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주 그레이쥬스 아트 디렉터
삶이라는 흰 도화지에 마음 가는 대로 그리면 생기는 일!!
어떻게 그리는 게 잘 그리는 걸까요?
마음대로 그리세요
이 도화지는 당신의 것이고 무엇을 해도 되는 당신의 세상입니다.
적어도 당신이 그린 그림은 실제 인생처럼 모든 결과에 책임을 따져 묻지 않으니
도화지 안에서 마음껏 실수하고 방황하고 뭐 저질러 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시골에서 그레이쥬스의 아트 디렉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인 창작자 박영주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하얀 빈도화지를 나눠드리고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어떨 것 같나요?
좀 황당하시죠?
받자마자 쓱쓱 그림을 그릴 분들이 계실까요?
한번 손 들어보시겠어요?
있다.
아마 대부분은 좀 망설이실 거예요.
두려워할 수도 있죠.
'뭘 그리지? 나 그림 못 그리는데, 못 그리면 어떻게 하지?'
대부분 이렇게 좀 당황하거나 주저하실 거예요.
아마 제가 세바시 강연을 처음 요청받았을 때 지금 여러분과 같은 마음이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나간다고는 했는데 막상 이야기를 쓰려니 아이디어도 안 떠오르고
'못하면 어떡하지? 강연 영상에 막 악플 같은 거 다 달리면 어떡하지?'
자꾸 이런 생각들만 들더라고요.
그러다가 더 고민하지 말고 그냥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자.
그냥 있는 그대로 뭐 어차피 내 얘기고 내 강연이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무대에 섰습니다.
제가 좀 이렇게 겉으로 보기에는 좀 약간 도시 여자 같고
이게 저예요.
내숭도 좀 떨면서 이쁜 척하고 약간 밥맛 없는 그런 느낌의 그런 사람으로 좀 보이잖아요.
안 그런가요? 아니에요?
근데 저 사실 지금 완전 시골에 살고 있고요.
그리고 똘끼도 좀 많이 있어요.
약간 저지르고 보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누군가 제가 제게 지금 그림 그리라고 빈 도화지를 주잖아요?
그럼 저는 바로 생각나는 대로 뭐 붓이든 팬이든 마구 휘갈겨 보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사실 제가 좀 사는 것도 좀 비슷해요.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는 빈 도화지에 마구 붓을 휘갈기듯 살았던 제 경험을 이야기해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직장인들이 어떨 때 가장 회사 때려치우고 싶은지 혹시 아세요?
전 출근할 때
저는 진짜 매일매일 출근할 때 회사를 이걸 때려칠까 말까 이걸 뭐 갈까 말까 막 미친 듯이 고민을 했어요.
근데 그 고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일이 있었는데요.
제가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회사를 다녔거든요.
갈아타려고 하는 때 어떤 아줌마가 뒤에서 저를 양손으로 밀쳐서
제가 충무로 플랫폼에 일자로 뻗었어요.
이렇게 뻗졌습니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내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하는 이 일이 과연 내게 어느 정도가 가치가 있는 일일까?
문득 그 생각이 진지하게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날 회사에 전화해서 그냥 쨌어요.
째고, 보고 싶던 전시를 보러 갔어요.
전시를 보고 나와서 어둑해진 광화문 길을 걸으면서 결심했습니다.
'나 내일 관둔다.'
네
저는 회사를 관뒀습니다.
관두고요.
저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본격 프리랜서 작가로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살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도 했고요.
또 서울에서 살면서 근처에 친한 친구들이랑 주말마다 자전거도 타고, 아침까지 술도 마시고
막 도시 라이프를 만끽하며 너무 재미있게 살고 있던 제게
어느 날 문득 남편이 시골 가서 살자 이렇게 하더라고요.
혼자 신났어요.
안 그래도 어디 외출할 때마다 매연에 미세먼지에 비싼 집값에 이사 다닐 생각까지 하다 보니
서울 살이의 단점만 보이는 거예요.
게다가 저희는 프리랜서니까 어디서든 일하고 먹고살 순 있었죠.
네 저는 남편의 꼬임에 또 홀랑 넘어갔습니다.
그래 뭐 거기서도 재미나게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행복 회로를 막 미친 듯이 돌렸어요.
근데 막상 살아보니 최애 햄버거 먹을 곳도 없고, 백화점도 없고, 제가 상상한 킨포크 라이프 리틀 포레스트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저는 남편을 쥐 잡듯이 잡았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나이도 많아서 시골에서 살아도 억울하지도 않지,
앞날이 창창하고 젊은 애가 왜 시골에서 이러고 살아야 하냐 막 답답하다 미치겠다. 막
서울도 좁은 나에게 이 시골이 웬 말이냐.
이렇게 멱살을 여러 번 잡았다 놨다 했어요.
귀촌을 한다라는 건 굉장히 고민을 여러 번 해봐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전 그때도 우선 선부터 또 긋고 본 거죠.
그렇게 억울해하며 살다 보니까
막 이제는 마당에 죽어 있는 라따뚜이도 막 집게로 집어서 휙 던져버릴 정도로
시골 라이프에 막 제가 적응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무렵 저희 부부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태국의 치앙마이라는 도시로 여행을 가게 됩니다.
너무 좋은 거예요. 또 막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막 그냥 좋아요.
막 마구 좋아요.
그래서 저는 여행 마지막 날 또 결심했죠.
