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구조신호에 귀기울여 주세요 | 장동선 뇌과학자 | #정신건강 #우울 #심리 #MindSOS | 세바시 1815회
제가 초등학생일 때 어머니께서 우리 죽자
엄마가 죽고 싶어 하는 감정을 느낀다라는 게 아이에게는 너무 큰 상처예요.
그 절망적이었던 아이의 감촉이 살면서 중간중간 올라와요.
요약
- 개인적 경험과 트라우마
- 연사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반복된 “죽자”라는 말과 실제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깊은 상처를 입음.
- 물에 빠져 죽는 장면에 대한 공포와 ‘helper syndrome’이 생겨 삶 전반에 영향을 줌.
- 스스로도 3번의 자살 시도를 했던 경험을 고백.
- 한국 사회의 현실
- 한국은 20년째 OECD 자살률 1~2위.
- 매년 코로나 사망자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죽고 있음에도 위기 인식은 부족.
- 많은 이들이 소리 없이 가라앉듯 절망 속에서 구조 신호조차 보내지 못함.
- 뇌과학적·심리학적 통찰
-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
- 실패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민감성
-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갇힌 느낌’
- 희망적인 소식·연결의 부재
- 이런 상태는 뇌의 기능 저하와 맞물려 절망과 무력감을 키움.
-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
- 회복과 연결의 힘
- 절망의 블랙홀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프로젝트, 여행 등)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찾음.
- 누군가의 작은 위로, 손 내밈, 함께함이 ‘희망의 문’을 열어줌.
- 도움을 주는 행위가 상대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가장 큰 위로가 됨.
- 사회적 메시지
-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
- 구조 신호(SOS)를 보내고 읽을 줄 아는 문화가 필요.
-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 서로의 마음 신호를 읽고 함께 돕는 사회가 되어야 함.

안녕하세요. 장동선입니다. 반갑습니다.
사람마다 그런 거 있죠. 악몽 꿀 때 나타나는 장면들.
그중에 제일 무서운 장면 중의 하나가 뭐냐면 저도 아이가 둘이 있는데,
아이가 물에 빠졌는데 익사하는 그 장면이 너무너무 무서워요.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못 구해주고 꼬르륵하고 정말 익사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면 너무 끔찍해서
약간 강박처럼 아이들하고 어디 물 있는 장소에 가도 항상 봅니다.
당장 뛰어갈 수 있는 자리에 보고, 굉장히 그게 무서워요.
물론 그런 일이 안 일어나야 하고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큰 공포를 가지고 있어요.
그 공포가 대체 왜 그렇게 깊숙하게 제 마음속에 있을까?라고 하는 것을 예전에 상담을 받고 정신분석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어요. 그때 얻었던 저의 insight 중의 하나가 저보고 helper syndrome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Helper syndrome이 뭐냐?
혹시 살면서 누군가가 꼭 구해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구해주지 않고 버려진 느낌에서 절망감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있었어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지금도 또 울컥하지만, 그 뭔가 마음 안에 버려졌던 아이가 올라오면서 힘들어 해요
그런데 그 비유가 물에 빠져서 발버둥치는 아이의 그림으로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러분 그거 아세요?
아이가 물에 빠지면 영화 보면 살려달라고 하고 소리 지르고 버둥댈 것 같죠? 그런 일 없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소리 없이 30초 만에 꼬르륵 익사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수영을 할 줄 모르고 그 상황 자체에 대해서 어떠한 반응을 하기 전에 이미 발이 닿지 않는 물속으로 빠져버리면 아무도 몰라요. 근처에 누군가 봐주지 않으면.
그래서 그런 사건들의 뉴스를 보거나 그런 사례들을 보게 되면은 1분, 2분 만에 익사합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살려주세요. 했는데 안 구해주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이 턱끝같이 차 있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게 끔찍한 익사의 상황만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마음의 아픔이 그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물이 턱 끝까지 차 있어서 사실은 소리 내기도 어렵고 내가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지도 못하고 그냥 어느 순간 꼬르륵 나는 죽어버릴 것 같아. 이런 절망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느껴요.
그리고 제가 그런 비슷한 순간을 경험해서 그런 순간이 오는데 누가 구해줄 수 없다. 또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게 너무 가슴 아픈 것 같아요.
그게 제 개인의 어떤 경험과도 있습니다.
오늘 사실 이 이야기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야 되는데 약간 무서워하면서 무대 뒤에서 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 몇 년 전에 사람들이 저한테 물어봤어요.
뇌과학 박사고 TV에도 나오고 유튜버기도 하고 이런데, 이런 유명세나 아니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고 싶냐? 또는 어떠한 일을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라고 하면 그것이 어떤 일일까?라고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제가 바로 이야기했던 답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에서 바꿔야 할 1가지가 있다면 그걸 바꿀 수 있다면, 그거는 자살률을 당장 낮추는 겁니다라고 얘기를 했어요.

