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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45회 우리 곁의 난민을 보라 | 홍세화 난민인권대표 공동대표


강연내용 소개 :


제가 이 자리에 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 자신 난민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라별 난민 신청자 숫자 같은 통계를 소개하는 것보다 난민 출신으로서 한국에 난민으로 온 분들을 어떻게 바라봐야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 나라의 이주민이나 난민 정책은 경제적 접근보다 철학적, 인문학적 접근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난민 정책의 기조는 용인보다는 통제, 철학적, 인권적 접근보다는 경제적 접근이 우선시되는 것 같습니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선진화를 말로 그칠 것이 아니라면 바꿔야 합니다. 이 변화의 동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땅을 피난처로 찾아온 난민들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입니다.    


게시일: 2011. 9. 13.



안녕하세요 홍세화 입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한 20년 가까이 난민으로 살았던 

그러한 저의 사적 경험이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에 와 있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주로 제 3세계 입니다 만은

와 있는 난민들에 대한 관심을 여러분께 촉구 하기 위해서이 자리에 섰습니다 


난민 그러면 어떤 분들인지 아시나요?


난민 그러면 법적으로는 제네바협정에 의해서 한국도 물론 거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만은


난민(難民)

인종, 종교, 국적, 신분,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하는 사람들


제네바협정에 의해서 인종, 종교 그다음에 국적 그리고 신분 그리고 정치적 견해차이 의하여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에 핍박받을 그럴 우려가 있는 사람들 바로 난민이라고 부릅니다 


제 경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이제 다른 민족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 의해서 프랑스에 의해서 난민자격을 받았던 것이죠 


지금 한국에 우리 사회에 2001년 인가 난민자격을 처음 준 뒤로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만은 

어느 정도의 난민신청자가 있고 또 그 중에 얼마 정도가 자격을 획득 했는지 

혹시 조금이라도 근처래도 계신 분 계신가요? 

한 10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3천 명이 안되는 신청자가 있고요 

그 다음에 그 중에 난민 자격을 획득한 분이 인도적 측면에서 받아들인 숫자를 포함해서 200여명 정도입니다 

즉 10%도 안 되고 있는 거지요 


숫자도 많지 않은데 애 또 한국처럼 접근 가능성이 대단히 어려운 나라에서는 

가령 접근 가능성이 어렵다 그러면 

예를 들면 제 3세계 출신으로 보면 케나다 같은 나라가 접근 가능성이 적은 나라죠 

거기에 비해서 아프리카 출신 같으면 예를 들면 프랑스 라든지 이런 나라는 그래도 배를 타거나 

이런 방식으로 어떻게든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있기 때문에 그 접근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할 수 있고 

그런 면에서 평균적으로 보편적으로 볼 때 접근 가능성이 없는 나라에서 난민을 받아들이는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겠죠?


그래서 물론 각 나라가 갖고 있는 난민 정책이 있습니다만은 

케나다 같은 나라에 경우에는 40%를 넘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도 접근 가능성이 높은 프랑스도 20%를 넘는데 한국은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10%도 안 되는 

그럴만큼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되도록 자격을 주지 않으려는 쪽에 있고 

이런 것은 결국 제가 볼 때 각 나라의 난민정책은 결국 그 나라 사회구성원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 

이것이 가장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지요 

숫자 더 많지 않은데 또 접근 가능성도 그렇게 쉽지 않고 

이런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낮은 그런 비율을 보이고 있는 점에 같이 한번 생각을 해 봤으면 하고요 


그 다음에 제가 이제 저의 경험을 통해서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만은

난민은 그야말로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은 

꼭 필요한 것이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생각합니다 


난민의 처지에 있는 사람에 자리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난민은 바로 그 사회적 동물에서 사회를 잃어버린 사람들 

자기 친척도 자기 동네도 자기 국가도 거기서부터 벗어나야만하는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언제 되돌아 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그런 이방인 

전척(?) 그야말로 전망도 없는 이방인 데다가 

대개의 경우 그 나라 출신 외국에서의 일종의 그 공동체가 있지 않습니까?

가령 파리에 한국인 출신 공동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공동체에도 낄 수가 없는 이중에 이방인 

남의 나라에 살아야 되면서 또 그 같은 출신에게서도 또 거리를 둬야 하는 

뭐 이런 처지에서 과연 어떻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을 꼭 우리가 같이 좀 해 봤으면 하는 그것이 인제 제가 드리고 싶은 첫 번째 고요 

그래서 역지사지 한번 그분들의 처지에서 한번 생각을 해 보자 


또 나아가서 제가 판단하게 제가 보기에 

우리의 그 인권이 그 난민 정책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어떻게 하면 통재 할까 

되도록 받아들이지 않을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데 

아 이 또한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이런 점도 있어 보입니다 


가령 제가 프랑스에서 난민신청을 하고 심사를 받았던 부서는 정부 부서는 외무산하 였습니다 

외무부 산하 난민과 무국적자를 위한 보호국이라는 곳에서 심사를 받았는데 


제 판단에 제가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외무부 산하가 맞을 것 같아요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제네바 협약)

