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간 매일 편지를 쓸 수 있는 이유 | 고도원 '고도원 정신' 저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 #고도원의 아침편지 #희망 #성장 | 세바시 1651회
하루에 900 번 합니다.
아마 많은 역경과 고난과 좌절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절벽들이 몇 개 있었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이런 변수를 만났을 때 어떻게 다시 일어나서 내가 가고자 하는 인생의 방향을 갈 것인가 여러분을 살아가게 하는 정신은 무엇입니까?
🎯 주제: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힘, ‘정신’과 ‘꿈’
1. 인생의 절벽과 시련
- 어린 시절 대인기피증, 대학 시절 제적, 교통사고로 인한 디스크 파열 등 여러 역경과 좌절 경험
- 절망 속에서도 스스로 일어서기 위한 노력, 걷기 훈련과 하루 900번의 스쿼트 수행
2. 정신을 일으킨 힘
- 인생을 살아가게 한 정신의 원천은 책과 어른들의 어록
- 함석헌, 아놀드 토인비 등의 책과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 한창기 사장의 말이 삶의 자양분이 됨
-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이가 상한다” → 단단한 정신을 키우려면 어려운 것을 소화해야 함
3. 나눔과 헌신
- 자신의 집을 기부해 아침편지 문화재단 설립
-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는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
4. 꿈과 정신
- 정신이란: 예상 못 한 변수 앞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가를 결정하는 마음의 힘
- 그 정신의 근원은 꿈이며, 꿈은 정신의 밑그림이자 마지막 봉우리
- 구도원의 꿈은: 사회적 아버지로서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
5. 강연의 핵심 메시지
- “나는 넘어진 것이 아니라 미끄러졌을 뿐이다” – 링컨
- 누구나 절벽 앞에 서지만, 꺾이지 말고 견뎌야 하며, 꿈과 정신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반갑습니다.
이렇게 소개받은 22년째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쓰고 있는 구도원입니다.
자 여러분들 아마도 인생에 우리 젊은 친구들은 좀 덜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마 많은 역경과 고난과 좌절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젊은 시절은 더 그렇습니다. 더 절박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절벽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저는 시곡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일곱 개의 교회를 개척하신 분이에요.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사를 많이 다니다가 어느 동네에서 어느 형이
저를 이렇게 잘 안내해 주는 듯하다가 똥통에 빠뜨렸어요. 똥이 범벅이 돼서 올라와서 제가 실어증에 걸렸습니다.
대인 기피증
밖에 못 나가는 아이였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 대학 신문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의분에 넘치는 칼럼 십계명이라는 칼럼을 썼어요.
그것이 문제가 돼서 그때 긴급조치 9호 무시무시한 법입니다.
제적을 당했습니다.
786명의 대학생들이 집단 재적을 당했습니다.
저도 그중에 하나였습니다.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는 서울 광화문 거리를 걸었습니다.
절망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또 위기가 왔어요.
2012년이니까요. 그러니까 한 11년 전입니다.
제가 출근할 때 이제 운전을 하고 가는데 내리막길에 브레이크를 딱 밟았는데 차가 뻥 뛰었습니다. 급발진이라고 합니다.
하늘을 푹 날라서 앞에 있는 콘크리트 벽에 꽉 부딪혔습니다. 차가 망가졌습니다. 저도 다쳤습니다.
디스크 파열 어마어마한 통증입니다.
안 질 수도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 앞에 콘크리트 벽이 있었기 때문에 다행인데, 만약 그게 없었으면 지금도 하늘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제가 일 년 동안 지팡이를 짚고 다녔습니다.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명상도 지도할 수 있고, 몽골에서 마타교도 갈 수 있고, 음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걷다가 이제 걸으려고 근데 걸려야 되지 않아요.
이렇게 엉금엉금 그걸 며칠을 하면 조금 일어서게 됩니다.
