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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742회👤은둔형 외톨이가 모여 사는 ‘어른이집’ 🏠유승규 ‘안 무서운 회사’ 대표

은둔형 외톨이가 모여 사는 ‘어른이 집’ | 유승규 ‘안 무서운 회사’ 대표 | 세바시 1742회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사회적 고립

 

 

은둔형 외톨이가 모여 사는 ‘어른이집’ | 유승규 ‘안 무서운 회사’ 대표 | 세바시 1742회 #히키코모리 #은둔형외톨이 #사회적고립

 

 

 

서른 살 중반이신데 어 약 13 년 정도 은둔 생활을 하셨었어요.

정신적으로 살인을 당했다고 표현하셨어요.

내가 나가면 부모가 행복해지잖아요.

난 부모를 행복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일단 이 문자가 끊기는 순간 끝이잖아요.

연애할 때보다 더 신중해야 돼요. 이모티콘도 다 뺐어요.

최대한 담백하게 그렇게 만난 지 일주년이 됐습니다.

그래서 진심 어린 제안을 했어요.

저희 회사에도 많게는 10 년 이상 고립됐던 분들이 많이 다녀갔는데요.

이게 진짜 혼자서 쉽지 않습니다. 돕고 싶습니다. 한 번만 저 믿어주세요.

 

 


 

 

 

🔹 1. 프롤로그: “은둔형 외톨이와의 만남”

  • 강연자는 은둔·고립 청년들을 발굴하고 상담, 셰어하우스까지 연계하는 회사를 운영.
  • 전국적으로 약 54만 명, 청년 20명 중 1명꼴로 은둔 상태라는 통계 소개.
  • 강연자는 과거 5년간 은둔 생활을 했던 경험자이기도 함.

🔹 2. 사례 소개: 한 어른이와의 1년

  • 13년간 은둔한 서른 중반의 청년과 문자로 소통 → 천천히 관계를 쌓음.
  • 정신적으로 부모에게 “살해당했다”라고 표현할 만큼의 깊은 상처.
  • 대화, 방문, 식사 등 부담 없는 일상 속 접촉으로 접근 → 공감이 핵심.
  • 유튜버 ‘쌍베’의 콘텐츠를 보고 취향을 파악해 대화 연결고리 확보.
  • 마침내 외출 성공 → 맛집 탐방 → 친구 연결 → 집 초대 및 수육 대접.

🔹 3. 회복의 전환점과 고백

  • 1년 뒤 “이건 혼자 못합니다, 도와드리고 싶어요”라는 제안 → 결국 셰어하우스 입주.
  • 생일 파티, 지하철 탑승 등 13년 만에 처음 해보는 일상들을 회복.
  • 당사자가 전한 감사 편지: “당신의 집요함과 끈기 덕분에 여기 왔다”

🔹 4. 메시지: 어른이 집이 필요하다

  • “어린이집”처럼 성인도 다시 삶을 배우는 공간이 필요함.
  • 고립의 원인은 매우 다양: 가정폭력, 진로 실패, 연애 트라우마 등.
  • 시간을 들여 기다려주는 자세, 재시작을 돕는 존중의 문화가 필요.
  • 서울시에도 관련 지원사업 존재, 우리 모두 ‘어른이 집 원장’이 되어보자 제안.

 

 


 

 

은둔형 외톨이가 모여사는 '어른이 집'
은둔형 외톨이가 모여사는 '어른이 집'

 

 

 

여러분은 그 옛날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무슨 반이셨어요?

무슨 반이요?

분홍반, 병아리반, 호박반이요? 소망반, 소망반 혹시 다른 분 있으세요?

유일하시네요.

 

 

저는 탐구반이었습니다.

저희 제가 출근길에 어린이집이 하나 있는데요. 그 지나갈 때마다 제가 이렇게 쓱 한 번 보게 됩니다.

아 진짜 어려지고 싶다.

저기선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물론 어린이들 입장이죠.

선생님들은 굉장히 힘들어 보이시더라고요.

요즘에도 그 내년도 입학 시즌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래서 야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데

앞에 게시판에 가끔 뭐 이렇게 붙어 있어요. 

그러면은 오늘은 의사 놀이를 했구나. 그리고 풍선으로 검을 만들었구나.

가을 운동회에서 햇살반이 이겼구나. 그럼 이슬반은 어떻게 된 거야?

이 노래 아세요? 괜찮아 괜찮아 야 이렇게 여러분들 지금 다 감수성이 떨어진 거 같아요.

