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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876회 | 불행하고 불안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이 영상을 바칩니다. |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행복 공부,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 저자

불행하고 불안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이 영상을 바칩니다. |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행복 공부,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 저자 | 세바시 1876회

 

불행하고 불안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이 영상을 바칩니다.

 

  • 현재 한국 사회는 철부지 천지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 지금 놀아야 할 때 못 놀고, 잘 시간에 못 자고, 또 일할 나이에는 또 일을 못 찾고 
  • 결정적으로는 결국 나도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 텐데 굳이 낳아서 기르고 싶지 않다.
  • 한국의 이제 초저출생 현상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보내는 고요한 외침 
  • 즉 학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시대의 경고라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먼저 질문부터 하나 드릴게요.

 

성공과, 행복 중 무엇을 바라십니까?

 

여러분은 성공과 행복 중에 뭘 더 바라세요? 나는 행복을 더 바란다. 손 네 손 내리십시오. 

손 안 드신 분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혹시 성공을 더 바란다 하는 분은 아마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성공해야지 행복한 거 아닌가?

실패했는데도 행복하다는 거는 혹시 정신 승리 이런 거 아닌가?라는 거죠.

 

그러면 성공하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제가 20대 대학생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뭔지 고르게 했어요.

그러니까 재능, 외모, 성격, 노력, 부모의 재력, 인맥, 우연한 행운 이 7가지 중에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대학생 천 명을 조사했더니 무려 50.5%가 뭘 꼽았다? 부모의 제력 이걸 성공 요인 1순위로 꼽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중국, 일본 미국 대학생들을 함께 조사했거든요.

근데 다른 나라 청년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아 진짜 이러면 요즘 한국에서 아무나 부모 못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실제로도 1969년생 제 동갑내기 100만 명 넘게 태어났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출생아 수는 거의 한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죠.

 

그렇다면 한국 청년들이 부모의 재력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요?

학자들은 한국 사회를 발전주의 모델로 설명하곤 해요.

 

 

그러니까 정부의 구호는 이제 옛날에는 보면 60년대는 우리 근대화, 그다음에는 세계화, 그다음에 선진화 이렇게 구호는 발전해 왔죠.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늘 성장 중심이고 그다음에 늘 지금의 위기 상황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지금이 한국 경제의 기로야 그러니까 우리 열심히 달려야 돼 이런 식으로 독려를 해왔던 거죠.

물론 이제 이게 성과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발전주의는 우리가 압축성장이라는 거 있죠.

고도의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고 그래서 1인당 소득이 쭉쭉쭉쭉 상승했어요.

 

결국은 이제 한국은 개도국이었다가 선진국이 된 최초의 나라예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이런 물질 중심의 어떤 생존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이죠.

그래서 경쟁도 너무 심하고 또 불안과 강박도 있고, 또 피로를 넘어서서 이제 탈진하기도 하고,

결국 별로 행복하지 않은 사회로 지금 남아 있어요.

우리가 보면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다라고 하는데 세계 행복도 순위는 늘 50위 60위권이거든요.

 

또 이제 이런 나라는 아동, 청소년, 청년을 철부지로 만들었어요.

여러분 철부지의 원래 뜻이 뭔지 아세요? 철부지의 철은 계절을 말해요.

그러니까 철 즉 계절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거든요.

근데 농경사회에서는 24절기라는 게 굉장히 중요했죠.

언제 씨 뿌리고, 언제 이제 수확하고 이런 걸 다 알아야 되니까.

근데 이걸 몰라가지고 때에 맞게 그 해야 되는 일을 못하는 사람 그걸 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가 철부지라고 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지금 놀아야 할 때 못 놀고, 잘 시간에 못 자고, 또 일할 나이에는 또 일을 못 찾고,

또 연애할 나이에는 연애 못하고, 결혼할 나이에는 결혼 못하고,

또 아이를 낳는 것도 어느 정도는 또 안전한 나이가 있잖아요.

또 그 시기에 아이를 못 낳고 있는 거죠. 

그래서 어찌 보면 현재 한국 사회는 철부지 천지라고도 할 수가 있어요.

 

제가 이제 은유적으로 이제 철부지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우리 시대에 이 청년들이 정말 이제 철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요.

근데 너무 심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다 보니까 청년들이 이제 사람 만나는 거, 시간 낭비 아닐까?