20년째, 90년대부터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늘 1~2위입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있고요.
이것을 수치로 따지게 되면 2시간마다 3명씩 20년째 죽고 있어요.
여러분 코로나19가 대위기였고 우리가 코로나19 동안 죽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라고 슬퍼하고 큰 위기였죠.

그런데 코로나19 기간 전체에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 매년 자살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거죠.
그리고 여러분이 이미 들으셨던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것을 위기로 인식하지 않아요.
OECD 모든 국가들 중에서 이게 지금 위기다. 이거 정말 위험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구나라고 이 정신건강에 대해서 위험하다라고 느끼는 사람의 숫자가 반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가장 마음이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사는 나라인데, 그것이 아프다라는 얘기도 안 하고 있고, 그다음에 스스로가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죠.
아마 당사자들 스스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마치 아이가 물속에 빠질 때 아무 소리도 못 내고 그냥 물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가라앉고 있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문제가 저희가 꼭 꼭 해결해야 하고 바꿔야 할 문제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 과정이 오늘 이렇게 모인 이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 제가 뇌과학자이다. 보니까 논문들을 찾아보고 대체
자살을 하는 뇌는 어떤 상태일까? 자살하는 뇌는 뭐가 다를까? 이런 연구들을 찾아봤어요.
물론 하나의 연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의 답이 있는 것만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렸어도 자살을 하는 사람과 우울증에 걸렸어도 자살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차이가 2001년도에 나온 한 논문에서는 세 가지를 꼽고 있어요.

첫번째는 우울증에 걸려서 자살까지 가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성 중의 하나는 무언가 내가 루저가 되고 패배자가 되고 실패할까 봐 그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 할까 봐 어마어마한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실패감에 대한 민감도가 훨씬 높습니다.
이걸 뇌과학적으로 보게 되면 뇌에서의 섬엽과 편도체, 그러니까 내 몸에 스스로의 상태와 니즈를 알아보고 그리고 나의 공포와 불안과 이 부정적인 모든 감정들을 좌우하는 뇌 영역이 훨씬 민감해져 있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조그마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가 나에게 못 되게 했던 어떤 행동 하나 자체가 이들에게는 굉장히 큰 상처가 돼서 내 스스로가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게 갈 수 있다라는 거죠.

