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싸우는 대신 내가 선택한 길 | 영제이 댄서, 저스트절크 리더 @JustJerkCrew @JustJerkDanceAcademy| 리더십 성장 | 세바시 1609회
대한민국 전 세계 다 우승했고요.
경제적으로 그렇게 좋은 형편은 아니었어요. 제가
제가 첫 월급을 받았을 때가 오만 원이었습니다.
엄마랑 해줘 하고 엄마가 꺼져 이러고 그 우울감은 말이 안 됐었고
가지고 있는 걸 다 내팽개쳐진 느낌이었어요.
나 혼자 꼭 성공해야지 이러면 절대 성공 못 하겠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세 줄 요약
- 저스절크 리더 영재가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춤에 대한 열정으로 다양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댄서가 된 성장 이야기.
- 팀을 만들고 키워가며 멤버들과의 관계, 외로움, 그리고 함께 성장하며 배운 점을 진솔하게 나눔.
- **"혼자 성공하려 하지 말고,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기적이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댄서이자 저스트절크의 리더 영제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 춤이 보실 때는 이제 재미있으시잖아요.
근데 진짜 유독 저스절크 스타일이 많이 힘들어요.
동작을 많이 넣어야 돼서 단거리 달리기 진짜 많이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조금만 이해를 부탁드리고, 저희 팀의 간단한 소개를 한번 해볼게요.
대한민국 아시아 전 세계 다 우승했고요.
올림픽 무대까지 올라가서 이제 위시 파이어라는 저스크의 단독 무대를 개막식 때 보여드릴 수 있었고
아마 댄서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최초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고
최근에 스트리 맨 파이터 우승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댄서들은 보통 얼마를 받을까요?
공연을 하거나 월급을 받을 때 궁금하지 않으세요? 얼마를 받을까요?
너무 대단한 거 아니에요? 어 마이가
이제 저 같은 경우는 진짜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인데 어 제가 첫 월급을 받았을 때가 5만 원이었습니다.
네 월급이 5만 원
어마이가 근데 저는 굉장히 좋았어요.
왜냐면은 이제 힘든 시기라는 게 있잖아요.
댄서들이건 아니 다른 직업을 하시는 분 들 이건 다 힘든 시기가 분명히 있을 거고
저는 다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던 것보다 이제 춤으로 그 5만 원을 벌었던 게 더 소중했었습니다. 재밌잖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로 첫 돈을 벌었던 게 5만 원
그래 뭐 다음에 10만 원 대고 100만 원 되고 천만 원 되면 되지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과거로 좀 거슬러 올라가면 경제적으로 그렇게 좋은 형편은 아니었어요. 제가
엄마가 이제 춤출 거면 나 가 새끼야 이러셨어요. 진짜로
엄마는 제가 운동을 잘 했으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운동을 주로 하는 게 어떠냐 지금 하는 운동이 아니어도 다른 운동으로 해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제가 복싱을 했었는데 잘했어요. 잘했었고, 전적도 좋았었고, 성적이 되게 좋았어요.
메달을 다 따고 되게 성적이 좋아서 이제 엄마는 그쪽으로 갈 줄 알았는데 개인 사정으로 이제 못 하게 됐죠.
그만두게 됐을 때, 우울감이 굉장히 컸어요. 그때
이거는 뭐 인터뷰 때 다 했던 얘기인데,
근데 그때 느꼈던 그 뭐랄까요. 모든 것을 잃었던 외로움이랄까요. 그러니까 가지고 있는 걸 내팽개쳐진 느낌이었어요.
정말, 그것도 한 10년 했어요. 복싱도 한 10년을 했는데, 한 번에 그만두려니까 그 우울감은 말이 안 됐었고,
이제 주변 친구들이 걱정을 되게 많이 해줬어요.
그때 이제 같이 항상 다니던 친구들이 저까지 4명이 있었어요.
한 명은 지금도 가수예요. 그때도 가수였고,
가수고 또 한 명은 축구 선수였고 한 명은 드럼을 치는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저한테 장난으로 야 영재야 우리 파트 중에 춤이 빠졌다. 네가 춤을 맡아라.
이렇게 장난스레 던진 말에 제가 어릴 때부터 춤에 진짜 관심이 있었거든요.
