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뇌의 수축 현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게 보이죠?
어느 해 겨울
엄마가 만든 나물을 먹는데
입안으로 짙은 두려움이 전해져 왔다
이상했던 나물 맛
엄마가 나물 반찬을 못 한다는 것은
내가 컴퓨터를 못 켜는 것과 같았다
혹시 엄마가 치매는 아닐까?
엄마, 나는 잊지말아요
"여기, 뇌의 수축 현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게 보이죠?"
조기 치매 진단 이후
싫다는 엄마를 끌고 가
영정 사진을 찍고
싫다는 식구들을 설득해
여행 일정을 짜고
몇 년간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혼자 끙끌거렸다
상실의 1기 시간
치매 5년 차
새벽 1시
엄마가 자꾸만
어설픈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새벽 3시
아침을 먹으라며
나를 깨우기도 했다
어느 날 오후 창문을 열고
멍하니 앉아 있던 엄마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의 기억은
봄 목련을 바라보는 순간에
멈춰 있었던 것이다
상실의 2기 장소
치매 6년 차
따르릉~
"길 잃은 어머님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서 모셔가세요"
아빠와 싸우고
집을 나온 엄마가 길을 잃었다
1남 4녀 중 막내인 나
그런데
"무슨 일만 생기면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때
슬그머니 내 손을 잡은 엄마
길을 잃고 해맬 때
누군가 자기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길
얼마나 원했을까
나는 그동안 엄마를
어린아이 다루듯 대하던 나를 반성했다
치매 9년 차
"엄마 안 자고 뭐해?"
30년 넘게 드나들던
방문 위치를 잊고
옷장 문을 열고 있던 엄마
엄마가 소변 실수한 것을 발견했다
따듯한 위로를 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치매와 관련된 책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의 무너진 모습을 자식이 처음 봤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는 쓰여 있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난 엄마 방에
밤새 스탠드를 켜놓기 시작했다
상실의 3기 인물
치매 10년 차
엄마는 자기 속옷과 양말은 직접 빤다
나는 엄마가 안 볼 때
덜 빨린 빨래를 다시 한다
엄마에게 할 일이 없는 것은
고통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이제는 본인 상태에 대해
알려드릴 시간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잘 버텨 준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뭘까
어린 시절
겨울이면 엄마는 나에게 홍시를 먹였고
나는 엄마나 먹으라며 짜증을 냈다
엄마는 감을 좋아하지 않는다 했다
그런데
치매에 걸린 후
"내가 감을 좋아하는지 우째 알았나?"
엄마는 치매로 자신의 임무를 잊고서야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엄마의 치매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엄마와 조금씩 대면하고 있다
내게 이 과정은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최대한 가족이 책임지겠다는 것
겨우 이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난 이토록 수많은 말을 늘어놓았다
참고 : <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하윤재, 판미동
그림 : 이규태
자료 제공 : 하윤제, 판미동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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