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건축 명문 '쿠퍼유니언'을 아시나요? 20대 초반 제 꿈은 세계적인 건축가였습니다.
-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그 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 그런데 어렵게 시작한 건축 공부를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어떻게 손막걸리로 창업까지 하게 됐을까요?
먼저 영상부터 보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이런 막걸리 보셨나요?
저는 전통 방식의 샴페인 막걸리를 만드는 복순도가의 김민규 대표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저에게 물어보세요. 그럼 술 잘하시겠네요? 이렇게 많이 물어보시는데,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잘 못합니다.
주량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고요. 심지어 저희 아버님은 술을 아예 못 하세요.
그게 또 저희 어머님의 평생의 불만이시기도 하시거든요.
남자가 술도 먹고 속에 있는 이야기도 해야 되는데, 재미가 없어라고 어머니께서 자주 말씀하시곤 하셨는데요.
그런데 술도 잘 못 타는 저희 가족이 손막걸리 창업을 어떻게 하게 됐을까요?
누구에게나 어머니 하면 떠올리게 되는 어릴 적의 장면과 냄새가 있을 거예요.
저에게는 술이 익어가는 향긋한 냄새가 그랬습니다.
혹시 가양주(家釀酒)를 아시나요?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집집마다 술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술을 만들 때마다 무거운 세금을 매겼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사람들은 점점 술을 담그지 않게 되었고, 그 많은 가양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은 달랐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마을의 어른이셔서 저희 집은 늘 손님으로 북적였고요.
할머니께서는 직접 빚으신 가양주를 대접했고 그걸 어머니가 배우신 거예요.
그 술이 얼마나 맛있었냐면요.
공짜 술인데도 이웃분들이 돈 대신 수확한 채소와 과일을 주고 가셨을 정도였습니다.
아무 맛이 없던 물이 향긋한 막걸리나 종종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저에게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게 발효는 곧 어린 시절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어요.
발효란 막걸리뿐 아니라 저와 가족, 제 주변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키워드라는 것을요.
그런데 여러분 삭는다와 썩는다의 차이를 아시나요?
사실 화학적으로는 거의 비슷한 과정입니다. 그럼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까요?
사전을 찾아봤어요.
발효란 미생물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과정입니다.
그 사이에 포도당, 아미노산, 비타민 같은 좋은 성분들이 만들어지고요.
이런 좋은 성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썩는 것입니다.
발효와 부패의 차이를 오래 생각하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있는데요.
발효란 인간을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사실입니다.
이 발효라는 단어는 이제 제 일생을 관통하는 강력한 키워드가 됐습니다.
혹시 여러분에게도 그런 키워드가 있으신가요?
세바시 강연을 준비하면서 발효의 원리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실현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부딪힐 때 누구나 성장하고 멋지게 익어갈 수 있다고요.
발효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는 관성을 깨고 서로 새로운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막걸리는 제가 꿈꾸던 사업이 아니었어요.
20대 초반 제 꿈은 세계적인 건축가였습니다.
어릴 적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광대한 대지를 보고 자라며 제 내면에 풍성했던 농촌 특유의 감수성과 더 넓은 세계로서의 동경이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미국 유학을 꿈꾸게 되었고요.
이런 이야기를 드리면 넉넉한 집안에서 부모님이 유학비를 대어주셨을 거라고 생각하시는데요.
사실 정반대였습니다.
당시 가세가 기울어 유학은 엄두도 내지 못한 상황이었는데요.
뉴욕 맨해튼의 건축 명문 '쿠퍼유니언'을 아시나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그 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군입대로 잠깐 들어왔다가 유학 생활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일이 CNN의 문화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이나 예술가 같은 문화 콘텐츠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다 보니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 가양주가 떠올랐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게 된 고마운 분들께 감사의 의미로 어머니의 가양주를 선물했는데요.
그중 한 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이렇게 좋은 술을 왜 팔지 않냐면서 적극 사업화를 권하셨습니다.
그냥 그 말을 들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제 꿈은 건축가인데 말이죠.
하지만 앞서 문화 콘텐츠의 강력한 힘을 제가 봤잖아요.
다양한 예술가나 장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그것들이 막걸리 재료처럼 한데 어우러져 제 안에서 숙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에서 발효하는 기적이 일어난 거죠.
사실 건축에서 막걸리로 진로를 바꾼 것이 갑작스럽거나 드라마틱한 전환으로 보이실 거예요.
하지만 제 안에 이미 그런 비전의 싹이 있었던 것 같아요.
건축으로서 자연과 지역 공동체를 어우러지게 만드는 일,
그리고 옛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드는 일 모두 발효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이더라고요.
그리고 근거 없는 믿음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설사 이 막걸리 사업에 실패한들 이 경험이 분명히 제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줄 거라는 확신이었거든요.
당연히 가족은 반대했어요.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신 주인공은 바로 저희 아버지셨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다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은 분이셨는데요.
어렵게 시작한 건축 공부를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막걸리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 충격이 매우 크셨을 거예요.
그런데 발효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숙성을 위한 조건들이 채워져야만 이런 물질들이 잘 만들어지거든요.
이상하게도 반대하시니까 더 확신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누룩이나 곰팡이처럼 사업 비전도 숙성이 되어 견고해졌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렸죠. 저는 막걸리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요.
나만의 발효라는 오리지널티를 막걸리와 건축, 그리고 지역으로 확장하고 싶더라고요.
다시 말하자면 발효 문화 콘텐츠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어머니의 비법으로 전통 방식의 자연 발효 손막걸리를 제품화하기로 했습니다.
유학 중이었던 동생까지 한국으로 불러들였고요.
