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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살기 싫어요" 아들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도약 — '딤섬의 여왕' 정지선 셰프가 말하는, 빛나는 순간은 땀 흘리는 곳에 있다 | 세바시 2043회

2025. 11. 24. | 세바시 2043회 | 정지선 (티엔미미 오너 셰프, 딤섬의 여왕)

 

 

빛나는 도약의 순간은 땀 흘리는 곳에 있다 | 세바시 2043회

 

 

열한 살 아들이 "엄마처럼 살기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흑백요리사'의 '딤섬의 여왕' 정지선 셰프는, 아무도 가지 않던 중식을 택하고 무작정 중국으로 떠났고, '여자니까'라는 벽과 텃세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도약은 찬란한 순간이 아니라 가장 힘들고 땀 흘리는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다시 엄마를 보게 된 아들의 이야기를 옮깁니다.

 

📖 이 강연의 순서
1. "엄마처럼 살기 싫어요" — 열한 살 아들의 한마디
2. 남들이 안 가는 길, 중식을 택하다
3. 무작정 떠난 중국 — "불안은 배우라는 신호"
4. "여자니까 안 돼" — 한국에서 마주한 벽
5. 가장 힘든 곳에서 가장 크게 자라다
6. 도약은 땀 흘리는 곳에서 시작된다
7. 다시, 아들이 나를 보다 —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정지선 '티엔미미' 오너 셰프, 딤섬의 여왕 · '빛나는 도약의 순간은 땀 흘리는 곳에 있다'
정지선 '티엔미미' 오너 셰프, 딤섬의 여왕 · '빛나는 도약의 순간은 땀 흘리는 곳에 있다'

 

 

"엄마처럼 살기 싫어요" — 열한 살 아들의 한마디

 

혹시 여러분, 가족이 여러분을 보면서 "저는 당신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제 아들이 열한 살인데, 저한테 정확하게 "엄마, 난 엄마처럼 살기 싫어요"라고 했어요.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이고, 내 배 아파서 낳은 아이인데, 그 친구가 "엄마처럼 살기 싫어요"라고 했을 때 저는 정말 충격적이었거든요.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는 항상 바쁘고 잠도 못 자고, 행복해 보이지가 않아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방송에도 많이 알려지고, 매장도 잘되고, 많은 분들이 저를 찾아주시는데, 정작 내 아들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나 봐요.

 

남들이 안 가는 길, 중식을 택하다

 

저는 요리하는 집안에서 자라지도 않았고, 타고난 요리 감각이 있던 것도 아니에요.

학교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뭔가 다른 일을 해보자" 하고 찾은 게 요리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방황하다 요리를 배우게 됐는데, 정말 이상했던 게 — 요리를 하면 행복했어요.

학교 수업은 머릿속에 하나도 안 들어와도, 요리를 하면 머릿속에 다 들어오는 거예요.

 

공부는 하나도 안 들어와도, 요리는 머릿속에 다 들어왔다
공부는 하나도 안 들어와도, 요리는 머릿속에 다 들어왔다

 

그래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에 가면 한식·양식·일식·중식 중에 전공을 선택하는데, 제가 다니던 2003년만 해도 90% 정도가 한식이나 양식을 전공했어요.

선배도 많고 정보도 많고 익숙했으니까요.

중식은 인기가 하나도 없었고, 선배도 거의 없고, 요리법이나 정보도 없다 보니 "그걸 배워서 어디다 쓰지?"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저는 "남들이 안 하는 거, 왜 안 하지?" 하는 도전 정신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중식을 배워보겠다고 마음먹고, 처음 접하고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게 도약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불안과 설렘 사이에서 설렘을 선택하는 용기를 낸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무작정 떠난 중국 — "불안은 배우라는 신호"

 

하지만 문제가 있었죠.

학교에서는 자격증이나 기초 위주로 가르쳤고, 제대로 된 중국 요리를 배우려면 셰프님 주방에 들어가 일을 배워야 했어요.

그런데 주방에서 여자 직원을 뽑지를 않았어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셰프, 요리사의 모습은 어떤가요?

멋있나요? 화려해요? 힘들어 보여요?

한 접시에 꿈을 담는, 차분하고 섬세한 직업의 연속일 것 같죠?

실제 주방은 완전 전쟁터예요. 시끄럽고 미끄럽고, 강한 불에 뜨거운 증기, 기름 천지에 날카로운 물건이 많아서 정말 위험해요.

그래서 "남자도 버티기 힘든 주방에서 여자가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들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통은 배우고 싶은 셰프님 주방에 들어가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잖아요.