비형을 너무 좋아해서 정말 진짜입니다. 이건
비형을 너무 좋아해가지고 아 그러면 진짜 한번 춤을 해볼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장난스레 이제 생각했던 걸 엄마한테 한번 말씀을 드려봤어요.
엄마 나 혹시 춤춰도 될까?
이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그래 뭐 너 좀 우울하니까 한 달만 다녀봐라.
이렇게 권유를 해 주셔서 그때 학원 등록비를 처음 받아봤어요.
그래서 이제 학원을 갔는데 딱 춤을 췄는데 심장이 너무 떨리더라고요.
그러니까 몸 쓰는 걸 좋아했는데 음악이 나오고 거기에 맞춰서 이제 동작을 이제 하나씩 이렇게 배워봤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게다가 신나는 음악에도 박자를 맞추니까 이게 내 길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한 달을 아주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엄마한테 등록비 다시 얻을 수 있을까요? 했더니, 너 한 달만 다닌다며? 이렇게 시작되신 거죠.
그때 엄마랑 전쟁을 치렀습니다.
네 엄마랑 해줘 하고, 엄마가 꺼져 이러고, 네 네 엄마랑 아들은 이제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이제 엄마가 절대 안 돼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을 했고,
낮에는 이제 중식집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했어요.
그때 당시 시급이 2,800원이었는데, 지금하고 다르죠. 네 지금 많이 올랐어요.
근데 거기 중식당에서는 7천 원 많이 준 거예요. 진짜로 7천 원을 줬고,
새벽에 이렇게 공연장 가면 뼈대 있잖아요.
공연 뼈대 설치하는 그 물건을 나르는 일을 새벽에 콘서트장에서 일을 했었어요.
그건 1만원 아르바이트비 다 모아서 등록비 내고, 차비하고, 식사비 하고
그래서 그렇게 낮과 저녁을 병행하면서 학교도 자연스럽게 땡땡이를 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잘못됐죠. 잘못됐어요. 근데 그 정도로 뭔가 절실했어요.
꿈을 잃은 아이한테 소년이었잖아요. 저는 그때 당시에
근데 너무 절박함이 오다 보니까 이걸로 가야지 라는 그냥 앞밖에 보이지 않더라고요.
여러분들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직업이든 어떤 곳이든 외롭지 않아요?
저는 좀 그런 걸 느꼈거든요.
내 옆에 가족이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고, 직장에 내 동료가 있어도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어도 외로울 때가 있잖아요.
근데, 학원을 가는 제 모습이 너무 외롭더라고요.
저는 이 외로움을 느껴서 팀을 만들었고, 그리고 이 사람들이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그 마음을 충족을 시켰거든요.
근데 저스셜크가 그 험란한 댄스 신이라고 할게요.
험란한 댄스 신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독하게 했어야 됐어요.
댄스 신에서 이 코리오그래피라는 지금 스타일 있잖아요.
이렇게 안무로서 퍼포먼스를 하고
지금 저 때의 사진은 이제 제가 힙합 베트를 나갔을 근데 저 때도 힙합을 하는 사람 혹은 뭐 팝핑을 하는 사람 하우스를 하는 사람 그러니까 장르로서 이렇게 인정받으려고 다들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안무를 하는 사람들이 대회에 나왔다.
갑자기 왕따를 당하더라고요. 저희가 그 댄스 신에서 야 저게 뭐야 저게 무슨 춤이야 저 저런 건 춤도 아니야.
약간 이런 말을
이유도 없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듣게 되더라고요.
근데 그들을 이해하자면 그들도 힘든 생활을 다 하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갑자기 안무라는 스타일이 유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밥그릇 싸움을 하듯이 비쳐 버리니까 그렇게 경계를 하지 않았나 그래서 준호랑 이제 외로운 마음에 좀 화가 많이 났어요.
어렸을 때니까 화가 많이 나서 이기고 싶어서 멤버들을 더 영입을 한 거였죠.
우리 둘이서는 힘들겠다 뭔가 인원을 더 모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게 이제 에스원 형 그리고 이제 경민이라는 친구 그다음에 엠준 이렇게 다섯 명이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
저희 경민이가 막내였는데 그 친구가 팀을 나가게 됐어요.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쳤는데 형들한테 이제 뭔가 미안하니까 말을 못 하고 소가리를 했던 거더라고요.