부모님께서 참 속상하셨겠죠? 그런데도 어머니는 최고의 아군이 되어 주셨습니다.
누구나 편안하게 맛있게 자연발효 손막걸리를 즐길 수 있도록 4~5년에 걸쳐 제품화를 위한 레시피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청량감과 생명력이 살아있는 막걸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동생은 최적의 맛을 살리기 위한 제품을 RND를 담당했고요.
저의 손막걸리는 온 가족이 함께 만들어낸 작품이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 이름이 독특하다고 하시는데요.
복순도가의 복순은 무슨 뜻일까요?
저희 어머니 존엄이십니다.
저희 어머님 성함이 복자 순자이십니다.
그럼 도가는 무엇일까요?
술도가의 도가가 아니고요. 도시도자와 집가자를 썼습니다.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고 싶었습니다.
용솟음 치는 자연발효 탄산이 특징이다 보니 손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막걸리와 샴페인을 합친 막페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
덕분에 저희 복순도가가 프리미엄 전통주 시장을 주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대가는 치러야 했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는 데 무려 10년이 걸렸거든요.
전통과 특별함이 어우러진 저희 막걸리는 2012년도에 서울 행안보 정상회의에 이어 각종 만찬에서 공식 건배주로 선정되었고요.
2015년도에는 샌프란시스코 국제와인 주류 품평회에서 금상을, 영국에서는 은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좋은 기회도 얻었습니다.
중소기업유통센터를 통해서 여러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고요.
덕분에 현재 홍콩과 일본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싱가포르, 유럽 그리고 미국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발효라는 오리지널티를 건축과 공간 그리고 지역사회로 풀어내는 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꿈 역시 지금 잘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도가에 오신 분들은 막걸리 맛에도 반하지만 자연과 지역과 어우러진 풍경이 감탄하십니다.
저의 오랜 꿈이자 대학 졸업 논문 주제였던 발효 건축을 우리 도가에 접목했습니다.
쌀과 누룩이 발효 과정을 거쳐 새로운 전통주가 되듯 흙, 논, 볏집, 누룩 등의 한국적 소재들이 건축재료로서의 1차적 의미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 영상, 설치 예술 등의 지역 속의 새로운 오브제로 활용됐습니다.
저희 도가의 외벽은 보시다시피 검은색인데요. 추수한 후 남은 볏짚을 태워 만들었습니다.
혹시 화경이라고 아시나요?
추수를 마치고 논에 불을 지른 게 저희 고향에서는 흔한 풍경이었는데요.
거기서 힌트를 얻어 저는 도가의 검은 외벽에 변화와 순환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제 꿈대로 저희 도가는 지역 어르신들의 마실터가 됐습니다.
방문객이라면 누구나 술을 빚는 과정과 천연 탄산이 만들어지는 발효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 됐고요.
이곳에서 막걸리의 향과 소리를 맛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에 약 2천 명 이상의 방문객이 오셨고, 지역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지역 명물로 소개되었습니다.
지역 어르신들의 비법 레시피로 만든 음식이나 제품을 팔 수 있는 프리마켓을 오픈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는 우리 지역 삶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양조장에서 일하는 어르신들도 저희 지역분들이시고요.
쌀이 남아도는 시대이다 보니 농부들의 삶의 터전인 논을 뒤엎는 광경에 너무 가슴이 아팠거든요.
그렇게 도아와 농촌이 상생하는 것이 제가 꿈꾸던 진정한 발효입니다.
가장 많이 반대하던 아버지는 지금 어떠실까요?
저희 도가에서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가장 열심히 술항아를 지키시는 분이 됐습니다.
그 사이에 술도 조금 하실 수 있게 됐고요.
여기까지 오기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잠도 잘 못 잤고요. 하지만 정말 행복합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새벽에 술독 옆에 지키면서 마음을 다스립니다.
발효는 단숨에 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죠.
기다림이 필요해요. 실패하면 또다시 담가야 합니다.
무수한 시도를 하고 오래 기다리다 보면 발효를 오감으로 느끼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새벽이면 늘 떠오르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릴 때 저는 술 빚는 할머니 곁에서 물이 술이 되는 놀라운 과정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때면 할머니가 알듯 모를듯한 말씀을 하셨어요.
"술 익는 거 신기하지 이게 다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기다.
그런데 그거 아나? 술뿐이겠나?
사람도 술처럼 천천히 익히는 기대잉
앞으로 니 마음도 차분히 삭혀봐라"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셨는데요.
니 마음도 삭혀보라는 그 말을 곱씹어 보면서 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발효하는 일입니다.
요즘 청년들 정말 힘들잖아요.
그런 청년들의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꿈까지 발휘할 수 있는 발효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지치고 꿈을 잃은 청년들에게 몸과 마음의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바로라는 키워드를 놓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하나의 키워드가 저와 저희 가족, 그리고 복순도가의 직원과 고객들을 통하여 막걸리로 또 지역 상생의 장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꿈은 잘 익어가고 있나요?
숙성에 어떤 단계를 지금 지나고 계신가요?
꿈을 숙성시키기 위한 하나의 키워드가 있으신가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 키워드는 여러분의 재능일 수 있고, 잊히지 않은 소중한 기억, 경험, 사람일 수 있습니다.
먼저 여러분만의 키워드를 찾아보세요.
벽에 부딪혔을 때 혹은 풀리지 않은 질문이 생길 때 그 키워드를 활용해 보세요.
단숨에 풀리지 않아도 분명히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제가 술이 있기를 기다리면서 정성을 다하듯이 숙성의 시간을 통과해 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발효의 힘을 믿는 김민교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