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방 일을 하고 있을 때 선배가 갑자기 와서는 욕을 하고 때리기만 하는 거죠.
- 매일 새벽 4시 이후에 잠들었고요.
- 아침 8시에 출근하는 노력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조금씩 저와 저의 요리를 알아주는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 2014년도에 올리브쇼라는 요리 방송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관심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 지금 여러분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 좋은 선배와 멘토에 대한 결핍은 제가 셰프 김소봉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셰프 김소봉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신사동의 작은 바와, 카페 그리고 소품샵, 디자인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는 멀티 기업의 대표이기도 하고요.
일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오너 셰프이기도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만 아주 맛있고 간단한 레시피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이네즈 한 컵 정도에 꿀 한 스푼, 된장 반스푼을 넣고요.
잘 섞어주세요.
그러면 채소들을 찍어 먹기에도 좋고 그리고 샌드위치나 튀김 요리들과도 잘 어울리는 만능 소스가 탄생합니다.
약간의 소금, 후추, 레몬즙도 넣어주면 더 맛있어지고요.
약간 매콤한 거 좋아하신다 그러면 청양고추에 이렇게 썰어서 같이 넣어주셔도 아주 맛있어집니다.
간단하지만 저의 노하우가 들어간 진짜 꿀팁 레시피이니 꼭 한번 만들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제가 어떻게 요리를 하게 되었고
그리고 어떻게 일식을 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지
바로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저를 아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제가 일식 셰프인 것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원래 프랑스 요리를 전공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일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오래전 친구들과 방문했던 이자카야 때문이었습니다.
과거 일본 유학시절 같이 요리 공부를 했던 일본 친구들이 서울에 놀러 온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한국에 이작하여가 궁금하다 해서 이작하여 한 군데를 방문하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저희가 갔던 곳은 황도, 번데기탕, 해산물, 떡볶이 등 메뉴에는 특색은 없고,
그리고 셰프의 실력도 볼 수 없고,
마지막으로 소위 요즘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이라는 것도 전혀 없는
그야말로 이자카야라는 이름이 아주 무색한 곳이었습니다.
보통 일본에서는 이자카야라고 하면 각 지역의 특별한 요리나 또는 주인장의 솜씨가 돋보이는 요리와 함께 술도 즐길 수 있는 곳인데,
당시 한국의 이자카야는 선술집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곳에서 판매되는 요리의 정체성도 아주 불분명했습니다.
요리를 공부하고 또 일본에서 살아온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한국에 존재하는 일본 요리나 일본 술 문화가 일본 현지인들에게는 자랑스럽지 못한 스타일로 변질되고 있어서 무척 속상하고 창피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요리를 통한 타국 문화를 좀 더 편하고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진짜 경험을 전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게 됐습니다.
이 경험은 현재까지 제 요리의 원동력이 되고 있고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집밥을 가장 현지와 가깝게 좋은 재료로 진심을 담아 요리하자는 생각이 지금 제가 일식 요리를 하게 된 바로 그 원동력입니다.
그것은 8년째 제주도에서 운영하고 있는 저의 소봉식당의 가치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두 번째 원동력은 순수하게 요리 하나만의 실력을 높이고 싶다는 저의 갈망이었습니다.
성공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인격적으로도 많이 부족했다고 느꼈던 저는 실력 외에는 승부를 걸 수 없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다른 여러 직업군도 그렇겠지만 저처럼 기술을 사용하는 직업군에서는 실력이란 정말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뭐든 열심히 배우고 싶었으나, 제가 경험한 현장에서는 좋은 선배나 좋은 상사를 만나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주방 일을 하고 있을 때 선배가 갑자기 와서는 저를 이렇게 툭 치는 거예요.
그리고는 그냥 다그치기만 하고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서 뭐지 하고 싶었죠?
하지만 그 선배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어땠는지를 알려주지 않고 그저 욕을 하고 때리기만 하는 거죠.
그때는 제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라며 스스로도 많이 혼란스러웠던 시기도 아주 길고 많았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주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려주었다면 업무를 좀 더 빠르고 잘 따라갈 수 있었을 텐데,
저는 그런 것을 알려준 선배가 없었어요.
그게 많이 아쉬웠던 저의 과거였고요.
그 이후 그랬던 저는 성장하기 위해 잠을 줄이며 연습을 매진하였습니다.
제가 실력을 쌓고 성장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업무 외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런 어떤 노력이나 이런 부분도 스스로 만들어야 된다라는 게 정말 어려웠었어요.