어... 나도 정말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뭐 그런 마음으로 항상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출근해서 도착하는 곳에도 사람이 많습니다.

그 대신 어른 어린이 대신에, 굉장히 다 큰 어른이들, 장정들이 있어요.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저한테 와서 그러더라고요.

아 총각 잘 생겼어. 왜 웃으세요? 아니 이건 웃긴 게 아니에요. 잘 생겼어라고 하는데,

어 직업이 어떤 일 할 것 같냐고 제가 물어봤더니, 아 약간 일본 사람 닮았어. 어떤 거예요 했더니 아! 스모 하는구나!

저 뭐 스모랑 씨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어 아까 좀 소개를 해 주셨지만 저는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 탐정이 됩니다.

그의 가장 친했던 사람들,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유튜브나 축구팀 뭐 뭐가 됐든 간에 그런 거 던져주면 다 공부합니다.

흥신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그들은 그 삼국지의 제갈량보다 더 모시기 힘든 분들이기 때문에

세 번이 아니라 네 번 다섯 일 년을 노력해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정답은 한국 사회에서 소위 은둔형 외톨이, 히키 고모리 그리고 은둔 고립 청년 뭐 다 비슷한 용어예요.

그런 상태의 청년들에게 방문 상담을 하거나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회사가 하는 여러 가지 사업 중에서 셰어하우스 운영 사업이 있어요.

장기간 고립됐던 청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서비스인데요.

 

서울시 13만 6천명
서울시 13만 6천명

 

최근에 서울시에서 실태 조사했을 때 약 십삼만 명 정도가 고립 상태에 있다고 합니다.

전국 단위로는 최근에 보건복지부에서 실태 조사를 했었는데, 50만 명 이상이에요. 한 54만 명 정도 됩니다.

그럼 전체 청년 인구의 2%가 넘어요 거의 4% 가까이 됩니다. 

 

전국 약 54만명
전국 약 54만명

 

그 어떤 분들은 그렇게 말씀하세요.

근데 거기 셰어하우스에 자기 발로 찾아온 사람들은 뭐 이미 알아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

아 그렇게 따지면 내가 더 힘들어.

물론 그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비율은 어 한 30% 수준이에요.

어 70 퍼센트는 부모님들이 의뢰를 하시죠.

근데 그렇다 보니까 의뢰를 받아도 그들을 만나기까지가 정말 힘듭니다.

 

 

대부분은 그들이 부모님과도 대화를 일절 안 해요.

이미 그 상태가 많게는 10년, 20년 지속된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저희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분들 중에 몇 분은 작년에 제가 1년 동안 방문을 통해서 발굴한 분들입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한 명의 이야기를 오늘은 좀 해볼까 해요.

호칭을 오늘은 그 어른이로 하겠습니다. 그분을 오늘의 어른이는 저보다 형입니다.

서른 살 중반이신데, 약 13 년 정도 은둔 생활을 하셨었어요.

최초의 기억은 다섯 살 때 소변을 잘 못 가렸대요.

그래서 그게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이 있는데, 그 훈육 방식이 조금 오류가 있었나 봐요.

그때 어머니가 격멸하는 듯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대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분은 항상 내가 버려질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랑받고 싶어서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했어요.

공부도 곧잘 했고요. 학교에서도 친구도 많았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재학 내내 살아갈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고 해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잘 못 배우셨던 것 같아요.

 

결국 그 서러움이 미움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이제 가족 탓을 하면서 가족과 대화를 단절하고 방 안에서 은둔을 하게 됐죠.

뭐 이렇게만 들으면 다 부모님 탓 같은데, 뭐 그렇진 않고요.

뭐 최근에야 부모 교육이 우리가 대두가 되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키운다고 해도 그런 오류들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 의뢰를 받았어요. 탐정처럼

이거 어떻게 해야 될까? 전문 상담 선생님이랑 저랑 일단 한 조를 이뤘어요.

선생님이 먼저 가기로 했습니다. 전 선생님 믿었죠. 전문 가니까요.

근데 이게 케이스가 워낙 어려워요. 이런 방문이라는 게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고, 선생님

저는 아직 가지도 못했거든요. 근데 찾아오지 말라고 통보를 받으신 거예요.

그래서 아니 나는 아직 가지도 못했는데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야 이거 고민을 하다가 좀 특징을 포착했습니다.

이 어른이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하는 특성이 있었어요.