연애도 결혼도 시간 낭비 아닐까? 이렇게 마음이 이제 조급하니까 그렇게 좀 여유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이제 결정적으로는 결국 나도, 아이도 행복하지 않을 텐데 굳이 낳아서 기르고 싶지 않다.

뭐 이런 마음들이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한국의 초저출생 현상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 사회를 살고 있는 청년들이 이 세상에 보내는 

고요한 외침 그리고 학자 입장에서 보기에는 시대의 경고라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근데 하지만 또 위기는 또 기회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기회가 있을까요?

우리가 아까 말씀드렸던 발전주의 모델에서 좀 벗어나고 또 물질 중심의 어떤 가치관에서 벗어날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그런데 제가 예전에 청년들하고 그 삶을 바꾸는 상상이라는 제목으로 이 심야 토크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때 이제 한 청년이 했던 얘기가 생각이 나요.

이제 오늘 삶을 바꾸는 상상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와 아이디어들이 나왔는데 

'먼저 상상을 바꾸는 삶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라는 거였어요.

저는 굉장히 공감했거든요. 

그러니까 사회와 국가가 해야 되는 일들이 분명히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해야 될 일도 있어요.

그러니까 행복 중심의 사회에 다가가려면

우리 스스로도 좀 지속 가능한 행복의 원천을 공부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러니까 불행한 환경은 분명히 사회적으로 개선하는 게 시급한 문제예요.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물질적인 환경이 예전보다는 좀 나아졌어도, 주변에 보니까 나보다 훨씬 잘 살아

그러니까 거기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네 이런 생각이 들면 이제 씁쓸해지기도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서는 환경 못지않게 중요한 게 뭐다? 바로 행동이에요.

그러니까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실천이 중요한 건데요.

 

 

이런 행복을 높이는 대표적인 행동에는 뭐가 있을까?

학자들이 여러 사례들을 연구해 본 결과는 첫 번째는 관계 형성, 두 번째는 몰입 세 번째는 덕행 이런 건데요.

그래서 관계는 좀 따스한 인간관계를 말해요.

그다음에 몰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어떤 빠져드는 경험을 말하거든요.

그래서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렇죠 그다음에 덕행은 타인에게 도움이나 위로가 되는 걸 말해요.

근데 이제 이런 관계, 몰입, 덕행에는 모두 타인이나 이런 몰입 대상과의 연결감이 필요해요.

또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그 연결감이 강해지거든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돼요.

결국 나를 그리고 내 삶을 더 사랑하게 되고 내 삶에서 행복한 시간이 늘어나는 거거든요.

 

 

여러분에게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으면 손들어보세요.

여기서 손 안 들면 같이 온 사람들 특히 배우자나 가족이랑 관계가 애매해집니다.

네 좋습니다. 손 내리시고요. 

그럼 여러분은 나 자신을 사랑하세요? 나는 나를 사랑하는가? 나를 사랑하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아까보다 조금 적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많이 드셨어요.

근데 이제 자신과의 관계는 세상을 바라보고 또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어떤 틀이 되거든요.

 

근데 요즘 이제 나 혼자 산다 생활족이 늘어나고 있죠.

그러면 내 유일한 동거인이 누구예요? 나예요? 그러니까 나랑 친해야지 행복한 거예요.

근데 나랑 친하게 지내려면 내가 나를 좋게 생각해야 돼요.

그러니까 즉 나에 대한 호감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나에 관한 생각은 타인과 사회가 나에 대해서 내리는 평가에 영향을 받아요.

근데 이제 우리가 그동안 받아왔던 대표적인 평가는 어떤 게 있어요?

다들 한 번씩 보셨죠? 

대학 가기 전에 수능 같은 거, 그러니까 수능 성적 혹은 그전에 내신 성적 같은 거죠.

다 등급으로 나오잖아요. 

이제 그건 잊어야 돼요.

왜 아직도 나는 1에서 9등급 중에서 특정 등급이라고 생각해야 되나요?

우리는 소고기가 아니에요? 

소고기는 왜 이렇게 육질에 따라서 등급이 매겨지잖아요.

우리는 참 많이 평가받고 비교 당했어요.

집안에서 또 이웃들과 뭐 엄친아 뭐 이렇게 많이 비교하잖아요.

