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다닐 때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았었는데
- 사업이 너무 안 돼서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너무 많았고,
- 이때 제가 했던 게 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호텔 생수 배달이었어요.
- 그날따라 몸도 너무 안 좋고 진짜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진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 기사님께 그래서 나도 좀 5개씩 옮기는 법 좀 가르쳐 달라.
- 나도 좀 좀 쉽게 하고 싶다 그랬는데 기사님이 저에게 명언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 그래서 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길바닥에 멍하게 주저앉았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런드리고라고 하는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의식주 컴퍼니의 조성우 대표입니다.
반갑습니다.
런드리고는 드라이클리닝부터 집에서 세탁기에 돌리는 빨래, 이불, 신발 수선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탁물을 잠자기 전에 밤 11시까지 런드레이라고 하는 전용 수거함에 담아 문 앞에 내놓고요.
모바일 원클릭 하면 하루 만에 세탁이 완료돼서 다시 문 앞으로 배송되는 신개념 서비스입니다.
국내 세탁 산업은 드라이 클리닉만 4조 원이 넘는 매우 큰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99% 이상 오프라인 매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어떻게 하면 세탁의 모바일 시대를 열 수 있을까를 아주 많은 고민을 했고요.
세탁은 단순히 모바일 주문 클릭만 한다고 완료가 되는 게 아니라 주문하면 다시 이 공장에 갔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진정한 모바일 서비스가 되려면 저희는 '고객과 절대 직접 만나서는 답이 없다 만나면 안 된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안 그래도 바쁜 현대인들이 시간 약속해서 세탁물 수거하고 또 약속해서 배달하는 방식으로는 모바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아까 보셨던 전용 수거함을 만들어서 평소 때는 집 안에서 빨래통으로 쓰다가 맡길 때 문 앞에 내놓고 원 클릭하면 비대면 세탁으로 세탁이 완료될 수 있는 콘셉트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비대면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져 있기는 한데 저희는 코로나 등장 전부터 비대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고요.
그런데 상상치도 못했던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비대면 모델이 뜨게 됐고 자연스럽게 런드이고 비즈니스 모델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3월에 저희가 첫 오픈했는데, 오픈한 첫 달과 지난달 매출을 비교해 보니 거의 100배 가까이 성장을 했고요.
월평균 15%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그동안 국내 유수 벤처캐피탈로부터 총 735억 원의 자금을 유치하면서 현대인들의 삶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런드리고도 어떻게 보면 정말 어이없고 당시에는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시작이 되었는데요.
지금까지 제 인생을 돌아보니 인생을 바꿨던 결과가 아이러니하게 정말 포기하고 싶고 희망이 보이지 않던 절망적인 상황 누군가는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상황과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더라고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변화도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늘 그 세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런드리고는 제가 두 번째 창업한 회사예요.
2011년도에 더앤더머스라고 하는 소셜 커머스를 창업을 했었고, 여러 번의 피버팅을 통해서 지금 엄청난 규모로 성장해 있는 신선식품 새벽배송의 모델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었었습니다.
새벽 배송이라는 단어도 사실 제가 만든 말이기도 하고요.
2015년에 배달의 민족의 사업을 매각을 해서 이름을 배민 프레시라고 바꾸고 거기 CEO로 2년 반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러고 이제 배민에서 퇴사해서 이제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돌아왔는데 퇴사하는 날 침대에 누웠는데 어느 순간 너무나 허무한 거예요.
그러니까 창업이라는 것이 결국 다시 혼자가 되는 과정이구나.
무엇을 위해서 내가 이렇게 7년 동안 이렇게 달렸나라는 질문에 제가 답을 제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도 떠났고, 몸도 너무 아팠고, 우울한 마음도 들어서 한 달 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고 그러니까 집에 그냥 처박혀 있었습니다. 이제 내 인생에서는 이제 죽어도 다시는 사업하지 않는다 짐에 다짐을 했었고요.
