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막막한 당신, 제대로 보고 계신가요? | 김한솔 유튜버 @OneshotHansol | #원샷한솔 #장애 #행복 | 세바시 1596회
9살 때 저는 처음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 저에게 11살 때 두 번째 어머니가 생기게 됐어요.
'어 나에게도 엄마가 생겼구나.'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제가 화장실을 가는데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한 소리를 다른 곳으로 보내면 좋겠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믿기지 않았어요. 1년 후 두 번째 어머니도 이혼을 하게 되시고 두 달 정도 지나서 저에게는 세 번째 어머니가 생기게 됐어요.
이게 뭐지?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저희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셨어요.
저는 세상에 혼자가 되었어요.
아 인생은 예상치 못한 순간의 연속 희귀병입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후면 남은 한쪽 눈도 못 보게 될 거예요.
이제 중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돼요.
저는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예상치 못한 인생을 즐기는 법 – 시각장애 크리에이터 김한솔
9살에 친어머니와 이별하고, 여러 번의 재혼과 이별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김한솔 님. 결국 13살에 아버지마저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고, 네 번째 어머니(큰어머니, 큰아버지) 댁에 맡겨집니다. 처음으로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며 공부에도 몰입할 수 있었죠.
하지만 18살, 갑자기 찾아온 희귀병으로 시력을 잃게 됩니다. “내 인생은 끝났구나”라는 좌절감에 빠졌지만, 큰어머니의 눈물과 가족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기로 결심합니다. 점자를 배우고, 맹학교와 대학에 진학,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시작합니다.
유튜브 ‘원샷한솔’ 채널을 시작할 땐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유튜브를 하냐”는 말도 들었지만, 고집과 긍정으로 10만 구독자를 넘으며 한국 최초로 점자 실버버튼도 받게 됩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채 느낀 불편함(컵라면의 점자 표기 등)을 세상에 알리기도 했습니다.
한솔 님은 “불행과 행복은 항상 같이 온다”고 말합니다. 불행만 보지 말고, 그 옆에 있는 작은 행복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생의 순간들을 즐기는 태도가 결국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고 전합니다.
“저는 시각장애인이 되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두려움 뒤엔 꼭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어요.”
포인트 요약
- 수차례 가족의 변화와 불우한 성장기, 그리고 시각장애라는 큰 시련
- 가족의 사랑, 점자 습득, 맹학교 및 대학 진학, 유튜버 도전
- 점자 표기 캠페인 등으로 사회에 긍정적 영향
- “불행 옆의 행복, 예상치 못한 인생의 즐거움”이라는 메시지
https://www.youtube.com/@OneshotHansol
네 안녕하세요.
저는 유튜브 원샷 한솔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김한솔이라고 합니다.
원래 소리를 많이 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여기 소리를 잘 내주셔서 몇 분이 와 계신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한 만 분 정도와 계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혹시 예상치 못한 순간을 얼마나 겪으셨나요?
오늘 여러분과 저는 예상치 못한 인생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네 저는 유튜브를 하면서 많이 듣는 질문들이 있어요.
한솔님 어떻게 그렇게 밝으세요?
한솔님 어떻게 그렇게 긍정적이세요?
그래서 제가 좀 찔리더라고요.
아니 내가 그렇게 긍정적이진 않은데
저도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은 아니었고요.
처음부터 이렇게 밝고 긍정적으로 살려고 하진 않았어요.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저는 많이 외로운 아이였어요.
9살 때 저는 처음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이별을 하게 됐어요.
그때 저는 아 왜 나에겐 엄마가 안 계실까
왜 다른 가족과 나는 이렇게 다를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집에 와도 아버지가 출장을 많이 다니셔서 혼자 있어야 되는 시간이 많았어요.
하~ 나도 집에 가족 구성원들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던 중 저에게 열한 살 때 두 번째 어머니가 생기게 됐어요.
처음엔요 그냥 좋았어요. 기뻤어요. 나에게도 엄마가 생겼구나
이제 학교에 가서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할 생각에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겠다 나는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돼서 예쁨을 많이 받아야겠다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어머니도 잘해주셨고 저는 행복할 일만 남았구나 생각했어요.
근데 어느 날 새벽에 제가 화장실을 가는데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한솔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면 좋겠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믿기지 않았어요. 눈치를 보는 아이가 돼 가기 시작했어요.
누구를 잘 못 믿겠더라고요.