여기서 나 살아야겠다
그 길로 한국으로 돌아와서 저희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묘 두 녀석을 어떻게 데리러 갈지 엄청 고민하고 연구해서
그렇게 치앙마이행 보따리를 또 이렇게 쌉니다.
결국 저희는 그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에서 한창 중요할 때
집평수 늘리고 차 바꿔야 할 때, 고양이들과 치앙마이로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처음에 너무 좋았어요.
한국에서 하던 일 그대로 막 장소 시간 구애 없이 할 수 있었고요.
매일 여행 다니는 기분으로 살았어요.
그렇게 1년을 살다가 여기서 또 뭔가를 또 한 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마침 친한 동생이 운영하던 게스트하우스를 맡아서 운영하게 되었고,
또 거기서 드로잉 클래스까지 진행하게 됐어요.
두 개 다 제가 해보고 싶던 일이었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반응은 아주 뜨거웠어요.
막 1년 치의 예약이 다 잡혀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희는 본래의 목적이던 여행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정말이지 일만 죽어라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이렇게 머리가 빠졌어요.
심지어 처음 취항마에 와서 구매했던 중고차가 이때쯤부터 슬슬 말썽을 부리더니
왕복 8차선 도로에서 기어가 빠지지 않나 에어컨 고장, 창문 고장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실은 이런 에피소드는 정말 아주 사소한 거예요.
어디서든 일하며 사는 건 힘들더라고요.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건 낭만적이라기보다
내 나라에서 살 때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소소한 편의들이 아주 큰 불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저희는 2년 반 동안의 치앙마이 삶을 조금씩 정리하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골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제가 선을 그은 것들이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더라고요.
기대했던 그런 멋진 모양이 아니었어요.
내가 그리고 싶었고 그래서 그렸던 나만의 선이었을 뿐이더라고요.
결국 내 삶은 내가 그린 대로 그려지는구나 싶었어요.
맨 땅에 지어 올린 우리의 시골집이 지금 이렇게 바뀐 것처럼요.
네
그래서 제가 조심해서 선을 긋게 됐냐고요?
아니요.
정반대예요.
뭐 주저함 없이 더 분명한 선을 그리게 된 것 같아요.
남을 위해 그렸던 그림이 어느 순간 이젠 나를 위한 그림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 그림을 그리는 그레이주스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그토록 제가 바라왔던 저를 위한 그림들을 드디어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레이즈스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 방식대로 또 제 색감들로 만들고 있어요.
뭐 불편한 이야기라도 해야 할 땐 그냥 해버리는 저를 닮았고요.
당연해 보이는 일에도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저처럼
이거 맞아 뭐 왜라고 반문하는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저처럼 뭔가 좀 이상하지만 좀 반전의 매력도 분명 있어요.
그레이즈스 세상 속 캐릭터들은 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은 복합적이고 또 다양합니다.
유악한 모습으로 독한 말을 하기도 하고 또 잔혹한 현실을 다양한 색감들과 위트로 위장시켜 아름답게 만들기도 해요.
서로 다른 물성이 충돌하고 또 다른 성질의 것들이 마주할 때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성질도 다르고 떠오르는 이미지도 전혀 다른 그레이와 주스
그런 둘이 충돌하며 만들어가는 그레이주스처럼 말이죠.
그레이주스의 작품들이 모두 부딪히고 들이받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시골에 사는 만큼 자연 가까이 살면서 얻는 많은 영감과 소재들로 힐링을 전해드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레이주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서 할 수 있는 고민들을 나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거침없이 표현해 가는 것
이것이 제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자 삶을 살아가는 태도인 것 같아요.
이런 모든 것이 가정이 돼서 저라는 사람이 되고, 그레이듀스라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15분이란 시간 동안 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하며 찾기 시작한 인생의 몇 가지 굵직한 사건들을 되돌아보니까
꽤나 명확해 보이는 방향이 있더라고요.
매 순간 내려야 했던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에서 저는 저를 믿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의 그림을 그린 것과 똑같이 나의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라는 그 처음의 고민이 점점 나를 이해하는 시간으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 세바시의 강연자가 된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하지 하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빈 도화지를 마주한 화가처럼 처음에는 좀 막막하실지도 몰라요.
그러면 저처럼 여러분의 인생 속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그 속에서 어쩌면 여러분도 저처럼 뜻밖의 모양을 하고 있는 궤적을 발견하실지도 몰라요.
그 궤적에서 혹은 그 방향의 끝에서 그 누구와도 다른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태국에서 운영했던 드로잉 클래스 이야기를 하면서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저희가 했던 드로잉 클래스는 여행자를 위한 드로잉 클래스였는데요.
수업을 들으러 오셨던 분들의 목적은 하나였어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그분들에게 늘 하는 저의 질문은 '어떻게 그리는 게 잘 그리는 걸까요?'였어요.
그리고 저는 마음대로 그리세요.
이 도화지는 당신의 것이고 무엇을 해도 되는 당신의 세상입니다.
적어도 당신이 그린 그림은 실제 인생처럼 모든 결과에 책임을 따져 묻지 않으니
도화지 안에서 마음껏 실수하고 방황하고 저질러 보세요.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모른다 해도 걱정 마세요.
수업 시간 내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셔도 돼요.
그건 역시 그림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라고 말이죠.
어떤 그림이라도 좋으니 본인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나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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