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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453회 | 우리는 왜 그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까요? | 안성희 법무부 아동인권보호특별추진단 팀장,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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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까요?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 해줬으면서 자식을 보호하기는커녕 처벌을 면하겠다고

아이의 입으로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 증언하게 만든 그 가해자가 저는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긴 증언을 마친 아이에게 혹시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피고인석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아동폭력 전담 검사 | 폭력을 사용한 양육이 가져온 결과

 

 

안녕하세요. 

저는 법무부에서 일하고 있는 안성희 검사입니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것이 멈춘 해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죠.

 

 

2020년 10월 13일 16개월 입양 아동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

죽고 난 후에야 알려진 아이의 이름은 이제 온 국민이 아시는 아픈 이름이 됐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고, 너무나 짧은 삶을 고통 속에서 마감한 그 아이에게

'미안해', '사랑해' 라면서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뒤늦은 슬픔과 분노만으로는 악마 같은 가해자를 엄벌에 처하라 이런 외침만으로는 아이를 다시 살려낼 수 없지요.

저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우리는 그 아이를 구하지 못했을까요?
또다시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법무부는 아동인권보호특별추진단을 만들었고, 제가 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아동학대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해왔습니다.

  • 학대당하는 아이를 구하고 보호해야 합니다. 
  • 그래서 특례법을 만들고 개정하면서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 그리고 학대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 찾아내야죠.
  • 장기결석 아동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배치되도록 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도 하면서 공공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입니다.

 

 

지루하신가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고 뻔한 이야기니까 이제 끄고 다른 영상 봐야지 하는 분들도 계시겠네요.

 

 

자 이제

법무부의 팀장이나 검사로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하는 검사가 돼야지 생각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제가 검사가 되었던 약 17년 전에는 검찰에서 성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건을 지금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금융이나 외사 사건을 전담하는 검사가 되겠다 이런 포부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성폭력 전담 재판부에 공판 검사를 맡게 됐습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가해자 측 변호인의 공격에 대응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는데요.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고, 가해자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 증거를 제시하면서 진실을 밝혀내야 했습니다.

한 사건, 한 사건 너무 힘들었지만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면서, 가해자가 마땅한 벌을 받게 만드는 과정에서 검사가 된 보람을 느꼈습니다.

정말 검사로서 가슴이 뛰는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경제 사건보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는 사건, 피해자와 함께 울고 공감하면서 치유의 과정에 함께할 수 있는 사건에 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더라고요.

제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 셈이죠. 

 

 

그때부터 저는 여성 아동 대상 범죄를 조사하는 부서를 지망해서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건들을 계속 담당하게 됐습니다.

검사가 보통 사건을 담당하면 무엇이 진실인지 찾아내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열심히 수사하고 증거를 검토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밝힌 다음 죄가 인정되면 기소하고 가해자가 적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재판에 열심히 해서 유죄가 선고되도록 하면 됩니다.

그럼 대체로 검사의 역할은 다한 거죠. 

 

하지만 아동학대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학대가 인정되더라도 가해자를 벌 받게 하면 되지라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징역형을 받으면 이 아이는 어디서 누가 돌보게 될 것인지, 아이의 학비며 생활비는 어떻게 될 것인지, 여러 가지가 걱정인 거죠.

무엇이 진짜 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지금 검사로서 내가 하는 이 결정이 이 아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이 아이의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여줄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일까 판단하는 것이 매 사건마다 너무 어려웠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까 고민할 때 제게 해답의 실마리가 된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학대와 성폭행을 당한 피해 아동입니다.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요. 

어머니는 더 이상 못 키우겠다고 아이를 아버지 집 앞에 버리듯이 두고 가버렸습니다.

아버지와 살게 된 집에서도 별다른 돌봄도 받지 못한 채 그냥 방치되듯이 지내다가, 

그러다 가끔 집에 들어온 아버지로부터 성폭행까지 당했습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주장하는 가해자 때문에 아이는 법정에서 긴 시간 힘든 증언을 해야 했습니다.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 해줬으면서 자식을 보호하기는커녕 처벌을 면하겠다고 아이의 입으로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 증언하게 만든 그 가해자가 저는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긴 증언을 마친 아이에게 "혹시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 있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피고인석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 법정에 있던 모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친아버지로부터 성폭행과 학대를 당했음에도 그 안부를 걱정하고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는 절대적인 약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 기록 속에는 학대에서는 벗어나고 싶지만 부모와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나를 때리는 건 싫지만, 쉼터나 보육원으로 가서 사는 건 더 싫다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할 새로운 공간이 너무 두려운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자신을 믿어주고 무조건 지지해 주는 보통의 부모를 아예 모릅니다.

긴 시간 계속된 어떤 학대 사건에서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의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다정하게 말하는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빠라는 사람이 욕도 하지 않고, 소리도 지르지 않고, 가족들과 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거든요.