두 번째는 이거는 저도 경험했던 건데 영어로 trapped 내가 함정에 빠져있는 것 같아.
내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구멍에 갇혀 있는 것 같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우울증 중에서도 자살 위험도가 높은 그룹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이 상태에서는. 그러니까 어떤 함정에 빠져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라는 깊은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상태는 뇌의 전두엽 자체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뇌 과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Problem solving 이게 문제고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해야 돼 라고 인지하고 해결하는 능력 자체가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그러한 상태가 아니라고 한다면, 아 나는 지금 이런 문제가 있구나.
그럼 운동이라도 해야지 또는 내가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지라고 문제를 인지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텐데 뇌가 이 기능이 떨어져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뭐냐 하면 굉장히 거대한 블랙홀에서 모든 게 깜깜하고 어둡고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누가 힘내라고 하는 말도 들리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잘 될 거야. 안 들려요.
나는 모든 빛이 차단되어 있는 굉장히 어두운 블랙홀 한가운데서 나 혼자만 있는 느낌을 가지고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이게 우울증 중에서도 자살 위험이 높은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이거는 살면서 일어난 어떤 일들인데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기도 하지만 이러한 희망적인 뉴스가 없는 경우가 굉장히 오래 지속이 되면 이 우울증이 자살로 가게 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안타까운 부분이 생각해요.
희망의 요인이라고 하는 게 큰 게 아니에요.
누가 나에게 웃어주고 손잡아주고 힘들었구나. 한마디 해주는 게 너무나 큰 힘이 돼서 내가 한 달, 두 달 또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해요.
그런데 희망적인 뉴스가 단 하나도 없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거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태가 지속이 되는 게 이 우울증이 자살로 가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보여주는 세 번째 패턴입니다.
사실 이 중에서 두 번째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있어서 빠져나올 수 없이 어딘가 덫에 걸린 느낌. 제가 그 느낌을 너무 잘 알아요.
저는 10대, 20대, 30대 거쳐오면서 자살 시도를 3번이나 시도했고 다행히 실패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 있어서 내가 그 행동까지 가게 되는 데 있어서 나는 Black Hole 안에 있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이 블랙홀의 감정이 나에게만 있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사실 저는 잘 기억하지 못했는데, 제 아내가 왜 저와 결혼했는지 결혼을 결심하게 됐던 제가 했던 어떤 이야기가 아내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얘기해 줬던 적이 있어요.
제가 이렇게 얘기를 했대요.
뭔가 당신 마음 안에서도 깊은 어떤 그런 허무함의 구멍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그 구멍이 커지지 않도록 막아주고 싶어.
내가 그 구멍이 커지지 않도록 내가 막아줄게.
그런데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내 이 얘기를 정말 평생 듣고 싶었던 얘기구나. 이 얘기를 나한테 아무도 해주지 않았구나.
그래서 저를 좋아하게 되고 저희가 결혼까지 하게 됐다라고 하는 얘기를 했어요.
물론 그 뒤에는 다른 말도 붙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거짓말쟁이였어.
나의 구멍이. 나의 감정이 커졌잖아. 그 구멍을 막아준다고 하고 내가 이렇게 더 큰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거는 왜 그랬어? 이런 얘기도 들었어요.
그리고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그것 때문에 많이 울었는데,
제가 독일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왔던 그 시기가 2017년도예요.
그런데 2017년도에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저희가 상담을 받았어요.
그리고 심리상담 선생님이 제 손을 잡고 옆으로 가더니,
아내는 자살 시도를 한다. 할지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모르고 있었어요.
구멍을 막아준다고 했던 사람이 나 혼자 강연 다니고 있고, 티비 나오고 있고, 혼자 책 쓴다고 하고 있고, 아내의 마음의 구멍이 이렇게 커진 걸 모르고 있었어요.
어떻게 제일 가까운 사람이 5년이나 살면서 이걸 모를까?
그것도 뇌과학을 전공한 사람이 ... 그것도 이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스스로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
그때 되게 놀랐어요.
옆에서 누군가는 물이 여기까지 차오는데 모를 수가 있구나.
그 구조 신호를 들었어야 되는데, 내가 가장 가까이 있어서 못 듣고 있었구나.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이 보내는 구조 신호를 읽는다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그때도 느꼈었습니다.
1가지가 더 있어요.
사람들이 우울증이 치료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저는 그 기대감에서 우리가 조금 기대감을 낮춰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를 보게 되면요.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가 좀 있어요.
제가 왜 그런 공포, 물에 빠지는 공포, 구하지 못하는 공포, helper syndrome 이런 게 있는가를 보게 되면
아주 나중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어린 시절의 기억, 아주 오랫동안 눌러줬던 기억이 어떤 거였냐면
제가 초등학생일 때 반복적으로 어머니께서 우리 죽자 이러고 어린 저를 잡고 같이 누워 있었어요.
그러다가 5분 10분쯤 있다. 이거는 아니지. 그냥 살자. 그래도 살자. 그리고 네, 다시 또 일상이 시작되고 그런 반복적인 기억이 있었어요. 엄마가 죽고 싶어하는 감정을 느낀다라는 게 아이에게는 너무 큰 상처예요.
아 오늘은 감정을 조절하는가? 했는데 힘들어요.
그래서 그때의 절망적이었던 아이의 감촉이 살면서 중간중간 올라와요.
그 상처가 나중에 어른이 돼서 다른 상황을 겪을 때 제가 웃을 수 있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렸을 때 그 겪었던 경험은 너무 커서 제가 되게 오랫동안 눌러왔고 그다음에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냐면 어느 순간 사춘기가 돼서 말 안 듣는 아이가 돼서 집에서 도망을 갔어요.
그래서 제가 가출을 하고 집에 안 들어오고 그리고 어머니에게 미운 말도 했습니다.
뭐라고 말했냐면 나랑 계속 이러고 계속 그런 말 할 거면은 왜 죽자고 말만 하고 안 죽어. 나는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보기 싫어. 이러고서는 집을 나갔었어요.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그 이후에 다시 돌아오고 엄마를 봤지만 정말로 그새 어머니가 간경화를 겪고 제가 고등학교 때 19살 때 실제로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이게 참 더블로 아픈 경험인게, 그 상처의 경험을 다 소화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가시면서 손을 잡고
엄마가 다 미안하다 진짜 사랑해 이러고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 사랑한다고 하고 미안하다고 하고 돌아간 엄마에게 사랑한다라는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죠.
그리고 어렸을 때 겪었던 그 상처에 대해선 아니야 라고 어딘가 묻어두고 깊이 안 보이는 곳에 놓고 갔던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생각을 하냐면, 그 절망감의 순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느끼기도 하구요.
그런데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가 이렇게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거는 독이 든 캡슐을 삼킨 거랑 비슷합니다.
저는 독이 든 캡슐을 삼킨 채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 독이 든 캡슐 때문에 어느 순간 분노하거나 저에게서도 안 좋은 모습이 나와서 제 아내나 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 살고 있고요.
자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꿔보자라는 캠페인을 하지만 저도 알고 있어요.
실제로 어느 순간 자살을 할지도 모르는 위험성이 가장 높은 군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울증이라고 하는 것, 어린 시절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아요.
우리는 그 독이 튼 캡슐을 삼킨 채로 평생을 살아가야 되는 걸 수 있어요.
제가 아는 다른 분들 중에서 극복하시는 분들도 나 우울증이 완전히 낮지는 않았어.
아직도 때때로 절망감과 허무함과 그 감정이 올라오지만, 그걸 가지고 사는 거고, 내가 그 감정을 가지고도 살아갈 힘을 얻는 거야라는 얘기들을 하고 있어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 독이 든 캡슐을 삼킨 이상 어느 순간 그 캡슐이 열려버리면 또다시 저를 마비시키는 또다시 저에게 안 좋은 생각을 올라오게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독이 든 캡슐은 용량이 얼마나 많건 얼마나 강도가 세건 약하건 저희 모두가 삼키고 사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에게 되게 큰 위안이 됐던 하나의 스토리가 제가 독일로 유학을 갈 때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에 저에게 추천서를 써주셨던 교수님이 자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아버지가 자살을 했고 그 교수님이 아버지를 발견하셨어요.
큰 형이 자살을 했고, 그 큰 형도 교수님이 발견을 했어요.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부터 단 1명 있던 제일 친하던 친구도 자살을 했고 자기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어요.
그 세 가지를 연속으로 겪고 나서, 이 자살 유족이 된 교수님은 본인도 자살을 생각했대요.
그런데 그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긴 게 아니라 자살을 할 힘이 남아 있으면 새로운 시도를 할 힘도 남아 있지,라고 그냥 다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대요.
그래서 그곳에서 학문을 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고 새로운 삶을 찾고 그리고 자살하지 않고 돌아와서 교수님이 됐다라고 저에게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게 힘이 됐고 그래서 저도 힘들었던 순간마다 뭔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선택을 해요.
내가 어차피 죽을 마음이 생길 수 있다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그러면 그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해보지 뭐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명언이 하나 있어요.
헬렌, 켈러 다 아시죠? 너무 많이 들어서 아는 얘기일 겁니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이 3가지의 엄청나게 큰 장애를 안고 있는 분이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많은 글을 쓰고 교육 활동을 하고,
그런데 이분이 남겼던 이야기 중에 되게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들이 몇 가지가 있어요.
그중에 제가 좋아하는 게 이겁니다.