이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생각을 해서 미국으로 퇴사 힐링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진 한 장이 어떻게 보면 런드리고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됐고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 같은데요.
샌프란시스코 2017년도였는데요.
미국 여행을 한 한 달쯤 되었을 때 샘플안에서 친구하고 저녁 식사하고 숙소로 향해서 가고 있는 길이었어요.
고속도로를 100km를 달리고 있는데 무언가 뭔가 썰렁하고 바람도 들어오는 것 같고 시끄럽더라고요.
그래서 친구한테 창문을 닫으라고 했는데 문을 안 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룸미러를 통해서 보니까 저 사진처럼 차량의 뒷유리가 완전 박살 나서 산산조각이 나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나 황당해서 갓길에 세워놓고 트렁크를 딱 여니까 캐리어, 백팩, 랩탑 돈도 한 수백만 원 잃어버렸고
그러니까 모든 짐을 도둑이 차 유리를 깨고 몽땅 다 훔쳐간 것도 모르고 운전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한번 상상해 보시면 타지에서 어 차량 렌터카를 털려서 어떻게 뭘 해야 될지도 모르는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저도 며칠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근데 곰곰이 돌아보니까 도둑놈이 한 개는 안 훔쳐갔더라고요.
그러니까 쇼핑백에다가 제가 빨래를 하려고 옷을 막 넣어뒀었는데 도둑놈이 그거를 안 훔쳐갔다는 걸 알고 뭔가 가설 같은 게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좋은 옷도 많았는데 왜 빨래는 안 훔쳐갔지? 그럼 도둑도 빨래는 잘 안 훔쳐갈 수 있겠다.
그럼 예전에 했었던 이런 비즈니스 모델하고 경험을 살리면 뭔가 재미있는 모델이 나올 수 있겠다.
그러니까 마치 '계시'처럼 뭔가 막 신호를 주는 듯하게 그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제 여행이 퇴사 여행에서 세탁 여행으로 주제가 바뀌게 되었고요.
잘 아시겠지만 미국의 많은 한국분들이 세탁 사업을 하셨고요.
미국의 세탁 컬처를 사실 한국인들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무작정 캘리에서 저쪽 동부 쪽으로 세탁이 더 발전돼 있다는 동부 쪽으로 갔고 필라델피아 뉴욕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선배 소개로 미국에 있는 세탁의 경험이 많으신 세탁 왕 같은 분들도 만나고 선진화된 팩토리도 경험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일본의 자동화 설비 그다음에 한국의 세탁 공장들 그러면서 시장에 대해서 더욱더 공부를 많이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고객 관점으로 보면 수십 년 동안 세계적으로도 본질적으로 이 세탁 산업을 혁신한 서비스 사례가 보기 어렵더라고요. 그것은 세탁이 매우 특이한 물리적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고객의 옷이 집 안에 있던 게 집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이게 세탁이 된 다음에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굉장히 특이한 이 구조를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이유로 수십 년 동안 생활 반경 내에 점 단위 조직으로 오프라인 매장 공급자 위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요. 많은 산업이 모바일로 전환됐는데 유독 세탁만큼은 여전히 1%도 넘지 않는 모바일 전환율을 보이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세탁이 드라이클리닝과 동의어로 사용이 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세탁이라는 단어에는 드라이클리닝도 있지만 저한테는 더 큰 고민인 빨래 고민이 더 컸거든요.
근데 시장에서는 이걸 반절씩만 해결을 해주고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진정한 이 세탁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드라이 클리닉 못지않게 빨래의 고민 런드리의 고민을 같이 해결해줘야 된다. 그래서 직접 세탁 시장을 제대로 혁신하는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 그 사건을 통해서 그렇게 발전이 되게 되었어요.
그래서 1년 3개월 동안 준비해서 마침내 런더리고라는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고요.
이 모든 시작이 미국 여행 중에 차량을 털렸던 여행 중에 겪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비롯이 되었고요.
