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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381회 | 길을 잃는 게 두렵지 않으려면 | 최예근 ‪@yeguennyTV‬ 가수, 작곡가, JTBC '싱어게인' TOP10

길을 잃는 게 두렵지 않으려면

 

 

  • 어머니의 아버지는 늘 다투셨습니다. 
  • 술병이 깨지는 소리, 물건이 깨지는 소리 
  • 많은 이에게 인정받는 도전하는 가수 최예근.
  • 저는 어릴 적 꿈꿨던 가수의 꿈을 이뤘습니다. 
  • 하지만 전 행복하지 않았어요.

 

 

'천재 소녀'라는 수식어 뒤에 감춰진 내 이야기

 


안녕하세요. 

최근에 싱어게인을 통해서 인사드렸었던 최근입니다.

다른 참가자들이 제가 나왔을 때 저 사람도 나왔어하면서 의아해하는 모습들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미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뮤지션이기 때문이었는데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도 나온 적이 있었고요. 

모든 어른들이 최고라고 말하는 프로그램 불후의 명곡에서도 선배님과 함께 무대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천재 소녀로 기억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요.

9년 전이었나요? 

제가 16살 때 케이팝 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천재 소녀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천재 소녀 최예근이 또 한 번 길을 잃기로 작정했던 그 이야기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려고 하는데요.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처음 제가 음악을 사랑하게 된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5살 때부터 꿈이 댄스 가수였어요. 

저는 그 댄스 가수라는 장래 희망에 못지않게 굉장히 활발한 아이였습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교우관계가 완만한 아이 1번에서부터 16번까지 저의 이름을 모르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어요.

그리고 적중률은 떨어지지만 발표는 참 잘하는 아이.

어디서나 칭찬받고 어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항상 이런 얘기 들었어요.

"어머 너희 어머닌 너무 좋겠다. 너는 성격이 어쩜 그렇게 좋아?

어머 넌 인사성이 너무 밝다. 넌 공부는 못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다."

네 항상 칭찬받고 항상 사랑받던 아이였습니다.

교회에서도

"누구네 딸이라 그런지 기도도 잘하고 찬양도 잘하고 정말 똑똑하고 똑 부러진다."

 

하지만 제 속에서는 까만 무언가가 썩고 있었어요.

그렇게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집에 돌아가면, 어두컴컴하고 넓은 방이 저를 반겼습니다.

저는 무서운 나머지 제 모든 집에 불을 켰어요. 거실에도 불을 켜고요.

부엌에도 불을 켜고 오빠 방, 엄마 방, 옷방, 제방, 화장실, 앞테라스, 뒤테라스 모든 집 안에 방 불을 켰습니다.

그리고서는 모든 전자기기에 전원을 켰어요. 

안방에 있는 TV도 켰고요. 거실에 있는 TV도 켰습니다. 라디오도 켜고요. 심지어 저희 오빠 방에 있는 PC도 켰어요. 

저는 이어폰을 꽂고서는 큰 까맣고 큰 테라스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서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비욘 새가 되어보기도 했고 에미냄도 되어 봤습니다.

 

그렇게 막 신나게 막 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자 있는 그 집 안에서 춤을 추다가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으면 곧장 집으로 제 방으로 도망쳤어요. 그러고서는 자는 척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하나님한테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발 제발 오늘은 조용하게 넘어가게 해 주세요.

 

저희 집은 늘 시끌벅적했어요. 어머니 아버지는 늘 다투셨습니다.

술병이 깨지는 소리, 물건이 깨지는 소리, 늘 그런 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들어야만 했죠.

도망치듯이 저희 9살 많은 오빠 방으로 도망쳐야 했어요. 저희는 이복 남매입니다. 

그렇게 눈물에 젖은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다시 학교에 돌아가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아픈 가정을 숨기고 늘 행복한 아이여야만 했어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저희 집이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그런 시간들이 굉장히 무뎌지고 저의 어떤 일반적인 저의 기본 값이 되어가면서 

그냥 점점 제 가면은 두꺼워지고 제 속은 계속 썩어갔죠.

 

언젠가는 너무나도 이 마음이 슬프고 억울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믿는 신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하나님 전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에요.

전 어디서나 칭찬받는 사람이라고요. 

저 학교에서도 제가 제일 공부는 못하지만, 제가 제일 칭찬받고 예쁨 받아요.

저 교회에서 배운 것처럼 기도도 열심히 하고요. 

감사한 조건들을 막 찾아서 적어보기도 했고요.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근데 왜 왜 내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냐고요.'

그때가 수련회였거든요.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너무 행복했는데 이제 마지막 날이라서 집에 돌아가야 된다는 게 너무 슬펐던 거예요.

하지만 기도에 대한 대답은 없었습니다.

