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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877회 | 결혼과 육아를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들려면 | 정지우

정지우 '그럼에도 육아' 저자, 변호사

 

결혼과 육아를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들려면

 

SNS를 켰더니 행복하게 떠날 수 있는 여행지들이 있고 

결혼 자체가 매력 없는 선택지 

아이 낳고 키우는 거 tv에서 보니까 거의 카오스던데요.

도저히 할 자신이 없다. 

근데 아까 처음에 당신은 아이를 낳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낳았나요? 

이거는 내가 왜 몰랐지 싶을 정도의 뭔가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거예요.

 

결혼과 육아를 매력적인 선택지로 만들려면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런 환대가 너무 오랜만이네요.
제가 맨날 법정에 가면 항상 노려보는 표정만 받다가 

 

여러분들께 제가 가장 먼저 한번 말씀드려보고 싶은 것은

우리 시대에서 과연 많은 분들이 특히나 이 결혼이나 육아라든지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청년 세대들이 지금 앞에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이잖아요.

 

그럼 청년 세대들이 바라볼 때 우리 시대에서 가장 매력적인 삶이란 어떤 삶일까? 그런 것들을 한번 물어볼 수 있는 거죠.

뭐 제 주변에도 청년 세대들이 많이 있고 저도 모임에서나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저보다 조금 몇 살 어리신 분들 많이 만나는데 

'뭐가 제일 부러워? 어떤 삶을 제일 살고 싶어? 어떤 삶이 제일 이상적이고 너의 꿈이 뭐야?'

라고 하면 일단

'회사 그만두고 싶어요. 도망가고 싶어요. 자유롭고 싶어요. '

어떻게 자유롭고 싶어요?라고 물어보면

저기 해외에 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요.

특히나 SNS 인스타그램을 켜기만 하면 수많은 피드와 광고들이 매일 이제 유혹을 시작하는 거죠.

 

수많은 버킷리스트의 유혹

 

요즘에도 왜 빨리 보호에 안 와서 바다 거북이 안 만나요?

오늘은 또 그리스 산토리네 안 와요? 오늘은 또 어디 안 와요? 여행 어디 또 안 가요? 

이제는 또 보라카이 리조트 와서 조식도 먹어봐야죠?

코코넛 주스도 마셔봐야죠? 치앙마이에 한 달 살기도 해야죠.

그런 모습들이 너무나 자유롭고 부러운 거죠. 

 

그런 수많은 어떤 꿈들, 소위 말해서 버킷리스트라고 하는 이런 꿈들 속에서 이런 유혹들 속에서

결혼이라고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육아)에 대해서 한번 얘기를 해보는 거죠.

나 요즘에 열심히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있는데 나는 부럽지 않니?

그렇게 부럽진 않아요. 그렇게 그렇게 부럽지 않고, 아이 낳고 키우는 거 tv에서 보니까 완전 그거 거의 카오스던데요.

아이들 말도 안 듣고 정말 부모의 인생을 갈아 넣고, 막 힘들고, 도저히 할 자신이 없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날 희생하고 그렇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되게 두려움도 많고 그런 상황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누군가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한번 들게 되겠죠.

가끔 그 생각이 들었을 때 한번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주변 친구들하고도 얘기를 해보는 거죠. 

 

그래 뭐 세상에 참 자유롭고 아름답고 멋진 경험들이 많지만

그래도 나도 한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까 아이도 한번 키워보고 싶다라고 했을 때,

그럼 뭐가 필요하지?

한번 하나씩 생각을 해보는 거예요. 

내가 주변 사람들을 보니까 뭐 유모차도 필요하겠고 여러 가지 분율값도 필요하겠고 여러 가지 필요한데 

하나씩 생각하다 보니까 어쨌든 혼자 사는 것보다는 돈이 많이 들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어요.

학원비라든지 유치원비라든지 얼마 들지 모르겠지만,

요즘 영어 시험비가 한 달에 20~300만 원 한다는데 어쨌든 혼자 사는 것보다는 돈이 많이 든다는 건 확실해요.

그렇죠?

그러면 내가 배우자랑 어느 정도의 벌이는 있어야겠다.

근데 돈이 좀 많이 들어도 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어떻게 나라에서 지원도 해준다고 하니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더 생각해보자.

왜냐하면 우리 아이 낳아가지고 당장 유치원 주변 사람들 다 영어 유치원 보낸다는데 우리 아이는 안 보낼 수 있나?

우리 아이는 어떡하지? 

그럼 학교를 가면, 학원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벌써 일단 드는 생각에 경쟁도태에 대한 트라우마부터 생각이 떠오른다는 거죠.

여기서 1차 엄청난 장애물이 시작됩니다. 