살다 보면 문이 닫히는 순간이 온대요. 내가 저 문을 통과해야 행복해지는데 저 문은 이미 나에게 닫혀버린 거예요.
행복할 수 있는 문이 하나가 닫히면 하나는 어디선가 열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절망감을 느끼고 왜 나아가지 못하는가?
닫힌 문만 바라보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나 봐. 문이 닫혔어. 이러고 있는 거죠.
그렇지만 어느 순간 이 문이 닫혔다라고 한다면, 나를 위해서 열린 또 다른 문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면 닫힌 문이 있는 만큼 나에게 열린 문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고통을 많이 겪고 그다음에 내가 더 이상 행복하기 어렵다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야말로 나는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그 시작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그 행복의 순간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 생겨납니다.
이게 아이러니한 게요.
블랙홀 안에 있을 때 내가 힘이 없고 아무것도 누구를 도와줘? 이런 마음이 가득해요.
그런데 그 순간 어떻게라도 누군가에게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또는 내가 손을 내민다든지 해서 연결이 이루어지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존재구나. 내가 누군가에게도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구나 이러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가장 힘든 순간에 나는 아무에게도 손을 못 내밀 것 같지만 내가 어떻게라도 손을 내밀 수 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내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에게만 좋은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된다라고 하는 것이 여러 연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답입니다.

