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의 지도자로 밀어 올린 것은 전체 유권자의 단 27%였습니다.
같은 해 브렉시트에 표를 던져 영국과 유럽을 경악하게 한 것도 전체 유권자의 단 37%였습니다.
이것이 투표장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원하던 결과였을까요?
그래서 그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책을 가르치는 윤비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입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못지않게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제도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제도가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죠.
오늘 저는 그 제도 바로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해 여러분께 이야기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뽑는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선거는 민주주의 핵심이지요.
민주주의는 매력 있는 제도입니다.
이탈리아의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한 번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그 달콤함을 결코 잊지 못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나라를 군주가 지배하려면 확실한 방법은 사람들을 이곳저곳으로 흩어버리고 그들이 살던 터전을 아예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끔찍하죠?
자유는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바로 그 자유를 최대한 누릴 권리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총칼로도 어쩌지 못하는 호소력과 힘을 갖습니다.
국경과 인종 시대를 넘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독재 정권을 무너뜨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분
그 민주주의 핵심 제도인 선거를 피곤하게 여기는 분들이 요즘 적지 않습니다.
저는 종종 투표 프로 불참러들을 만납니다.
투표소 갈 시간에 피트니스에 가서 체력 단련을 하거나 가족과 여행을 가는 것이 쿨하다고 말하는 분들을 봅니다.
언제 투표를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분도 계시고, 앞으로 절대 투표를 안 할 것이라고 신념처럼 이야기하는 분도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이번 선거에서 투표를 하실 예정입니까?
왜 투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투표 안 하는 세상 크게 잘못될 것이 있을까요?
오히려 투표를 안 하면 무슨 큰 일이나 날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오히려 나의 투표 안 할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닐까요?
이것 말고도 선거가 우리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경쟁은 종종 과열되기 십상이고,
선거 전에는 내가 믿는 후보나 당이 승리하지 못할까 안절부절 조바심을 내는 분들,
선거 후에는 승리하지 못해서 우울해하는 분들,
승리하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분들도 만납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며 이래도 되는 걸까? 민주주의라는 게 뭔가 잘못된 것 아닐까?
차라리 선거를 없애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실 겁니다.
저는 지금부터 여러분과 이런 문제들을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 풀어보려 합니다.
여러분 혹시 민주주의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아세요?
민주주의는 약 2,500년 전쯤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고대 아테네 인들은 힘센 군주나 소수 귀족의 생각과 판단 변덕에 자신의 삶을 내 맡겨둘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아테네인들은 모두가 같은 권리를 갖고 함께 판단하여 행동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모두의 이름으로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 아무리 힘세고 영리한 일개인이나 집단이라도 함부로 설치지 못하게 꽉 묶어두려 했습니다.
여기 그림을 하나 보여드릴게요. 도자기 조각이지요.
그 위에 사람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맨 위에 써있는 이름은 페리클래스입니다.
페리 클래스는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후 아테네를 이끈 지도자로서 아테네 민주주의의 강력한 후원자였습니다.
그 아래에는 키몬이라는 이름도 보이네요.
키몬 역시 대 페르시아 전쟁의 영웅이고 추앙받는 정치가였습니다.
그 아래 아리스티데스 역시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였어요.
그런데 왜 이런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 이 항아리 조각 같은 곳에 쓰여 있을까요?
혹시 여러분 도편추방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시민들이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고 의심가는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10년간 추방하는 제도였죠.
일 개인에 의해서건, 소수 집단에 의해서건 독재의 싹을 아예 처음부터 잘라버리려 한 것입니다.
위에 인물들 중 실제로 아리스티데스는 기원전 482년 전후, 키모는 기원전 461년 도편 추방되었습니다.
이것은 아테네인들이 월등한 힘을 지닌 일 개인, 혹은 그 주변에 모인 소수 집단에 의해 자신들의 삶에 휘둘리고 평등과 자유가 파괴되는 것을 얼마나 두려워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라고 불립니다.
아테네 시민들처럼 직접 사안들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대신 우리는 의회에 대표자를 보내 이들이 법을 만들고 정부의 활동을 감시하게 합니다.