주방에서 노동을 마치고 회사의 업무를 처리한 후에 개인적인 책을 읽고 정신 수양을 하며 하고 싶은 공부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이후에 잠들었고요.
아침 8시에 출근하는 노력을 하다 보니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저와 저의 요리를 알아주는 느낌을 받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2014년도에 올리브쇼라는 요리 방송을 하게 되면서 조금 더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게 되면서 더 많은 관심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또는 남다르게 바라보시는 많은 분들의 시선이 느껴졌는데,
그 시선들이 저를 우쭐하게 만들거나 그런 것이 아닌 저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셰프로서 평가하는 저의 모습보다 과대평가를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대에 부합하는 더 나은 요리사가 되기 위해 계속하여 밤낮없이 애를 썼고,
그런 결과 현재 여전히 부끄럽긴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 줄 수 있는 셰프가 된 것 같습니다.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아있네요. 그 30점이라는 게 아주 차이가 크죠.
세 번째로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바로 제 후배들입니다. 제자들이기도 한데요.
소봉시당을 개업하면서 저는 후배들이 요리사로서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식당을 만들고자 하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과거에 제가 선배들에게 부적절한 대우를 받으며 부당하게 일했던 경험들을 타산지석 삼아
후배들에게 복지를 제대로 해주고 퇴직금도 제대로 주며 그들이 잘 성장하여 그들의 꿈을 찾아 성장하길 원했습니다.
의미 없는 질책과 폭력적인 비난 대신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주고자 노력했습니다.
제가 처음 셰프로 일하면서 느꼈던 결핍을 최소한 저를 거쳐가는 후배들 또는 제자들에게는 그런 부분들을 채워주고 싶었어요.
비록 그게 직원들에게는 잔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실제로도 직원들끼리에는 소봉 스쿨이라고 해서 어떤 저의 잔소리, 또 제가 요구하는 어떤 루틴들이 이제 학교에서 선생님이 알려주는 것 같다고 해서 그런 얘기들도 종종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는 저의 잔소리는 사실 저 스스로에게 하는 채찍질이기도 합니다.
타인에게 충고를 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끊임없이 스스로도 실력을 쌓아서 당당해야 하니깐 말이죠.
그렇게 남에게 도움이 되는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계속 수련하며 더 많은 노력들을 하여 오늘도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너 셰프라고 하고 그 월급을 준다고 해도 저도 하는 실수를 저희 직원이라 해서 혼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스스로가 뭔가 당당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의 빈자리를 비롯한 제 삶에서 볼 수 없었던 좋은 선배와 멘토에 대한 결핍은 배움에 대한 갈망이 되어서 제가 셰프 김소봉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결핍의 경험을 인간 김소봉으로서 이제는 나눔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수없이 해봤던 맨땅의 헤딩과 예고 없이 찾아왔던 힘겨운 순간들, 그럴 때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으며,
누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저의 절박한 생각들은 누군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특히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월드비전 꿈 멘토로 활동하며 요리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요리를 지도해 주며 아이들에게 교육자로서 또는 멘토로서 꿈과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나눔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에는 더불어 사는 세상에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더 컸지만 막상 나눔을 시작한 후 좋은 영향을 받게 된 건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덕분에 전보다 더 행복해지고 더 활기 있는 삶을 살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뭔가 나눈다는 일 자체가 어떤 제 시간을 드리고 저의 어떤 노력이 들어간다고 생각해서 피곤하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실제 해보니 정말 그 다음다음이 행복해지고 힘이 들어가는 거예요.
정말 그런 원동력이 되었던 그 마지막 구실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 나눔은 실력의 풍요를 위해 더욱더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멈추지 않고 성장하는 실력으로 더 많은 것들을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을 테니깐요.
셰프 김소봉과 인간 김소봉은 여전히 성장 중입니다.
때로는 좌절과 고난이 가득한 순간을 용기 있게 그리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게 앞으로 계속 살아갈 겁니다.
제가 여러분들과 나누려고 했던 주제 이야기는 이제 거의 끝이 나고 있는데요.
혹시 맨 처음에 드렸던 레시피 혹시 기억하실까요?
네 기억하신다고 하네요.
아주 간단한 레시피지만 제가 그동안 살아왔던 원동력의 증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들 중 누군가한테는 이 레시피로 인해 동기부여가 되고요.
또는 자극이 되고요. 성장의 원동력이 되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던져보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네 이상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셰프 김소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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