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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의 신' 호설암



'재물의 신'이라 불렸던 사람

호설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淸)나라 때 '재물의 신'이라 불렸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은 광용, 자는 설암으로, 보통 '호설암'이라고 부르는 인물입니다. 

그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겨우 글을 읽고 쓰는 정도만 배웠지만, 

청나라 최고의 부자가 됩니다. 


과연 그는 어떤 인물이었길래 14억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칭송받는 부자가 된 것일까요? 

오늘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현재처한 어려움은 일시적이다

호설암은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게 됩니다. 

생활이 몹시 어려워지자 그의 어머니는 

호설암을 항주에 있는 금융기관인 신화전장에 도제로 보냅니다.


당시 도제란 심부름이나 청소 등 각종 허드렛일을 하는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힘들고 더러운 일을 하면서도 항상 사람들을 웃음으로 대했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배우는 데 최선을 다했고, 똑같은 일도 남들이 세 시간 걸려서 하는 것을 두 시간 만에 끝내곤 했습니다.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전장 주인은 그의 성품과 능력을 인정해 정식 직원으로 발탁합니다.

호설암은 현재의 처한 고난을 묵묵히 견디며 부를 얻기 위한 그릇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2. 가장 이윤이 많은 장사는 사람에 대한 투자다

호설암은 전장 수금사원으로 일하면서 사람들의 성격과 인물됨 등을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을 갖추어 갑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가 20살이 되었을 때, 일을 마치고 자신이 자주 가던 찾집에서 떠돌이 선비인 왕유령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왕유령은 행색이 별 볼일 없었지만, 그는 대화를 나누는 도중 왕유령이 비범한 인물임을 파악합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은자 500백냥을 아무 조건 없이 건네줍니다. 

이후 왕유령은 호설암의 도움을 받아, 관직에 진출할 수 있었고, 절강성 재정을 관리하는 절강염대사직에 오릅니다. 


왕유령은 자신을 믿고 돈을 빌려줬던 호설암을 다시 찾게 되고, 절강성 정부 자금을 관리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왕유령의 도움으로 부강전장을 연 호설암은 본격적으로 금융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장은 20여 개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그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해 절강성 제 1의 부자가 됩니다. 




3. 의(義)에서 재물을 구하라

이후 호설암은 항주에 거금 20만냥을 투자해 '호경여당' 이라는 약방을 설립합니다.

가난한 탓에 약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죽은 남편이 못내 아쉬웠던 어머니가 약방 개업을 제안한 것입니다. 


그는 사람의 목숨과 직접 관련 있는 약국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윤 추구보다 손님에 대한 신용과 진심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호경여당에는 항상 구급약이 상비되어 있었고, 이 구급약은 약방이 문을 닫거나, 한밤중에 찾아오는 사람, 돈이 없는 서민이나 걸인에게 무료로 내어주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몇몇 약방은 호경여당을 시기한 나머지 담합을 통해 호설암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사람들은 싼 가격으로 약을 판매하는 다른 약방을 이용했지만, 이내 약의 품질에서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아채고 다시 호경여당을 찾게 됩니다. 


호설암은 의에서 재물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의(義)란 의리와 신의를 말하는 것으로, 그는 신의가 서지 않으면 재물을 얻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비단에 꽃을 더하거나 대설에 석탄을 보내는 것처럼 항상 의를 앞세우면,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입에서 입으로 전하며,

재산은 저절로 늘고 모든 일이 형통해 사업이 날로 번창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4. 위험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호설암이 살던 청나라 말기는 서양 열강들의 침탈과 농민반란 등으로 큰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늘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그의 사업도 평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서양 상인들의 담합으로 위기에 몰리기도 하고, 이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다시 부를 쌓기도 합니다. 


그는 위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위험이 없는 사업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느냐"고 말입니다. 

