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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세바시 24회 이 땅에 더 많은 두리반을 위해 | 유채림 두리반 주인


강연 소개 : 홍대앞 작은 용산이라 불리던 두리반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여온 지 2년여. 결국 두리반은 거대 개발 자본에 맞선 싸움에서 조그만 승리를 얻어 냈습니다. 철거민들, 시민운동가, 그리고 독립 음악인들이 함께 했던 두리반의 이야기 이 땅의 또 다른 두리반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게시일: 2011. 7. 26.




안녕하세요 유채림입니다 

이게 15분 이렇게 한정되어 있는거 저는 첫 경험입니다 

굉장히 낯설어서 버벅거릴 텐데요 

이야기 시작하지요 


대한민국은 사막입니다 

영상 63도를 넘나드는 이 냉혹한 사막 바닥에서 

모두들 살아남기 위해서 하나의 우물을 파서 거기서 물을 길어서

네 식구, 다섯식구 또는 한 사람 이렇게 먹고 살아가는 곳 그게 대한민국 이죠 

제 아네도 그 홍대 입구 앞에다가 두리반이라는 칼국수 전문점 이라는 우물을 하나 팠습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네 식구가 오붓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2년 10개월 만에 그 두리반 일대가 재개발 된다는 얘기가 있고 

곧바로 어느날 명도 소송 장이 날아 왔습니다 

두리반 나가라는 얘기지요 


그러니깐 모든 돈을 쏟아 붇고 그것으로 모자라서 대출까지 받아서 

이 두리반 영업을 해 왔는데 하루 아침에 쫓겨나야 된다는거 감내할 수가 없었죠 

그러니까 제 아네가 이 인근에다가 다시 두리반 이거 반만한 거라도 영업을 할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줘야만 우리는 나갈 수가 있다 

그래야지 살아갈 수 있을거 아니냐 그랬는데 

건설사는 1000개, 10000개, 10만개에 우물을 차지 할 지언정 

세입자에게는 단 하나의 우물도 마련해 줄 수가 없다고 

이사 비용 300만원 그러니깐 물 한 바가지 주면서 나가라고 했고 

우리는 끝내 못 나간다고 버티다가 


그 2009년 12월 24일날 5톤 트럭 두대와 용역 30여명이 몰려와서 두리반의 모든 집기를 드러내고 

마지막으로 제 아내를 길바닥으로 패대기 쳤죠 


그래 너무나 억울하고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이대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다 싶었지만 

저는 이제 용산 남일당이 떠 오르고 


용산 남일당

용산4구역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민들이 망루에서 시위하다가

2009년 1월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했던 곳


또 제가 한 교단에 출판 부장으로 일을 하고 소설도 5번이나 낸 그래도 명색이 작간데 

어떻게 철거 농성을 비참한 농성을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엄두가 안나서 말렸는데 


제 아네는 그러더라구요 

'나 이제 없는 걸로 쳐 

이대로 집에 들어가서 나는 이 응어리, 분노, 원망 이런 것 갖고 살림하면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리고서 그 다음 날 밤에 급기야 두리반을 철판을 뜯고 다시 들어갔습니다 


저는 명색이 가장이니깐 겁도 나고 그랬지만 제 아네 보호할려고 줄래 줄래 이제 따라 들어갔어요 

그래서 농성을 이제 시작하게 됐는데 


아 정말 그 2009년 12월 24일 이후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고 너무나 무서웠어요 

밤에 칼 바람이 불어서 철판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면 용역들이 대기하고 있는게 아닌가 

용산 같은 사태가 두리반에서 또 벌어지는 건 아닌가 

정말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도 공포에 질리게 되고 


한 일주일 쯤 지났을 때 우리 한국작가회의 대변인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마지막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선배님 작가는 어떤 식으로 싸울까요' 

그래서 뭘 어떤 식으로 싸워? 그랬더니 

'작가는 작가의 방식으로 싸우겠죠' 