근데 "배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아, 그냥 중국에 가자, 가서 배우지 뭐" 이런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대학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저는 바로 중국행 비행기를 탑니다.

방법이 없으니,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어요.

 

졸업하자마자 떠난 중국 — 말도 문화도 낯선 주방에서
졸업하자마자 떠난 중국 — 말도 문화도 낯선 주방에서

 

그런데 중국 공항에 내리는 순간 정신이 아찔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내가 중국어를 못하는구나."

밥 먹으러 가도, 물 하나 사도 전부 말을 걸고 들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길 위의 간판도 보고, 모든 언어를 다 보면서 배웠어요.

식당을 다니고 길에서 물어보기도 하고요.

처음엔 진짜 힘들었는데, 3개월 만에 말이 트였어요.

처음엔 중국 언어도 문화도 전혀 몰랐으니까, 세상이 저를 속이는 것 같았어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죠.

근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아, 그냥 내가 배우면 되잖아."

불안은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걸 배우라는 신호구나.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요. 불안이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요즘은 유학 가기 전에 오래 준비하더라고요. 어학연수를 4개월 가는데 준비를 4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무식해 보일 수 있지만, 도전 정신이 강한 아이로 봐주세요.

시간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썼어요. 짧은 기간에 중국어부터, 그 나라의 생활도, 제가 배워야 할 요리도 배웠어요.

그 나라 문화가 굉장히 어렵긴 했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에 문이 없었거든요. 그때는 힘들었어요.

저는 손재주가 굉장히 없는 사람인데, 한국에서 배울 수 없던 설탕 공예, 조각 공예 같은 기술도 익혔어요.

덕분에 '흑백요리사'에서 제가 '딤섬의 여왕'으로 불리게 됐잖아요. 그런 기법도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됐죠.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낯설어 모든 게 나를 속이는 것 같았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때 가장 크게 성장했던 것 같아요.

 

"여자니까 안 돼" — 한국에서 마주한 벽

 

그렇게 3년이 지나 한국에 들어왔어요.

"자격증도 있고, 요리 대회 우승도 해봤고, 중국 요리도 알고 언어도 되니, 이제 승승장구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죠.

근데 한국에 와서 유명한 중식당·호텔 여러 군데에 이력서를 잔뜩 넣었는데, 어디서도 안 뽑아주는 거예요.

연락이 아무도 안 왔어요. "내 이력서가 부족한가? 이렇게 완벽한데" 혼자 착각한 거죠.

근데 제가 찾은 답은 — "여자니까"였어요.

당시 주방에 여자가 별로 없었어요. 열에 하나 정도. 주방에 여자가 있다는 걸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였죠.

그래서 좌절했어요. 진짜 열심히 공부했는데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까요.

돈과 시간 들여 중국 유학까지 갔는데 써보지도 못하면 억울하잖아요.

그때 또 오기가 생겼어요.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때 처음 도와주신 분이 여경 셰프님이에요. 제 중국 유학 은사님과 친구셨는데, 제가 한국인인 걸 알고 "정말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그 셰프님 도움으로 한 호텔에 취업하게 됩니다.

취업했을 때 저는 "여기서부터 열심히 할 거야, 평생직장으로 삼을 거야" 생각하고 들어갔죠.

근데 웬걸, 상상과는 정말 달랐어요. 선배가 후배를 국자로 머리통을 때리고 — 중식도가 넓어서 때리기 좋잖아요 — 그렇게 때리던 시대였어요.

그리고 "어차피 시집가고 애 낳으면 못 할 건데 왜 있어"라는 말을 학교 선배한테 들었어요. 충격이었죠.

중국 유학 경험도 인정 안 해주고, "네가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는 시선이 강해서, 주방에 저만 두고 자기들끼리 담배 피우러 가면 — 거기서 중요한 얘기가 다 오가는데 — 저는 끼지도 못했어요.

한번은 면 뽑는 기계에 손이 들어가서, 이 손가락을 수십 바늘 꿰맸어요. (지금도 떨려요.)

근데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것 때문에 잘리면 어떡하지"였어요.

어렵게 들어간 직장이라, 봉합 수술만 하고 한 달 만에 복귀했어요. 그만큼 간절한 순간이었거든요.

그렇게 일하다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서, 호텔을 다니기 힘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육아휴직을 쓰고 돌아오면 비는 자리에 배치가 됐거든요. 중식 셰프인데 갑자기 양식이나 한식을 하라는 거죠.

"복직했는데 한식 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싶었어요.

 

가장 힘든 곳에서 가장 크게 자라다

 

회사 방침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꼭 여기가 아니어도, 내 실력을 보여줄 때가 있다면 가서 배워보자" 했죠.