한 두 달 가면은 일어설 수 있게 돼요. 육 개월 되니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 박물관에 가면 그 유인원에 진화하는 거 그림 있죠? 딱 그거
여기서부터 나중에는 호모 사피언스 하 제가 걸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이 척추가 다쳤습니다. 지금도 다친 상태에서 수술받지 않았어요.
이 척추를 바로잡는 근육 엉덩이와 허벅지에 연결되는 것을 코어 근육이라고 그래요.
이걸 키워야 된대요.
이걸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스쿼트랍니다.
그래서 난생처음 스쿼트를 시작했어요.
하나부터 아세요? 스코드 하세요?
땀 범벅 되면서 눈물 쏟으면서 지금 제가 몇 개 할까요?
하루에 900번 합니다. 삼백 번씩 세 세트.
자 글을 쓴다고 할 때 우리가 문약하다고 얘기를 해요.
좋은 글은 건강한 근육에서 나옵니다.
정신의 부분에 정신적인 요소도 있지만 육체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스쿼트를 하면서 '아 오히려 급발진 사고를 당한 것이 나에게는 선물이었다.' 또 다른 꿈을 꾸게 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절벽 얘기를 했어요.
저에게 오늘의 정신을 있게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과거의 절벽의 경험 급발진의 경험도 오늘의 저의 정신을 만든 거죠.
그러나 그 근원적인 거 바탕이 되는 것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과 연관된 어느 분의 어룩이었습니다.
제가 세 분의 어록을 좀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제가 잠깐 말씀드렸던 시골교회 목사였던 저희 아버지가 중학교 2학년 때 저에게
함석헌 선생이 쓰신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아놀드 토인비가 쓴 역사의 연구 상, 중, 하 지금은 한 권으로 되어 있어요.
그 네 권의 책을 주시면서 밑줄 긋고 그리고 독서 카드 쓰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근데 읽어보니까 하나도 모르겠어. 무슨 말인지.
그때 저희 아버님이 그랬습니다.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이가 상한다. 단단한 음식을 씹을 줄 알아야 된다. 정신도 그와 같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모르고 읽었던 그 책이, 저의 정신을 키워주는 인생의 책이 됐습니다.
함석근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우리의 역사를 고난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난의 뜻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을 해석했습니다.
아놀드 토미의 역사의 연구는 도전과 응전이라고 하는 두 주제를 가지고 고대 문명 고대 유인들의 삶 역사를 분석해 놓은 역조입니다.
이것이 저희에게 아주 중요한 지침이 됐습니다.
제가 연세대학교 다니다가 재적이 돼서 백수가 돼서 졸업장을 받아주지 않은 저를, 돌아가신 한창기 사장께서 기자로 채용해 주셨어요.
뿌리 깊은 나무 기자가 됐습니다. 70년대 후반에 좋은 잡지였습니다. 아마 그때 독자들이 있으실 겁니다.
적자였습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웠어요.
그런데 그때 돈을 걱정하는 그 친구분에게 한창기 사장이 하는 말씀을 제가 들었습니다.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는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
이십 대 후반에 제가 망치로 한 데 맞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참 멋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이제 특별한 인연으로 고도원의 아침 편지를 쓰게 되고,
저도 제 몸을 살리기 위해서 어 기분사 종달샘 만들고 아침 편이 문화재단 만들 때 돈이 필요했어요.
오억의 기금이 재단 만들려면 돈이 필요해요.
그래서 저도 고생한 저의 집을 도네이션 해서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제 아내, 제 자식들 제 자녀들 설득할 한창기 사장이 했던 그 어록을 사용했습니다.
'아버지도 나도 한 번 미약하지만 낙엽처럼 태우고 싶다.'
그 뿌리 깊은 나무가 강제 폐간이 또 됐습니다.
아 신군부 뭐 전두환 아저씨라고 아주 훌륭한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강제 폐간을 시켰어요. 또 백수가 됐어요.