결국 저에게는 다시 창업에 도전하게 됐고 인생을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죽음의 계곡이라고 표현하는 데스밸리를 지난다는 더맨더머스 창업 3년 차일 때 모습입니다.
저때가 아마 제가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고요.
대기업 다닐 때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았었는데 저때는 사업이 너무 안 돼서 그러니까 스타트업 하면 무조건 대박 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고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도 제대로 못 받는 경우도 너무 많았고,
그래서 부모님이 전셋집 하나 얻으라고 그때 1억 원을 한 번 주셨었는데, 전세로 있다가 사업자금이 필요하니까 그걸 계속 써서 월세로 계속 이전하게 되고 마지막 있을 때가 보증금 300만 원에 25만 원짜리 반지하에 제가 살았었거든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고 자신감도 바닥에 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제가 했던 게 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호텔 생수 배달이었어요.
저희 서비스 중에 생수 배달이 그나마 좀 되고 있었는데, 두 명이서 이 호텔에 배송을 가야 되는데 한 명 대신에 제가 직접 배달을 가면 한 12만 원 정도 제가 용돈으로 벌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주말에는 생수 배달하러 간 적이 많았거든요.
근데 저렇게 사진처럼 등에 생수통을 몇 박스 지고 날라야 하는데, 한 300박스 정도 나르면 이 별이 보일 정도로 너무 힘들었고 근데 그날따라 몸도 너무 안 좋고 진짜 힘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이러려고 진짜 회사 그만두고 스타트업 시작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진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저는 한 번에 이렇게 3개만 이렇게 들어도 너무 힘든데,
그날 같이 배달 갔던 기사님이 저보다 키도 훨씬 작은데 한 번에 5개씩 나르는 거예요.
기사님이 한 번 갔다 올 때 저는 막 두 번씩 갔다 왔다 해야 되고 막 화도 좀 나기 시작했어요.
근데 기사님께 그래서 '나도 좀 5개씩 옮기는 법 좀 가르쳐 달라. 나도 좀 좀 쉽게 하고 싶다' 그랬는데
기사님이 저에게 명언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사장님 뭔가 사연이 있어서 지금 여기 나와서 직접 이렇게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 일을 직업으로 계속할 거면 제가 지금 바로 가르쳐 드릴게요.
이거 10분이면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사장님이 직접 이렇게 나와서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이 마음
지금의 이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분명 언젠가 좋은 일이 있고 성공하지 않을까요?"
라고 저한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길바닥에 멍하게 주저앉았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일이 힘들고 뭔가 억울하다기보다는 제가 창업했던 그 초심을 완전히 까먹고 있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그날 기사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말씀이 실제 제가 처음의 마음 창업했던 초심을 기억나게 해 줬고,
현대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겠다고 하는 그런 비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새벽 배송이라고 하는 배달의 민족이 매각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요.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새벽 배송으로 피봇팅 하는 기회도 없었을 거고 첫 번째 사업은 아마 실패했을지도 모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사진은 세 번째 이야기는 바로 올봄에 저희 회사에 찾아왔던 엄청난 위기 때 사진입니다.
일반적으로 세탁은 봄이 제일 바빠요.
겨울 옷이 들어가고 봄 옷이 나와야 되니까 물량이 몇 배 가까이 증가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런드리고가 이제 건강하게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오퍼레이션도 자신이 있어서 그때 하면 안 됐었는데 봄맞이 이불 할인 프로모션을 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엄청난 위기가 시작됩니다.
주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이불이 막 들어오기 시작하고, 날도 따뜻해져서 이제 봄 옷도 막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운영이 완전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은 오늘 안 먹으면 다른 거 먹어도 되고 니즈가 대체될 수 있는데 빨래는 오늘 안 하면 내일 쌓이게 되죠.
그래서 주문을 막아서 이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계속 쌓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희는 결국에 사과문을 게시하고, 주문을 제한하면서 이렇게 운영을 했는데, 이 운영의 위기가 두 달이나 지속이 됐습니다.
