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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487회 | 마음 가는 대로 바로 지금 실행하는 법ㅣ김미화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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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바로 지금 실행하는 법

 

 

 

많은 분들이 김미화 씨 뭐 행복한 일만 하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사실 알려진 사람으로서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 남에게 들키지 않게 이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까 김미화 너 행복하니? 물어보다가 저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나이 들면서 근사하게 살고 있는 어떤 인생의 한 방법이 있다면

 

 

 

마음 가는 대로 바로 지금 실행하는 법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미디언 김미화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늘 세바시에서 저에게 이렇게 특별한 시간을 주셨어요.

그래서 여러분들께 김미화가 인생 2막을 즐겁게 사는 법 즐겁게 사는 이유 여기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면서 사시는지 한번 여쭤보고 싶네요.

 

 

저는 사실 저에게 김미화 너 행복하니 이런 질문을 굉장히 많이 던졌습니다.

사실 알려진 사람으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 남에게 들키지 않게 

또 싫어도 싫지 않은 척 이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은 16년 전에 시골로 이사를 갔습니다. 용인으로 

산 끝자락에다가 집을 짓고 남편하고 같이 그 동네에 논밭 한가운데에 저희의 문화 놀이터 겸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컨테이너 4개를 붙여가지고 

 

많은 분들이 오셔서 행복해 하셨어요.

거기서 문화예술 공연도 이루어지고 또 뭐 문화 예술인들 오셔가지고 같이 즐기고 

 

농부님들이 거기서 플리 마켓이 열리고 어 그러면서 제가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보러 오셔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

저는 텔레비전 속에서만 있었고 라디오 속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그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어요.

근데 김미화를 보면서

"김미화 예쁘다. 김미화 열심히 산다. 김미화 씨 좋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시면서 제가 너무 울컥했습니다.

정말 감동이었어요. 

내가 텔레비전 안에만 있었으면 몰랐을 이런 사랑 그리고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내가 사랑을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야외에서 하는 어떤 공연을 조금 좀 배워보고 싶다.

컴퓨터에 앉아서 하루 종일 야외에서 하는 문화에 대해서 쳐보게 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뒤지다 보니까 국제 거리극 축제라는 것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어디인가 하고 살펴봤더니 안산에서 한다는 거예요.

또 들어가 봤더니 안산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 거리극 축제를 매년 하는데 벌써 16년이 됐더라고요.

여기서 일하면 엄청 행복하겠다. 

 

왜냐하면 그 문화 거리극 축제라는 거를 저는 꼭 한번 배워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하는 건지 

그래서 제가 용기를 내고 이제 입사 원서를 쓰게 됩니다.

입사 원서를 쓰고 아 좀 살짝 망설여지더라고요. 

제가 유명한 사람이니까 혹시나 거기다가 원서 놓다가 아 떨어지면은 이게 무슨 집안 망신입니까?

그런데 보세요. 여러분

긍정을 생각하면 긍정이 딸려온다 이게 저의 생각입니다.

부정을 생각하면 부정이 딸려온다 이게 저의 생각입니다.

긍정적으로 내가 안산문화재단에 원서를 넣었는데 난 될 거야라고 생각을 했더니 제가 붙었습니다.

여러분 이쯤에서 우리가 마법의 주문을 외워줘야죠.

음매 기사로 ~

 

저는 지금 그래서 제 결단으로 안산문화재단이라는 데서 행복하게 우리 직원들하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나이 들면서 근사하게 살고 있는 어떤 방법 중에 하나는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호기심을 놓지 않는 거 어릴 때부터 저는 굉장히 호기심 천국이었거든요.

 

제가 그때가 8살 때였었던 것 같아요. 

배삼룡 선배님이 텔레비전에 나오셔 가지고 "실례합니다."

그러면서 발을 걸어서 넘어지는데 자기 발을 자기가 걸어서 넘어지는데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아니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자기 발을 자기가 걸어서 자연스럽게 넘어지기가 이게 쉬운 게 아니에요.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서 제가 반했습니다. 정말 

'아! 결심했어.'
'나는 앞으로 직업을 코메디언이라는 직업을 가질 거야.'

예 그렇게 8살 때 결심을 하고 제가 계속해서 도전을 합니다.

 

중학생 때 교복 입고, 고등학생 때 교복 입고 막 계속 문을 두드려요.