또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그 뿌리 깊은 나무에 제가 쓴 기사 글을 좋아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당시에 중앙일보 경제부장 하시던 분입니다.
이렇게 글을 맛깔스럽게 쓰는 친구가 백수라는데, 이런 친구를 신문 기자로 한번 시켜보자 전무 후무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우리 청년들에게 그런 얘기를 합니다.
뭐 제가 열심히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에요. 그 길 밖에 없었어요. 그 길 밖에
뿌리기만 기자가 돼서, 백수가 돼서, 기자가 되니까, 아니 이렇게 행복한데 돈까지 주네, 이런 마음으로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그것을 누군가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켜보던 한 분이 그분의 인연으로 일간지 신문 기자가 됐습니다. 정치부 기자가 됐어요.
그때 만난 분이 돌아가신 평민당 총재 시절에 김대중 총재를 만났습니다.
이분이 어느 날 어 젊은 기자들하고 차를 마시면서
'젊은 기자들 인생의 책이 있으시오?'
인생의 책이 있느냐? 저는 그때 인생의 책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의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더러 아실 거예요. 그분의 인생의 책이 놀랍습니다.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 연구입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읽었어요.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그 책이 대학 시절 뿌리 푸나무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 하면서 읽으면 막 영감을 주는 거예요.
열 번 이상 읽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한 노련한 정치인과 젊은 기자가 한 권의 책을 놓고 대화를 합니다.
이분이 눈동자가 그것이 계기가 돼서 아마도 그분이 대통령이 되신 다음에 저를 불러서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을 갖고 계십니까?
어떤 책을 반복해서 보고 계세요?
그래서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이 여러분들의 정신의 자양분이 되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있으실 거예요.
단단한 음식을 씹을 줄 알아야 돼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이가 상해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인생의 책이 있으십니까?
음 책을 한 권 썼습니다. 그것이 고도원 정신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처럼 제 이름을 걸고 하는 정신
자 정신이라고 하면 거창한 게 아닙니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겪게 되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예상하지 못했던 이런 변수를 만났을 때
어떤 기운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서 내가 가고자 하는 인생의 방향을 갈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정신입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좀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살아가게 하는 정신은 무엇입니까?
에 저의 정신을 잇게 한 것이 꿈입니다. 꿈, 꿈, 드림 꿈은 정신세계의 밑그림입니다.
그리고 꿈은 정신 세계의 마지막 봉우리입니다. 목표예요.
인생 길지 않습니다. 정확한 방향을 갖고 그래도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저에게 꿈이 생겼습니다. 왜 스쿼트를 죽을 둥 살 둥, 죽을 맛이거든요. 매일 왜 하느냐? 이 꿈을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사회적 아버지 사회적 할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확장돼서 지금은 KD아스프라 세계연대를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청소년들 재외동포 한 750만 명 중에 24살 이하는 한 250만 명 됩니다.
이 청소년들을 초청해서, 같이 뒹굴고, 꿈을 심어주고,
우리 국내에 있는 학생들과 메이크업 프랜드, 서로 네트워크 만들어서 인구 문제도 해결하고, 연애도 하고, 꿈도 키우고, 회사도 만들고 하는 것을 꿈꾸게 됐습니다.
누군가, 가정을 넘어서서, 사회적 아버지, 사회적 할아버지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거기에 헌신하고자, 그것이 저의 꿈이고 꿈 너머 꿈입니다.
링컨의 얼룩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수없이 미끄러지고 수없이 무너지고 수없이 좌절했던 사람입니다.
이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넘어진 것이 아니라 미끄러졌을 뿐이다.'
우리는 많이 넘어질 것입니다.
절벽에 서게 될 것입니다.
한강으로 갈까 고층 빌딩으로 갈까 망설이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꺾기지 마시고, 견디는 힘을 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이 꿈꾸는 꿈, 목표 그 너머의 꿈, 너머 꿈을 향해서 건강한 몸으로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