 

전 너무 불안했어요. 전 착한 아이니 까요. 착한 아이니까 한 번도 누구한테 따져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불안하고 찝찝한 마음 답을 못 들었으니 얼마나 찝찝했겠어요?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선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데,

누군가 무대 위로 올라옵니다.

무대 위에 올라와서 자기 얘기를 막 해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전 제 나름대로 굉장히 심각했거든요. 

그러고선 덤덤하게 자기 이야기를 끝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을, 사실 전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어요.

멍하니 고개를 돌려서 그 사람을 봤는데 평범했어요.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그 사람의 목소리가 제 마음을 울리고 제 마음을 움직이는 거예요.

그때 최예근의 마음에 작은 씨앗이 심겼습니다. 

저도 저 사람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하고 싶어요.

 

그 이후로 제 상황은 굉장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밖으로 보이는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악화됐죠. 

집안 가세는 기울어졌고 어머니 아버지는 더욱더 다투고 결국 이혼까지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 있는 씨앗이 점점 자라고 저는 그걸로 인해서 하루하루 견딜 수 있었어요.

그렇게 조용히, 조금씩, 조금씩 제 꿈을 키워나가는 도중에 저의 인생 프로그램 케이팝 스타를 만나게 됩니다.

전 국민이 주목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최고의 프로듀서 박진영 님께서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를 천재 소녀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전 국민이 인정하는 천재 소녀가 된 거예요.

그 이후에 좋은 성적도 거두고요. 

어린 나이에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순탄치만은 않았어요. 

엔터테인먼트에 개학한 이후에 회사도 기울어져서, 저는 가수의 활동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음악이 나오는지,

엔터테인먼트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지켜보고 배우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곡가의 부조리도 눈으로 보게 되었고 직접 겪기도 했어요.

꽤나 마음고생을 하다가 회사에서 나왔고요. 

아무도 보지 않는 무대에서 직접 밴드를 꾸려서 밴드 활동도 했습니다.

배운 걸 토대로 미니 앨범도 만들었고, 

선배님들에게 인정을 받고 입소문을 타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가게 돼서 우승도 하게 됐고요.

또 예쁨을 받아서 불후의 명곡에 나가서 쟁쟁한 선배님들 앞에서 우승도 했습니다.

KBS의 딸이라는 이름도 얻게 되었죠. 

가수가 편곡하고 곡에 잘 어울리는 무대와 의상을 직접 그리고, 스스로 매니저가 되어서 일정을 정리해 짐을 바리바리 싸서 지하철 타고 방송국에 갔습니다.

젊은이가 회사 없이 이렇게 해내다니 정말 멋있지 않나요?

많은 사람들은 저를 천재 소녀로 기억해 줬습니다.

 

선배님들도 절 보면 

"혼자서 해내다니 진짜 멋있다. 너 같은 재능이면 계속 회사 없이 혼자 해도 좋아. 진짜 재능이 어마어마하다."

많은 이에게 인정받는 도전하는 가수 최예근. 저는 어릴 적 꿈꿨던 가수의 꿈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전 행복하지 않았어요. 

사실 전 천재가 아닙니다.

전 똑똑해서 회사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저는 똑 부러지기 때문에 제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전 혼자 해내야만 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멋진 친구들이 너무 음악을 잘하기 때문에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열심히 음악을 연습해야만 했어요.

도전하는 용기 있는 아이?

도전이라는 말은 매우 색다르고 멋있어 보이지만 사실 모든 교과서에 도전이라는 말은 성공하기 위한 첫 단계로 늘 꼽히는 이야기예요. 전 착한 천재이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도전했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늘 도전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을 때도 있었어요.

호기롭게 밴드를 꾸려놓고서는 제가 부족한 탓에 밴드는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최근 밴드는 어디로 갔죠? 

 

제가 예의 바르다고 말하셨어요.

제가 인사를 참 잘한대요. 하지만 아니에요. 전 매니저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PR 해야 돼서 늘 고개 숙여야만 했습니다.

겉모습은 점점 두꺼워졌어요. 

제 이름 앞에 수식어는 점점 붙기 시작했습니다.

천재 소녀에서/

천재 키보드 소녀에서/

착한 천재 키보드 소녀/

착한 천재 키보드 부지런한 소녀/

착한 천재 키보드 소녀 부지런한 천재 뮤지션

모든 이들이 말하는 답에 초점을 둬서 도전하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잘못되는 건 줄로만 알고 길을 헤매게 될까 봐 앞만 보고 진주했던 거예요.

천재라는 별명 때문에 겉은 곧 부러질 듯이 점점 두꺼워졌고 속은 점점 타들어갔습니다.

모두가 칭찬하는 나, 그리고 까맣게 차오른 이 속 이런 제 모습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으세요?

 

그때 잠시 잊고 있었던 어린아이가 떠올랐습니다.