이거는 다른 당사자들에게서도 꽤 많이 나타나는 특징 중에 하난데요.

다행히 거절을 문자로 직접 하시더라고요.

처음에 그게 이제 슬펐는데,

어? 가만히 있어 봐 이거 문자를 할 수 있잖아. 그래서 그때 이제 전략을 짰어요.

일단 이 문자가 끊기는 순간 끝이잖아요. 그러니까 연애할 때보다 더 신중해야 돼요.

그래서 이게 이주에 한 번이니까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이모티콘도 다 뺐어요. 최대한 담백하게

그래서 이 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 연결의 끈을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두세 달 지나니까. 다시 방문을 할 수 있는 찬스를 얻었어요.

저는 그때 환호를 질렀습니다.

야 됐다. 이제 다 왔다. 이거

왜 그렇게 자만을 했냐면요.

 

 

제가 과거에 오 년 정도 은둔을 경험한 적이 있어요.

제가 사실 세바씨 강연이 두 번째인데 이전 영상에 자세하게 나와 있거든요.

오늘 집에 돌아가셔서, 조금 봐주시면 세바시도 좋고 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바시 1586회 | 세상이 무서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 | 유승규 안무서운회사 대표

 

아니 나도 5년을 경험했었고, 또 극복하기 위해 심리 상담도 수년간 받았고, 병원도 갔고,

제 경우에는 짧게 설명드리면 좀 가부장적인 문화나 장손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진로에 대한 좌절 등으로 비롯됐었어요.

근데 어쨌든 제가 그걸 치유했으니까. 가족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고, 또 제가 일본에 있는 단체의 도움을 받았었거든요.

그리고 도움 받고 거기서 제가 재직도 했었어요.

그래서 아 나는 뭐 일본의 노하우도 알고 있어. 충분히 쉽지라고 방문을 했는데

이 어른이는 13 년이었단 말이죠. 13 년을 집 안에서 아무랑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움직임이 너무 적어서, 초고도 비만 상태에, 가끔 이야기하다가 이빨이 보이면요 이빨이 많이 썩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컨디션이 안 좋아요.

그 상태에서 무언가를 동기 부여한다는 게 굉장히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우울하면 잘 씻지 못하거든요.

진짜 많게는 한 1년 2년 동안 안 씻은 분도 있어요.

 

근데 그중에서도 그분은 부모에 대한 분노가 너무 컸어요.

이미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 살인을 당했다고 표현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내가 나가면 부모가 행복해지잖아요. 난 부모를 행복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했어요.

너무 어렵잖아요. 제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표정 관리도 하기가 힘들었는데,

거기다가 심지어 4개월을 부모님이 굶기셨다는 거예요. 근데 부모님 얘기 들어보면 또 그렇진 않아요.

 

저는 처음에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아니 지금 딱 봐도 몸무게도 나보다 더 나가고 아니 뭐 지금 한 130 키로는 돼 보이는데 솔직히 4개월은 좀

아 이분이 오랫동안 외출을 안 해서 망상이 생긴 건 아닐까?

그래서 겨우겨우 꼬셔서 임상심리사 선생님께 풀 배터리 검사라는 검사도 좀 시켜보고 했는데 문제가 별 문제가 없으시더라고요.

다행인지 아닌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이거 4개월을 굶었다고 하는데 내가 이 대화에 동조를 해줘야 되는 게 맞는 건지,

근데 이거는 최근에 제가 알아봤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안 먹고 버틴 사람 기네스북이 며칠인지 아세요?

382 일이에요. 저도 놀랐어요.

아 어쩌면 거짓말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근데 지금까지 이분을 상담하러 갔던 수많은 전문가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전제 조건은 그 초고도 비만 이어야지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영양제 정도 먹었고, 이분도 포카리 스웨트 하나 정도 먹고 버티셨다고 그래요.

 

어쨌든 

저는 뭐 그때는 그걸 몰랐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 급했어요.

아 뭔가 이분을 빨리 내가 꺼내 드려야 되겠다.

부모님이 너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저도 자꾸 부담스러운 강요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저조차 만나주지 않을 뻔했던 위기가 있었습니다.

 

 

이 6개월이 지났어요.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해요?

그래서 육 개월 차부터는 전략을 다시 짰습니다. 내가 예전에 어땠지?

아 그래 나 옛날에 알바 천국 사이트를 매일 뒤져봤었어. 이대로 살 수 없었으니까.

