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가 회장님들이 농산물을 구입할 때는 정말 이걸 이렇게까지 팔아야 되나 할 정도로 너무너무 까다로워요.
- 뮤지컬 백에 출연을 하게 됐고요. 저는 촬영 장소에 갔을 때 저의 주제 파악을 정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 하나, 둘, 셋 하고 눈을 떴는데 여러분 주제 파악 하고 계신가요?
안녕하세요. 몸짱 농부 김경진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주제 파악하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요즘은 사회생활하면서 이런 말 한 번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조심스럽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주제 파악하고 계신가요?
저는 7년 차 귀농귀촌 농부입니다.
귀농 전에는 여러분들께서 다 들어보셨을 법한 IT 기업에 헬스케어 부서 관리자로 근무했었고
굉장히 다양한 일들을 했었습니다.
이제 고도비만이었던 저는 이제 중학교 때 운동을 통해서 비만을 극복한 경험을 시발점으로 다양한 스포츠 관련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0년에는 라스베이거스의 스포츠 모델 대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수상을 했고
그리고 다양한 TV쇼에도 출연하고 대학교 학과장, 기업 부서장 등 저에게 과분한 다양한 제안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일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저는 자는 시간을 줄여서 하나라도 더 많은 일을 소화하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그 바탕에는 저희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밑바탕이 된 것 같은데요.
1997년에 찾아온 IMF는 우리 집에도 정말 많은 어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극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정말 정말 조심하셨고 두려워하셨어요.
그래서 입버릇처럼 저에게 니 주제에 맞게 살아라. 남에게 피해 주지 말아라. 오버하지 말아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이제 자신도 모르게 매 순간 제 주제 파악만 고민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될 만한 상황이 된다고 하면 저에게 좋은 일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꺼리게 되는 일이 생겼고요. 너무 과분한 좋은 제안을 받았을 때 오히려 이거를 내가 망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으로 그 일을 거절하기도 했었어요.
남들보다 뛰어난 게 없었기 때문에 저는 남들보다 오래 일하고 남들보다 잠을 적게 자는 방식으로 나름의 주제 파악을 해왔던 것 같아요.
잠을 하루에 3~4시간씩 자고 한 10년 정도를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잠을 자다가 제가 계속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떨 때는 명절에 친척분들이 다 모여 있었는데 제가 잠을 자면서 운동을 가르쳤었나 봐요.
그때 당시에도 쓰리잡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스포츠 관련 일도 하고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었어요.
운동을 꿈에서 가르치고 있었나 봐요.
3개 남았습니다. 두 개 남았습니다. 하나 남았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눈을 떴는데,
저희 친척분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둘러싸고서 저를 이렇게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에게 열심히 사는구나 등을 토닥토닥 해주시고 나가시더라고요.
그렇게 자나 깨나 일하는 것만 생각하고 잠을 자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욕심을 내지 않고 욕심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욕심을 부리면서 하다 보니까 또 우연한 만남이 하나 성사가 됩니다.
상대는 체육학계에서 굉장히 존경을 받는 교수님이었는데요.
제 목표가 뭐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그 당시 저의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제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께서 자네 대학교 중퇴했다고 했지 라고 하시는 거예요.
"네 그렇습니다"라고 하니까 "너무 잘했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대학교 중퇴는 저의 결핍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거든요.
그래서 당시 IMF의 여파가 남아있던 우리 집에서는 재수를 꿈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장학생으로 제가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있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원하지 않는 학교, 원하지 않는 학과로 들어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 곳으로 가는 게 제 주제 파악에 맞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장학생으로 입학한 학교에서는 아무런 재미도 보람도 느낄 수가 없었고요.
저는 1년 만에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생활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저에게 자네가 대학교만 계속 다녔으면 이런 획기적인 생각은 절대 못했을 거야.
자네는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게 참 다행인 사람이네라고 하면서 제가 하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고 지원해 주겠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무슨 감정이 제가 들었을까요?
사실 어떻게 보면 되게 기쁜 감정이 먼저 나왔을 수도 있는데 저는 기쁜 것보다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았었어요.
지금까지 제 주변 지인들에게 제 꿈을 이야기하면
'뭐 그게 뭐 되겠냐? 야 너 아니어도 할 사람들 많은데 그걸 네가 굳이 해가지고 그때까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얘기들을 주로 제 주변에서 많이 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이 분야에서 가장 인정받는 분께서 저를 너무 혁신적인 사람으로 평가를 해주신 거예요.
마치 저의 결핍이라는 척박한 땅 위에서 파격이나 혁신을 통해서 정말 멋진 나무 하나가 굳게 솟아오른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었어요.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고민을 해본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게 정말 맞는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라고 말이에요.
그 고민이 깊어질 때쯤 저는 한 번 정도 서울을 떠나서 주제 파악에 대한 고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땅끝 해남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 엄청 많이 놀랐어요. 갑자기 귀농을 한 것도 놀라운데 땅끝 해남이라니까.