눈으로는 알고 그러니까 보여지는 모습에서 좀 느꼈어요.
아 저 녀석이 많이 힘들구나.
근데 제가 경민이를 외롭게 만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로워하지 않으려고, 시작했던 일이었는데,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어버린 상황이 돼 버린 거죠.
거기서도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경민이가 나가겠다고 얘기를 한 순간에 너무 서운했어요.
그러니까 힘들다라는 표현을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를 해줬더라면, 같이 이렇게 방법을 찾았을 텐데, 아이의 결정을 미리 하고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형 저 그만하겠다. 근데 너무 속상했어요. 그때
너무 속상했고 우울했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이제 보내주게 됐고, 사실 그 녀석 이제 그 녀석이라고 해요. 저희가
그 녀석이라고 하는데, 그 녀석 하고 이렇게 그 이후로 거의 한 8년 정도 연락을 못했던 것 같아요. 7년 ~ 8년
그렇게 이후로 또 멤버들을 또 뽑아서 저는 이제 뭔가 더 위로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아직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까지도 연습실이 없었어요.
저스트절크는 근데 저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이 행복으로 외로움을 채웠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이 친구들이 길거리에서 연습하는 모습이 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저스트절크가 행사를 돌면서 모은 돈을 다 같이 모아서 적음을 해서 저희 스튜디오를 오픈을 했는데, 너무나 감사하게 빚이 없어요.
저기가 이제 저희 합정점인데 지금의 아이들을 이제 모집하면서도 이제 경민이한테 겪었던 그런 미안함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이들의 마음을 계속 물어봐요.
지금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마주치지 못하지만, 밥 한 번을 더 먹으려고 하고,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해서
어린 친구들일수록 더 소갈이를 할 거라는 생각에 더 외로워할 것 같은 생각에 제가 다가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이정희 같은 경우는 조금 다른 케이스였어요. 이정희는 하고 싶은 게 분명했어요.
경민이는 그러니까 그 녀석은 이제 힘들어 하는 게 이제 속알 이를 했지만,
이정이 같은 경우는 힘들다 하면 힘들다고 얘기를 하고
이거 하고 싶다고 하면 이거 하고 싶다 얘기하고 약간 이렇게 자기주장을 강하게 어필하는 성격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많이 트러블도 있었어요. 저하고 이정희하고
근데 생각보다 이정희가 제가 너무나 아끼고 너무나 사랑한 존재였어요.
그래서 이정희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팀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었어도 허락을 많이 해줬어요.
그래 해 봐 해 봐해 봐. 계속 이렇게 하다가
결국에는 이정희가 저 하고 싶은 방향이 생겼습니다. 알겠다. 그쪽으로 잘해봐라.
막 싸우면서 다투면서 그렇게 얘기를 하다가 결국에는 이정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거를 하라고 제 응원을 하게 됐죠.
이제 저희 팀이 13년이 다 돼 가는데, 13년 동안 그 둘이 거의 유일한 팀을 나간 존재가 됐어요.
그러니까 오래됐죠 10년이 넘었으니까
그니까 그 정도로 오래된 팀인데, 이렇게 사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결과가 지금의 저스트절크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한테도 분명히 그 외로움이라는 게 있으실 거예요.
혼자 외로우면 너무 외로워요 그렇죠?
근데 둘이 외로우면 그나마 의지 돼요.
근데 저는 거의 20명 가까이 있잖아요. 그래서 조금밖에 안 외로워요.
그래서 오늘 해드리고 싶은 말은, 분명히 여러분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을 거예요.
그리고 혼자 하려고 하면 너무 힘들어요.
나 혼자 꼭 성공해야지 이러면 절대 성공 못 하겠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제 주변에 저를 아껴주고 저를 사랑해주는 존재들로 채워갈 때 그때 여러분들한테 기적이 꼭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15분 너무 짧네요 여러분들 그렇죠?
15분이 너무 짧고 다음에 또 이 세바시에 또 제가 초대가 된다면은 30분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두서 없는 강연 들으시느라고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영제이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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