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들이 미친 듯이 놀았습니다. 놀고 막 댄스를 추고요.
- 그리고 우리 엄마들은 그래요. 애가 몇이에요? 이러면은 제가 2003년도에 결혼을 해가지고요. 3년 도에 결혼을 하고 애를 그 해에 못 가졌어요. 이때부터 얘기를 하는 거예요.
- 8년 동안 병간호를 하다가 아버지를 먼저 보냈어요. 근데 그 나이가 40이었어요. 저보다 어린 나이예요. 그래서 이 내용은 안 하려고 했는데 세상이 참 무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모님도 반가워요. 예
우리 오늘 사모님들뿐만 아니라 사장님들도 많이 오셨는데 식사하셨어요? 식사 안 했죠?
얼른 마쳐드릴게요. 예. 마쳐줄 테니까 늘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 사랑합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보고
어 맞아 옛날에 왕비 이영비 씨가 국민요정 전경미 포에버 했던 그 사람
많이 부끄러워요.
이제 좀 잊혀주셨으면 좋겠고,
그리고 분장실에 강 선생님에서 재미난 분장으로
제가 여러분들을 즐겁게 해 드렸던 개그우먼 정경미로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는요. 2012년도에 너무나 사랑하는 개콘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천직을 발견했어요. 바로 라디오 DJ입니다.
제 기질과 성격에 정말 잘 맞는 소중한 자리였어요.
근데 그 라디오 진행을 10년 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 있습니다. 브론즈마우스라고
저는 라디오 8년 반을 진행하고요. 그 자리로 나왔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상을 내려두고 나왔어요.
라디오를 하면서 두 아이를 출산했어요.
첫째 아이는 그 출산 직후까지 생방을 진행하고 다음 날 출산을 하고요. 출산 후에 23일 만에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출산 후 한 달 만에 또 출근을 했어요. 다시 돌아가라 그러면은 절대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겁니다.
첫째는 자연분만, 둘째는 제왕절개 모든 걸 경험해 봤어요.
주변에서 그러거든요? 둘 중에 어떤 게 낫냐?
근데 다 어려워. 다 어려워. 너무너무 어려워요.
출산을 하고 이제 계속 방송을 했는데 라디오를 진행하는데 행복해요.
행복한데 몸도 여기저기 안 좋고 그리고 나도 좀 쉬고 싶은 거예요. 휴가가 필요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는 거예요.
내 손으로 아이를 하원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라디오 시간이 그때 딱 맞으니까
이게 현타구나. 이게 남들이 말하는 번아웃이구나.
그래서 여러분 그만뒀는데 그거 아시죠?
그 귀한 휴가를 얻었을 때 너무 행복할 것 같잖아요.
한 달은 쉬었어요. 한 달은 별별 거 다 합니다. 친구 만나고요.
내가 그동안 못 배워봤던 거 하고 맛있는 거 맛집 나도 한번 찾아가 보고 그러는데
두 달째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해요. 이래도 되나? 계속 이렇게 놀고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이 되는 거예요.
그때 남편 윤형빈 씨가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극장을 열어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소극장이 참 힘들어요.
근데 남편이 그걸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제가 10년 동안 꾸준히 얘기했던 게
'공연장 하지 마라 공연장 하지 말고 방송을 해서 열심히 일하자 돈을 벌자'
그렇게 얘기했었거든요.
근데 남편은 지금 저와 전혀 다르더라고요.
그 사람은 언제나 갈 곳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나를 보여주고, 도전할 나만의 무대가 있더라고요.
그 사람이 믿는 구석 그 든든한 뒷배가 바로 그 공연장 그 무대였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나도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야 되겠다.
여러분들은 인생의 무대가 있으십니까?
인생이 나를 힘들게 할 때 그리고 언제든 돌아가서 도전하고 성장하고 나를 진짜 보여줄 그런 무대가 있으십니까?
없으면 나만의 무대를 지금부터 만들면 되는 거예요.
성공하든 실패하든 거기서 성장하면 되잖아요.
개콘 무대를 떠나서, 라디오 DJ 자리를 떠나서 제가 나만의 무대를 만들며 느꼈던 점을 여러분들에게 얘기하고자 합니다.