그런데 주말마다 경조사 한두 개씩 뛰어야 했던 저에게 해남은 최고의 지리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벌써 뭔지 감이 오실 거예요.
제가 20대 초반부터 하루에 3~4시간씩 자면서 3~4가지 일들을 동시에 해왔는데, 얼마나 각 분야의 지인들이 많았겠어요
그분들께서 경조사가 있을 때 저한테 연락을 주시는데 너무 미안해하면서 연락을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제 마음을 전달하고 또 남은 마음은 계좌이체로 제 마음을 전달을 하고, 그리고 제 삶에서는 어느 정도의 여유 시간대를 충분하게 확보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시골에서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있으면 어떨 것 같으세요?
딴 거 다 필요 없어요.
그냥 꿀재미입니다.
그냥 너무 좋아요.
이게 쉬면 쉴수록 더 쉬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쉬고 싶고, 더 격하게 쉬고 싶고, 내가 왜 이거를 모르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가끔씩 좀이 쑤셔서 다시 부지런하게 움직이려고 하는 저 자신에게 저는 계속 상기시켜 줬습니다.
너 평생 이렇게 못 쉬어. 잠. 이렇게 늘어지게 잘 수 없을 거야.
평생에 딱 1년만 1년만 이러고 살자.
죄책감 가지지 마.
가만히 있어.
나대지 마.
더 자
쉬어.
계속 제 자신에게 세뇌를 시켰죠.
그렇게 계속해서 먹고 자고 놀고먹고 자고 놀고 아무런 계산 없이 시간을 계속 보내게 됐습니다.
쉬고, 쉬고, 쉬고 하다 보니까 시골에 계시는 느긋한 어르신들이 보기에도 제가 너무 한심해 보였는지,
한 번씩 이렇게 제안들이 들어오더라고요.
이게 시골에서 농사일을 배우면 6개월 동안을 한 달에 80만 원씩 지원금을 준대요.
시골에서 노는데, 80만 원이면 굉장히 큰돈 아닙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먹고 자고 놀기만 하는데 80만 원이면 큰돈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이제 해보면 어떻겠냐?라고 또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작물 한 가지를 선택해서 농사일을 배우면 된다고 하니까 저에게 딱히 나쁠 게 없었죠.
그때 첫 번째로 선택한 작물이 해남의 미니 밤호박입니다.
제가 서울에 있을 때 몸 관리를 하면서 거의 주식처럼 먹었던 게 미니 반호박, 고구마 뭐 이런 것들인데요.
천천히 배워가면서 제 작물들을 조금씩 재배를 하게 되었어요.
어차피 저는 1년만 쉬었다가 다시 서울에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딱히 어떤 큰 목표나 계획 없이 내려왔던 곳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농작물도 그냥 최대한 좋은 재배 방식으로만 하고
그리고 정말 예쁘고 잘생긴 녀석들만 소량 판매를 하고 조금만 상태가 마음에 안 들면 지인들 선물로 다 보내줬어요.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몸짱 농부의 농작물은 프리미엄 농작물이다로 자동 바이럴 마케팅이 된 거예요.
제가 따로 요청을 하지 않아도 그 물건을 받은 분들이 어떻게 이 가격에 이런 제품이 왔지?라고 하면서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본인들의 카페에 올리고 본인들의 SNS 계정에 올리고 하면서 자동으로 제가 브랜딩이 된 거예요.
사실 몸짱 농부라고 하는 것도 제가 거의 한 3분 만에 만들어낸 이름이었거든요.
게다가 이제 SNS를 통해서 저는 평소 시골 생활을 공개를 해 왔었기 때문에 본인의 얼굴을 공개하고 프리미엄 상품을 보내주는 최초의 농부가 된 거예요.
저 여름하고 가을에는 미니 밤호박, 고구마, 겨울에는 절인 배추 이거 세 가지를 꾸준하게 하면서 이제 서울로 다시 올라가기에는 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을 합니다.
제 지인들이 굉장히 많이 물었어요.
너는 어떻게 서울에서 이뤄낸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그렇게 갑자기 시골 생활을 선택할 수 있었어 진짜 대단하다라고 말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니 나 포기한 거 하나도 없고 똑같은 일 하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내가 운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줬고,
지금은 좋은 먹거리 보내주면서 건강하게 만들어주고 있어 나 하는 일 똑같아라고 말을 해줬어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트레이너 일도 해봤기 때문에 몸짱 농부라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고,
대학교와 기업에서 강의를 해봤기 때문에 이렇게 여러분들과 대화도 나눌 수가 있었겠죠.
또한 서울에서 운동 관련 커뮤니티와 SNS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기에,
시골 생활을 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호기심을 갖게 하고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어요.
