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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 양정숙 장애인 수영선수 김세진군 어머니 | 세바시 477회


강연 소개 : 선천성 무형성장애로 두 다리와 팔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한 아이. 지금은 '로봇다리 수영선수'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제 아들 세진이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작년엔 '2013 장애인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들로 성장해 이제는 엄마인 저를 지켜줍니다. 많이 울고 많이 아팠던 이 아이에게 어쩌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였을지도 모릅니다. 모질었던 세상을 어떻게 견뎌왔는지,또 일하면서 아이들 키우면서 울고 웃었던 순간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게시일: 2014. 10. 12.



미국으로 입양을 간 천사같은 아이가 세살짜리 여자 아이가 저에게 물어봤어요

"너, 얘 엄마야?"

"응, 아줌마가 이 오빠 엄마야"

"근데 너 좋은 엄마야?"

그 말에 가슴이 무너졌어요 나는 어떤 엄마인가

"아니, 나는 나쁜 엄마야"

아줌마는 오빠들에게 좋은 말보다 나쁜 말을 더 많이 가르친 나쁜 엄마야

세상은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거든

세상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만 했거든

희망적이고 칭찬의 말보다는

모질고 절망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해줬거든

그래서 그 말에 아줌마 아들이, 아줌마 딸이 상처 받을까봐

그 말에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까봐

아줌마는 아이들에게 너무 나쁜 말을 가르쳤어, 욕을 가르쳤어

하지 않아도 되고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가르쳤어

나는 정말 나쁜 엄마야


사람들은 저에게 '넌 진짜 대한민국 3대 독한 년 중에 하나다'

'너는 세계 5대 계모 중에 하날 거다'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위로를 받는 거는

신데렐라랑 백설공주는 왕자님이랑 결혼을 했잖아요

콩쥐도 신발 잊어먹어 가지고 고을 원님 아들이랑 결혼했잖아요

심청이도 아버지 때문에 인당수에 뛰어들었지만

결국은 연꽃타고 올라와서 왕비까지 됐잖아요


우리 아이들도 어쩌면 왕자랑 공주랑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희망을 삼고 있어요


선생님이 "너희들은 꿈이 뭐야?"

"너희들은 뭐가 되고 싶어?" 라고 물어봤어요

친구들은 "변호사요" "저는 외교관이요" 라고 얘기를 했는데

저는 과감히 손을 들어서

"저는 이 나라의 국모가 되겠습니다"

저는 국모가 꿈이었어요


다섯 살 때 TV에서 우연히 본 한 여인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너무 자상해 보이는 거예요

"아빠 아빠, 저 사람 누구야?" "응, 저 사람은 영부인이야"

"영부인이 뭐야?" "국모야. 이 나라의 국모야 저 사람은"

"아빠, 나 국모 될래 나는 저 사람처럼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저는 엄마가 없어요

태어나서 바로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물론 부유한 아버지 밑에서 엄마를 대신해 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지만

엄마의 자리는 늘 저에게 빈 자리였어요

그래서 엄마에 대한 환상을 가졌는데

저 분을 보고 '나는 국모가 되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친구들이 소꿉놀이를 막 하잖아요

"니가 엄마 해. 내가 아빠 할게" "난 아가야 할거야"

"정숙아 너는 뭐 할래?"

"나는 국모 할 거야"

(웃음)

친구들은 저와 안 놀아 줬어요

그래서 집에 가서 혼자서

분홍색 보자기 여기다 묶어놓고 손 흔드는 연습 했었어요

난 이렇게 될거야


저는 국모의 꿈을 가지고 살고 있었는데

우리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야야, 국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국모다"

"그리고 국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 국모다"

"그러니 너는 좋은 국모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를 국모로 만들어 준 제 딸입니다

너무 귀엽죠 너무 이쁘죠

그러나 이 년은 보통 년이 아닙니다

(웃음)

제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어려웠을 때

축복처럼 선물처럼 저에게 온 아이입니다

너무 가난해서 하루에 버스 다섯 번밖에 오지 않는 그런 시골에서 살았어요

백 (만원)에 십 만원이면 어떤 집인지 아시겠죠?

성냥갑같은 손바닥만한 집에 코딱지만한 부엌

자는 애를 발로 몇 번 밀어봐요 연탄가스에 이게 죽었나, 살았나

그렇게 어렵게 살았어요


저는 일을 해야 했거든요

새벽이면 그 버스 시간에 맞추어서

칼바람 맞으면서 아이를 담요에 싸서 갔어요

그리고 어린이집 앞에 내려다놓고

"은아야 엄마 일하고 올 테니까 잘 놀고 있어"

말은 하지 않지만 제 딸은 저를 글썽글썽하면서 쳐다봅니다

그 눈은 저에게 이렇게 얘기해요

"엄마 오늘 안 가면 안 돼? 엄마 오늘 하루만 회사 안 가면 안 돼?

"아니 엄마, 나 오늘 하루만 엄마 따라가면 안 돼?"

