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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700회 | 아이들, 선생님, 보호자는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까? | 박재연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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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선생님, 보호자는 어떻게 대화하면 좋을까요?

 

 

  • 제자들이 욕을 하고 째려보게 되면 이 마음이 힘들고 돌아서서 눈물도 흘리고 이럴 때 보호자들이 함께 달려들게 되면 더 이상 그 상처를 버텨내지 못하고 교직을 떠나거나 무너지기도 하죠.
  • 선생님 애들이 하는 행동인데 뭘 그렇게 신경 쓰세요? 그냥 잊어버리고 다른 학생들 생각하고 기운 내세요.
  • 이미 마음 안에 상처를 받게 되면요. 이런 말들이 잘 안 들어와요.

 

 

학교를 살리는 대화법 아이 문제로 선생님과 대화할 때 이렇게 말해보세요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박재현 소장입니다. 오늘 강연은 조금 걱정했어요.

이게 자칫하면 선생님들의 이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말이 되거나 

또 많은 보호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말이 돼서 

그 결과 또 저까지 상처를 받게 될까 봐 제가 지금까지 세바시 나오면서 가장 주저했고 또 생각이 많았던 주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아주 큽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또 꽃처럼 피어나고 별처럼 빛나길 바랍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의 보호자는 자기 아이들이 사랑받는 아이가 되기를 희망할 거예요.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 가기 위해서는 보호자 선생님 또 각자의 노력과 때에 따라서는 양자 간의 협력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그간 대화를 훈련하고 중재해 오면서 알게 되어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 선생님 보호자

 

 

오늘 대상에 대한 용어는 학생 교사, 부모 대신에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 엄마 아빠 대신 보호자로 하겠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엄마 아빠하고 살지 않는 아이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의 학습권과 선생님의 교육권, 보호자의 양육권을 어떻게 조화롭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해는

역할에 앞서서 사람 자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인간은 어떤 종들과 달리 철저하게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생존할 수 있는 아주 연약한 개체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적 생존만이 그런 게 아니라 정서적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 취약함이 개인적 기질이나 이제 성격에 따라서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상처를 받으면 자기 존재의 결핍이 생기기 때문에 건강하게 대처하지 못하게 돼요.

그러니까 평소에 마음이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많은 일들도 그게 잘 안 된다는 말이죠.

아이들을 한번 보면 가정에서 어른들이 매일 다투고 소리를 질러대면 아이들이 어때요?

그러니까 정서적으로 불안함과 두려움도 갖게 되고, 내적으로는 많은 왜곡성을 갖게 될 수 있죠.

보호자는 또 어른이라도 어떨까요? 

자신들의 양육 방식이나 자격에 대해서 주변에서 계속 비난하고 나무라게 되면 내가 스스로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흔들리고 우울해집니다.

 

 

 

선생님을 한번 볼까요? 

제자들이 욕을 하고 째려보게 되면 이 마음이 힘들고 돌아서서 눈물도 흘리고 자신이 선택한 직업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보호자들이 함께 달려들게 되면 더 이상 그 상처를 버텨내지 못하고 교직을 떠나거나 무너지기도 하죠. 우리는 어쩌면 이제 제삼자로서는 그들한테 아주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요.

 

야 부모님들 다 다퉈, 니가 위축될 필요 없어 어른들 다 다퉈.

어머님, 아버님 누구나 다 자기가 옳다고 할 뿐 남 말 너무 듣지 마세요.

선생님 애들이 하는 행동인데 뭘 그렇게 신경 쓰세요?

그냥 잊어버리고 다른 학생들 생각하고 기운 내세요.

 

그러나 이미 마음 안에 상처를 받게 되면은요. 이런 말들이 잘 안 들어와요.

그 상처가 회복되고 다시 치유돼서 건강해지기까지에는 충분한 시간, 적절한 개입, 주변의 사랑이 필수적으로 요구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이 개개인의 상처가 그대로 곪고 충분히 애도되지 못해서 비관적이고 또 저항적으로도 남을 수 있어요.