이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이냐? 그 청년 세대의 입장에서

일단 보류하면서 지나가고,

 


 

두 번째는 요즘 시대에서 정말 수많은 청년 세대들이 이미 포기하고 있는 영역인데 이 주거지라는 문제가 있죠.

그래도 아이를 낳아서 키운다면 내가 지금은 오피스텔에 살고 있고 적당한 빌라에 살면서 이렇게 출퇴근하는 게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지금 아이를 낳아 키운다면 직장에서 너무 먼 지역은 안 될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도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돼가지고 넷플릭스 보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데,

적어도 좀 직장과 가까이 있는 지역이어야 될 것 같고,

그리고 너무 위험하지 않은 적당한 안전한 지역에 그래도 단지 내에 놀이터 정도라도 있거나 너무 욕심은 아닌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렇게 엄청난 욕심 갖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희망인데, 그 평범한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가 필요하냐?

최소한 10억 정도면 괜찮다.

그러면 그럼 10억이 도대체 무슨 돈이냐? 

맞벌이 부부가 한 달에 정말 열심히 허리띠 졸라매고 한 300만 원씩 모아요.

그럼 딱 한 30년 정도만 모으면 충분합니다. 그렇죠 

100세 시대에 3분의 1 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히 모을 수 있는 돈이에요.

 

수많은 버키시스트 vs 주거지 마련과 사교육 경쟁

 

그러니까 첫 번째로는 우리가 결혼 자체가 너무나 이제 매력 없는 선택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점 수많은 인생의 선택지들 중에서 두 번째로는 설령 결혼을 선택하고자 하더라도 거기에서 우리를 차단하고 있는 이런 벽들 이런 것들이 우리 어떤 청년 세대들에게 결혼을 대하는 문제, 특히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 굉장한 벽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사실상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또 고민을 하고 있는데, 역시 다시 SNS를 켰더니 너무나 가까운 현실들이 있어요.

차라리 내가 이 저 힘든 현실을 짊어질 바에야 당장 행복하게 떠날 수 있는 여행지들이 있고,

요즘 저가 비행도 유행이고 충분히 떠날 수 있고 친구들도 다 떠나 있네 나도 떠날 수 있는

이것들이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거죠.

오히려 명품이나 외제차를 할부로 산다는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합니다.

 

사회초년생들 되면 근데 아이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덜 사치예요.

그러니까 아이 키우는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을 1년 치 계산하면 외제차 매년 사도 돼요.

그러니까 이게 아이 키우는 것보다 훨씬 덜 사치인 삶이 더 가깝게 존재하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가 삶이라는 것이 선택한 거라고 했을 때,

이 선택지가 여러 개 있다고 했을 때,

당연히 어떤 선택지로 우리가 더 초대받는 느낌이 들어서 어떤 선택지로 흘러가게 되겠냐라는 거죠.

삶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근데 우리 시대에는 이미 삶이라는 것이 내가 문고리를 자꾸 열고 들어가는 선택지가 되었다는 겁니다.

근데 그 선택지는 문 앞에마다 사진이 붙어 있어요.

어떤 데는 지옥 경쟁 레이스 시작 어떤 문 앞에는 아름다운 그리스 사진이 붙어 있고, 

어떤 문 앞에는 딩크 부부가 매일 저녁마다 맥주 마시면서 이태원 바에 가는 사진이 붙어 있고, 

어떤 문 앞에는 내가 밤마다 편안하게 넷플릭스 보면서 게임할 수 있는 사진이 붙어 있는데

그 사진들이 각각 우리 삶을 다 초대하고 있어요.

 

청년들을 근데 그중에서 어떤 문고리를 잡을 것이냐?

일단 이거는 아니라는 거예요.

이 선택지는 아니라는 거죠. 이 이 힘든 선택지는 

나머지 선택지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들이 여러 개 있는데 그 문 한쪽 뒤편에는 결혼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 삶이 있는데 

거기에는 어머니 아버지와 저희 삼촌 큰아빠 큰어머니 이모가 다 계시죠.

그분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그분들의 사진이 있는 그 문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그 문을 열 수가 없어요.

더군다나 저 문을 열면 우리 아이는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그 도태 트라우마를 또 겪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저 문을 열 수가 없는 거죠. 

 

청년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수많은 이상들이 존재하는데, 삶의 꿈들이 존재하는데,

그 삶의 꿈들 중에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이 꿈이 가장 매력적인 것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된다는 바로 그 문제 앞에 서게 되는 겁니다.

 

결혼과 육아가 우리에게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로 다가와야 합니다

 

청년 세대들이 문을 열고 들어갈 그 각각의 문 뒤에 어떤 유토피아가 기다리고 있는지라고 했을 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바로 이 삶도 하나의 유토피아로서 청년들에게 어떤 꿈을 제공하느냐?