그래서 사무실 직원까지도 다 나왔었고요. 총동원됐고, 사람을 뽑았지만 힘든 상황에 금방 그만두기 일쑤였고요.
그리고 대표님 죄송합니다. 이제 직원들도 못 하겠습니다. 그렇게 떠나는 직원들도 실제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달 넘게 이제 새벽 6시에 퇴근하고 2~3시간 자고 이렇게 하다가 몸무게도 10kg 정도 빠졌었고요.
정말 큰 위기였어요. 진짜 이게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았고,
투자자들한테도 진짜 회사가 위험할 수 있겠다. 정말 망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도 진짜 망할 것 같더라고요.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무리 노력해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그때 무모한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1년 동안 고객의 옷을 자동으로 이동시켜서 출고해 주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아직 미완성의 단계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거 아니면 위기 끝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직 검증 100% 안 됐지만, 가보자
그래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하루 딱 주문 맞고 24시간 특수작전처럼 검증 안된 시스템을 돌려보기로 한 거예요.
세계에서도 누구도 해본 적이 없고 시스템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미친 척하고 진짜 돌렸습니다.
모두가 무모하다고 했어요. 이거 실패하면 진짜 망한다.
저도 정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에 맡기고 도전을 했습니다.
근데 너무 절실하면 하늘도 들어주시나 봐요.
그래서 그 하루 만에 자동 출고 시스템 돌리는 것을 성공하게 되었고요.
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굉장히 고도화된 시스템을 하루 만에 그걸 돌리는 데 성공하게 됐습니다.
그때 다시 생각만 해도 정말 아찔한 순간인데 이게 지금 저희가 가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이 되었거든요.
생각을 해보시면 정말 최악이고 절망적인 순간들이 저에게는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 되는 정말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차량이 털린 상황에서 정말 최악이다 재수 없는 일이다라고 끝냈으면
또 생수 배달하다가 이제 도저히 못 해 먹겠다 포기했다면
배달의 민족에 대해 매각도 런드리고도 지금 제어도 없었을 것 같거든요.
그 위기의 순간에 이 자동 출고 시스템 가동을 결정하는 것을 주저했다면, 포기했다면
그때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직원들도 모두 떠났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최악의 상황, 절망의 상황에 처했다면 이게 나한테 왜 발생했을까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분명 그곳에 인생의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키가 있을지도 모르니깐요.
그럼에도
온갖 안 되는 어려움과 안 되는 이유에서도
마지막 선택하는 건 결국 자기에게 있고 이 자신의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세탁을 하는 회사가 왜 의식주 컴퍼니냐고 많이 물어보세요.
제가 최근에 인스타에서 사진을 보니까 원룸 이사하는 트럭의 사진에 세탁기와 TV가 실려가는 게 일반적인 모습인데 거기에 저희 수거함이 실려서 가는 모습을 봤어요.
그러면서 이런 변화들이 일어나는구나 저희 집에 실제 세탁기가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전용 면적이 작은 주거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생각에는 세탁 공간 세탁기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했는데
런드리고 서비스가 더욱 성장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쓰게 된다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공간이나 세탁기가 필요 없는 삶이 펼쳐질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세탁기 버튼을 누르는 대신에 모바일 원클릭을 하면 세탁이 완료될 수 있겠죠.
그래서 세탁으로부터 의식주의 변화가 하나씩 저희는 시작될 거라고 믿고 있고요.
세계인들의 니즈가 동일합니다.
세탁은 깨끗이 빨아주고 편리하게 이용해 줄 수 있게 하면 음식과 다르게 모든 세계인들이 사실 동일한 니즈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삶을 비가역적으로 바꾸어서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 저희 회사도 많이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런드리고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면 샘플란 다운타운에 광고 하나 내려고 해요.
그때 빨래 남겨두고 훔쳐간 도둑 찾습니다. 당신 덕분이거든요. 안아줄게요.
이렇게 광고 한번 내고 싶습니다.
발표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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