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학과를 나와 공무원으로 12년 일하던 한 사람이 거울을 보다가 "나는 누구일까" 묻고, 결국 50대 중반에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소설가 전현서 — 세바시 1963회 「나를 표현하는 용기, 변화를 만드는 시작」은 그의 늦깎이 등단보다 더 큰 발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한 줄 요약
소설가가 된다는 건 "말하지 못했던 사람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 —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로 세상을 따뜻하게 바꿀 수 있다는 호모 나벤스의 메시지.
⭐ 추천 점수
★★★★★ (5/5) — 12분 분량으로 "내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망설이는 모든 사람에게 직격탄. 늦깎이 등단·자원봉사자 인터뷰·티벳 룽타로 이어지는 흐름이 단정하다.
👥 이 강연을 꼭 봐야 할 사람
① "할 얘기 없다"고 평생 말해 온 사람 — 사실 가장 깊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부류. 자신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있는 사람.
② 자원봉사·역사 기억·기록 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 — 「세바시브이」, 평화 디딤돌, 일본 하시마섬 추모제 등 구체 사례 풍부.
③ 늦은 나이에 진짜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 — 12년 공무원·영어 교습소를 거쳐 50대 중반에 소설가가 된 강연자의 실제 궤적이 위로가 된다.
📑 목차
1. 말하지 못했던 아이 — 화학공학과·공무원 12년의 답답함
2. 별이 툭 떨어졌다 — 독후감 한 편이 인생을 연 순간
3. 50 중반 소설가 —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4. 호모 나벤스 — 우리는 타고난 이야기꾼
5. 소녀 가장의 빵 — 한 봉사자가 돌려준 사랑
6. 평화 디딤돌·하시마섬 — 우리 이웃의 이름을 잊지 않는 청년들
7. 룽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안의 이야기, 바람을 타고 — 소설가 전현서의 호모 나벤스·자원봉사자 500인 인터뷰
1. 말하지 못했던 아이 — 화학공학과·공무원 12년의 답답함
강연은 어린 시절 한 장면으로 열립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가슴이 막 미친 듯이 뛰고 목소리가 덜덜 떨려서 한 문장도 겨우겨우 읽었다"는 회상. 사람들 시선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고,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고 강연자는 말합니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조차 할 기회가 없었다고.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너는 이과를 가야 한다"고 했고, 적성에는 맞지 않았지만 화학공학과를 졸업했고, 공무원으로 12년을 일했습니다.


2. 별이 툭 떨어졌다 — 독후감 한 편이 인생을 연 순간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살았는데 뭔가 가슴이 계속 답답한 거예요."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12년 다니던 공직을 그만두고 영어 교습소를 열었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계속 남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을 한 권 읽고 독후감을 썼는데, 글을 쓰는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별이 툭 떨어져서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가슴이 환해지면서 뻥 뚫리는 느낌. "아 이거구나.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거를 내 방식대로 이야기하는 거, 이게 바로 내가 찾고 싶었던 길이었습니다."
3. 50 중반 소설가 —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공모전에 매번 낙방했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한 줄도 쓰지 못할 때면 "그만둬야 하나 보다"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아침이 되면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고. 50 중반을 넘어서야 마침내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깨달은 한 줄 —
"내가 소설가가 된 게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사람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세바시브이」(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봉사 이야기를 펼치는 무대)의 작가로 합류해,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작업을 8년간 도왔습니다.
4. 호모 나벤스 — 우리는 타고난 이야기꾼
8년 동안 500여 명의 자원봉사자를 만나면서 강연자가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였던 존 리리(John Niles)는 호모 나벤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인간은 이야기를 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는 겁니다.

세바시브이에 참여한 봉사자들 대부분이 "제가 뭐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사실 저는 할 얘기가 별로 없어요"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속에는 누군가에게 가 닿을 진짜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 정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고 강연자는 회고합니다.
5. 소녀 가장의 빵 — 한 봉사자가 돌려준 사랑
강연 중반, 한 봉사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어린 시절 소녀 가장이었던 그는 읍사무소에서 가져다 주는 쌀로 밥을 해 먹고, 옆집 아주머니가 고쳐주는 옷을 입고, 택시 기사 아저씨가 가져다 주는 연탄으로 겨울을 났다고 합니다. 너무 창피해서 감사하다는 마음조차 못 가졌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성공뿐이라 생각해 악착같이 공부했습니다. 대학원, 강의, 대기업 간부까지 거쳐 승승장구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계속 찜찜했습니다 — 어릴 적 받았던 도움에 대해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 제과 제빵 기술을 배운 뒤, 직접 만든 빵을 들고 동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 동사무소가 바로 어릴 적 그가 도움을 받았던 그 읍사무소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봉사가 지금은 유기견 돌보는 일까지 이어져, 현재는 본업보다 봉사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고, 남편과 아이들까지 함께한다고 합니다.