어떤 매력적인 초대를 하느냐라는 바로 그 문제에서 저는 접근해야 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시면 한번 궁금해지신 게 있으실 것 같아요.

당신은 아이를 낳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낳았나요?

이렇게 궁금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 제 이야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사실 저는 이제 아이가 있습니다.

제가 한 30대 초반에 이제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 내년에 학교 가는 요만한 아이가 있는데요.

제 주변에서도 이제 많은 제 여동생을 비롯해서, 제 주변에 사실 제 나이 제가 이제 87년생인데,

제 주변에 아직 결혼 안 하고 아이 안 낳은 사람이 더 많아요.

근데 많이 물어봐요. 

어떻게 아이를 가지게 됐냐고, 아이를 가지게 될 결심을 할 수가 있냐고, 이 삶에서 자기

너무 이제 두렵기도 하고 동시에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을 다 포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 막 이렇게 물어보기도 하는데

 

저는 사실 별로 할 말이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어쩌다 생겨가지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키우게 됐어.

그래서 사실 저희는 어떻게 보면 계획해서 아이를 생긴 게 아니었거든요.

어쩌다 보니 이제 결혼을 하면서 아이가 생겼고, 그래서 아이가 생겼으니까 키우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때 당시에 직장도 없었고, 수험생이었고, 공부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고생을 좀 많이 했어요.

근데 어떻게 보면 제가 아이를 선택한 건 아니고, 아이에게 선택을 당한 거였는데,

그렇게 선택을 당하고 봤는데

당연히 저는 그 이전에 아이 키우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아이 키우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건지 상상해 본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근데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서 아내랑 아이를 키우기 시작을 하는데,

어?! 이거는 내가 왜 몰랐지 싶을 정도의 뭔가 새로운 삶이 펼쳐지는 거예요.

이상하다 이런 이런 삶에 대해서는 내가 SNS 광고에서도 피드에서도 혹은 tv에서도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영화에서도 주로 아이 키우는 것의 지옥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를 하지..

이런 삶은 내가 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너무 신기하게 너무 좋은 거예요.

너무 사랑스럽고 너무 소중하고 너무 행복한 거죠.

힘든 것도 물론 있지만 (맨날 밤새서 아이 수유해야 되고) 힘든 것도 있었지만 힘든 것 이상으로 너무 좋은 거죠.

 

그래서 특히나 제가 막 아이가 어릴 때도 있지만 유치원 가고 어린이집 가고 할 때도 좋은 기억들이 굉장히 많은데, 

딱 주말 아침에 아이 손을 잡고 공원으로 나가는데 아이가 그런 걸 물어봐요.

"아빠 근데 '이상해꽃'이 쎄? '거북왕'이 쎄?"

이런 걸 물어보는 거예요.

근데 그 순간 갑자기 제 머릿속에 있던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하늘에 있는 하늘에 있는 그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이랑 아이 손 잡고 있는 이 순간밖에 안 남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순간 제가 어떤 걸 느꼈냐면

'삶은 이러라고 있는 거였구나.' 

그러니까 내가 맨날 회사 출퇴근하면서 뭔가 그 끝없는 돈 걱정과 현실 걱정 속에서 

수많은 어떤 소비할 것들을 쫓아다니면서 화려한 소비 생활 이런 것들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삶은 그냥 이렇게 내가 나에게 어느 날 도래한 가장 소중한 존재의 손을 잡고 그냥 걸어가면서 

내 위로 떨어진 햇빛과 바람을 느끼면서 

'아마 이상해꽃이 셀 거야'

이런 대답을 하라고 있는 것이었구나라고 하는 어떤 뭐랄까요?

약간 디톡스적인 경험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 순간을 굉장히 저는 체험을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수없이 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갯벌에 가잖아요. 

갯벌에 가면 제가 20대에는 단 한 번도 갯벌에 발을 들여다본 적이 없어요.

갯벌 가면 무조건 여자친구랑 같이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면서 갯벌을 쳐다보고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 올리고 이런 것만 하다가 

아이 태어나는 순간 무조건 보자마자 뛰어들어가는 거죠. 같이 

요즘에는 밤에도 뛰어들어갑니다. 여기 프레시 달고 

근데 아무튼 이제 들어가면 그렇게 3~4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가 없어요.

휴대폰 알람 누가 좋아요를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 아무 관심도 없고 

정말 온몸에 흙이 묻고 막 쫄딱 젖어버릴 정도로 그렇게 놀고 이런 순간들을 저는 선물 받으면서 

왜 이런 순간들에 대해서 난 한 번도 몰랐지?