나만의 인생 무대를 만든다.
이제 목표는 세웠는데 사실 굉장히 막막했어요.
근데 되돌아보니까 이미 저는요. 저만의 무대를 만든 경험이 있더라고요.
2017년에 개그우먼들끼리 뭉쳐서 엄마들을 위한 공연을 만들었어요.
우리 엄마들은요. 아이들을 데리고 볼 수 있는 공연이 별로 없어요.
우리도 사실 결혼 전에는 티켓팅해서 좋은 공연도 보고요.
내가 좋아하는 팬의 콘서트도 가보고 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볼 수 있는 공연이 없어진 거예요.
애는 데리고 가야 되는데,
이 공연의 내용은 어떤 거냐면 아이 동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무대 한편에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어요.
그러고 아이들이 동반입니다.
아이들이 울고 불고 떠들고 무대 위로 올라와가지고 막 선물을 가져갑니다.
막 울고요. '엄마~' 이러면 우리는 늘 주머니에 캔디나 이런 걸 들고 있어요.
엄마들이 마이쭈 못 주게 하잖아요. 우리는 줍니다.
그러면 엄마는 이 안 좋아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막 줘요.
그런 다음에 그리고 아이들이 등원! 한 시간에 맞춰서, 그리고 하원을 시켜야 되잖아요.
그 중간에 공연을 만들었어요.
공연 당일이 됐습니다.
공연 당일이 됐는데 너무나도 감동스러운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엄마들이 아이를 아기띠를 하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예쁜 옷
이 포인트가 나는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옷이지만, 예쁘게 입고 나갈 옷이 없는 거예요.
근데 내가 가지고 있는 옷장 이렇게 딱 보고 이거는 공연장에 입고 갈 옷이야 이러면서
그 옷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 어떤 엄마는 공연장이 지하거든요.
함께 유모차를 막 내려줍니다. 만석이 됐어요.
만석이 됐는데 저희가 이제 뒤에서 보면서 그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한 거지?'
'엄마들이 이만큼 기다렸다는 건가?'
눈물이 났어요.
그리고 나서 공연을 하는데 엄마들이 좀 심하게 표현하면 미친 듯이 놀았습니다.
막 놀고 막 댄스를 추고 그리고 질문을 하면 우리 엄마들은 그래요
'애가 몇이에요?' 이러면은 저는요. '애가 셋이에요.' 이렇게만 말하면 되거든요.
엄마들은 '애가 몇이에요?' 이러면
'제가 2003년도에 결혼을 해가지고요. 3년도에 결혼을 하고 애를 그 해에 못 가졌어요.'
이때부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왜? 내 얘기를 할 곳이 없었던 거예요? 그렇죠? 그렇지 그렇죠.
그때 깨달았어요.
이 공연되겠다 발동이 걸렸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했냐 맨땅에 헤딩하듯이 지자체에 전화를 다 걸었습니다.
홈페이지를 검색을 해요. 홈페이지에 이제 지자체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우리 공연과 잘 맞는 부서들이 있어요. 네.
'육아종합지원센터'라든가 이런 게 있습니다. 거기에 주무관님 이런 분들 있잖아요? 전화해서
직접 제가 전화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개그우먼 정경미입니다. 저희가 좋은 공연이 있는데요. 제안서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알겠습니다. 정경미 씨 저희 너무 좋죠' 하시는 분들도 있는 반면에
'아예 예 알겠습니다. 저희는 계획이 다 짜여 있어서...'
이런 곳도 있어요. 그래서 뚫었어요.
뚫고 뚫고 해서 첫 무대를 올리고 지자체에 무대를 올리고 소문 소문 소문 소문 소문이 계속 나서
지금은 전국 구석구석을 다 가고 있어요. 그 공연이 지금 7년째 됐습니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아! 열심히 하면 되는구나. 일단 내 머릿속에 있을 때 일단 나가보자.'
한 발자국 먼저 나가는 게 중요하구나. 제 인생에 정말 투맘쇼라는 건 제 자랑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만의 무대 네이버 쇼핑 라이브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러분 네이버에서 정말 쇼핑들을 많이 하실 거예요.