환경에 상관없이 증명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일반 중식당으로 취직했어요.

점심시간에 짜장면 먹으러 오는 평범한 중식당이었어요. 호텔과는 완전 달랐죠.

화려한 요리보다 짜장·짬뽕·탕수육 주문이 많았고요.

근데 거기서 처음 해방감을 느꼈어요 — 호텔에서 못 하던 요리를,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만들어볼 기회가 있었거든요.

호텔에서는 딱 냉채와 과일만 썰었어요. 2년 동안 그것만요.

근데 이 식당에서는 제가 중국에서 배워온 수천 가지 요리를 쓸 수 있었고, 운영하면서 직원 관리, 마케팅, 위생 관리 등 사업이 굴러가는 모든 걸 배웠어요.

가장 중요한 건, 누구도 저를 막지 않았다는 거예요.

웍도 돌리고 면도 뽑고 튀김도 하고, 퇴근할 때 다리가 퉁퉁 부어 신발이 안 맞아도, 그럴수록 더 강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언젠가 저만의 식당을 여는 상상을 하면, 고생하고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죠.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라 생각한 곳에서 저는 가장 크게 배웠어요.

그 중식당 경험이 있어서 제 매장도 열 수 있었고, 가게 운영 원리·재고 관리·청결 관리·손님을 찾아오게 하는 비법, 그 기초를 거기서 배웠거든요.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된 거죠.

 

도약은 땀 흘리는 곳에서 시작된다

 

보통 도약의 순간은 찬란하고 빛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제가 경험한 도약은 그런 게 아니었어요.

남들이 안 가는 길을 택해 막막할 때, 말도 안 통하는 중국에서 홀로 살아남을 때, 간신히 취업한 곳에서 텃세를 견디고 무시당할 때, 무거운 웍을 몇 시간씩 쉬지 않고 돌려 어깨가 빠질 것 같을 때 — 도약은 의외로 가장 힘들고 땀 흘리는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흑백요리사'에서 화제가 된 이후로 기회가 정말 많아졌어요.

대만·홍콩·미국에서 일하자는 제안도 들어오고, 올 한 해 비행 거리를 계산해 보니 지구를 다섯 바퀴 반 정도 돌았더라고요.

한국에서 매장 관리하고 지방 행사도 다니고 해외 일정도 소화하니 힘들기도 한데, 직원들이 묻더라고요.

"셰프님처럼 못 살 것 같아요. 저도 열심히 하면 셰프님처럼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좀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대단한 사람인가?" 저는 대단한 사람이라기보다, 제 앞의 벽, 한계, 그리고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멈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중식해도 될까, 적응할 수 있을까, 취직은 될까, 주방장은 될 수 있을까, 식당은 잘될까" — 이 모든 게 제 자신과의 싸움이거든요.

저라고 왜 불안하지 않겠어요, 지금도 불안해요.

주어진 기회를 놓칠까 봐 불안하고, 코로나 직격탄도 맞았거든요. 위기에 식당이 망하지 않을까 불안하고, 안 좋은 댓글도 많이 받았어요.

그럼에도 계속 일하는 원동력은,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과정 자체가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멈추지 않을 때, 비로소 삶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걸 직접 경험했어요.

불안은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에요.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된다"는 뜻이에요.

 

다시, 아들이 나를 보다 —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최근에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제 아들이 저를 다시 봤어요.

학교 친구들이 "야, 너네 엄마 멋있다"고 말해줬대요. 그래서 자기도 엄마가 하는 일이 자랑스럽대요.

뿌듯했죠. 그리고 얼마 전, 제 아들이 제게 말했어요.

"엄마, 저 엄마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저도 사업가가 될 거예요."

원래 "돈 많은 백수가 되겠다"고 해서 제가 크게 혼낸 적이 있는데, 제가 사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감사했어요.

 

"엄마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 다시 엄마를 본 아들
"엄마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 다시 엄마를 본 아들

 

"엄마처럼 열심히 살면 보상받는다는 걸 알았다"고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저 진짜 눈물 났어요.

엄마처럼 살기 싫다던 아들이, 이제는 엄마의 노력을 이해한 것 같아요.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사는 삶이 곁에 있다고 인정해 준 거죠.

여러분 중에 혹시 지금 불안을 느끼는 분 계실까요? 직장에서든 공부에서든,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든요.

하지만 불안 때문에 그 자리에 멈추지 마세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말고,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성장합니다.

제 삶이 그걸 증명했습니다. 여러분의 도약과 비상, 지금부터 직접 써 내려가세요.

불안해도 괜찮습니다 —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지금까지 정지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지선 티엔미미 오너 셰프
정지선 티엔미미 오너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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