개그 콘테스트 할 때마다 오죽하면 그 심사위원 선생님들하고 제가 친해져 가지고 

"제발 미화 너는 교복을 벗고 와라"

그래서 교복 벗는 해에 제가 83년도인데요. 그때 코메디언이 됩니다. 개그맨이 됐는데

 

개그맨이 되고 나서 이제 방송에 딱 와서 보니까 이상한 게 굉장히 많았어요. 여러분 

아니 그때는 80년대 초반이니까요. 

남자 여자가 같이 진행을 하는데 여자는 주인공이 될 수 없어요.

남자들이 리드를 하면 여자들이 옆에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네 그렇죠' 이 대답만 해 이상하잖아요.

그리고 연기를 하다가 연기자들이 아 웃기면 좀 웃어야 되잖아요.

근데 웃겨서 웃으면은 그게 NG가 나는 거야 다시 떠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게 너무나도 이상해서 쓰리랑 부부 연기할 때 

제가 은매 기사로 은매 기 죽어 막 할 때 

그때 일부러 사투리 씨에게 그냥 팍팍 무시 막 이렇게 세게 했고, 그다음에 제가 웃기면 웃었습니다.
그랬더니 그게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예 그래서 인기도 정말 많았었죠.

 

 


제가 제일 존경하는 선배님 중에 전유성 선배님이 계시거든요.

우리 전유성 선배님에게 배운 어떤 인생의 한 방법이 있다면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어요.

왜라는 질문 전유성 씨가 어느 날 저에게 그러는 거예요.

"미화야. 너 생각을 해봐라."

전유성 씨 흉내는 또 여자 중에서 제가 제일 잘 냅니다.

"있잖아 너 임신하면은 태교로 슈베르트나 모차르트나 그런 음악 듣지?

근데 내가 예술의 전당에 갔었는데 그 클래식 공연을 보려고 딱 들어가려고 그랬더니

7세 미만 입장 불가 이렇게 써 있더라.

아니 임신해서 뱃속에서 태교할 때는 듣는 그런 클래식 음악을 뱃속에서 나와서 생으로 왜 못 듣니?"

뱃속에서 나와서 아니 생 음악을 왜 못 듣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전유성 선배님이 만드셨잖아요. 

예술의 전당에서 아이들이 떠들어도 좋을 음악회 가봤어요.

7세 미만 아동들이 거기 꽉 찼는데, 막 뛰어다니고 막 소리 지르고 막 뭐 던지고 난리가 난 거야 객석에

그런데 무대는 이제 그 굉장히 클래식한 옷을 입은 소프라노 그다음에 뭐 바리톤 이런 분들이 딱 무게 잡고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그분들이 계속 이 공연을 이렇게 무게 잡고 하셨었잖아요.

너 막 이런 거 그런데 아이들에 맞춰야 되기 때문에 이분들이 공연을 굉장히 아이들에 맞는 공연을 하고 계신 거예요.

왜 있잖아요.

두두두두두 ~ ♬ 막 이런 거 아 막 이런 거

그래서 전유성 씨의 그 야

왜 뱃속에 나와서는 생으로 음악을 못 듣니 그 왜?가 지금까지도 그게 굉장히 오래된 일이거든요.

근데 지금까지도 얌모얌모 콘서트라는 이름을 달고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이 아이디어가 진짜 대단한 거 아닙니까?

 

 


여러분 왜?라는 질문

그래서 지금 저를 아시는 세대

그러니까 쓰리랑 부부의 순악질 여사 이렇게 기억하는 분들 그분들은 뭐 제가 탑의 그 코미디언이다 이런 거 아시겠지만

우리 젊은 세대에 계신 분들은 쓰리랑 부부 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개그 콘서트를 기획했다 라고 말씀드리면 깜짝 놀라요.

그 개그 콘서트가 전유성 선배님에게 배운 질문 왜라는 질문을 제가 던지면서 그 옛날에 만들어지게 된 프로그램입니다.

우리 후배들이 정말 잘생기고 예쁘고 재능 있고 이런 친구들인데 

근데 왜 이렇게 괜찮은 우리 후배들은 사랑받지 못하는 걸까?

 

당시의 코미디가 여러분 지금은 뭐 여러분 상상을 못하시겠지만 어 저질시비에도 휘말리고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98년도부터 한 1년 정도를 아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내가 무슨 코미디 프로를 하나 기획을 좀 해 봐야 되겠다. 정말 좋은 코미디 프로 하나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우리 신인들하고 해서 한 번만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떠봅시다.