1년 후 두 번째 어머니도 이혼을 하게 되시고
두 달 정도 지나서 저에겐 세 번째 어머니가 생기게 됐어요.
우와 이게 뭐지?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그래서 아 정말 이상하다 그래 과연 여기서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그리고 걱정은 현실이 되었어요.
제가 예쁜 옷을 입으려고 할 때면 어머니가 이건 우리 아이가 입을 거니까 다른 옷을 입으렴
제가 공부를 못하면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하잖아 이 아이를 봐라
아버지와 싸울 때면 너 때문이다 저의 자신감은 계속 사라지고 소극적인 아이가 돼 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속으로만 이야기하는 사람이 돼 가고 있는 거예요.
아~ 누군가 나의 이 슬픔과 힘듦 외로움을 봐주면 좋겠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한테 하고 싶은데 너무 힘들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13살 여름 저에게 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셨어요.
학교에서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까 아버지가 세상에 계시지 않는 거예요.
당연히 세 번째 어머니는 저의 곁을 떠나셨고, 저는 세상에 혼자가 되었어요.
막막했어요.
나 이제 어떻게 살지? 클 났다 어떻게 살지? 그때 구세주가 등장했어요.
저의 네 번째 어머니입니다.
네 저희 네 번째 어머니는요 큰 어머니와 큰아버지였어요.
큰 어머니 큰아버지가 저를 거둬주셨고, 저는 그곳에서 형 누나와 함께 다섯 식구가 함께 살게 됐어요.
근데 불안했죠.
이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근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진정한 저의 구세주였어요.
큰 어머니 큰 아버지와 함께 저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됐어요. 살면서
가족과 함께 모여서 밥을 먹으면서 근황을 이야기한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고 축복인지 여러분 아세요?
저는 그때 처음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 상황이 저에게 너무나 낯설고 충격적이기까지 했어요.
그래 본 적이 사실 없거든요.
일상의 평범함이 주는 행복이 이런 거구나 너무 행복하다.
제가 반에서 사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아니었거든요.
30등 정도 했나요?
근데 큰어머니 큰아버지와 살면서 바로 1등을 했어요.

진짜 환경이 진짜 중요하구나.
이제 그럼 내가 할 일은 이 평범함을 즐기면서 느끼면서 성인이 얼른 돼서 큰 어머니 큰 아버지를 호강시켜 드려야겠다.
좋아 가는 거야!
근데 열여덟 살 때 인생은 예상치 못한 순간의 연속, 저에게 가장 큰 인생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어요.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우연히 저의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뭐지? 눈이 왜 안 보이지? 일단 병원으로 갔어요.
저는 사실 시력이 좋은 편이었거든요.
아 난 몽골인인가? 할 정도로, 근데 시력 측정 불가 큰 병원에 가셔야 될 것 같다 잘 모르겠다.
큰 병원 건강했던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어요.
가족 모두가 불안에 떨면서 병원에 갔죠.
다행히도 단순 염증이라고 하셨고 몇 달 후면 괜찮아질 거다라고 해서 안심하고 살았어요.
몇 달이 지나서 책을 보고 있는데요 책 글자가 사사삭 사라져 보이는 거예요.
어 뭐야 이게?
정말 이상하고 불길했어요. 솔직히
바로 불안감에 큰 병원으로 다시 갔어요.
큰 엄마의 손을 꼭 붙잡고, 그리고 피를 뽑고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후에 찾아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일주일 후 진료실로 들어가는데 공기가 좀 무거웠어요.
표정이 안 좋았어요. 그때까지는 제가 보였거든요.
그리고 한숨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참 미안하다.
이럴 때마다 어떤 말을 어떻게 전해야 될지 자기도 참 어렵다.
희귀병입니다.
그리고 두 달 정도 후면 남은 한쪽 눈도 못 보게 될 거예요.
이제 중증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야 돼요.
준비하셔야 돼요.
전 제가 잘못 들은 줄 알았어요.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어 너희가 세상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데, 우리 큰 엄마의 얼굴이 똑똑해 보이는데 말도 안 돼~ 에이~ 에이 말도 안 돼
그리고 두 달 후 저의 눈은 안 보이게 됐어요.
세상이 안 보이게 됐어요
공교롭게도. 그리고 저의 열여덟 번째 생일날 저는 복지카드 장애인 등록증을 받게 됐어요.
그날 저는 시각장애인 한 살로 다시 태어난 거예요.