"엄마, 친구들이 나 놀려 너는 왜 일등으로 와서 꼴등으로 가?"

"너는 엄마가 없어? 왜 너네 엄마는 안 와? 엄마.."

그 눈동자를 보면서도 그 딸의 마음을 읽어내지만

그래도 밀어넣어요, 강제로

"가! 어린이집 가 있어야지 그래야 엄마가 일을 하지"

"그래야 돈을 벌지"

"그래야 엄마가 저녁에 맛있는 거 사줄 거 아니야, 그러니까 가!"

어떤 날은 30센티 자가 부러지도록 때려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넣어요

그리고 돌아서는 저도 울고 아이도 울고


너무 열심히 살고 정말 죽도록 일을 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는 날이 저에게도 오게 됐어요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일주일의 하루는 남을 위해서 사는 게 사람같이 사는거라고 가르치셨어요

그래서 제 딸을 데리고 가까이 있는 보육시설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는데

거기에서 한 남자 아이를 만나요

그 아이는 두 다리도 없어요 오른손도 없어요

다른 애들 기차놀이 할 때

그 아이는 혼자 피아노 밑에 들어가서 손가락 빨고 있던 아이였어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아이의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너무 많게 느껴졌어요


그 아이와 1년을 쭉 지켜봤었는데

이 년이 8살 때

"엄마 나는 8년 동안 엄마한테 사랑을 받았잖아"

"그러니까 엄마 8년 동안 이 아이 사랑해주면 안 돼?"

"내가 양보할게 이 아이 입양하면 안 돼?"

"이 아이는 우리가 아니면 데려갈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엄마 내가 도와줄게 내 동생 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해서 입양이라는 방법을 통해 제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딸에게 동생이 됐습니다

그 딸은 결혼을 했구요

사랑하는 우리 사위 윤효식 군과

(웃음)

아직까지 이렇게 예쁜 저를 조만간에 할머니로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랑한 동생이 얘입니다

(박수)

근데 얘도 보통이 아니예요


누나의 사랑을 듬뿍 받고 그렇게 아들이 된 우리 아들

그리고 이 두 아이들

두 남매의 마음은 사람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언어로 단어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서로 사랑하는

그리고 정말 누나가 지극히 동생을 위해서 희생하는 그런 사이입니다


저는 새벽에 건설 현장에서 청소 일을 했어요

아줌마 15명을 차에 이빠이 태워서 현장에 모셔다 놓고

"아줌마 청소 여기 여기 하세요"

그리고 전 백화점에 가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밥 딱 먹여 놓고 밤이면 대리운전하러 갑니다

그리고 새벽에 와요

그리고 많이 자면 4시간 적게 자면 2시간

남들이 점심 먹을 때 저는 창고에서 김밥 하나 물고

너무 졸릴 때는 혀를 꽉 깨물어서 그 피가 멈추지 않았던 적도 있고요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저는 남편이 없어요

처음부터 남편이 없었으면 참 고마웠겠지만

아시죠 남편 하나가 열 자식 키우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

잘하셔야 합니다

아이를 먹여야 했어요, 입혀야 했어요, 가르쳐야 했어요

제 아들은 두 다리가 없기 때문에

의족이라는 높은 신발을 신겨서 친구들하고 놀게 해야 했어요

세상에 세워야 했어요

일 년에 한 달 이상은 수술을 해야 해서 병원에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병원을 다녀야 되니까 정규직은 생각할 수도 없어서

막노동을 하고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제가 아이를 데리고 수술을 하러 갔는데

우리 딸 아이 운동회가 된 거예요

미안하잖아요 김밥도 못 싸줬는데

우리 은아 좋아하는 사이다 한 병 못 넣어줬는데

혼자 잤을 텐데, 무서웠을 텐데

점심이나 먹었을까 전화를 했어요

"은아야 밥은 먹었니? 혹시 친구 엄마가 김밥 싸주디?

"엄마 걱정하지 마 나 밥 많이 먹었어"

"어떻게 먹었니?"

"엄마 우리 반이 1번에서 36번까지 있는데

1번부터 하나씩 뺏어 먹으면 난 세 줄 먹어"

(웃음)

그때 말렸었어야 해요

은아야 한 줄만 먹었어야지

(웃음과 박수)


현장에서 청소 일을 하다 보니까

시간을 못 맞춰서 아이가 학교 갈 때 늦게 왔어요

집에 오니까 애가 없는 거예요

이 누나가 동생을 포대기로 업고 학교를 간 거예요

그것도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거예요

"은아야 너 왜 여기 있어? 엄마 금방 온다고 했잖아"

"동생 놓고 학교 가면 되잖아"

"아니야, 엄마 혹시 나 없을 때 얘가 위험한 거 만지면 어떡해"

"그래서 내가 업고 왔어"

"근데 왜 화장실에 있어?"

"엄마 사실은 친구들이 놀렸어" "뭐라고?"