또 독일처럼 투표를 통해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한 당 혹은 당들 간 연합의 리더를 행정 수장으로 뽑기도 하고, 우리나라처럼 대통령을 직접 뽑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민주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분명히 완전히 만족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도 민주주의가 단지 이제까지 겪어온 다른 제도보다 덜 나쁜 제도일 뿐이라는 취지로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근대 민주주의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나라의 수장이었지만, 대의 민주주의가 갖는 이런저런 단점들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려웠던 것이죠.
그런데 그런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민주주의를 위해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사람이 땀을 흘리고 외치고 다치고, 때로 목숨을 잃기도 했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혹은 더 많은 민주주의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사람들을 빨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인간이 다른 누군가에 함부로 휘둘리지 않고 각자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합의하여 공동체에 나아갈 바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민주주의에서 선거와 투표는 각자가 공동체의 주체로서 자신의 자존감을 확인하고 확인받는 자리이며, 국가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 누구의 손에 있어야 하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공연이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런 투표를 귀찮아하거나 심지어 혐오하는 목소리가 들릴까요?
물론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나 염증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19세기 초 사람들이 하도 선거에 참여를 안 해서 투표를 하러 오도록 술과 음식을 제공하기조차 했습니다.
당시 선거는 백인 남자만의 특권이었어요.
그런데 남자들을 한데 모아놓고 술을 먹여 놓으면 종종 황당한 일도 벌어졌죠.
고성방가, 시비, 주먹다짐
상상이 가시죠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이다 보니 사람이 죽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투표하러 나간 남편이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 시기죠. 황당하죠.
선거 무관심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는 독일에서도 골치입니다.
2천 년대 들어서 수상과 집권당이 결정되는 연방 의회 선거 투표 참여율이 80%를 넘어본 일이 없고, 심지어 2009년과 2013년도에는 70%를 간신히 넘었습니다. 메르켈 같은 유럽 정치의 스타가 있어도 이 모양인 것이지요.
투표를 하지 않는 많은 분들, 흔히 선거라는 것이 대중적 인기에 기대서 한몫 보려는 욕심꾸러기들, 또는 국민의 이익을 안중이 없는 고위 관료들이 벌이는 놀음에 들러리 서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대십니다.
또 내가 미는 사람이 어차피 선출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예 선거에 관심을 끄거나, '집어 쳐' 하는 마음으로 투표를 포기하기도 해요.
그런데 이런 생각해 보셨습니까?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들 자기만 아는 야심과 들과 욕심꾸러기들 입에만 국민을 들먹이는 고위 관료들, 꼴 보기 싫은 정당 정치인에게 백지 수표를 주는 행위라는 건 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흔히 구우 포퓰리스트로 비난받는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은 2014년 선거에서 62%라는 낮은 투표율 덕분에 단지 유권자 중 27%의 지지만을 얻고서도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며 자신의 권력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세계 최강국 미국의 지도자로 밀어 올린 것은 전체 유권자의 단 27%였습니다.
같은 해 브렉시트에 표를 던져 영국과 유럽을 경악하게 한 것도 전체 유권자의 단 37%였습니다.
이것이 투표장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원하던 결과였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결국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별로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나의 이해와 관심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정치에 반영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당장의 손해입니다.
더 큰 문제는 정당이나 정치가들이 나를 점점 더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가뜩이나 바쁜 선거운동 마당에서 어차피 투표하지 않을 사람에게 신경 쓸 여력도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떡 하나라도 더 얻어먹는 것은 우는 아이입니다.
울지도 않고 조용히 물러서 있는 아이에게 돌아올 떡은 없습니다.
나의 이런 태도가 내 아이들, 나의 주변 사람들도 나와 함께 정치의 바깥으로 정치인의 시야 밖으로 벗어나겠지요.
결국 자발적으로 이등 시민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나의 가족과 아이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는 않으시겠죠?
그렇다면 그런 취급받지 않도록 영리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물론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가 당선되지 않을 때 실망감은 큽니다.
내가 응원하는 야구팀이 져도 잠이 안 오는데, 내가 응원하는 후보가 져서 반대편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 이불 킥을 할 노릇입니다.
야구는 다음 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선거는 그렇게 자주 오지도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선거 후에 우울증 비슷한 것을 앓는 분들도 봅니다.
교과서에서야 선거 결과를 쿨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화합하기 위해 애쓰라고 하지만 인생이 어디 말처럼 쉽나요?