인생이 어떻게 이런 일이
저의 현재 시력은요 누군가 저 앞에 딱 서 있을 때 사람이 있구나 없구나 정도 판별이 가능하고요
그 조차도 빛에 따라서 좀 달라요.
그래서 가끔은요 전봇대를 보고 안녕하세요 하는 경우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래서 뭐야 처음에는 근데 이게 적응이 안 되니까
내 인생은 끝났구나 망했다 행복해야 되는데 한 두 달 동안 누워만 지냈어요.
학교도 자퇴했고요
핸드폰도 못하지, 컴퓨터도 못 하지, 큰엄마 큰 아빠 얼굴도 안 보이지,
밖에 나가 봤는데 길도 잃었지.
근데 그때 어떤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누군가의 울음소리였어요.
처음 듣는 큰 엄마의 울음소리.
그때 머리를 한 데 딱 맞은 것 같았어요.
제가 어릴 때 누군가 나의 슬픔과 힘듦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나는 정작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그 누군가의 슬픔과 힘듬을 보지 못했구나 너무 미안했어요.
그리고 이렇게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좋아해 보자 다시 해보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해보자.
나한테는 여전히 네 개의 감각이나 남아 있잖아.
좋아 점자를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점자를 배우기가 너무 싫었어요. 왜냐하면 TV를 보면 장애인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타깝게만 나왔거든요.
그걸 보면서 아 나도 그럼 이제 안타까운 사람이 된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싫더라고요.
그거 알죠?
띠리리~ 오늘도 한솔이는 꿈을 향해 달려갑니다.
아 이거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건가?
하 진짜 어떻게 아니야 나는 그런 사람이 안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좋아 점자를 배우기로 결심하면서 언젠간 이 새롭게 배운 이 글자로 나의 이야기를 쓰는 날이 오면 좋겠다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렇게 점자를 배웠어요.
저한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했는데 저는 한 달 만에 한글과 영어를 마스터했어요.

감사합니다.
점자를 배우고 20살 때 맹학교에 다시 입학하고, 대학교까지 합격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수능 수학도 손가락으로 그래프를 느끼면서 암산하고 그래프를 그리고 1등급도 받았어요.

너무너무 자랑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근데 맹학교에서 공부보다 더 큰걸 저는 배웠어요.
시각장애인으로서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확신 갔더니 저보다 안 보이는 친구들이 막 저를 막 끌고 다녀요.
여기는 여기고 여긴 어디고 여긴 저기야 막 설명해 주는데
너 왜 그렇게 웃으면서 이렇게 뭐가 그렇게 재미있지?
그리고 핸드폰 하는 방법도 다 가르쳐주고, 요리하는 방법도 막 가르쳐주고, 나도 할 수 있겠네 하면서 다 했어요.
와~ 그리고 재밌다. 야 눈에 안 보여도 재밌네. 시각 장애인 인생 괜찮게 했는데
나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좋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보자 하면서
대학에 가서도 저는 하고 싶은 걸 마구마구마구 했어요.
동아리도 제가 직접 만들어보고요.
막 장애에 대해서도 학생들한테 막 이야기도 하고 그리고 점자 블록이 없으면 여기 점자 블록도 만들어 주세요.
휠체어석도 만들어 주세요 경사로도 만들어 주세요 하면서 저희 대학교는 싹 다 변했어요.
그러면 이제 취업할 때가 그러면서 취업할 때가 다가왔어요.
뭐 하지? 이제?
고민이다. 회사에 가야 하나? 아 차별이 있지 않을까? 공무원 시험을 봐야 하나?
아 근데 나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은데, 이건 나의 길이 아닌데,
장애인은 여전히 TV에서 불쌍하게 나오네.
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 미디어의 세계
내가 그러면 스스로 기획해서 무언가를 보여줘 보자.
나는 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건 뭘까 하다가
유튜브다.
유튜브를 해보자.
2019년 말 저는 결심합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말했더니 야 너 어떻게 시각 매체를 시각장애인이 해 할 수 있겠어?
아 야 너 하다 말 거 같은데 괜찮겠어? 굶어 죽지 않겠어 그럴까?
아니야 괜찮아. 나는 고집이 있어.
다행히 저는 고집이 있어서 남의 말을 무시했어요.
그리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그냥 묻기만 하고 어 넌 그렇구나 오케이 그냥 무시해야겠다.
