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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샤 시위와 응원경찰

신화가 깃든 땅 바람과 오름의 제주섬



신화가 깃든 땅


바람과 오름의 제주섬


육지에서 '응원경찰'이 속속 도착했고,


'왓샤 시위대'는 정면으로 충돌했다




왓샤 시위와 응원경찰

- 제주 4.3사건 70주년에 부쳐(1)


1945년 8월 15일


고무공장

유리공장

방적공장

탄광토목공사


일제 징용을 갔던

6만 명의 사람들이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1947년 3월 1일

제 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


"3.1 혁명 전신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통일 민주국가를 만들자"


좌익 계열의

<민주주의 민족주의 전선>이 주도한 행사


미 군정은 응원경찰을 내려보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채어 쓰러졌다


"저놈 잡아라"

성난 군중들은 쫓아갔고


탕! 탕! 탕!


제주 북초등학교 6학년 허두용

젖먹이를 안고 쓰러진 21살의 엄마 박재옥 등

총 6명 사망


그중 5명은 등 뒤에서 총을 맞아 죽었다


분노한 사람들

격렬해지는 '왓샤 왓샤' 시위


왓샤 시위대

서로 어깨를 걸고 뛰면서

왓샤 왔샤를 외치던 시위대를 일컫는 말


사태가 악화되자

급히 파견된 미 군정 조사단


전남 경찰 122명, 전북 경찰 100명, 경기 경찰 99명 등

왓샤 시위대 검거를 위해 응원경찰 도착


응원경찰

일제 강점기 민란과 항일운동이 일어났을 때

중앙정부는 육지에서 제주 섬으로 경찰을 내려보냈다


그들을 '응원경찰'이라 불렀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 있다."

- 조병옥 경무대 경무부장(1947)


"제주도는 인구의 70%가 좌익 단체 동조자거나

관련이 있는 좌익거점으로 드러났다."

- 미군 정보보고서 (1947)


1947년 3월 10일

제주도 전체 직장의 95%

166개 기관·단체가 참가하는 총파업 진행


미 군정에 제주도는 붉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의 땅

'붉은 섬'이 됐다


하지만

당시 제주 섬이 처했던

특수한 상황


제주 인구 21만 9천 여명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온 6만명의 사람들


유례없는 보리 대흉작

온 섬에 콜레라 창궐

두 달 사이에 369명 사망

미군정의 곡물(쌀, 보리, 밀)수집령


황폐한 등녘

흉흉한 민심


1948년 4월 3일


긴장된 대지에

붉은 동백꽃이 벙글어지던 봄


한라산 봉화를 신호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시작


그리고

그 후 7년 7개월 동안

'공비소탕'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무차별 학살


공식 인정된 사망자 14,231명

관련 피해자 25,000 ~ 30,000 명


당시 제구 인구 28만 명 중

10%에 이르는 수치이다

- 2부에 계속




자문 : 허영선 제주 4.3 연구소 소장

참고 : 제주 4.3 위원회 /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 서해문집

사진 및 영상 : 제주 4.3 평화공원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국내도서
저자 : 허영선
출판 : 서해문집 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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