위험이 따르지 않는 사업은 누구든지 할 수 있고 그만큼 이윤도 작다고 보았습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칼날에 묻은 피를 핥을 수 있을 만큼의 배짱을 지녀야 하며, 

전 재산을 날리는 한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밀고 나아가야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5. 세상에 완전한 인재는 없다

호설암은 '사람의 가장 큰 능력은 사람을 쓰는 일이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쓰려면 우선 사람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 품덕 등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안목과 재능을 겸비한 재목을 찾아내 활용할 수 있다면, 성공은 이미 손에 쥔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인재는 없다'고 말하며 세상의 편견에 좌우되지 않는 자신만의 혜안을 가지고 인재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의 주변에 특출한 인재들이 많았던 것은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인재란 어느 한 부분에서 특별한 강점을 보이는 동시에 다른 부분에서는 치명적인 결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뛰어난 경영자라면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리면서 그 능력에 맞는 성과를 거두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큰 재목은 크게 쓰고, 작은 재목은 작게 쓰면 된다는 말입니다. 




6. 손해가 때론 득이 되어 돌아온다

호설암은 세상을 살다 보면 한쪽에서 이득을 보고 다른 쪽에서 손해를 보는 일을 피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를 보는 것이 득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손해를 본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베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인정은 기회가 되면 적절한 보답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것을 대단히 기분 나쁘고 때로는 치욕으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호설암은 모든 현상과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어떤 현상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돌아선다"고 보았습니다. 


즉 어떤 물건의 귀함이 극에 이르면 다시 천해지고 천함이 극에 이르면 다시 귀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귀한 것을 흙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하고, 

천한 것을 보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7. 는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호설암의 부강전장은 전국에 지점망을 설치했고 자산이 무려 2,000만냥을 넘어서게 됩니다. 

한 때 그가 쌓은 부는 한 나라의 부와 견줄 만 했으며, 하계청, 황종한, 좌종당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인맥은 황궁에 까지 파고듭니다. 

호설암은 정1품 관직에 홍색정대를 매고 황마패 모자를 쓸 수 있는, 상인으로서는 최고의 명예인 홍정상인(紅頂商人)의 자리에까지 오릅니다. 


하지만 부는 얻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일까요?

활재신(活財神, 살아있는 재물의 신)이라고 불렸던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옵니다. 

좌종당과 중국 최고의 권력을 놓고 싸우던 이홍장이 호설암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이홍장은 좌종당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 좌종당의 돈줄을 끊어놓기로 작전을 세우고 호설암의 부강전장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웁니다. 

호설암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좌종당 역시 이홍장과의 권력투쟁에 패하고 물러나 죽고 맙니다. 


이후 최후의 보루였던 잠사(蠶絲) 사업이 망하고, 중국 각지의 부강전장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결국 호설암은 파산하고 맙니다. 


호설암이 망하지 않을 기회는 많았습니다. 

파산에 이르지 않고 더욱 더 많은 돈을 모을 수도 있었습니다. 

정관계에 많은 인맥을 갖고 있는 호설암이 좌종당과 이홍장의 10여 년의 권력투쟁에서 청나라 정계의 판세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그가 돈만을 중시하는 평범한 상인이었다면 좌종당을 배신하고 이홍장이란 든든한 새로운 후원자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좌종당을 배신하지 않고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의를 지키면서 결국 파산의 길을 선택합니다.


뒷수습을 함에 있어서도 재산을 은닉하지 않았으며, 소액채권자의 돈을 먼저 갚는 등 2년에 걸쳐 마지막 신의를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훗날 호설암의 여러 선행들이 밝혀지면서 중국인들은 살아서는 '활재신(活財神)'으로, 죽어서는 '상업(商業)의 신(神)으로 평가하며, 14억 중국인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은 호설암을 “봉건사회의 마지막 위대한 상인”이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호설암은 이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보여준 뛰어난 상인의 자질과 지혜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중국인들에게 회자되고 있습니다.


본 동영상은 도서 '중국사 인물열전'과 '상경'을 참고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중국사 인물열전
국내도서
저자 : 소준섭
출판 : 현대지성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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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
국내도서
저자 : 스유엔(史源) / 정윤철,김태성역
출판 : 더난출판 200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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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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