 모르고, 특히나 저처럼 규모가 작은 업체는 큰 업체를 상대로 버텨낼 재간이 없습니다. 정말 막막하고 어떤 때는 폐업도 해볼까라고 고민했을 때요.

중소기업유통센터를 알게 되었고요. 월 매출 50만 원에서 지금은 연매출 20억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유통센터의 지원 덕분에 이뤄낸 성과인데요. 인생에서 막막할 때 중소기업유통센터라는 서포트를 여러분도 만나신다면 수월하고 잘 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 삶인 돈가스보다 더 맛있는 인생, 

좋은 재료로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돈가스 같은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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