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동생이 남기고 간 ‘따뜻한 마음’ | 손봉수 양산부산대학교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 #장기기증 #생명 #사랑 | 세바시 1533회
제 동생이 일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위독하다는 겁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과 우리 가족과의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죽어가는 이 시간, 시한부에 고통스러운 이별의 시간을 보낼 바에야
제 동생의 살아남은 장기라도 필요한 분들의 몸과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는 것이 제 동생에게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저는 동생이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여태껏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양산부산대학교 병원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하고 있는 손봉수라고 합니다.
저는 10여 년의 공부를 마치고 전문의가 되었고요. 2012년도 5월부터 폐이식 수술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생각이 나는데요.
제가 처음 병원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저희 병원에서 의식을 하고 상태가 좋지 않아서 회복하지 못한 환자분이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환자분은 결국 두 번째 폐이식을 받았음에도 안타깝게도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환자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돌아가신 환자분의 남편분께서는 제 아내에게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리고 수고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어쩌면 당신의 아내, 당신의 어머니를 살리지 못한 의료진들이 참 원망스러울 법도 한데 말이죠.
흉부외과의 특성상 자주 발생하는 응급 수술과 이식 수술 등으로 피곤하고 지쳐가는 상태에도, 이런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이 좀 더 저를 의사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이 되어 준 것 같아요.
그 뒤로도 저는 많은 환자들의 폐 의식에 참여하면서 폐 적출팀을 꾸려서 전국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기증자들의 폐를 적출하러 다녔습니다.
교통사고, 뇌출혈 등으로 갑자기 뇌사 상태가 되신 분들도 계시고요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려고 시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사실 장기 적출 과정은 보통 하루 안에 급박하게 이루어지거든요.
뇌사 판정이 난 후 기증자의 장기를 적출하기 위한 병원을 선정하고요.
수술 시간을 정하고 그리고 장기 적출팀을 꾸리는 등 정신없이 수 시간 만에 결정이 되고 준비되어서 이식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이후에 적출팀들이 뇌사자가 계시는 병원으로 급히 가서 장기를 적출하고,
다시 장기를 받으실 이식 환자들이 있는 각자의 병원으로 돌아가서 이식을 하게 됩니다.
적출을 준비하고 타 병원으로 적출을 갔다 오는 시간은 적출팀에게는 총각을 다투는 시간이기 때문에요.
기증자와 그 가족분들의 마음에 대해서 헤아릴 시간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여유가 그리 없습니다.
빨리 적출해서 이식 받을 환자분들에게 가져다 드려야 되거든요.
한 번씩 적출하러 간 병원의 수술실 앞에서 흐느끼는 분들을 스쳐 지나갈 때, 혹시 환자의 가족분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기는 했지만요.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여느 때와 같이 수술하고 진료를 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마 2020년 10월 30일이었어요.
평소와 마찬가지로 환자를 보기 위해 회진을 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제 동생이 일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지금 다른 병원 응급실에 있는데 위독하다는 겁니다.
저는 처음에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어요.
그만큼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죠.
정신없이 차를 몰고 제 동생이 있다는 병원에 갔을 때,
응급실에서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서 숨을 쉬고 있는 제 동생을 봤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응급실에서 촬영한 CT를 봤는데요.
이미 뇌혈관 쪽으로 혈액이 가지 않는 심한 뇌출혈과 부종이 확인되었습니다.
저는 그 상태를 보고 제 동생이 결국 뇌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습니다.
예상대로 제 동생의 주치의인 신경외과 제 동기가 '가망이 없다'라고 했어요. '뇌사 상태가 될 것 같다'라고 해요.
동생을 잡고 우시는 그 칠순의 저희 어머니는 절규를 하셨죠.
곁에서 그걸 보는 저는 형으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가족조차 구하지 못한 의사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난 이제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에 가슴이 미어터져버릴 것만 같았어요.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를 묘시는 효자이면서도
12살도 넘는 첫째 조카를 업고 다닐 정도로 조카를 끔찍이도 아끼고 좋아했던 내 동생이
부모님께 인사 한 마디 남기지 못하고, 조카 보에 뽀뽀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보내려니 정말 억울하고 또 억울했습니다.
남은 가족들이 병원에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수일이 지났어요.
코로나 상황이라서 마음대로 면회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이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뇌사 상태에 대해 알고 있는 저로서는 동생과 우리 가족과의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의 신체는 서서히 기능을 잃어간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죠.
다른 가족들은 혹시나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도 못하고 속 가슴 아리만 하였습니다.
동생이 죽어가는 이 시간, 시한부에 고통스러운 이별의 시간을 보낼 바에야
제 동생의 살아남은 장기라도 필요한 분들의 몸과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는 것이 제 동생에게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생전 누구보다 착했던 동생 녀석도 제 생각에 선뜻 동의해 줄 것 같기도 했고,
제가 이식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의사이기도 하고,
동생의 장기만이 살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제 의견을 처음에는 부모님이 망설이셨죠.