이렇게 아이는 태어나면서 경험한 세상의 전부인 우리 집, 이 세상은 이렇구나라고 알고 있던 우리 집이 다른 집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습니다.

이제 학대를 당해도 부모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 좀 이해가 되시나요?

 


 

두 번째 사건은 아동학대가 아니라 소년범 사건이었습니다.

중학생인 아들이 엄마를 때려서 신고된 사건이었는데요.

덩치가 엄마보다 훌쩍 큰 남자아이는 엄마를 때리고 욕을 하면서 엄마의 얼굴에 침까지 뱉었습니다.

아이의 폭력적인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아이를 향해 막말을 하면서 아이를 비난하고 엄벌에 처해달라고 바라는 이 어머니의 모습도 너무나 무섭고 슬펐습니다.

도대체 이 과정 속에서 이 아이는 어떻게 자라온 걸까요?

정말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아이는 훈육이라는 명분으로 폭언과 폭력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아이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셌던 엄마는 약자인 아이를 힘으로 제압했습니다.

이 아이는 정서적 신체적 아동학대의 피해자, 다시 말해서 훈육을 핑계로 한 폭력의 피해자였던 셈이죠.

그러나 여러분 부모와 아이의 이러한 물리적 힘의 차이는 얼마나 갈까요?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나이가 들어갑니다.

폭력을 당해왔지만 이제 힘이 세진 아이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폭력을 쓸 수도 있다고 배워온 셈이고, 

이제 힘을 얻게 되니 배운 대로 한 거죠.

 

 

이런 사건을 담당하다 보면 자주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 아니 한 가정을 바꾸는 일도 1개 검사가 하나의 사건을 처리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럼 제가 질문 하나 해보겠습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허용되는 훈육이고 어디부터가 아동학대일까요?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체벌은 전혀 절대 허용되지 않습니다.

 

 

 

훈육, 훈육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요.

가르칠 훈기를 육 품성이나 도덕 등을 가르쳐 기르는 것, 바람직한 인격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좋은 인격을 형성하기 위한 훈육은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태교부터 시작해서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의미의 근육에 체벌이 포함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쯤에서 궁금하실 거예요.

안 때리면 좋겠지만 애 키우면서 그게 되냐고요? 그러는 검사님은 아이를 한 번도 안 때렸냐고요?

네 저는 아이를 한 번도 때린 적이 없습니다. 

혹시 운 좋게 순한 아이 키우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그러실 분도 많을 것 같아요.

제가 운이 좋았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기 시작할 무렵 아동학대를 전담하는 검사가 된 겁니다.

폭력을 사용한 양육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았고,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저는 제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폭력을 써도 된다 이런 걸 저로부터 배우기를 원치 않거든요.

저와 제 아이를 위해서라도 제가 아동학대 전담검사가 된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반대로 그럼 혹시 검사님은 한 번도 안 맞고 컸나요라고 물어보신다면

아니죠. 그때는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체벌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고, 

저도 가끔은 혼나고 맞기도 하면서 컸으니까 이렇게 멀쩡한 어른이 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행동을 때려서라도 바로잡아야지 하는 생각은 아주 위험합니다.

심각한 아동학대의 가해자들도 시작은 보통의 부모가 매를 들 때와 같았습니다.

내가 아니라 아이가 문제다 맞을 만한 행동을 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볍게 회초리를 들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에게 겁을 주고, 한 대 두 대 때리다가 점점 체벌의 강도가 심해진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히 아동학대인데 가해자인 부모들은 훈육이라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개입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순간에 어느 정도의 개입을 해야 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서 망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안타깝게도 꼭 필요한 개입의 순간을 놓쳐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이르는 경우도 많고요.

2021년 올해 63년 만에 민법에 규정되어 있던 부모의 징계권 조항이 폐지되었습니다.

 

 

이제 체벌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금지된 행동, 즉 불법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세상의 변화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애가 말을 안 들어서 등짝 스매싱을 하려고 손을 들었더니 

아이가 부모의 발목을 딱 잡고 "엄마 이거 아동학대예요" 하더라는 분들도 많이 계시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은 유아기부터 폭력 예방,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많이 받고 있고요.

초등학교 4학년 과정에서는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 대해서 배우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법도 달라졌고, 아이들도 이미 달라졌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 부모님들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체벌 없는 교육과 양육이 가능할지 걱정되십니까?

학교 체벌이 금지됐을 때도 같은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요? 

학교에서 체벌은 실제로 사라졌습니다.

학교에서 가능하다면 가정에서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즘 예전에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엄청 때렸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는 예전에는 부모들이 아이를 훈육한다고 때리기도 했대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처음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저희는 법무부에서 저희가 해왔던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도 가정에서 체벌의 유혹을 이기고 내 아이는 물론이고 모든 아이들을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세요.

지금까지 아동인권보호특별추진단에서 일하는 안성희 검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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