거기에서 방문 판매 정경미를 진행하고 있는데,
연예인이 프로그램을 맡아서 한다 그러면 다들 섭외를 받아서 할 거라고 생각을 하십니다.
저는요. 네이버에 직접 제안서를 넣었습니다.
왜?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누가 불러줘야지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세상에는 냉정하게 봤을 때,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돼요.
제안서를 냈어요.
제안서를 냈는데 거기에다가 어떻게 적어놨냐면, 그랬습니다.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돼요. 일단 돈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되고요.
저는 저만 이렇게 크게 보였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우리 방문 판매 어머님들이 하셨던 것처럼 1 대 1로 대화하는 느낌이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요만한 걸로 보는데 굳이 무대가 세팅이 잘 돼 있거나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요 조그만 거의 얼굴만 보지 요 밑에 거 봅니까?
아니잖아요.
나만 보여주세요.
나랑 제품 하나씩만 그러면 된다.
연락이 왔어요.
연락이 와서 미팅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그래요 해봅시다'라고 됐어요.
시작을 했거든요. 지금 1년, 1년 하고 한 6개월이 넘었습니다.
지금은 일주일에 3개씩 하고 있습니다.
네... 그래서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그건 것 같아요.
일단 제가 쇼핑을 좋아하고, 그리고 제가 라디오 진행을 했다고 했잖아요.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다는거
청취자들과 늘 소통했던 게 거기에서도 어떻게 보면 먹힌 거죠.
지금은 제가 아예 유튜브라는 무대로 진출을 했습니다.
아까 처음에 인사를 드렸잖아요.
유튜브라는 글로벌 무대에 정경미 극장이나 마찬가지인 판매왕 정경미 무대를 만든 거죠.
근데 채널을 보시고 많은 분들이
'어머 언니 너무 정겨워요.'
'언니 너무 언니 캐릭터가 이쁘네 많이 사랑스럽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시거든요.
근데 여러분 저는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 나와 얘기를 하지만
제 성격이 굉장히 내성적이에요.
저는
아니 정말 저는
여 이러고 있잖아요?
내려가면 아무 말 안 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막 이렇게 있잖아요. 그러면은 에너지 뺏겨요.
그래서 이 집에 가고 싶다 막 이런 생각을 하는 그런 내성적인 아이예요.
근데
제가 판매형 정경미에서 변해 있는 거예요.
아무리 연예인이 다가간다고 해도 사람들은 굉장히 냉정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나가다가 한 번씩 내가 웃으면서 진행은 해요. 여러분
이러면서 봤을 때 저 아줌마 무서운데 이러고 저 아줌마 좀 받아줄 것 같다 이러면 다가가요.
그리고 어쩔 때는 그냥 먼저 다가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내가 갑자기 이렇게 이러고 있다가 확 다가오면 나 아시는 분인가? 이런 분들 있죠.
와서 와락 안아버립니다.
와락 안고 '아이고 경미 씨 반가워요.' 막 이런 분들도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을 만나는 거예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그때 이게 어떻게 가능했지 생각했더니 제가 라디오 진행 8년 한 게 정말 큰 도움이 됐던 거예요.
제가 한 라디오의 특징은 매일매일 청취자들과 전화 데이트를 했습니다.
평균 5분 다섯 분이 전화를 오면 그냥
'안녕하세요 어디 사시는 일입니까? 뭐 하고 계셨어요? 오늘 저녁 뭐 드실 거예요? 요즘 고민이 뭐예요?'
이런 대화를 하루에 5명씩 꾸준히 하는데 녹음이 있는 날은 10명이 훨씬 넘어요.
그러다 보니까 8년을 매일매일매일 모르는 분들과 전화 데이트를 했더니, 이제 사람 만나는 게 두렵지가 않았던 거예요.
과거의 경험, 열심히 달렸던 기억, 그 열정의 시간이 내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겁니다.
또 하나가 새로운 도전이 있는 게 저만의 무대가 지금까지는 이제 연예인에 관한 콘텐츠 이런 코믹한 거 있잖아요.
제가 정리 수납 자격증 1급 2급이 있습니다. 네 조금 독특하죠.