강연자는 이 사연이 마음에 더 깊이 와 닿는 이유로, 봉사자가 "어쩌면 끝내 숨기고 싶었을지 모를 그런 아픔을 겉으로 드러낸" 용기를 꼽습니다. 발표하면서 봉사자가 흘린 눈물이 도움을 주었던 이웃들의 가슴을 충분히 적셨을 거라고.
6. 평화 디딤돌·하시마섬 — 우리 이웃의 이름을 잊지 않는 청년들
한번은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봉사자들과 만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의 역사를 공부하는 단체로, 마을에서 일어난 강제 동원 사례를 연구해서 알리는 일을 합니다. 마을마다 「평화 디딤돌」이라는 상징물을 세워두고, 그 돌에 동네 사람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고 합니다. 희생된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마을 주민, 우리 이웃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2019년에는 일본 하시마섬(군함도)을 방문해 그곳에서 희생된 민족의 추모제를 지내려 했지만, 일본의 격렬한 반대로 내륙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합니다. 추모조차 제대로 못 하는 현실에 황망해 망연해 있다가, 의논 끝에 항구에서라도 추모제를 지내자며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를 맞으면서 안주를 놓고 소주를 따라 드리는데 그 누구도 추도문을 읽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추도문을 찢어 바다에 흩날리면서 청년들은 이렇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
"끝까지 깨어서 기억하고 알리겠다고, 돌덩이 같이 부서져도 작게 스며들어 모래알처럼 빛나서 역사를 이어가겠다고."
강연자는 말합니다. "그가 말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심히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우리 이웃이 어떻게 희생되어 갔는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7. 룽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연의 마지막은 티벳의 「룽타」로 이어집니다. 「바람의 말」이라고 하는 깃발인데, 깃발에 경전 구절이나 만다라를 적어 높은 곳에 매달아 두면 이것이 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퍼져나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좋은 이야기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라는 한 줄. 강연자는 청중에게 — 그리고 영상을 보는 우리에게 — 마지막으로 이렇게 청합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혹은 실천하고 있는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러분만의 룽타를 만들어 전해주세요. 그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나가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습니다."
"함께하는 가치, 자원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여러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한 마디로 12분의 강연이 닫힙니다.
✍️ 내가 밑줄 친 세 문장
"내가 소설가가 된 게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사람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 전현서
"우리 인간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겁니다." — 호모 나벤스(Homo Narrans)에 기대어
"끝까지 깨어서 기억하고 알리겠다고, 돌덩이 같이 부서져도 작게 스며들어 모래알처럼 빛나서 역사를 이어가겠다고." — 하시마섬 항구의 추도문
📝 블로거 한 줄 후기
강연자가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제 이름이 불리면 가슴이 막 미친 듯이 뛰고 한 문장도 겨우겨우 읽었다"고 말할 때 — 저는 다른 이유로 비슷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내가 너무 크게 말하나, 너무 빨리 말하나, 사투리 같은 어색한 톤이 섞이지 않을까" — 그런 의심을 한 번도 거둔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강연자처럼 "내 방식대로 이야기하는 길"을 찾아야 했고, 그게 결국 블로그라는 글의 공간이 되었어요. 글은 친절합니다. 떨릴 필요도 없고, 한 문장을 백 번 고쳐도 아무도 모릅니다. 룽타가 바람을 타고 퍼지듯, 저는 키보드와 화면을 통해 이야기를 띄워 보냅니다.
💡 오늘, 단 한 가지만 해본다면
오늘 가까운 사람 한 명에게 —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 평소에 "할 얘기 없다"고 넘겼던 작은 이야기 하나를 꺼내보세요. 처음 자전거를 배웠던 날의 두려움, 고마웠지만 표현하지 못한 누군가, 최근 작게 자랑스러웠던 일 —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게 당신의 첫 번째 룽타입니다. 바람을 어떻게 타는지는 나중에 알게 됩니다.
📚 더 보면 좋을 자료
자원봉사 이야기 무대 「세바시브이(SebashiV)」는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nvc.or.kr·재단법인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운영합니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 희생자 추모 활동은 「평화 디딤돌」 시민단체에서 진행 중이며, 「호모 나렌스(Homo Narrans)」 개념을 처음 정리한 학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영문학 교수 존 D. 나일스(John D. Niles)입니다(저서 『Homo Narrans: The Poetics and Anthropology of Oral Literature』, 1999). 티벳 「룽타(Lung Ta, 風馬)」 깃발에 관한 인류학·종교학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서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발행물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마무리
"내가 소설가가 된 게 아니라 말하지 못했던 사람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한 문장을 책상 위에 붙여두고 한 주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