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0. | 세바시 2041회 |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아이돌 댄스 음악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했을 때 “그게 학위 논문 주제가 되느냐”는 핀잔을 들었던 한 연구자가 있습니다.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이규탁 교수는 20여 년간 K-POP을 연구해 온 ‘성공한 덕후’입니다. 남들이 가치를 몰라주던 길을 진심과 진정성으로 끝까지 파고든 끝에, 그 음악이 세상의 중심으로 옮겨 오는 것을 목격한 이야기. ‘진짜는 결국 모두가 알아본다’는 그의 강연을 옮깁니다.

저는 사실 20년 넘게 K-POP이라는 음악을 연구해 왔는데요.
사실 제가 K-POP과 댄스 음악의 팬이 된 건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시절, 90년대 초반이니까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제가 2000년대 초반 석사 과정에 재학할 때, 석사 논문 주제를 무엇으로 쓸 것인가에 대한 공개 발표회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아이돌 댄스 음악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 이 주제로 연구하겠다"라고 교수님들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 음악이 학위 논문 주제가 될 수가 있나?"
"아이돌 댄스 음악이라는 걸 학문으로 다룰 가치가 있나?"
저는 그때 좀, 약간 공개적인 망신을 당한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알게 된 것이 있는데요.
"내가 가려는 길이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음악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처음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어렸을 때 좋아하고 몰두하고 즐겼던 음악에 대해 좀 더 깊게 파고들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려는 길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일 수도 있고, 주류의 흐름과는 떨어진 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언젠가 그걸 알아보겠지, 내가 진심을 다해 진정성 있게 파고든다면 뭔가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2007년에 우여곡절 끝에 석사 논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박사 공부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1~2년 정도 지난 2000년대 말쯤부터, 갑자기 주변 공기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한글이 아닌 댓글들이 계속 달리기 시작했고요.
해외 팬들이, 한국어를 잘 모를 텐데도 한국어로 된 노래를 떼창하는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심지어 2011년에는 파리의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글로벌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플래시몹을 펼치기도 했어요.
그때 그 현상에 대한 보도나 이야기들을 보면서 제가 깨달았습니다.
"아, 이게 어쩌면 전 세계를 바꿔놓을 새로운 문화 흐름, 새로운 음악이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말씀드린 대로, 1년 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터졌죠.

그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켰는데, 미국 FM 라디오에서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어요.
그때 제가 느꼈던 그 놀라움, 그리고 몸의 전율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이 반대하고, 선배들이 반대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던 그 음악.
"연구 주제로서 가치가 있나"라는 말까지 들었던 그 음악이, 이제 세상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구나.
저는 2013년 5월에 박사 논문을 마치고 학위를 받았는데요.
그때 쓴 논문이 K-POP의 세계화에 관한 것이었고, 미국에서 영어로 쓴 최초의 K-POP 박사 논문 중 하나였습니다.

그 후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K-POP은 제가 예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크게 성장했고요.
지금은 "논문 주제도 될 수 없다"던 그 주제를 연구한 사람들을, 미국과 유럽의 유명 명문 대학들에서 찾고 있어요.
강의를 부탁하고,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연구자들을 찾고 있는 거죠.
그런데 그 많은 분야 중에 왜 하필 K-POP이 이렇게 주목을 받았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셨는데, 제가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저는 K-POP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그전에 음악에 빠져 사는 팬이자 '덕후'이기도 하죠.
석사와 박사를 마친 훈련받은 연구자이기도 하니까, K-POP을 덕후이자 연구자의 관점에서 함께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바라본 K-POP은 다른 장르와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 있어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겠는데요.
첫 번째는 준비 과정의 철저함입니다.

K-POP 가수들이 데뷔 전부터 수년간 춤과 노래를 훈련받는다는 건 다들 잘 아실 텐데요.
그 외에도 스피치, 연기, 외국어, 인터뷰 방법, 팬과의 소통 방식, 심지어 사자성어 교육까지 받는다고 해요.
상식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런 모습을 보면, 마치 올림픽을 준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몇 년을 갈고닦아 한 곡의 무대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거죠.
두 번째는 팬덤의 독창성인데요.

K-POP 팬덤의 충성도와 열렬함은 널리 알려져 있죠.
이들이 응원봉으로 공연장을 밝히고, 수천 명이 동시에 '팬 챈트'라는 응원 구호를 외치고, 밤새 영상과 음원을 반복 재생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도우려는 그 노력을 보면 — 정말 진심 어린 사랑과 애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K-POP 팬들은 능동적으로 자신의 가수를 최고의 자리에 올리려 노력하는 조력자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는 K-POP에서 볼 수 있는 문화의 융합, 보통 '하이브리드'라고 하는 문화의 융합과 유연성입니다.

K-POP은 글로벌 트렌드 음악을 늘 흡수해서 내놓지만, 그 음악을 단순히 따라 하는 게 아니라 한국적인 특성을 꼭 집어넣고 버리지 않죠.
BTS의 멤버 슈가가 내놓은 싱글 중에 '대치타'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그 노래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면, 힙합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전통 음악을 섞고 전통적인 미학의 이미지를 넣어 굉장히 융합된 모습을 보여주죠.