그다음에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평가받고 비교당해 왔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나를 사랑하지 못한 채 우리는 또 여러 가지 인간관계에 엮여 들어갔고 거기서 힘들죠.

그러다 보니까 이제 나는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 혼자 있으니까 상처받을 일도 없다라면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고립은 내가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 거예요.

그렇죠?

수동적인 고립은 일종의 관계의 결핍이라고 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 여기서는 외로움이나 소외감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진정 원하고 필요해 가지고 어떤 일시적으로 내가 그 고독을 택할 수도 있죠.

그거 하고는 다른 거예요. 

그래도 가족은 사람들에게 인간관계의 마지막 보루였어요. 그죠? 

인생의 어느 시점에도 가족은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가족이 잘 형성되지 않고 있어요.

이제 예전에 고출산 시대, 대가족 시대에서 저출생 시대, 핵가족 시대까지 왔는데,

앞으로 혹시 핵 개인 시대, 무가족 시대가 된다면 진짜 우리 미래는 어떨까요?

우리는 어떤 미래를 예상하고 또 바라고 있을까요?


 

좋은 미래를 그려보려면 현실 진단을 넘어서서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럴 때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세계의 짧은 이야기에서 이 초저출생 시대에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어떤 실마리를 좀 찾아보려고 해요.

 

공교롭게도 모두 모모라는 인물이 주인공이에요.

 

자기 앞의 생

 

먼저 이제 프랑스 작가 로맨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인데요.

이 소설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소수 인종들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배경의 사람들이 가족처럼 서로 기대고 삽니다.

이들 중에서 소위 정상적인 가족은 거의 없어요. 

근데 이제 이 소설의 주인공 소년이 모모인데요.

이 부모를 대신해서 모모를 키워준 사람이 로자 아줌마예요.(좀 뚱뚱한)

근데 이 로자 아줌마는 사회의 그늘에서 아주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왔어요.

근데 이제 나이 들어서는 일종의 이제 사설 위탁 과정을 운영하거든요.

그러면서 다양한 인종의 어떤 친부모로부터 맡겨진 아이들을 이제 키워줘요.

그리고 그 부모로부터 받는 돈이 끊겨도 그 인정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계속 키워주기도 해요.

모모는 이제 3살에 로자 아줌마한테 맡겨졌어요.

그래서 이제 14살까지 로자 아줌마랑 살아왔거든요.

 

근데 이제 그렇게 자라온 모모가 이제 로자 아줌마가 병이 들어가지고, 이제 사경을 헤매는 얼마나 절망적인 현실입니까?

자기는 로자 아줌마만 믿고 살아왔는데,

그런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이 모모는 이렇게 생각해요.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모모의 이 생각처럼 우리가 태어난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에요.

그러니까 천문학적 우연들 가운데 단 한 개만 달랐어도 나의 탄생은 불가능했던 거거든요.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고요.

그걸 쓴 철학자가 한나 아렌트인데, 한나 아렌트가 뭐라고 했냐면

각 인간이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만든 출생 이게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출생을 돌아보는 데 있다고 하면서 이거를 탄생성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한나 아렌트는 이 탄생성이 온전하게 발휘되려면 인간의 활동이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놓여야 된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의 탄생조차도 인간의 행위가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 놓인다.

그 중요성을 한나 아렌트는 강조한 거죠.

 

근데 이제 소년 모모가 14살이잖아 이런 생각까지 했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모모는 이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지금 끝까지 소통하면서 곁에서 지켜주거든요.

 

저출생 시대에 그래서 이걸 다시 좀 생각하고 또 다양한 삶의 방식을 좀 존중할 필요가 있겠고요.

그다음에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로 포용하고 소통하며 좀 돌봐주는 사회 이런 사회를 그리지 않을까요?


모모는 경청의 신

 

두 번째 이야기는 이제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 소설 모모인데요.

이 모모라는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 소녀, 이번에는 소녀입니다.

그런데 이제 모모는 이제 폐허가 된 옛 원형극장터에 혼자서 살고 있는 굉장히 신비로운 아이였거든요.

근데 얘는 경청의 신이었어요. 