이걸 왜 땄냐면, 제가 정리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요.
정리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그리고 무언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제가 답답한 적이 있었어요.
내가 뭘 할 수 있지 했을 때 자격증을 따보자 해서 시작한 게 정리수납 자격증이었어요.
근데 이 정리수납 자격증이라는 게, 이렇게 정리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바라봤을 때요.
깨끗하게 정리가 됐을 때 기분이 좋잖아요.
그냥 보기에도 깔끔하다잖아요.
내 마음의 정리까지 돼요. 정말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저는 주변 사람들한테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뭔가 시작할 때 답답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
잘 안 보여?
정리를 해보시라고 해요.
정말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됐을 때 또 다른 내가 보일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면 마음의 정리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무언가 나만의 무대를 만들 때 그 이유가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내가 왜 내 인생의 이 무대를 만들려고 하지 했을 때 이유가 필요한데요.
여러분들도 한번 그 정리를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나는 왜 나만의 무대를 만들려고 하지?
저는 제 인생의 무대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가 저희 어머니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를 8년 동안 병간호를 하다가 아버지를 먼저 보냈어요.
근데 그 나이가 40이었어요.
어머니 나이에 40이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보다 어린 나이예요.
그래서
이 내용은 안 하려고 했는데, 세상이 참 무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데, 마흔의 나이에 애 둘이 남겨져 있을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리고 아이들을 정말 잘 키웠습니다. 저희들을
그러면서 느낀 게 내 인생의 목표 중에 하나는 나의 무대를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우리 엄마다.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물론 너무너무 행복하고 그러시지만
늘 힘들 때마다 다시 가지고 오는게 '나 너무 힘들어 어떡하지 할 때' 엄마라는 걸 다시 한번 봅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행복하게 해야지
여러분들도 힘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물론 다 힘이 들어요.
힘이 들 때,
내가 왜 이걸 해야 되지? 내가 이렇게까지 무대를 만들어야 되나? 할 때
내가 이 무대를 만드는 이유가 뭔지를 적어놓고 그걸 한번 계속해서 열어보십시오.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
지금도 저희 친정엄마는 아이를 보고 있습니다.
남편이 보고 있지 않아요. 남편이 보고 있지 않고, 아이들을 봐주고 계신데
제 인생의 큰 목적 중에 하나 내 인생의 무대를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어머니입니다.
여러분들도 그 이유를 만드시면 아마 힘이 나실 거예요.
오늘 세바시 역시 저에게는 새롭게 도전하는 그런 무대예요.
너무 긴장되는 무대입니다.
그리고 왜 이걸 나갈까라? 왜 이걸 나간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여기 앞까지도 했어요.
'안 나간다고 했어야 되는데, 으~' 했는데 지금은 굉장히 좋네요.
시간이 계속 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네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나만의 무대가 필요하죠.
시키는 대로 하다가 인생이 끝나겠더라고요.
후배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앞이 보이지 않는 우거진 대나뭇길을 가고 있다고
맨 끝에 그 끝자락에 쫙 펼쳤을 때 어떤 게 보일지 모른다.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가보자.
저도 실패를 많이 합니다. 계속 실패를 해요.
여러분들이 보이지 않겠지만
이거 해봤다가 안 됐다가,
이거 해봤다가 안 됐다가
여기다 제안서를 넣어봤다가 안 됐다가 이런 적이 너무나도 많아요.
나만의 무대를 만드는 도전의 길에서 잘 안 될 때가 분명히 있죠.
하지만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도, 부딪혀야 배울 수 있더라고요.
그 실패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남는 게 있습니다.
제가 열심히 뭔가를 도전했을 때 안 돼.
아~! 이게 이렇게 해서 안 되는구나라는 걸 또 배우고
다음에 도전할 때 그 부분을 조금 수정을 합니다.
이제는 매일이 신납니다.
새로운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고요.
새로운 자격증은 여러분들에게 다음 달에 공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만의 무대가 다 사라졌을 것 같을 때, 그때가 바로 나만의 무대를 만드는 도전할 그 시기입니다.
누구나 내가 만든 나만의 무대에서 나답게 여러분들도 찬란하게 빛나길 기도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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