유튜브를 결심하고 딱 시작합니다.
다행히 좋은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에 친구를 막 꼬셔서 영상을 만들어라.
나는 말을 하겠다.
9개월 후에 저의 구독자는 천 명!
야 수익 창출이 생겼다!
수익 창출도 됐어요.
야 첫 수익은 과연 1천 원 이거 음료수 한 캔도 못 사 먹네,
그래 내가 돈을 바라고 한 건 아니니까 처음에
그렇게 세 달이 지나서 1년에 됐을 때 1만 5천
야 이번 수익은 얼마인가?
2만 원 치킨 한 마리를 사 먹었어요.
아 이것도 좀 힘든데, 이러다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진짜 애들 말처럼
두 달 후 10만 명!!
말도 안 돼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찾아왔어요.
이야 대박
한국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실버 버튼을 받고, 세계 최초로 점자가 각인된 실버 버튼 점자 편지까지 받게 됐어요.
제가 막 야 감사합니다.

제가 막 요청했거든요.
제가 시각장애인인데 거기다 한글을 써주면 제가 못 보지 않겠느냐
여기에 원샷 한 소리인지 투 샷 한 소리인지 제가 모릅니다.
좀 점자로 써주세요 해서 받았어요.
그게 세계 최초로 와 예상하지 못한 정말 순간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어느 정도 먹고 살 수도 있겠군.
계속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
그리고 현재는요 구독자 50만을 앞에 뒀어요.

감사합니다.
제가 시각 장애인이 되고 영상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시각 장애인이 되고 보니까 그 간편한 컵라면이 너무나 먹기 힘든 거예요.
제가 손가락을 넣다 뺐다 넣다 뺐다 해요.
아 뜨아뜨 이거 손가락 이거 10번 끓이면 손가락이 나만 하지 않겠네.
그래서 아 이런 거 조금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컵 라면 모양도 다 똑같고
이걸 이야기했더니 구독자분들이 라면 회사에 다 연락을 했어요.
그러면서 라면 회사에서 저한테 또 연락이 왔어요.
같이 점자도 만들었어요.
편의점에 가시면요 컵라면에 자세히 보세요.
모든 건 아직 아니지만 어떤 컵라면들은 점자가 막 있어요.
진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랑 하나 더 할게요.
제가 점자를 진짜 배우기 싫었는데 그때 막연하게 기대했던 그것
언젠가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했던 생각을 했었는데요.
올해 9월에 저의 책이 출간됐어요.
점자로 한 글자 한 글자
슬픔은 원샷 매일이 맑음.
저의 책은요 표지에도 점자로 각인이 돼 있어요.
저는 이제는 점자랑 저의 인생을 떼놓고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 예상 못한 순간이 또 한 가지인데요.
여러분 앞에서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거라고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어요.
너무너무 기쁜 순간들이 저에게는 찾아오고 있어요.
시각장애도 그렇고 저의 가족도 그렇고 저의 인생에는 정말 예상 못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시각장애는요 처음에는 저에게 너무 큰 고난과 역경
아~ 인생 포기하고 싶은 무언가 그런 거였는데요.
지금은요 저에겐 없어서는 안 될
당분간은 눈 뜰 생각이 없어요.
유튜브를 더 해야 되거든요.

저에게는 선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이제는 많은 기회를 주고 예상 못한 즐거움을 가져다줘요.
저는 시각 장애인이 되고 더 많은 것들을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인생을 보면요
불행과 행복은 늘 같이 있어요.
근데 불행이 찾아오면 그 불행이 너무 크니까 행복이라는 녀석을 제대로 보지 못해요.
근데 이제는 저는 같이 오면 볼 수 있어요.
불행이 올 때 엄청 짜증도 내요. 근데 그 뒤에 행복이 있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 녀석을 놓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 녀석에 집중해요.
그러면 불행해도 다시 일어설 수가 있더라고요.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그리고 예상치 못한 그 두려움 뒤에는 즐거움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힘든 일이 있어도 아 짜증 냈다가 금방 일어나요.
그래
그 뒤에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저는 시각 장애인이 되고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더 넓어진 것 같아요. 시야가
그리고 시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 여러분은 예상치 못한 순간이 왔을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여러분은 현재 무얼 보고 계신가요?
지금까지 시각장애를 가진 크리에이터 행복을 꿈꾸며 계속해서 살아갈 김한솔이었습니다.
아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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