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벤저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 닥터 스트레인지가 나는 1400만 개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았고, 그중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거 딱 하나였다 라는 말을 합니다.
- 어쩌면 그 순간 닥터 스트레인지의 두뇌는 양자 컴퓨터로 변해서 온갖 가능성에 대한 계산을 동시에 진행했을지도 모릅니다.
- 지금은 그동안 잘 키운 양자 컴퓨터라는 나무에서 대단히 탐스러운 열매를 수확할 때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한정훈입니다.
요즘 양자 컴퓨터란 말 많이 들어보셨죠?
곧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고 세상이 확 바뀔 것만 같은 기대를 줍니다.
왜 갑자기 이런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걸까요? 그 시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시간을 거슬러 1940년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평생 정수론을 연구한 수학자 하디가 쓴 수필집, <어느 수학자의 변명>을 쓰고 있습니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은 정서론만큼이나 쓸모없다.
그런데 재밌게도 그 책이 나온 지 불과 7년 뒤인 1947년 미국 벨연구소에서 게르마늄 반도체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트랜지스터가 만들어집니다.
아시다시피 트랜지스터는 전선에 흐르는 전류의 크기를 키우는 증폭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수학의 이진법에서 말하는 0과 1을 구현하는 데 쓸모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컴퓨터는 트랜지스터로 이진법 연산을 하는 기계입니다.
트랜지스터를 만든 3명의 연구자가 있습니다.
그중 2명은 양자 고체 물리학이라는 것을 공부한 박사인데,
그중 쇼클리 나중에 실리콘밸리에서 쇼클리 반도체라는 회사를 창업했고,
존 바디는 노벨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입니다.
반도체로 전기 증폭기를 만들려면 우선 고체 속에서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양자역학적으로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 당시로서는 매우 새로운 지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컴퓨터 시대를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미 양자 문명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만약 양자의학적 지식이 없었다면 반도체 소자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이미 양자 문명을 살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레이저입니다.
레이저는 굉장히 강하고 균일한 색을 내는 기계죠.
평범한 전구에서 나오는 빛과 뭔가 다르긴 한데 뭐가 다른지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빛은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하면서 동시에 가장 양자역학적인 존재입니다.
빛에는 질량이 없습니다.
뉴턴이 발견한 자연법칙에는 흥미롭게도 질량이 없는 입자를 설명할 방법이 아예 없습니다.
오직 양자역학만이 질량 있는, 질량이 없는 입자의 거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트랜지스터를 만든 쇼클리와 바디는 사실 컴퓨터로 만들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인슈타인 역시 레이저를 만들겠다고 꿈을 꾼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천재였지만 수십 년 뒤에 펼쳐질 미래를 내다본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호기심과 노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을 뿐이죠.
그러나 그 덕분에 양자 문명이란 새로운 세상이 이렇게 열린 겁니다.
양자 컴퓨터는 양자 문명 세상에 조만간 등장할 수도 있는 궁극의 양자 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최초의 도구가 아니라 궁극의 최종 기계인 셈입니다.
양자 컴퓨터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누가 처음 양자 컴퓨터를 만들었을까요?
컴퓨터의 기본 소자를 비트라고 하듯이, 양자 컴퓨터의 기본이 되는 소자를 큐빗이라고 합니다.
큐빗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들은 역시 양자 컴퓨터를 꿈꾸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는 무려 1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의 카메렐링 오노스라는 물리학자가 1882년 신임 교수로 부임합니다.
오노스의 연구 목표는 한 가지 헬륨 기체를 아주 차갑게 만들어 액체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럽의 과학자들은 헬륨을 제외한 모든 기체를 액체로 만드는 것이 이미 성공한 상태였고,
오직 헬륨만이 액체화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오너스는 헬륨을 액화한다는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도구를 26년 동안 직접 개발했고,
1908년 드디어 액체 헬륨 한 방울을 얻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헬륨이 액체로 변하는 온도는 절대 온도인 영하 273도보다 겨우 3도가 높은 영하 270도입니다.
이것은 우주 공간의 온도와 비슷합니다.
대단히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액체 헬륨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30살 청년학자가 무려 26년이란 세월을 쏟아부어 세계 최초로 액체 헬륨을 만들어냈다는 기록 하나로 모든 보상이 끝난 것일까요?
다행히도 오너스가 만든 절대 냉장고에서 신기한 발견이 하나둘씩 이어졌습니다.
물리학의 역사를 새로 쓸 발견들이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초전도체입니다.
전선에 흐르는 전류는 건전지를 떼면 멈춥니다. 전자가 전선을 따라 움직일 때 발생하는 마찰 때문이죠.
초전도체에는 마찰이 없습니다. 일단 한 번 초전도체의 전류가 흐르면 영원히 흐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 온도만큼이나 차가운 영하 270도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실생활에 별로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전도체의 매력에 푹 빠진 물리학자들은 뭔가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혹시 조셉슨 소자에 대해서 들어보셨나요?
초전도체를 아주 작은 고리 모양으로 만든게 조셉슨 소자입니다.
이렇게 만들면 전류가 고리를 따라 시계 방향 혹은 반시계 방향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한 번 흐르는 전류는 지속적으로 흐르는 영구전류입니다.
이런 현상이 바로 컴퓨터 과학에서 말하는 비트에 해당이 됩니다.
시계 방향으로 전류가 흐르면 비트가 0이고, 반시계 방향으로 흐르면 비트는 1이 됩니다.
조셉슨 소자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만 작동하는 대단히 값 비싼 비트인 셈이죠.
실리콘을 이용해 만든 비트보다 훨씬 비싸기 때문에 아무도 조셉슨 소자를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와 변화가 생겼습니다. 바로 큐빗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죠.