 

병리적 비탄 현상

 

우리는 이것을 병리적 비탄 현상이라고 하고, 

우리나라 사회는 지금 이런 병리적 비탄 현상이 만연한 외상의 국가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이 중심에 두고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보호자들의 말과 행동을 아주 잘 관찰하고 놀랍도록 모델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이슈가 되는 소수의 보호자들이 그런 폭력적 행동들이 정말 큰 염려가 되는 이유 역시 단순히 그분들의 행동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갈등을 대하는 보호자들의 그릇된 태도를 보고 배우는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이죠.

 

여러분 

학교는 이미 다 자란 성인이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대가를 받는 직장이 아니라 

그런 역량을 키워가기 위해서 배우고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성장하는 중간지대인 곳입니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런 아이들의 제2의 보호자가 되어서 격려하고 이끌어가면서 가르치는 분들이죠.

그것은 직장과 학교의 가장 큰 차이일 겁니다.

 

선생님과 보호자의 이해와 도움을 통해

 

아이들은 그곳에서 내가 아주 특별하고 최고가 되어야 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조금의 부당함도 견디지 못하는 경험을 하는 곳이 아니라 

 

성인이 되었을 때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실수하고 실패해도 격려받았던 경험, 

큰 수행력이 없어도 그저 사랑받고 귀여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경험, 

조건 없이 그냥 노는 데도 서로 좋아할 수 있었던 친구들과의 경험,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행동을 다소 하더라도,

포기되는 대상이 아니라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 장소가 돼야 됩니다.

 

기회를 가져야 하는 곳이 바로 학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금 당장은 행동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선생님과 보호자의 이해와 도움을 통해서 이 아이가 다 자란 성인이 되었을 때 건강한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하는 곳이 그게 바로 학교입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아이들이 보호자를 보면서 자기 행동을 바로잡고 수정할 수 있으려면 선생님 이전에 사실은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보호자의 모범된 행동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오늘은 그런 소수의 폭력적인 보호자가 아니라 대다수의 보호자들, 그러니까 자녀를 위해서 선생님과 대화하면서 이 갈등을 어떻게 조율하면 우리 아이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는 고민하는 그런 멋진 보호자들을 위한 도움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 연결의 대화에서 훈련을 받던 한 어머니가 계셨는데요.

이분이 자기 어린 시절에 왕따 경험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게 잘 해결되지 않은 채 어른이 되었고 또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핵심 감정 안에는 큰 불안과 두려움을 갖고 살고 계셨는데요.

이분이 이제 아이들이 여러 명이 있었는데 그 첫째 아이가 저학년일 때 학부모 상담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던 거예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제 선생님께서는 50대 후반에 아주 경력이 많으셨던 선생님이셨고요.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을 자꾸 뚝뚝 건드려가지고는 이제 다른 학부모들한테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은 상황에서 면담을 가야 되는 심정이었기 때문에 아주 복잡했어요.

 

걱정은 이런 거였어요.

그러니까 우리 아이가 나처럼 친구들과 문제 생기고 선생님한테 사랑도 못 받으면 어떡하지?

엄마들이 애들 일로 왜 저렇게 극성이지? 좀 이해해 주면 안 되나?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이 야속한 마음도 들고 한편으로는 선생님 만날 생각이 너무 위축되기도 해 가지고 감정이 이제 막 널을 뛰는 거죠.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를 같이 나눠봤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어땠을까요?

 

선생님께서도 많은 아이들 살피고 교육하시려면 무척 지치고 곤란하실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엄마지만 여기 오기까지 마음이 참 불안했습니다.

제 아이가 선생님께 사랑도 받고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나면 너무 좋겠는데,

가정에서 제가 어떻게 도우면 그게 가능할지 선생님과 의논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공감, 공유

 

여러분 대화에서 여기의 핵심은 두 가지가 됩니다.

첫 번째는 뭐냐면 선생님의 입장을 한 번만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해 드리는 태도입니다.

두 번째는 아이를 위해서 서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공유해 보는 기술적 방법입니다.

 

이분은 굉장히 결과가 좋았습니다. 

굉장히 경험이 풍부했던 선생님께서 이 엄마의 불안도 이해해 주셨고, 아이의 장점도 말해주시고,

여전히 아이를 사랑한다고 보호자를 안심시켜 주셨음은 물론이고요.