이러한 과정은 제 유통망 확장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덧 국내 대기업 회장님들, 올림픽 스포츠 스타들, 까다롭게 좋은 먹거리를 찾는 분들이
매년 농산물과 1년 치 김장배추를 저에게 구입을 하기 시작했고, 방송에서도 계속해서 러브콜이 들어오게 됩니다.
서울에서도 제가 2010년부터 종종 방송 활동을 했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지금과는 뭔가 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20~30대의 방송 섭외가 들어왔을 때에는 항상 저 말고도 다른 대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보다 멋있고 운동을 잘하는 후배들이 넘쳐났었어요.
그래서 언제 제 자리를 뺏길지 모르고 항상 조바심을 내면서 제가 그런 활동들을 해왔던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농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필요할 때 대안이 없는 대체 불가의 사람이라고 하면서 섭외가 들어옵니다.
피지컬백에서 처음에 저를 섭외했을 때에도 처음에부터 거의 확정하다시피 한다는 식으로서 이제 캐스팅이 들어왔었어요.
왜냐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100명을 모아서 서로의 피지컬을 겨뤄야 되는데
어떻게 맨날 운동 선수하고 스포츠 스타들만 데려다 할 수 있겠어요? 다양한 직업이 필요한데
농사꾼이라는 직업이 굉장히 탐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저는 뮤지컬백에 출연을 하게 됐고요.
저는 촬영 장소에 갔을 때 저의 주제 파악을 정확히 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우승 못한다.
아니 무슨 특수부대 얼마 전에 전역한 사람들, 전국 체전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이런 괴물들 사이에서 제가 어떻게 우승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또 저의 특기 주제 파악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1대 1 대결 매치를 하는 게 있었어요. 1라운드에서 저한테 선택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저는 누구랑 해야지 편집을 안 당할까? 1라운드에서 탈락을 했는데 저의 목표는 달성을 했습니다.
저는 1라운드 탈락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방송 분량을 차지하고 메인 예고편에 제가 나가게 됐죠.
그래서 그때부터 천하제일 장사라든지 아니면 또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계속해서 섭외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 순간에 주제 파악이라고 하는 게 반드시 나를 낮춰야만 주제 파악일까?
나를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을 빠르게 찾아내는 것도 주제 파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죠.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평범했었을 40대 아저씨가 인구소멸지역 해남에서 농사일을 하고 있으니 너무나 특별한 존재로 보이게 되었습니다.
936만 명이 거주하는 서울에서 자신을 브랜딩 하는 것은 마치 모래밭에 모래를 찾아내는 것처럼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10만 명 이하의 지방에서 그것도 노인분들, 어르신분들이 대부분인 지역에서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은 성공 확률을 매우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요즘 사람들은 공허함과 불안감을 많이 느끼고 이를 타인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거는 이렇게 말을 했어요.
대단한 인프라와 실력자들을 많이 갖춘 기업들 사이에서 어설픈 학생인 우리가 성공한 이유는 의심과 망설임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큰 회사는 인재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너무 많은 좋은 의견을 수용하다가 보면 의사결정의 속도가 느려지고 그 프로젝트는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반복을 하게 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시작을 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깁니다.
저는 제 주변에 사람이 없고 스스로 생각을 충분히 하게 되었을 때 내 의지를 확고하게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생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한 순간은 있어요.
하지만 그 시기는 내가 방향을 잡은 뒤에 구체적인 실무 경험입니다.
그때 가서 성공 비결, 실패 사례 등을 배울 수가 있겠죠.
내가 결정해야 할 것까지 타인에게 밀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곳을 찾아갑니다.
서울 또는 인구가 밀집된 장소에 답이 있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생각을 하죠.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주제 파악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내 가치를 평가 절하하고 불안하며 살아가던 저에게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을 제공을 해 주었습니다. 그 공간 안에서 여유롭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충분한 고민을 반복했을 때 비로소 저는 진짜 제 주제 파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가장으로서 시골에 내려가지고서 그렇게 막연하게 생활을 할 때 큰 두려움이 있었어요.
이게 온전히 나의 시간을 버리게 되거나 혹은 다시 돌아왔을 때 나의 커리어에 지장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기에는 SNS도 잘 발달이 되어 있고 나를 찾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를 찾을 수 있는 수단들이 많이 있고요. 그리고 협업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많이 쓰고 있기 때문에 시골에 내려가서도 분명히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런 조바심들을 누르고 저 자신에게만 집중을 하는 시간을 줄 수 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한번 말씀을 드려볼게요.
여러분들은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계시고 분명히 잘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고민해 보시기를 바랄게요.
그 고민을 통해서 나 자신을 너무 낮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가능성이 너무 낮은 것에 대해서 나 스스로 불안감에 사로잡혀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타인의 의견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시간을 꼭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당신을 더 잘 발견할 수 있게 말입니다.
지금까지 몸짱 농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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