근데 내가 할 수 있는 공고는 편의점 알바 이런 거였는데, 만약에 내가 담배를 못 외워서 혼나면 어떡하지?

그리고 콜센터 공고를 봤을 때는, 사투리를 못 알아들어서 혼나면 어떡하지?

그런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당시 저는

그렇게 도합 5 년의 시간이 지났어요.

 

너무 위로받고 싶어서 히키코모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고 밤새도록 울면서 잤던 적도 있습니다.

게임을 해도, 내 현실을 잊기 위함이지, 하나도 즐겁지 않았어. 맞아. 그때는 날 찾아온 사람이 유재석이었어도 망설였을 거야.

근데 유재석이었으면 솔직히 열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방침을 세웁니다. 그때

1년 동안은 이 사람이 나를 사람 취급도 안 해 줄 수 있어.

지금도 제가 마음이 조급해질 때마다 이 문장을 떠올려요.

 

당연한 거야, 시간이 필요한 일이야.
당연한 거야, 시간이 필요한 일이야.

 

당연한 거야. 이건 시간이 필요한 일이야.

하지만 이러한 마인드 셋이 가족 안에선 거의 불가능합니다. 매일 보니까요.

 

그리고 그 가족이 불안해할 때 제가 휘둘리면 절대로 그들을 도와줄 수 없어요.

가끔 아 지금 방문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안 될 것 같은데 싶은데 부모님이 제발 한 번만 방문해 주세요 해서 가잖아요.

저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근데 기다렸던 것들은 그래도 꽤 성공을 했어요.

 

가끔 방문해 보면 부모님이 편지를 맨날 쓰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면 방 앞에 읽지도 않은 사과 편지가 이만큼 있는 경우도 있고, 

진짜 그러다 보니까 이 당사자들에게는 이 어른이들에게는 대화라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운 거예요.

정체감이 드는 거예요.

내 있는 그대로 대화를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꾹꾹 참으면서 남은 6 개월을 아무런 제한도 하지 않았습니다.

맞나 싶었어요. 맨날 잡담하러 가고 이게 맞나?

근데 그러다 보니까 힌트를 얻었어요.

이분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중에 그 쌍배라고 하는 유튜버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아세요?

 

쌍튜브
쌍튜브

 

이 사람이 이걸 왜 재미있어하고 보게 되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 쌍베라는 유튜브의 모든 콘텐츠를 다 봤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 이 크리에이터의 매력이 뭔지 알겠다.

그걸 알고 가니까 이제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제 좀 망설이다 얘기했습니다.

저 혹시 우리 맨날 집 안에서만 좀 보는데 저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나가면 어때요?

한참을 망설이던 어른이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사실 오랫동안 집에만 있어서 못 먹어본 음식이 참 많은데요라고 얘기했어요.

오! 그걸 파고들었어요. 이젠 함께 맛집 여정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억울한 마음이 있었던 거예요.

스테이크도 먹어보고 싶고, 랍스터도 먹어보고 싶고,

근데 그거를 맨날 먹으니까 이게 돈이 내가 사주기도 뭐 하고, 얻어먹기도 뭐 하고 힘들었는데,

어 점점 특이한 음식으로 좀 바꾸기도 했어요.

뭐 카이막 같은 터키 음식이나 인도 음식 그리고 동물이 있는 카페 때로는 절간 이런 상상력들을 발휘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분의 세계가 넓어졌고,

이후에는 저 말고도 다른 경험자들을 매칭시켜서 만나게 해 주고, 노래방도 가고, 나중에는 저를 집에 초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수육을 해주셨어요.

 

예 그렇게 만난 지 일주년이 됐습니다.

 

 

 

아니 예 아니 뭐 사귀는 게 아니고요.

그분을 만난 지 1주년이 됐을 때 진짜 고백하는 마음으로 제가 6개월간 꾹꾹 참았잖아요.

랍스터나 그런 거만 먹으면서 잔소리하고 싶은데, 그래서 진심 어린 제안을 했어요.

"저희 회사에도 많게는 10 년 이상 고립됐던 분들이 많이 다녀갔는데요. 이게 진짜 혼자서 쉽지 않습니다. 돕고 싶습니다.

한 번만 저 믿어주세요. 더 나은 삶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때 이분이 정확히 20분 동안 한마디도 안 했어요.

그 침묵이 얼마나 길었는지 모르겠어요.

근데 이 이후에 결국에 저희 셰어하우스에 지금 입주해서 지금 셰어하우스 최고 인싸예요.