1951년 7월 제네바에서 채택된 난민 보호와 처우에 관한 다자 조약


왜냐하면 그 제네바협정에 의해서 종교, 민족, 국적, 신분,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핍박 받을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되도록 그 소통이 가능한 그걸 알기 위해서 그것은 당연히 외교통상부죠 한국으로 치면 

그런데 외교통상부 선하가 아니라 아 우리나라에서 지금 그 난민을 심사하고 하는 데는 법무부 입니다 


이것 자체가 이미 국경에서 이제 되도록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리고 출입국 관리에 이런 것이 시각이 더 들어 있지 않나 

이런 제도적인 측면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또 바로 이 그런 것에 연장입니다만은 

우리 국민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일종의 순혈주의라고 할까요?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 

이런 것이 결국 거 같은 정부의 정책과 만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어느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동남아 출신에 이주노동자가 타고 있었는데 

그 옆에 40된 분이 어깨를 툭 치면서 '그래 한 달에 얼마나 벌어?'  어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야 말로 마치 큰 시해나 베풀고 있는 듯이 그 외국인 이주노동자에게 그런 식의 표현을 썼는데 

거기 어떤 거기에 담겨 있는 어떤 우월적인 이런 생각이랄까 이런 것이 그 분 만에 일은 아닐 것 같고 

이런 것들이 결국 그와 같은 우리 사회구성원들에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각 이런 것이 

그대로 난민 정책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지요 


한 사회의 인권에 현실을 볼 수 있는 두 부분이 있다고 얘기를 합니다 

하나는 이주노동자의 인권 현실이 어떠한가 또 하나는 재소자의 인권이 어떠한가 

이걸 보면 그 나라의 인권 현실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 난민은 이주노동자에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겠죠 

어 그럼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우리의 우리나라에 그야말로 사회를 잃어버려서 우리 사회의 안기려고 온 난민들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만큼 인권의 시각으로 보듬을 수 있는 보듬을 수 있는 그러한 토대가 되어있는지 

자세가 되어 있는지 이런 생각을 같이 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측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권적 측면 또 나아가서 지금 말씀드릴 문화적 측면에 대해서도 같이 한번 생각해 봤으면합니다 


어린왕자를 쓴 생떽쥐베리의 말이지요 

널리 사용되고 있는 회자되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고 자손에게서 빌린 것이다

이 말은 흔히 이 환경문제나 이런 문제를 얘기할 때도 

우리가 막 개발하거나 이랬을 때에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의미에서도 하는 얘기입니다만은 

저는 그것을 좀 더 확장해서 

우리 땅의 실제 주인인 우리 자손들이 과연 우리에게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나 외국에서 온 분들을 배제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했을까? 요구할까? 이런 물음을 한번 던져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제 생각에는 문화의 다양성 이라든지 이런 걸 토대를 위하여서도 

지금 와 있는 난민들 이분들이 모두 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지만 고향을 갖고 있고 

고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문화를 갖고 있다는 뜻이며 

곧 그분들이 한국땅에 와서 자기 문화를 표현할 수 있게 되고 

그래서 그 문화와 문화들이 이 땅에서 비벼질 수 있게끔 우리가 정말 전향적인 그런 생각에 바꿈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자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워낙 경제 동물로 축소되고 

그리고 전인적 인간에 대한 이런 지향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은 

실제로 우리에 이 생활 속에서 일상 속에서 사고를 사유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경제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는데 

그런 것으로부터 좀 더 전인적 인간으로 바꿔서 생각을 난민에 대한 생각도 좀 바꿨으면 하는 것이 이제 제 희망이죠 


저는 아시는 바와 같이 택시노동을 했습니다 

택시 노동을 했다는 것은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난민 자격을 받아도 결국 이제 이주노동자에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데 

한국에서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노동허가제가 아니고 고용허가제 밖에 없습니다 


제가 택시 노동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고용허가제가 아니고 노동허가제를 획득 했기 때문이죠 

그만큼 그 처우 난민 심사를 획득한 뒤에도 

다른 이주노동자나 마찬가지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몹시 제약되어 있는 이런 것도 

한국 사회의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너무나 경제적인 측면으로 

저 사람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 거 아닌가 라는 이런 것이 지배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면에서도 좀 더 다른 그러헌 좀 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좀 선진적인 생각을 해 줬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지요


결국은 이러헌 난민정책을 바꿔 나가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도 바꿔 나갈 수 있으려면 

결국 우리 사회구성원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 

문화에 가교나 또는 다형성에 대한 인식 이러한 것이 요구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적극적인 관심이겠지요 


그래서 많은 분들에게 제가 오늘 난민인권센터에 공동대표의 자격으로 왔습니다만은

이 모임에서 단체로 관심을 가져 주시고 회원가입도 좀 해 주시면 좋겠구요 


링크 : 난민인권센터 [ http://nancen.org/ ]


그래서 우리 사회가 좀 더 그야말로 열린 사회 이방인에게도 좀 열린사회

이방인에게도  좀 따뜻한 사회 이러한 사회로 됨으로써 그것이 우리의 인권 또는 문화의 다형성 이런 것에 

그야말로 훌륭한 어떤 그 의미와 아 그 내용을 난민 정책을 통해서도 서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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