늘 혼자 있었어야만 한 그 아이, 

스스로를 속이고 계속 밝았어야 하는 그 아이 

그리고 내 마음속에 처음 숨겨졌던 그 씨앗

 

 

이젠 알았잖아요.

천재로 살다가는 곧 부러질 것 같아요. 첫 마음이고 뭐고 간에 내 꿈이고 뭐고 간에 그냥 사람들이 말하는 그 수식어에 맞춰서만 뚜벅뚜벅 걷는 꼭두각시가 될 것 같다고요.

전 그래서 도전하는 착한 천재에서 벗어날 아주 영특한 발칙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대로 삐뚤어질 계획을 한 거죠. 

 

이번에는 길을 헤매는 것이 아니라 작정하고 길을 잃기로 결심했습니다.

 

답을 찾아 헤매느라고 자꾸 까먹게 되었던 저의 첫 마음을 담아서 정규 앨범을 만들기로 작정했어요.

왜냐면 답 없이 막나이처럼 길을 잃다가도 언제든지 돌아가야 되는 돌아갈 수 있는 그곳이 필요했거든요.

누군가가 되어서 글을 써보고, 곡을 프로듀싱하고, 회사에서 배웠던 그대로 CD를 디자인하고 공장을 섭외하고

 

이제는 천재라는 말에 갇혀서 혼자 끙끙 앓지 않고 옆에 있는 제가 사랑하는 많은 음악 하는 친구들과 앨범을 같이 만들었습니다.

정답이라는 말을 벗어나서 하고 싶은 대로 색을 칠해보고 모양도 바꿔 보았어요.

결과는 망했습니다.

 

예상했어요. 

저는 작정하고 길을 잃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사람들은 저를 천재소녀라고 챔피언을 편곡했던 그 멋진 녀석이라고 기억하지만

최예근이라는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하지만 괜찮아요. 

자 이제 돌아갈 곳이 생겼으니까 저는 그냥 마음 편하게 길을 잃기로 작정했습니다.

싱어게인에 나가기로 결심한 거죠. 

 

제 마지막 행선지가 성공이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멋진 도전이라고 말했겠으나,

돌아갈 곳을 알기에 무작정 떠나는 그것을 저는 본격 길 읽기 0.5단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싱어게인이라는 탐험으로 빈 가방에 또 다른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색다른 팬분들을 만나게 되었고요.

멋진 선배님들과 멋진 심사위원분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작진 분들 그리고 제 옆에 함께 제 모험을 같이 떠날 71명의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어요.

제 가방이 이제 꽉 찼어요. 

이제 또 어디로 가야 될까요?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요? 

아니요. 전 이제 길을 잃기로 막 작정한 참인데요?

많은 사람들은

"싱어게인을 통해 제 이름을 알렸으니,

어서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지 거품 빠지기 전에 얼른 노래 내서 사람들한테 인지도를 쌓아야지

과한 거 덜어내서 사람들 입맛에 맞춰가지고 좀 음악을 해봐.

대중적인 걸로 사랑 노래를 하면 어때? 

지금 주가가 올랐을 때 회사를 만들, 아니 회사를 차리는 거 어때?

아니다.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 해."

아니요.

죄송하지만 전 이제 더 이상 착한 천재라는 이름에 갇힌 착한 최예근이 아닌 걸요.

저는 성공 사례가 아니에요. 그렇다고 길을 헤매는 방랑자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그저 제가 돌아갈 곳이 어딘지 잘 아는 길을 잘 잃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길을 찾는다고 하면 왠지 동그라미 같지만 읽는다는 말은 어쩌면 세모 모양의 말 같아요.

하지만 길을 찾는다는 건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기에 헤맨다는 거고, 읽는다는 건 본래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말이죠.

돌아갈 곳을 알기에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거 뭔가 멋지지 않나요?

 

길을 제대로 잃어야 나의 길을 만든다

 

여러분도 길을 잃어보시는 거 어떠세요? 저는 길을 잃기로 마음먹고 두 가지를 단돌이 했습니다.

지금의 나를 심은 씨앗이 무엇인지

어릴 적 기억, 책, 영화의 한 장면, 세바시 멘토의 한마디. 어떤 음악의 노랫말인가요?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요.

저는 지금 저를 심은 씨앗은 기계학에 밝은 집안에서 홀로 춤추던 그저 작은 착한 애였습니다.

그러고 돌아갈 곳이 어딘지 한번 적어보시는 거 어떠세요?

저는 처음 꿈꿨던 저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변하는 음악을 하고자 했던 그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정규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한번 적어보시는 거 어때요? 

 

 

지금의 나를 심은 씨앗은? 내가 돌아갈 곳은?

 

두 가지가 준비되셨다면 여러분들도 길 잃을 준비가 되신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최예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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