"기증을 동의해 버리면 손 한 번 잡을 시간이라도 줄어드는 게 아니냐며,
조금이라도 곁에 두고 있고 싶다고 있게 하고 싶다고 저를 붙잡고..."
하지만 점점 안 좋아지는 동생의 모습에 결국은 동의를 해 주셨고요.
제 동생은 수술방에서 2020년 11월 12일 오후 6시 27분 그렇게 다른 분께 장기를 나눠 드리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제가 시간까지 아는 건요. 제 동생의 신장을 적출했던 의사가 같은 병원의 동기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자를 받고 정말 주저앉아 엉엉 울었어요.
동생이 이승을 떠난 시간 그 시간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게 알려준 그 형에게 고맙습니다.
그렇게 동생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도 전 가끔 장기 기증자 분들의 폐를 적출하러 다른 병원을 다니곤 합니다.
수술실에 들어오셔서 수술대에 누우신 장기 기증자분을 볼 때마다 그분들의 안타까운 사정이 무엇인지
가족들은 어떤 분이셨을까?
생전에 어떤 일을 했을까?
가족들과 헤어지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몰려와서 한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이식하는 의사의 특성상 기증자보다는 이식을 받는 환자분들의 상태에 더 관심을 둘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기증자뿐만 아니라 기증자의 가족분들의 마음을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증자의 가족 입장에서 기증의 결정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겪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전 동생이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을 여태껏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동생의 심장이 간히, 그리고 신장이 일부분이나마 살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이식을 기다리다가 결국 알맞은 장기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환자분들이 진짜 많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로, 인공 폐순환기로 이식을 기다리다가 결국 상태가 너무 나빠져서 이식을 받지 못하는 분들을 종종 보는데요.
현재 이식을 위해 장기 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 수는 3만 9천여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식 수술 건수는 1,500여 건 그리고 뇌사 장기기증 건은 442건으로 수년간 증가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결국 이식 수술은 장기 기증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죠.
제가 있는 병원도 수도권 이남에는 유일한 폐이식을 하는 병원이라서 폐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분들을 종종 만나 뵙고 합니다.
일전에 다른 병원에서 폐이식 없이는 소생할 수 없는 환자분을 모시러 간 적이 있는데요.
'에크모'라는 패를 대신하는 장치를 달지 않으면 이송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병원에서 이송팀들을 꾸려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엠블란스를 타고 가서 우리 병원으로 데려왔어요.
그분은 폐이식 후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십니다.
후일 폐이식 환우에서 만난 그 보호자분은 그때 저희 병원으로 모시러 갈 때 한가닥 희망을 간절히 붙잡게 되었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만일 이식 기증자가 소중한 폐장기를 기증해 주시지 못했다면,
환하게 웃고 있는 그 환자와 그 가족들을 볼 수 없었을 겁니다.
갑자기 뇌사가 된 환자분들의 장기는 수주 내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뇌가 이미 사망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체내 신체 기능을 조율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면 소중한 내 가족이 죽어가는데, 그 몸에 칼을 댄다는 생각에 망설이는 가족분들의 마음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요.
제 생각처럼 세상에 두고 갈 제 가족의 겉모습보다는 세상의 따뜻한 마음 한 조각 주고 간다고 생각해 보시는 건 어떤가요?
이 조그마한 헌신이 지금 간절히 소생을 희망하는 이식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크나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제 동생의 장기를 기중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분들이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남아 영원히 간직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쓰러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 살아 생존 제 동생의 따뜻한 마음이 세상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분들에게 새 생명을 드릴 수 있게 한 우리 가족의 결정을, 제 착한 동생은 하늘에서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평소에 기증을 해야 되겠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장기 기증 희망서약은 언제나 원하실 때 국립장기조직 혈액관리원이나 한국장기조직기증원 등에서 온라인 방문, 우편, 팩스 등을 통해서 희망 기증 서약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증 당시에 가족 동의가 없다면 본인이 희망했더라도 기증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요.
가족분들에게 기증에 관해 꼭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
사실 가족들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경황이 없으시겠지만, 기증 희망이 있다면 기증자가 계시는 해당 병원에 문의하시면 담당자가 기증 절차에 관해 설명을 들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후 뇌파 검사 및 뇌사 판정이 있은 후에 기증자의 장기 적출 수술 날짜와 시간이 정해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 한 조각 한 조각이 모여서,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적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의사이자 기증자의 가족으로서 기증자와 기증자의 가족들이 따뜻한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살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40여 년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지금에야 동생의 죽음과 장기 기증을 통해 주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쁜 흉부외과 의사 생활 속에서도 이곳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죠.
저를 있게 한 여러 고마운 분들 그리고 제 가족들, 제가 치료를 해 드린 많은 환자분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삶에 항상 평안이 깃들길 기도하겠습니다.
내려가는 길에 제 동생에게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볕 잘 드는 곳에 있거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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