내가 20대 때 그렇게 막 고상한 척하면서 문학책 막 몇 백 권씩 읽고 영화 몇백 편씩 보는데도 왜 몰랐지?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세계를 경험을 했고, 사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제가 그럼에도 유아라는 책까지 사살 출간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육아

 

제가 좀 육아 이야기를 좀 이렇게 하게 되는데 그 이전까지 제가 사실 책을 한 20권 가까이했었거든요.

그러면 북토크에서 아이들이 온 적이 거의 한 번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작가의 어떤 진정성 있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되는 자리에서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돌아다니면 방해되니까 아예 '출입 금지' 이런 게 주로 북토크인데 저는 그럼에도 육아라는 책을 내서 육아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이 안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아이와 함께하는 북토크를 열기 시작을 했습니다.

제가 가 가지고 막대기 풍선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어서 애들 막 만들어주고 애들 막 돌아다니는데 북토크 하고 

또 제가 좋아하는 주변에 육아하는 분들 초대해 가지고 대담자로 모시고 하는데, 그 오신 분들이 그런 얘기도 하셨어요.

자기 아이 낳고 북토크 처음 와본다고, 어떤 분들은 우시기도 하시더라고요.

젊은 부부가 오시기도 하고, 근데 애들이 막 돌아다니는데,

다른 자리 같았으면 바로 진행자분들 뛰쳐나와서 이러면 안 된다고 애 데리고 어딘가 사라져요.

그리고 이제 저 아이는 어디로? 이런 느낌이 근데 주로 엄마와 함께 사라지겠죠. 아빠나 

근데 그런 자리에서는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있고 서로 배려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오신 분들이 서로 다른 아이들을 돌봐줘요.

그래서 제 아이도 데리고 갔는데 오신 분들이 그냥 돌봐줬어요.

서로 돌봐주고 서로 간식 주고 놀면서 그 시간을 이렇게 만들어내는 거죠.

 

근데 제가 그때 뭘 느꼈냐면 

아이 키우는 삶은 많은 사람들이 또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경쟁하고 도태하고 서로 각자 도생하면서 돈 벌어서 아이 경쟁에다가 쓰는 거 아니었어?

근데 왜 이 육아 현장에서는 경쟁이나 도태나 이런 게 단 하나로 느껴지지 않지? (배제와 혐오가)

왜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서로를 배려하면서 아무도 불편하지 않고, 아이가 뛰어노는 것

다른 데 가면 아이 뛰어놀기만 해도 그 부모가 이제 거의 이제 죽일 사람 취급받으면서 쫓겨나야 되는데,

왜 여기서는 그렇지 않지?라는 것들을 느끼면서

'우리 사회가 뭔가를 상실했었구나'라는 걸 제가 항상 느꼈었는데요.

 

"그동안 우리는 육아하는 삶으로 초대하지 않았구나!"

 

그게 뭐였냐면, 우리 사회는 육아하는 삶을 초대한 적이 없구나.

초대하고 있지 않구나. 오히려 배제해 오고 있었구나.

어쩌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거는 이런 시간인가 보다.

어떻게 보면 이 이런 시공간이 우리 사회가 되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육아를 초대해야 되는 거구나.

우리 사회가 왜 아예 안 낳냐 돈 줄 테니까 낳아라. 근데 돈 줬는데도 왜 안 낳냐?

돈 더 줄게 한번 낳아봐 돈 더 줄 테니까 왜 돈을 이렇게 많이 주는데 안 낳아? 이런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저 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저 육아하는 삶을 이 사회에 들여오고 

이 사회 거대한 하나의 사회로서 이 하나의 공간에 초대를 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삶은 사실 초대받아서 가는 거였구나라는 것을 제가 느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육아를 떠올릴 때 지금의 청년 세대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게도 각자도생의 삶입니다.

아이 태어나봐야 독박 육아하고 우리 부부가 아니면 육아하고 양가 부모님이 안 도와주면 도와줄 사람 아무도 없고,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결해야 되고, 우리가 돈을 쏟아붓든지 뭐 애를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초등학교 의대반을 보내고, 어떤 학원을 보내든지, 우리가 다 해결해야 되고 우리가 각자 도생해야 되는구나라는 상상을 먼저 하게 돼요.

근데 저는 그 육아로 들어가는 그 문 팻말에 그 문 사진에 이런 말이 붙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육아, 혼자가 아닌 삶이 여기 있습니다.

 

육아로 들어오는 길은 각자도생의 혼자서 하는 그런 삶으로 들어오는 길이 아닙니다.
육아로 들어오는 길이 함께하는 삶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여기 혼자가 아닌 삶이 여기 있습니다

라는 그 시그널을 우리 사회가 줄 수 있다면,

사실 저는 이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되고 있는

어떤 저출생과 관련된 이런 문제들도 해결해 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을 여러분들께 전해드려 봅니다.

오늘 저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