같이 노력해 보자고 하시면서 일단 친구들에게 제안해보고 싶은 게 있을 때는 행동하기 전에 꼭 묻고 친구들 몸에 손을 대지 않기로 그렇게 가정에서도 노력해 달라 그리고 학교에서 자신이 그렇게 가르칠 수 있도록 힘을 실어달라라고 부탁하시고 격려해 보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해와 존중

 

 

저는 보호자와 선생님의 이 신뢰 관계는 이해와 존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형성된 많은 관계를 보기도 합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실까요? 

우리 아이가 보호자랑 선생님의 아주 공고한 신뢰 안에서 자신을 위해 도우려는 에너지로 자라 갈 수 있다면 그건 아마 대한민국 모든 보호자의 바람일 겁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을 믿고 힘을 실어주고 같이 의논하고 가정과 학교라는 이 장소에서 동시에 노력해야 되겠죠.

왜냐하면 어떤 아이도 포기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다음과 같이 진심이 담기고 존중하는 말은 선생님의 마음에 힘이 되고 우리 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어지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이런 부분이 가능해졌어요.
  • 선생님 제가 이런 게 좀 필요합니다. 이런 것을 위해서 해주실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 선생님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을 제가 이해합니다. 저도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겠습니다. 

이런 세 가지 종류의 말들은 선생님을 존중하는 대화를 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많은 보호자분들이 아이들이 볼 수 있게 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다음은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평소 오래전부터 저희는 그 선생님들과 대화 훈련을 많이 진행해 왔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지금 현재 선생님들께서 느끼시는 무력함에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선생님들의 이런 비보를 접하고 여러 자료를 연구하면서 가슴이 무척 괴로웠습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배움터지만 선생님들에게는 직장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직장이라는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힘들죠.

시스템적인 개선도 있어야 되고 의사결정자들의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조직 내 개개인의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선생님들의 권리 회복에 대한 시스템의 변화와 또 학교 내 지도부의 노력이 가장 우선되겠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 개개인의 노력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에릭 에릭슨

 

에리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가 있었죠. 

그러니까 부모 다음으로 중요한 대상을 교사라고 언급할 만큼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특히 가정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더 절대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교사에 대한 직업적 성찰이 시스템의 변화나 회복에 앞서서 고민하고 변화해 보셔야 하는 의무가 남겨진다고 봅니다.

 

 

가슴 아팠던 한 장면이 있었어요. 

물론 아주 오래된 얘기지만 제가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일인데요.

수업시간에 한 선생님이 자신의 자녀 자랑을 계속하셨어요.

자기 자녀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계속 얘기하고 계셨는데, 제 친구 한 명이 제 앞에 앉았던 친구가 이제 고개를 숙이고 교과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딱딱한 출석부로 교과서를 왜 보냐면서 자기가 말하는데 교과서를 왜 보냐면서 그것을 모로 세워가지고 수업이 끝날 때까지 제 친구의 머리를 때린 적이 있었어요.

때리다가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나니까 또 화가 나네 하면서 또 때리시고, 이걸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 그 1시간을 맞히신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일부 보호자들과 마찬가지로 일부 선생님들의 모습 속에서도 아이들을 향한 기본적인 존중감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례는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의 인권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슬픈 역사 속을 지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관찰에는 균형감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자신들이 감내해야 되는 많은 것들을 뒤로하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 하나의 관찰 사례인데요. 

 

 

초등학교 1학년인 한 아이가 선생님한테 이렇게 지나가면서 말을 했어요.

선생님 우리 엄마가요 아빠랑 선생님 얘기할 때 선생님 걔라 그래요. 그러니까 걔, 쟤 뭐 이런 말 있잖아요.

이 아이의 슬픈 고자질은 그 선생님의 가슴에 뭘 남겼을까요?

선생님께서는 마음이 굉장히 괴로우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그랬구나. 그런데 우리 누구누구는 선생님한테 이렇게 예쁘게 선생님이라고 해줘서 고맙고 기쁘네'

라고 하시는 말씀을 제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예 보호자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선생님이, 그 보호자의 아이를 이렇게 성숙하게 대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히 그 선생님의 인간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교육자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제 어린 시절에 사랑의 손길을 내어주었던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이 너무 많아요.