"은아 동생 병신이라고 같이 놀지 말라고"

"재수 없다고, 쟤 6남매 찍냐고 그러면서 놀렸어"

"그래서 나 여기 있는거야"

그 아이를 받아서 오면서

"은아야 괜찮아, 장애인인 거 죄 아니야"

"장애인으로 태어난 거 죄 아니야 그러니까 들어가서 공부해"


저녁에 집에 왔는데 딸아이의 손이 이 만큼이 부어있는 거예요

"은아야 너 손이 왜 그러니?" "엄마 잘못했어요"

"잘못한거 말고 손이 왜 그러냐고"

"엄마 내가 놀이터에서 놀고 왔는데 내 발은 더럽잖아"

"그런데 내 동생은 다리가 없으니까 엉덩이로 밀고 다녀야 되고"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락스로 청소했어"

아이라서 락스를 희석하는 걸 몰랐던 거예요

원액으로 청소해서 손이 이 만큼 부어있으면서도

그래도 지 동생 이쁘다고 쭉쭉 빨고 안고 자고

엄마한테 야단맞으면 얘가 때릴 데가 어딨다고 때리냐고

지 동생 감싸안는 누나입니다


지 동생 친구들이 안 놀아줍니다

어떤 엄마가 '얘랑 놀지마' 문을 쾅 닫았는데

그 문에 아이 손이 낀 거예요

얼마나 아팠겠어요?

울고 절규하는 그 동생을 집에다 갖다놓고

그 여자 집으로 쫓아가서 마루에 퍼질러져 앉아가지고 운 거예요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요 가난한 거 죄 아니래요"

"못생긴 것도 죄 아니래요"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도 죄 아니라고 그랬어요"

"열심히 안 사는 게 죄예요"

"우리 동생한테 왜 그러세요?"

"우리 동생 전염병 아니거든요"

너무 울고 따지니까 그 여자가 전화가 왔어요

"은아 엄마, 내 미안한데 내가 진짜 미안하다고도 했거든"

"잘못했다고도 했거든 내가 다시는 안 그런다고도 했는데"

"느그 딸이 집에를 안 간다"

"전화 바꿔줄게 니가 우째 한 번 해봐"

전화를 받고 "은아야 아줌마가 미안하다고 하잖아, 집에 가"

"엄마 나 갈 수 없어 이렇게는 갈 수 없어"

"우짤껀데 그러면?"

"나 이 집 남편 만날거야"

"니가 그 집 남편 만나서 뭐하게?"

"마누라 교육을 어떻게 시킨거야"

(웃음)

정말 보통 년이 아니죠



그 누나의 지극정성 사랑을 받은 제 아들입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세진입니다


이 아이는

(박수)

이 아이는 다섯 살 때 5km 마라톤을 완주했고요

걷는 것도 불가능했던 그런 아이가

일어서서 아홉 살 때 10km 마라톤을 완주했고요

그리고 15살, 만 15살에

성균관대학교 역대 최연소 전 학년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어요

뿐만 아니라 이 아이가 받는 장학금은 장애인이라서 주는 장학금이 아니에요

성적이 좋아서 받는 장학금입니다

(박수)


"엄마 비록 나는 사는 게 힘들었지만"

"내 동생은, 내 동생들이 살 세상은 힘들지 않은 세상으로 바꾸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물속에서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는 제 아들입니다

이미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365회 1년을 꽉 채운 365회에 출연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던 아이입니다 [링크]

제가 오늘 여기 나간다고 하니까 저한테

"엄마 내가 선배인 거 알지?"

(웃음)


지난 8월에는 UN 스포츠국에 초청을 받아서

우리나라 태극기를 걸고 우리나라 옷을 입고 영어로 강연을 했어요

세진이는 영어를 배운 적이 없어요

두 달 연습해가지고 저렇게

(웃음)

저는 영어로 연설을 하면

'레이디 앤드 젠틀맨' 이렇게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사람들이 웃더라구요

아, 쟤가 영어를 잘하는구나



세진이에게 얘기합니다

"세진아, 너가 야유받을 자신이 없으면"

"박수 받을 자리에 서지 않는 것도 어쩌면 현명한 일일 수도 있어"

"그 자리가 네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네가 잠시 빌려 서 있는 거야"

"그 자리를 지키고 싶으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된다"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사랑하는 우리 아들 사랑하는 우리 사위


왜 네 눈 찔러가면서 왜 네 무덤 파 가면서

그렇게 어려운 일을 선택했냐고 사람들이 많이 물어봤지만


저는 할 줄 아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일밖에 없었어요

"하고 싶니? 그래 해 그래 최고로 해"

우리 아이들은 그 기회를 기적으로 만들어냈고

그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늘 일하는 엄마여서, 늘 함께 해주지 못하는 엄마여서 미안했지만

우리 아버지의 말씀처럼 우리 아이들은 이 나라를 대표하는 아이들이 되었고요

지금 일을 하고 있으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두 배의 노력, 네 배의 노력으로 살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일하는 것이 행복한 엄마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해줘서 고마워, 얘들아

너희들의 엄마인 걸 한번도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단다

너희들의 엄마라서 행복하다

사랑한다

감사합니다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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