 

 

이렇게 우리 예능 본부장님에게 설득을 하고 정말 3개월 동안 우리 신인들하고 PD하고 작가하고 열심히 열심히 준비를 해서 어 99년 9월에 저희가 파일럿 프로그램을 뜨게 됩니다.

근데 뜨자마자 그게 성공을 하면서 개그 콘서트가 23년 동안 장수를 한 프로그램으로 역사에 남습니다.

 

 

그것이 바로 김미화가 가졌던 왜 우리 후배들은 코미디언으로서 재미있다고 사람들에게 평가받지 못할까 라는 의문에서 그런 역사적인 프로그램이 탄생됐다.

여기서 박수 한번 좀 주셔야 되는데 예 아 고맙습니다.

 

 


그래서 제가 안산문화재단에 와서 이제 그 직원들하고 같이 일을 하다 보니까 여기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왜?라는 질문을 제가 자꾸만 하게 됩니다.

'왜? 나는 안산이라는 곳을 왜 공단만 있는 곳으로 생각을 했었지?'

여러분 안산 그러면 반월공단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예전에 제가 진짜 진짜 오래 전에 그 대부도를 가면서 반월공단에 들어간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 진짜 좀 약간 좀 음 좀 그랬습니다.

근데 얼마 전에 제가 대부도를 갔다가 뭐 일 보러 갔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반월공단에 들어갔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외국의 어느 도시에 온 줄 알았어요. 그렇게 예쁘게 변해 있습니다.

그게 호주의 캔버라라는 곳을 아마 벤치마킹 했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공단이 있다 보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 보세요.

도시를 만들 때 그러한 공단이 있음으로 해서 자연을 많이 남겨두는 효과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도시가 온통 공원 조그마한 동산 이런 데다가 이 건물을 듬성듬성 박아가지고,

이건 완전 그냥 뭐 아파트에서 딱 나가면 공원이고 제가 직원들하고 문화 놀이를 하기에 너무 좋은 거예요.

예 공원이 많으니까 

 

 

공원에서 정원 음악회 아무 데나 그냥 무대 없이 펼쳐서 진짜 뭐 클래식 공연을 해도 되고 얍모야 뭐 콘서트를 해도 되고 개그 콘서트를 해도 되고 너무나도 좋은 자연 환경이 있더라.

예 거기다 뭐 대부도 가깝죠 또 섬도 너무너무 예쁜 섬들 많아요. 누에섬 풍도 

제가 가서 보고 깜짝 아 거기 시장님은 참 행복하시겠다 할 일 많아서 이런 생각을 했다니깐요.

그래서 문화에 대해서 엄청나게 마음으로 또 응원도 많이 해 주시고 지원도 많이 해 주셔서 

저는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얼마나 얼마나 행복하게 지금 안산문화재단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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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가 오늘 이렇게 말씀을 드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김미화 씨 그러면 김미화 씨처럼 뭐 행복한 일만 하고 뭐 좋은 것만 하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어떻게 그래요?"

라고 이야기하실 수 있죠.

근데 여러분 제가 이 말씀을 좀 드려볼게요. 

음 버나드 쇼라는 유명한 문학가가 있습니다.

그분의 묘비명 굉장히 유명하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게 그분의 묘비명이에요.

인생이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시간이 없어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물쭈물하실 시간이 없는 거예요.

딱 내가 정해놓고 어느 길을 가겠다 그러면 행복을 쫓아서 그 길로 가는 거 

그게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 긍정을 생각하면 긍정이 딸려오잖아요.

긍정적으로 그렇게 살다 보니까 굉장히 잘 살게 되더라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앞으로도 제가 근사하게 늙어 갔으면 좋겠고요.

실제로도 또 그럴 거고요.

어 제가 근사하게 코미디언 김미화의 길을 가는데, 여러분들이 응원을 좀 해 주시고

저도 역시 여러분 오늘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행복하게 사는 그 길을 따라서 갈 여러분들

마음의 준비가 되셨으면은 제가 오늘 마법을 걸면서 응원해 드리면서 제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자 여러분 행복한 그 길 꽃길 따라서 쭉 가시라고 제가 마법을 겁니다.

"음매 기사러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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