지금 와서 요즘 우리 사회의 교권과 관련돼서 이 기억을 다시 분석해 보면 

분명 선생님들이 갖고 계셨던 자율적 교권이 살아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초등학교 고학년 때 '너네 엄마 새엄마냐?'라고 놀리던 이제 같은 반 아이 앞에서 제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까 선생님께서 다가오셨어요. 그래서 이제 그게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면서 부모님 일로 친구를 놀리는 건 바르지 못한 거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말하시고 사과를 시켜주셨던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분명 지금 어른으로서 그 아이의 행동이 잘못이라는 걸 알지만, 과연 요즘 선생님이라면 그 친구에게 사과를 시킬 수 있었을까요?

제가 정말 공부를 못했어요. 

중3 때 그런 저를 걱정해서 공부를 아주 잘했던 친구 옆에 저를 앉혀주셨던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과연 지금이라면, 제 수치심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아동학대죄로 고발당할 수 있을까 봐 주저하지 않으셨을까요?

한 번은 제가 고등학교 때 굉장히 지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는데요.

그때 교무실에서 제 손을 잡고 한 목사님의 이렇게 테이프를 주시면서 제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셨던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계셨어요. 전 그때 종교가 없었거든요. 지금이라면 이게 종교의 강요로 고발당할까 봐 그 사랑을 거두지 않으셨을까요?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잘못을 바로잡아주시고, 또 힘든 부분을 도와주시던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땠을까?

아직 현장에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그런 마음으로 계십니다.

그러나 그 마음이 현실로 적용돼서 행동으로 나타나려면 선생님들께 힘이 있어야 돼요.

또한 선생님들께서도 아이들을 존중하면서도 잘 이끌기 위한 대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선생님으로 곧 20년이 넘는 교직 생활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저희와 같이 대화 공부를 10년 이상 꾸준히 해오셨던 분이었어요.

한 아이가 이제 수업시간에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큰 소리를 내서 수업에 방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이 침해될 때, 선생님은 그 아이한테 단 한 번도 너 정말 문제가 있다 공부 안 할 거면 그냥 자 혹은 나가 있어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대요.

그 대신 그분이 하셨던 말은

'얘야 네가 왜 수업시간에 그런 소리를 내고 크게 움직이는지 선생님이 정말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선생님도 수업을 잘 진행하고 싶어 언제 우리 대화 좀 할까?'

선생님의 이 고백은 이 아이에게 다가가고자 하였을 때 이 시작이 수월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 아이로부터 자기가 이렇게 해야만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고백을 들을 수가 있었고요.

같이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여러분 아이들에게 이런 대화가 모두 통하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선생님의 태도에서 우리가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첫 번째는 아이를 비난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전하고 계신다는 거예요.

두 번째는 처벌로 행동하지 않으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에 수치심 대신 자신에 대한 반성과 행동의 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남겨주고 있다는 겁니다.

가정에서도 포기한 많은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든 학업의 끈을 이어가게 하려는 선생님들을 보아왔던 저로서는 

이번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괴로워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래서 많은 보호자분들이 선생님들께 힘을 실어드리고 그 노력을 인정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또한 그 소수의 보호자들이 행동했던 폭언, 폭행, 모욕적인 행동 앞에서 더 이상 선생님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건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는 선생님의 생명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하고 선생님이라는 직업 또한 너무나 귀합니다.

 

이현우

 

얼마 전에 김현정의 뉴스쇼에 침샘암이라고 알려진 이하선암의 4기를 진단받고 1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공부해서 서울대 역사학부에 입학했던 그 이현우 군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이 친구가 마지막에 자기가 먼저 제가 감사할 분들이 있는데 말할 시간을 줄 수 있냐면서 그 앵커님한테 물어봤어요.

그때 이 친구가 언급했던 모든 분들이 선생님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초콜릿을 주고 운동장을 같이 돌아준 담임 선생님,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병원에 올 수 없이 홀로 수술실을 들어가야 됐을 때 독서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만 되뇌면서 들어갔다고, 

이 외에도 다른 과목 선생님들을 하나하나 언급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희망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더 많은 아이들이 자라서 어느 날 이제 성인이 되어 이 선생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리며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많은 보호자들이 표현하지 못해도 마음으로 선생님에 대한 깊은 감사를 지니고 있음도 선생님들께서 꼭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힘이 실리는 그날까지 대한민국의 자로 이 자리해 주시면 참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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