이거 보세요.

 

생일
생일

 

아니 생일 파티를 지금 한 13 년 만에 해 보시는 거예요 그리고 지하철도 10 년 만에 타신대요.

아이 너무 뭉클하지 않아요?

근데 그런 사람이 지금 몇 십만 명이나 있다니 이 큰일 난 거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이제 일 경험이나 취업 관련 활동 하실 예정에 있어요.

오늘 안 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예 그래서 어쨌든 1년 동안 제가 받은 거절이 수십 번도 넘습니다.

거절 거절 거절 끝에 이분이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분은 그래도 문자로 거절 의사를 보내주셨지만, 실제로는 접근하기 더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이건 쉬운 겁니다. 사실

정말 심한 경우엔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함묵증이 있는 분들도 있어요. 말도 안 하세요.

제가 아까 그 어른이 이분을 샤워하우스에 데리고 와서도 사실 후회를 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책임도 지지 못할 제안을 한 걸까?

이 사람 사실 집에 있는 게 더 나은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복지부에서 최근에 실태 조사했을 때, 45 퍼센트 정도는 도움 받고 싶지 않고 나오고 싶지 않대요.

 

근데 제가 최근에 생일이었거든요. 저도 생일이었어요. 근데

저희가 저렇게 파티를 많이 해요. 근데 그때 이런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써주셨어요.

 

당신의 가스라이팅 덕분에 이 하우스에 결국 들어오게 되었네요. 

도움은 필요 없다. 혼자 알아서 살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저를

결국 끌어내게 만든 당신의 집요함과 끈기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그곳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테죠.

당신도 이 일을 하며 회의감이 들거나 지치고 괴로운 일들 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이 당신을 지지하고 있음을 항상 기억해 주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십시오.

 

아니 이런 말 한 번도 안 했거든요. 1년 동안

 

 

 

그러니까 보건복지부에서 실태 조사한 그 45 퍼센트도 사실은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셰어하우스에서 벌써 5년째 은둔을 경험한 분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어요.

퇴근이 없어요.

그렇게 밀착으로 지내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집 앞에 아까 어린이집이 있다고 했죠?

그 어린이집과 우리 회사가 하고 있는 역할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랫동안 우울해서 씻지 못하거나 쓰레기장 방에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정리 정도는 알려주고,

보통 성인들한테 그런 거 알려주진 않잖아요.

다시 씻는 법을 알려주고, 같이 요리를 만들고, 사람을 다시 사귀는 법을 알려주고 함께 합니다.

어린이집에선 그런 말도 자주 하잖아요. 예쁜 말, 아 너 최고야. 

제자리에 안 앉으면 어 거기 의자 요정이 싫어해요. 제자리에 앉으세요. 뭐 이런 예쁜 말도 하죠.

우리가 어릴 때는 신발꾼 잘 못 묶어도 좀 기다려 주잖아요. 못 할 수도 있다고.

근데 성인이나 청년이 되면 그것도 못해?라는 시선으로 너무 손쉽게 바뀌는 것 같아요.

그리고 모두가 알려줄 시간도 없이 바쁜 것 같기도 합니다.

학교 폭력, 가정 폭력, 해외 유학에서의 실패, 코로나, 연애 문제 심지어 조기에 오는 탈모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해 숫자만큼 다양한 고립의 서사가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내가 성인이 되어서 어려움이 생긴다면,

누구라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기다려주고 괜찮다고 지지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하고 있는 셰어하우스가 어른들도 차근차근 배우고 알아갈 수 있는 어른이 집이라고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이름은 아니에요. 제 스스로 명명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시에는 고립 운둔 청년 지원하는 사업이 있어요.

그런 사업들도 다시 신발 끈을 묶는 그런 걸 알려주는 존중이 있는 뉘앙스의 사업이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도 각자가 크고 작은 어른이 집의 원장이 되어 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들도 어떻게 개원해 보실 생각 있으세요?

 

 

마지막으로 제가 자주 사용하는 화법인데요.

개인적으로 이런 강연을 할 때 당사자들한테 한마디 잘 안 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요. 그래도 오늘만큼은 한마디 하고 싶습니다.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살아 있기 때문에 당신의 생각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저를 옵션으로 떠올려 주세요.

제가 만약 30년 뒤에라도 살아 있다면, 그때 연락이 오더라도 돕겠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제가 아는 선에서 돕겠습니다.

 

저는 오늘 여기까지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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