그런 얘기를 마지막으로 건내고 이제 나갔습니다 

근데 그 소리가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저는 그때까지 철거민으로서 부끄럽고 공포감에만 휩쌓여 있었는데 

그 한마디에 

'맞아 내가 작가 였지 

작가로서 이 철거 당한 억울함을 토로 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호흥해 줄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언론이나 잡지나 이렇게 기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지역 주민, 지역에 있는 진보정당 당원들 

또 제 모교 동문들 그리고 심지어 다큐멘터리 상영하는 그 감독들

그리고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까지 두리반과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두리반에서 이렇게 공연, 영화상영 또 무슨 그 월요일 하늘 지붕 음악회 해서 또 다른 공연, 칼국수 음악회 해서 금요일 날 또 다른 공연 또 촛불을 켜는 그리스도인 제가 회원이라서 그 그리스도인들이 와서 또 목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매일 매일 문화행사가 이렇게 벌어지게 됐는데 

가장 두리반에 중심축이 돼서 두리반에 문화 예술 운동을 이끌어 간 것이 토요일 날 인디밴드들이 공연하는 토요일 두리반 사막에 우물 두리반 공연이거든요 

근데 이쯤에서 우리 인디밴드들 중에서 두리반을 초기부터 마지막까지 쭉 지켜왔던 한밭에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보겠습니다 

(박수)


마네킨이라는 노래입니다 



마네킨

노래 : 한밭


나는 당신이 좋아요

당신은 무한히 밝아요


내가 은행을 털어도

당신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내 안에 혁명은 없어요

당신과 걷고만 싶네요


내가 무슨 말을 지껄여도 

당신은 조용히 웃고 말겠죠


나는 당신이 좋아요

하지만 작업은 아니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당신의 진심을 알 수 없어요 난


두리반

그대는 사막의 우물이 되었고 


두리만 

그대는 승리의 우물이 되었죠


나는 두리반 좋아요

두리반은 무한히 밝아요


내가 은행을 털어도

당신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한밭 :

내 감사합니다


두리반에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두리반에 와서 공연을 하고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 많이 했습니다 두리반을 위해서 

끝까지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 전하고요 

마지막으로 

하나님 사랑합니다 


유채림 : 

이 마네킹에는 원래는 사막의 우물 두리반 이런 가사는 없습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넣었는데 

그 인디밴드들의 모습이 여실히 이렇게 드러나는 장면이 아닌가 싶어요 

그 즉흥적으로 그 분위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사를 바꾸고 

그 리듬도 바꿔가면서 자기 음악도 그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해 나가죠 


근데 어쨌거나 이렇게 음악 하는 친구들이 함께 하면서 

두리반이 문화예술공간으로 이렇게 더욱 활성화되고 

끊임없이 더 많은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연대 하게 되고 

그렇게 되니까 건설사가 이젠 폭력적으로 두리반 사태를 해결할 수 없겠다 싶었는지 

아주 비열하게도 7월 21일 날 두리반 전기를 끊어 버립니다 

그 낮 기온이 36도를 넘나들고 밤에도 열대야라서 푹푹 찌는데 환장하게 더라구요 

제가 계속 그렇게 나가니까 


제 아네가 안 되겠다 싶었더니 한밭 마포구청을 찾아 갔습니다 

그래 가지고 도시계획과에 가서 

'너네가 두리반 일대를 지구단위계획 지역으로 발표해서 

두리반이 이렇게 농성을 하는 참사가 이러나지 않았냐 

이거는 마포구청이 해결해야 될 문제인데 

일단은 단전 문제라도 해결해 다오'

그리고서 그때부터 농성을 시작을 했는데 

일주일 동안 구청 밖으로 나오질 않고 구청 안에서 농성을 한 끝에 

급기야 이제 구청장이 그 ... 경유 발전기를 보내 주겠다 하고 인제 농성을 풀고 돌아오게됐죠 


그런데 위기 때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그런 아주 험난한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두리반과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불킨 낭독회 뭐 또 두리반 문화포럼 그리고 국제 영어 강좌 이런 행사를 치루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제 두리반과 함께 하게 됐고 