몇 달 몇 년을 이 편 저 편으로 나뉘어 매섭게 설전을 벌이다가 하루아침에 감정 정리하고 손을 잡는 것은 성인군자도 하기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런 분들께 여기서 제가 잠시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시험 이야기입니다.
제가 일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저런 시험 출제위원으로 불려 갑니다.
때로 일주일이 넘게 낯선 교수들과 소위 모처에서 모여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채 출제를 하기도 합니다.
교수들은 흔히 감금된다고 말하죠. 낯선 환경에 운동 부족, 불면증까지 찾아옵니다.
컨디션도 정상이 아닌데 일정까지 촉박하니 신경이 곤두섭니다.
그러나 가장 큰 스트레스는 동료들과의 견해 차이 때문에 생깁니다.
다른 분야에서 다른 관심과 생각을 가지고 공부해 온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면
문제 하나를 두고서도 흔히 심각한 논쟁이 일어나고 때로 감정을 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내년에 다시 출제하러 들어오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조 섞인 불평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부정하기 힘든 사실은, 언성을 올려가며 논쟁을 벌인 끝에 낸 문제가 대부분 처음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은 아름다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문제는 출제위원들이 다소 무비판적으로 한 사람의 생각을 따르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토론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어쩌면 너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출제장에 모았을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이 반론을 제기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출제장은 화기애애할지 모르지만 문제의 완성도는 낮아집니다.
때로 잘못된 문제를 잡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시험장에 내보낸 큰 문제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공동체 안에 나와 이해관계도 생각도 다른 이웃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존재합니다.
만일 모두가 관심과 생각이 같다면 굳이 번거롭게 비용과 시간을 들여 유세하고 투표할 필요가 없겠죠.
아무나 몇 사람 샘플로 잡아서 의견을 물어보면 그만일 테니 말입니다.
저는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강한 것은 사람들 간의 차이와 갈등을 억누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고 경쟁하고 갈등하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이와 언쟁은 불편해도 열매는 달콤합니다.
제대로 운영되는 민주주의는 집단의 지혜를 최대한 끌어냅니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견해 차이와 갈등이 언제나 예외 없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투표를 통해 선택된 인물이나 정책이 후일 최선이 아니거나 잘못이었던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험은 특히 시민들의 참여가 부족하거나 어떤 이유로 시민들 사이에서 사안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따져보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할 때, 커집니다.
그래서 참여하는 분위기, 신중하게 판단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차이와 갈등을 드러내고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선거는 시작일 뿐입니다.
선거에서 드러난 차이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간은 선거 이후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식은 민주주의다워야 합니다.
현대 민주주의에는 때로 삐걱거리기는 해도 삼권이 분립되어 있고, 언제나 내 마음에 쏙 드는 소리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이 존재합니다.
반복되어 선거가 돌아옵니다.
몇 년 후에는 다시 한번 행정부의 수반을 두고 경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만 해도 대통령 선거가 지나가면 지방선거, 그리고 총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대통령 선거가 돌아와 지난 시간에 공과 과를 평가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제 시작된 토론을 이어가도록, 그래서 더 깎고 다듬어 가도록, 잘 된 것은 더 잘 되도록, 잘못된 것은 덜 잘못되도록 고쳐가기 위해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민주주의 제도입니다.
마치 격렬한 토론에 밤을 보내며 시험 문제를 깎고 다듬어가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때론 다투고 때론 손을 잡아가며 아름답고 훌륭한 결론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것은 존경받는 선진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미 걸어온 길입니다.
그들에게 차이와 갈등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민주주의적으로 현명하게 해결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번영의 비밀입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 걸어갈 길도 그렇습니다.
이제 제 말씀의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우리 각자가 남에게 부당하게 휘둘리지 않고 나의 판단에 따라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제도입니다.
투표를 통해 우리가 누구를 앞세우고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를 함께 결정할 수 있다는 자체가 처음부터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민주주의 대한민국 역시 많은 노력과 희생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만큼 선거를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참여할 나의 권리를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장을 뛰쳐나가 선거장을 멀리 할수록 나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이 공동체의 자유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게 됩니다.
불편함도 있고 어려움도 많습니다.
참을성도 필요하고 실망도, 분노의 순간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소중한 것들 가운데 그냥 손만 뻗어 거두어 드릴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비록 어려움도 있고 힘도 들겠지만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길 위에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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