저는 인생은 항해라는 비유를 좋아해요.
저와 아내가 결혼할 때 청첩장에도 저희가 인생의 항해를 함께하게 된 것을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청첩장을 돌렸고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어디서 바람이 불고 언제 폭풍우가 닥칠지 언제 바람과 파도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배는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난파되기도 하고 그리고 연료를 다 써버리고 어딘가 표류하기도 합니다.
배가 이렇게 난파의 위험을 겪거나 표류할 때 뭘 하는지 아세요? SOS 신호를 보냅니다. SOS 신호가 응급 구조 신호예요.
전 세계 공통이고 1905년도에 독일에서부터 시작이 됐어요.
SOS가 뭐냐? 뱃사람들은 save our ship 내 배를 구해줘. 누군가는 save our souls 영혼을 구해줘.
이렇게 약자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국제 모르스 부호 코드에 따른 SOS의 코드가 바로 응급 구조죠. 신호예요.

이 코드는 여러분도 기억하시면 좋은데 아주 쉽습니다.
짧은 코드와 긴 코드가 조합이 된 게 SOS 코드잖아요.
S가 짧게 탁탁탁 입니다. 그다음에 O가 길게 탁 탁이고 다시 S가 탁탁탁이에요.
그래서 이거는 배가 조난됐을 때 뿐만이 아니라 내가 어딘가 감금되어 있다.
내가 감금되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이럴 때도 손전등 같은 걸로 짧게 신호 탁탁 이러면 이 신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응급 구조 신호구나.
누군가가 위험을 당했구나 어딘가 고립됐거나 구해줘야 하는구나라고 알아차립니다.
이게 만국 공통의 응급 구조 신호예요.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뭐냐 하면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배가 난파됐을 때 표류했을 때 서로에게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mechanism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발버둥치지 않고 물속에 가라앉고 있는 사람 역시 옆에서 누군가가 얘 위험한데 라고 구조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내 마음이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봐야 합니다.
어찌 보면 내 마음이 급하게 구해주세요. 응급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우리는 내 마음의 구조 신호를 먼저 읽어줘야 하고 그리고 나아가서 누군가가 마음의 응급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서로 읽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걸 강조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자기 아버지를 잃어버렸던 토마스 조이너라는 세계적인 심리학자, 자살학자는 자살에 이른 사람들을 연구하면서 왜 자살할까? 라고 할 때 세 가지 요인을 꼽아요.

하나가 사회적고립. 다른 하나가 내가 짐이 된다는 느낌 그리고 세 번째가 지속적으로 너무 많은 고통을 겪어서 고통에 무감해져서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라고 하는 고통의 내성이 된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3가지는 다 우리가 서로의 구조 신호를 읽어주고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면 조금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조심스러워요.
왜냐하면, 자살 유가족의 경우에는 내가 옆에 있었는데, 내가 손을 내밀었는데 누군가 죽었잖아요.
이거는 옆에 있었는데, 내가 구해주지 못했다라는 죄책감이 엄청나게 클 수 있습니다.
그치만 저도 이 경우에는 이게 구해주지 못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살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자체가 구조 신호를 읽는 능력이 없고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는 사회라는 거예요.
배들이 마구 가라앉고 있는데, 아무도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고 구조 신호를 읽을 줄 아는 사람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제부터 서로 마음의 구조 신호를 읽어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마음의 구조 신호를 보낼 줄도 알고 읽을 줄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구요. 서로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고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끝내는 일은 모두가 힘을 합쳐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힘을 합쳐서 꼭 도와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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