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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741회👩‍🍳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마세요!!💔조은빛 와일드플라워 세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마세요!! | 조은빛 와일드플라워 세프 | #동기부여 #도전 #성장 | 세바시 1741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마세요!!

 

 

셰프로서 한국에서 최초로 스타를 꼭 따고 말겠어.

6년간 저의 전부를 밤낮으로 이렇게 올인했지만, 결국에는 스타는 제게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오픈 초창기부터 오신 찐 단골 분이, 조 셰프님 우리 벌써 본 해가 육 년째죠?

아 그래서 이제는 편하게 얘기할게요.

나 사실 한식 좋아하잖아~ 셰프님 요리가 양식에 더 가까워서 내 입맛에 맞는 건 아니에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 1. 시작: "스타 셰프가 되겠다는 꿈"

  • 통역사를 그만두고 뉴욕 요리학교(CIA) 입학 → 퍼시 등 미쉐린 레스토랑에서 수돗물 마시며 버틴 혹독한 수련 시절.
  • 한국 귀국 후 레스토랑 '플라워 차일드' 오픈.
  • 미쉐린 스타를 목표로 모든 것을 걸고 전력투구.

🔹 2. 실패와 깨달음

  • 손님이 오지 않자 거리에서 요리 설명도 하고, 경제적 한계까지 옴.
  • 미쉐린 가이드에는 소개됐지만, 끝내 스타는 받지 못함.
  • 어느 단골의 한마디: “셰프님 요리가 내 입맛은 아니에요” → 충격 → 고객 입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각.

🔹 3. 전환점: 고객 중심으로의 전환

  • 꿈이 욕망으로 변질되었음을 고백.
  • 새로운 브랜드 ‘와일드 플라워’ 기획 시 맛보다 ‘공감’과 ‘편안함’ 중심으로 바뀜.
  • 개딱지에 비벼 먹던 추억에서 영감 얻은 요리 ‘숨비소리’ 탄생.
  • 손님들이 정장에서 청바지로 바뀌는 등 분위기의 변화도 생김.

🔹 4. 확장과 지속적인 변화

  • 2호점 ‘문주스’ 오픈: 손님들이 원하던 화덕 피자와 파스타 추가.
  • 3호점 ‘글레’는 회사원·혼밥족 대상 델리 샵.
  • 가장 최근엔 ‘러브 제이미’ 오픈: 셰프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브랜드 →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자기 리마인더.

🔹 5. 결론: "변수를 쫓기보다, 고객에 집중하자"

  • 미쉐린 스타처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 고객이 진짜 원하는 것을 고민하고 제공하다 보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메시지 전달.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마세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마세요!!

 

 

 

안녕하세요. 조은빛이라고 합니다.

저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입니다.

 

몇 년 전 일인데요 어느 추운 겨울이었어요.

한 여성분이 혼자 식당으로 들어왔는데요. 툭하면 쓰러질 것 같이 아주 지쳐 보였어요.

메뉴판을 보더니 음식을 주문했고요 우리 레스토랑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숨비 소리를 시켰어요.

 

와일르 플라워 시그니쳐 메뉴 숨비소리
와일르 플라워 시그니쳐 메뉴 숨비소리

 

그리고 조용히 아무 말 없이 음식만 드시고 가셨어요.

그런데 며칠 뒤 그분이 식당에 다시 오셨어요. 이번엔 큼직한 보온병을 들고요.

그때 먹었던 음식을 보온병에 담아 달라는 거예요.

또 얼마 후에 그 손님에게서 전화가 온 거예요.

탈이 나셨나? 조마조마 조심조심한 마음으로 통화를 했는데요. 전화 통화를 마치고 저는 너무 뭉클했어요.

 

그분의 어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셨는데,

얼마 전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린 우리 식당에서 먹은 음식 때문에 너무 큰 위로를 받았다는 거예요.

어머니가 생전에 자신이 아플 때 자주 끓여주시던 전복죽이 있었는데,

우리 숨비 소리라는 음식이 그 어머니의 맛을 떠올리게 했대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따뜻함을 기억나게 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직접 전하고 싶어서 일부러 전화를 걸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너무 좋았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제 요리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뒤바꾼 일이었어요.

 

 

요리는 이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힘이 있어요.