자기를 찾아온 이제 다른 사람 얘기를 잠자코 열심히 들어주는 게 특기였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위로와 평화를 안겨주는 어떤 힘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남의 얘기를 잘 들어만 줘도, 그 사람에게 힐링을 선물한다는 이런 경험도 좀 하시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빌런이 나타납니다. 어느 날 이제 회색 신사라고 불리는 악당들이 나타나요.

그러면서 이제 사람들을 유혹하죠. 

더 잘 사는 미래를 원하지 않느냐?

그래서 더 잘 사는 미래를 위해서 시간을 저축해 주겠다고 유혹을 해요.

네가 지금 낭비하고 있는 시간을 한번 돌아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그 감언이설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제 소설에는 시간의 꽃이라고 표현돼 있는데요.

시간의 꽃 : 타인을 위한 마음의 여유

 

그게 바로 타인을 위한 마음의 여유예요.

타인을 위한 마음의 여유를 뺏어가는 거예요.

그렇게 뺏아간 시간의 꽃을 이 시간 도둑들 이 악당들의 비밀 창고에 보관을 하거든요.

그 후에 벌어진 일은 사람들은 이제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리고 자기 아이들한테도 시간을 못 내주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더 바삐 더 많이 일하는데 차가워지고 덜 행복한 세상이 된 거예요.

마치 우리가 발전주의 모델에서 열심히 일해 가지고 경제 성장을 했는데 별로 행복하지 않은 거랑 좀 비슷한 거죠.

모모가 주인공인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모모는 이 지혜로운 거북이랑 힘을 합쳐가지고 이 시간을 훔친 자들을 이제 물리쳐요.

그리고 이제 사람들에게 시간의 꽃을 되찾아주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이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사회에는 다시 온기가 돌아요.

우리가 바라는 미래도 이렇게 서로 귀 기울여서 공감하고 위로하고 또 즐겁게 어울리는 사회일 거예요.


마지막 모모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이제 마지막 모모는 돌아가신 제 어머니예요. 

큰누나가 이제 아이를 낳았는데 이제 누구나 이제 갑자기 할머니 되기가 좀 부담스럽잖아요.

그래서 외할머니보다는 엄마의 엄마라는 뜻 그러니까 모모죠.

모모라는 호칭이 어머니 마음에 좀 더 드시지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만들어드리는 애칭이거든요.

 

이제 흔히 이제 행복을 파랑새에 비유하죠. 제 책 제목도 그렇고요.

근데 이제 어머니 파랑새는 늘 어머니 어깨 위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시고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거든요.

그리고 이제 계속 불편한 몸으로 사셨어요. 

그동안에 이제 어머니는 계속 정말로 1인 다역 너무 많은 역할을 혼자서 해내신 거죠.

이렇게 숱한 역경 속에서도 어머니는 절망에 빠지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이제 미래의 희망만을 꿈꾸지도 않으셨던 분이에요.

그래서 어머니는 언제나

현재 찾을 수 있고, 현재 해볼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그런 것을 합리적 낙관론자라고 하는데요.

합리적 낙관론자이셨어요. 

그리고 이제 즐거운 일은 작은 거라도 그냥 미루지 않고 만끽하는 흥부자였어요.

노래방에서 이제 가족들이 모여가지고 노는데

큰 사위 노래에 호응해 주시는 영상이 참 애틋하고 저는 참 지금도

행복 공부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

 

네 제가 쓴 책 행복 공부,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 쓴 것처럼

저희 어머니는 이 3대 가족의 울타리가 답답한 가두리가 아니라 행복한 둥지라는 거를 느끼게 해 주셨어요.

어쩌다가 이제 초저출생 세상이 됐어요. 그렇죠?

그렇지만 우리가 앞으로의 생에서 행복한 시간의 비율을 좀 늘리기 위해서 

행복을 공부하고 그리고 행복을 향한 행동의 용기도 내고 또 시간도 내보면 어떨까 생각됩니다.

 

정리할게요. 

정리하면서 이렇게 외쳐봅시다.

나는 소고기가 아니다.

등급을 거부한다. 

나는 내가 귀엽다. 

앞으로 더 기여할 거다.

우리도 이 모모들처럼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것이다.

서로 돌봐주고 귀 기울여서 얘기 들어주고, 

또 누가 노래하면 옆에서 이렇게 춤추면서 

 

 

제 얘기를 귀기울여서 듣고 공감해 주신 여러분 모두 오늘 저의 모모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