그렇게 돼서 그런지 그 지난해 12월에 급기야 철거 용역업체에서 두리반을 찾아 왔습니다 

처음이었어요 

직접 그 건설사 쪽에서 보낸 누군가와 접촉한 거는 

근데 그네들이 찾아와서 물어보더라고요 

'우리 농성 끝내자' '협상 하자'

그렇게 얘기를 하고 

'얼마면 되느냐'

이런 걸 묻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얼마를 원하는게 아니다 

니네가 1000개, 10000개 울물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내 우물을 뺐지 않았냐 

인근 어딘가에 우물을 팔 수 있도록 그걸 책임져 다오

그러면 우리는 모든걸 농성을 정리 할 수 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쭉 ~ 겪으면서 막판에는 보상을 해 주겠다 그러길래 

우리는 보상을 원하는게 아니다 배상을 원한다 

보상에는 시해적 의미가 담겨 있거든요 

마치 힘이 있는 자가 힘 없는자에게 베푼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리는 너희들한테 피해만 입었지 너희한테 그렇기 때문에 그 피해만큼 채워 달라는 것인지 절대 보상은 필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이제 따지고 들어서 끝내 보상 대신 배상이라는 문구를 쓰고 

그리고 홍대 앞에 사막에 우물 두리반을 다시 열 수 있도록 이렇게 합의를 하게 되었죠 


그게 지난 6월 8일 이였습니다 

전기가 끊긴지는 324 일 만이였고 

두리반이 농성을 시작한지는 531일 만 이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마포구청에서 그 건설사와 우리 두리반 식구들이 함께 합의문에 조이 하고 나서 그 기쁨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 겁니다 

그 얼마나 기적 같은 

단 한 집이 대형건설사와 싸워서 이긴 

그리고 설령 50집 100집이 싸우더라도 연전연패하는게 철거민들의 현실인데 

얼마나 기적적인 일이 였으면 



경향신문에서 일면으로 우리 두리반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해 줬습니다 

(박수)


지난달 그래서 25일 날은 두리반에서 그 마지막 축제를 열었는데 

그때 CBS 측에서 그 인터뷰를 따갔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러면 그 인터뷰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CBS 인터뷰 영상시작]


김강기명(28)

여러 청년과 음악가들이 같이 점거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잔반(19)

학교를 안다니고 계속 돌아다니면서 공부하고 싶은 것도 하고 놀고 싶은 것도 했는데 

두리반에서 배웠던 것이 학교에서 배웠던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아요


한재희(52)

친구가 일단 큰일을 해내고 고생을 끝냈다는 것 자체가 일단 큰 위안이 되는 그런 곳입니다


김수진(30)

삶에 대한 희망이라든지 좋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 어떤 힘든 상황이어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작가님과 사장님께 너무 많이 배워서 제가 훨씬 많이 큰 것 같습니다

두리반은 영원히 (제가) 빚을 갚아나가야 할 공간입니다


안종녀 두리반 주인

솔직히 굉장히 홀가분하긴 한데 기쁘거나 행복한 마음은 없어요

두리반이 해결이 됐다고 해서 다른 철거 지역이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너무나 답답하고

앞으로 개발을 점차적으로 하되 살고 있는 사람들의 터전을 빼앗는 무지막지한 개발은 하지 않고 

그들의 생계 터전을 그대로 만들어주고 주거를 옮겨 주는 그런 개발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박수)


건설사에게 

두리반은 분명히 

전복적인 공간입니다 


그렇지만 

역사에게 

두리반은 

기록이 될것이고


이 땅에 ... (아 제가 ... )

자신에 생계 터전을 잃고 여전히 비참하게 싸우고 있을

이 땅의 철거민들에게 두리반은 위안이(위로가)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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