하지만 사실 저는 그런 것을 몰랐어요.

요리사로서 어떤 위대한 요리를 만들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먹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죠.

저는 요리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생각했어요.

화가가 빈 캔버스를 자신만의 그림으로 채우는 것처럼,

요리사는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요리로 표현해 내는 사람이고, 그중 세상에서 가장 인정받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안정적인 통역사라는 직업을 때려치우고 저는 뉴욕의 요리학교인 CIA에 입학합니다. 

 

CIA 요리학교
CIA 요리학교

 

CIA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미 중앙정보부가 아니에요.

프랑스 르 골든 블루와 같이 유명한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입니다.

요리학교 졸업 후에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퍼세라는 레스토랑의 막내 셰프로 입사합니다.

 

Per Se
Per Se

 

Per Se는 당시 세계 최고의 평가와 관심을 받는 탑 레벨 레스토랑이었어요.

이곳 생활이 장난이 아니었죠.

그 레스토랑 셰프들은 기본이 매일 새벽 3시까지 일하는 것이고,

완벽에 가까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모두 정말 치열한 노력과 경쟁을 합니다.

진짜 엄청 빡세예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아주 더운 여름이었는데요.

동기 신입 셰프가 동료들을 위해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만들었어요.

다들 아무 생각 없이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데, 메인 키친에서 총괄 셰프가 버럭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레모네이드를 만든 동기 셰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혼이 나고 있더라고요.

다들 미쳤어! 누가 생수를 먹으라 그랬어?

정신차려!!
정신차려!!

 

생수나 손님용이야 너희들은 수돗물을 마시라고, 정신 차려! 막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승환 참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했습니다.

 

한 끼에 4~500불 하는 식사를 사 먹는 곳에서, 고작 생수 한 병 마시지 못한다니.

상황은 모순적이고 치사했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고의 셰프가 되기 위해서 견디고 더 빡세게 열심히 했습니다.

수돗물 마시면서요.

 

그 뒤로 뉴욕의 다수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혹독한 근무를 이겨내고,

마침내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저만의 레스토랑 플라우 차이드를 오픈하게 됩니다.

Flower Child
Flower Child

 

아 이제 그동안 했던 온갖 고생과 여정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게 웬일, 대망의 오픈 첫날 멋지게 데뷔하듯 가득가득 차 있는 오픈 런을 기대했지만, 안은 텅텅 비어 있었어요.

에이~ 아직 맛을 못 봐서 그래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레스토랑 앞으로 나갔어요.

지나가는 행인을 무작정 붙잡고, 저의 요리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죠.

프렌치 기법을 바탕으로 한국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창작 요리예요.라고 입이 달도록 이야기했지만,

결국 돌아오는 답변은 그래서, 피자 파스타는 없는 거죠?

요식업에서 잔뼈가 굵은 친오빠가 보다 못해 은빛아 맛이 전부가 아니야. 여러 번 조언했어요.

하지만 예술가로서 사명을 다하고 싶었던 저는,

오빠가 몰라서 그래 제대로 된 요리사는 사람들의 관심보다는 자기가 갈 길을 그냥 묵묵히 가는 거야라고 답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매달 돌아오는 직원 월급날마다 공황 장애가 올 정도로 숨이 턱 하니 막히며,

간신히 카드빛을 내어가며 메꾸었어요.

 

간절히 원하는 바가 있고 죽어라 노력을 하면 이루어진다라는 불변의 법칙은 없더라고요.

 

힘들 때마다 뉴욕 미쉐린 레스토랑 첫 출근 날 보았던 총괄 셰프의 멋진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시 다스렸어요.

뻣뻣하게 다려진 새하얀 셰프 복을 입은 셰프를 처음 본 순간, 정말 만화에서 보던 눈이 부시는 후광이 비췄거든요.

 

 

 

그렇게 간신히 일 년이 지나간 후 어느 봄날이었어요.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프랑스 신사 두 분이 식사를 하러 왔어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음식을 내었고요. 그 손님은 음식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그리고 그해 10월 미쉐린 가이드 발간 첫 해에 뉴아메리칸 퀴즈로는 한국에서 최초로 플라우 차이드가 등재되었습니다.

힘들었던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또 이로 인해 새로운 목표가 생겼죠.