그리고 K-POP 아이돌이라면 한국어와 영어로 노래하는 건 매우 자연스럽고, 거기에 중국어, 일본어, 최근에는 스페인어까지도 자유롭게 오가며 노래하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외국 팬들은 글로벌 트렌드 음악의 친숙함을 느끼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한국을 체험하고 한국 문화를 알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되죠.
이렇게 세 가지가 합쳐지면서 K-POP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새로운 문화가 되었고, 새로운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K-POP 문화를 보면서 가끔 떠올리는 것이 바로 히피 문화인데요.
1960~70년대에 미국과 서양을 뒤흔들었던 히피 문화를 아시나요?
히피는 보통 장발과 청바지 같은 패션으로 대표되지만, 그것을 넘어 자유, 평화, 그리고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젊은이들의 꿈을 상징했죠.
그래서 그 시대에 히피 문화는 청년들의 정체성이자 세대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K-POP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히피 문화가 주로 미국과 서양 중심이었다면, K-POP은 동서양을 아우르며 전 세계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죠.
최근 아이돌 그룹들은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넘어, 다양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환경 보호 운동에 적극 참여하거나,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기부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BTS가 UN에서 연설하며 청년들에게 "Love Myself,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외쳤을 때, 그 메시지는 전 세계 수억 명의 팬들 가슴에 새겨졌고, 또 다른 이들과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비서양, 비영어권에서 나온 이 '주변부'의 음악이, 진정성 있는 노력과 가수들의 실력을 통해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음악이 되었다는 스토리라인이죠.
이런 성공 스토리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데요.
K-POP이 바로 이런 매력적인 서사를 갖게 되면서, 불안에 허덕이는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메시지를 주며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K-POP을 단순한 유행 음악으로만 평가하는 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스타일리시하고 쿨하면서도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은 거죠.
한 세대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그 새로운 세상을 K-POP이 상징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K-POP이 문화로서, 스타일로서 가진 진정한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K-POP이 성공한 요인들을 말씀드렸는데요.
K-POP이 전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음악 팬이자 덕후였던 제가 연구자로서 제 인생을 살게 된 데에는 하나의 공통된 키워드가 있어요.
바로 '진심', 혹은 '진정성'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사람들이 아이돌 댄스 음악을 "유치하다, 수준 낮다, 연구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할 때에도 그것을 놓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끝까지 파고들었습니다.
그때는 'K-POP'이라는 용어조차 없었고요.
K-POP이 지금처럼 대단한 음악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K-POP이 요즘 핫하니까, 이걸 하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자리가 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한 게 아니었어요.
그저 정말 좋아서, 이게 좋아서 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부렸던 고집과, 기울였던 노력과 열정이 결국 제 연구 인생을 만든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K-POP도 마찬가지죠.
BTS의 서사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데뷔 초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꾸준히 진심과 진정성을 담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고집했고, 그 진심과 진정성이 결국 전 세계 수억 명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진심'이라는 게 곧 '진짜 마음'이잖아요.
인천 출신의 유명한 래퍼 비와이가 이런 말 한 거 아시죠?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

진짜는 정말 누구나 알아봅니다.
성공이라는 게 꼭 메인스트림, 주류를 따라가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내가 진짜로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정말 내 힘을 기울이면, 그때 비로소 성공의 가능성이, 행복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렸을 때 제가 공부를 좀 잘했어요.
그래서 아버지는 제가 법대에 진학해 법조인이 되라고 어렸을 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게 최고다."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클래식, 팝, 가요 등 여러 음악을 들려주시고, 공연도 저와 함께 보러 다닐 정도로 문화적·음악적 소양을 길러주셨는데요.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해야 한다, 한번 해봐라, 잘할 수 있을 거다." 늘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래서 저는 대학에 진학할 때부터 아버지 말씀과 달리 법대에 가지 않고, 그때 문학을 굉장히 좋아해서 영문학을 전공으로 택했습니다.
그리고 군 복무 중에 대중음악을 좀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께서 별로 내켜 하지 않으셨던 대학원에 진학했고, 유학까지 하게 된 거죠.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한때는 영문학도였는데요.
그 시절,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그 시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지만, 공통된 해석 중 하나는 — 인생의 갈림길에 선 주인공이,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은, 즉 사람들이 적게 지나간 길을 택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딱, 제가 좋아하는 그 시처럼 살아온 셈이죠.

그 결과, 제가 이렇게 세바시 무대에 서서 덕후이자 K-POP 연구자, 심지어 '성공한 덕후'로서 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 딸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남들이 정해준 성공의 기준, 남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에 맞춰 네 삶을 살려고 하지 마라."
"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진정성을 갖고 파고들어라."
"그 길이 언젠가 네 인생을 풍부하게 해주고, 너를 행복으로 인도할 거다."
여러분,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분 계신가요?
"나는 주류가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이런 생각, 혹시 하시나요?
그런 분이 계시다면, 오늘 제가 드린 이 짧은 이야기가 여러분의 기억 속에 꼭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고 정말 사랑하는 것을 진심을 다해, 진정성으로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부터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 자리가 비록,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고 알아보지 못하는 자리일지라도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