양자역학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바로 슈레딩거의 고양이지요.
우리가 아는 고양이는 살아있거나 죽어 있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비트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적 고양이는 살아있을 수도, 죽어 있을 수도 있는 중첩된 고양이입니다.
현실에서는 고양이를 큐빗 상태로 만드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조셉슨 소자를 큐빛 상태로 만드는 건 비교적 쉽습니다.
고리의 전류가 시계 방향으로 흐르는 상태와 반시계 방향으로 흐르는 상태를 중첩시키기만 하면 되니까요.
물론 큐빗 하나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수천억 수저 개의 비트가 모여 신비로운 일을 해내는 게 컴퓨터입니다.
양자 컴퓨터 논의가 시작된 1980년대에는 큐빗을 대량으로 만들 기술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이론 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만약 양자 컴퓨터가 있다면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인수분의 알고리즘과 양자 오류 보정이라는 것입니다.
모두 피터쇼란 수학자가 1990년대 후반에 만든 이론입니다.
컴퓨터 업계의 용어를 빌리자면 양자 컴퓨터는 아직 만들지도 않았는데, 이미 양자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킬러 앱이 나온 셈입니다. 이 점은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대단한 축복이자 부담이었습니다.
쇼어의 알고리즘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수만개 혹은 수십만 개의 큐빗이 작동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몇 개짜리 큐빗도 작동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장 앞선 양자 컴퓨터를 갖고 있다는 구글이나 IBM도 불과 몇십 개짜리 큐빗을 양자 컴퓨터로 작동하는 게 현재로선 최상입니다.
양자 컴퓨터가 빠른 이유는 병렬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반 컴퓨터도 병렬 계산을 합니다.
요즘 인공지능을 잘 하는 걸로 유명한 GPU도 병렬 계산을 합니다.
GPU가 하는 병렬 계산이란 한 사람이 10시간 동안 할 일을 10조각 내서 10명에게 나눠주고 1시간 만에 일을 마무리하는 방식입니다.
양자 컴퓨터의 병렬 계산은 그 원리가 아주 다릅니다.
양자 컴퓨터는 지수적 병렬 컴퓨터입니다.
여기 나무 새싹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줄기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나무 줄기 끝에 마법의 약을 발랐더니 갑자기 한 줄기가 두 줄기로 갈라집니다.
두 줄기의 끝은 머리에 마법의 약을 발라줍니다. 두 줄기가 네 줄기, 그다음에 8 줄기 이렇게 줄기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거목이 됩니다.
양자 컴퓨터의 작동 원리가 이렇습니다.
처음엔 단 하나의 양자 컴퓨터로 출발했는데 중첩이 가능하기 때문에
나중에 보니 수천수만 개가 넘는 컴퓨터가 동시에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다중 우주에 존재하는 컴퓨터처럼 말입니다.
양자 컴퓨터에는 약점도 있습니다. 계속 나뭇가지가 갈라지려면 그 모든 가지의 뿌리가 하나이어야만 합니다.
나뭇가지가 많아졌다고 일부를 잘라서 옮겨 심으면 그때부터는 더 이상 기하급수적인 가지 갈라지기 마법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양자 컴퓨터는 이것을 결깨짐이라고 합니다.
양자 현산이 이루어지는 동안 양자 컴퓨터는 마치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지는 나무 가지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을 결맞음 또는 양자 일관성이라고 부릅니다.
결맞음이 중요한 마법의 나무이긴 한데 줄기가 너무 가늘고 섬세해서 바람만 살짝 불어도 가지가 부러지는 나무입니다.
양자 기술의 핵심은 가지를 부러뜨리지 않으면서 가능한 많은 가지 갈라주기를 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과연 양자 컴퓨터가 완성될까요?
완성된다면 궁극의 계산기가 주어지는 셈입니다.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물질의 비밀을 풀어낼 도구가 되어 새로운 비료 제조법을 알려줄 수도 있고,
암을 예방할 백신의 구조를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의 과학 연구는 이런저런 방법 중 어떤 게 잘 통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양자 컴퓨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탐험하고 그중에 최적의 답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어벤저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나는 1400만 개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았고, 그중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이거 딱 하나였다는 말을 합니다.
어쩌면 그 순간 닥터 스트레인지의 두뇌는 양자 컴퓨터로 변해서 온갖 가능성에 대한 계산을 동시에 진행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직까지는 양자 컴퓨터가 실용적인 계산 도구로 자리 잡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양자 컴퓨터 성능이 지금 사용하는 GPU나 슈퍼 컴퓨터의 성능을 넘어서는 순간 인류 역사에서 또 하나의 특이점이 생길 것입니다.
볼터가 발명한 전지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전지가 생긴 덕분에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전기에 대한 각종 실험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만한 것이 패러데이의 유도 전류 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원리 덕분에 발전소가 세워지고 전기 문명이 가능해진 겁니다.
140년 전에 오너스가 시작한 탐구의 여정은 오늘날 극저온의 세계에서 작동하는 양자 컴퓨터의 문턱까지 다달았습니다.
양자 컴퓨터가 대중에게 소개된 것은 불과 지난 몇 년 사이 일이지만,
그 준비 작업은 아주 오랜 시간 수많은 과학자들의 헌신 속에 차츰차츰 이루어져 왔습니다.
저는 오노스가 만든 차가운 냉장고 속에서 발견되는 양자 물질을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조셉슨 소자 혹은 스커미온, 원자, 심지어 빛알갱이 광자를 큐빗을 이용한 양자 컴퓨터를 만들려는 노력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지금은 그동안 잘 키운 양자 컴퓨터라는 나무에서 대단히 탐스러운 열매를 수확할 때입니다.
이 강연을 통해 양자 컴퓨터라는 성대한 잔치에 동참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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