한식이 아닌 영역에서 여성 셰프로서 한국에서 최초로 스타를 꼭 따고 말겠어라고 다짐했죠.

구글에 수도 없이 미쉐린 스타 기준, 미쉐린 스타 따는 법에 대해 폭풍 검색했어요.

매년 10월 발표 날이 돌아오기 전날은 뜬눈으로 지새울 정도로 집착이 심해져만 갔죠.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가 되니, 해외 및 전국에서 손님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사업도 점점 안정이 되어 갔어요.

하지만 미지수인 미셰린 기준에 맞추어 더욱더 특별한 요리를 만들기 위해,

그릇이며 인테리어, 식재료에 몰빵을 하면서 재정적으로 점점 한계가 느껴졌어요.

 

6년간, 저의 전부를 밤낮으로 이렇게 올인했지만, 결국엔 스타는 제게 오지 않았습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요리를 하던 중 어느 날

오픈 초창기부터 오신 찐 단골 분이 식사를 마치시고 갑자기

조 셰프님 우리 벌써 본 해가 6년째죠? 

그래서 이제는 편하게 얘기할게요.

나 사실 한식 좋아하잖아.

셰프님 요리가 양식에 더 가까워서 내 입맛에 맞는 건 아니에요.

이분은 가볍게 농담으로 툭 던진 말이었지만 저한테는 쇼킹 그 자체였죠.

 

그제야 깨달았어요.

 

난 그동안 먹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지 않았구나.

맛있는 요리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셰프라는 꿈을 꾸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 꿈이 욕망으로 바뀌어 있었어요.

요리를 통해 성과를 내고, 인정을 받으며, 내 자신이 세운 정상에 오르는 것에만 올인하고 있었던 거예요.

소수의 평가단이 아닌 내 요리를 먹는 사람들, 그 고객의 마음을 바라봐야 했는데, 오로지 나만의 목표를 바라보고 살았던 거죠.

 

나의 입장에서, 고객의 입장으로 보기 시작하니,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플라워 차일드를 정리하고, 두 번째 브랜드인 와일드 플라워를 기획할 때에는

인테리어부터 메뉴까지 다방면에서 고객의 편리함과 니즈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췄어요.

서울 키징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맛과 정서에 집중했어요.

게장을 먹을 때 개딱지에 밥을 맛있게 비벼 먹은 기억, 다들 있으시죠?

한 마리당 하나밖에 나오지 않아 굉장히 귀하잖아요.

어렸을 때 저희 집에서는 항상 그 개딱지가 제 차지였어요.

엄마가 방앗간에서 갓 짜온 참기름과 비벼 구운 김에 맛있게 싸서 주시던 맛이 지금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요.

초반에 손님이 드셨던 숨비 소리라는 요리는 바로 이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메뉴입니다.

개내장의 맛을, 달콤하고 부드러운 성게알로 장을 담가 구현해 냈고요.

여기에 참기름과 해산물, 감태, 육수가 들어가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행복해지는 맛이에요.

플라워 차일드에는 엄숙한 분위기의 정장 차림으로 오셨던 단골 분께서도,

편안한 청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오셔서 가족분들과 함께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고요.

 

그 후로 오픈한 문주스라는 레스토랑에서는 예전에 그토록 손님이 찾으시던 화덕 피자와 파스타 메뉴도 넣었습니다.

 

또 글레에 오픈한 매장은 바쁜 회사원이나 혼적을 위한 건강한 간편식맛있는 소금빵을 판매하고 있어요.

 

이렇게 현재는 3 개의 브랜드로 확장하여 세 곳 모두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라는 건 여전히 참 두렵고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 오픈한 델리샵 브랜드 상호는 러브 제임이에요.

영어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 사랑을 담아서 쉼표, 그리고 본인 이름을 넣어서 마무리하는 건데요.

제이미는 저의 영어 이름이에요.

 

저 또한 끝없는 변수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방향성을 잊지 않도록,

제 자신에게 계속 리마인드를 하기 위해서 이런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또 이번에 소진공에서 지원을 받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렇게 세바시 무대에 서는 기회도 얻고요.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변수에 집중하기보다는 이렇게 새로운 기회를 통해 고객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어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하다 보면, 자연스레 성공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 있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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