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혈액암을 이기고 건강한 삶을 사는 비결 | 박주현 자원봉사 활동가 | #봉사 #행복 #희망 | 세바시 1750회
2008년의 일이었는데요.
저한테 의사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간암 말기로 보인다고,
그런데 제가 하도 해맑게 듣고 있으니, 아니 환자분 지금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인데,
어떻게 그렇게 환하게 미소만 짓고 계시나요?
그래서 저는 그랬죠. 그럼 울면서 들어야 하나요?
그런다고 암이 남는 것도 아니고, 울면 뭐 합니까?
저는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어요.
제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그래도 잘 살아온 비결은?
내용 요약
1. 암 진단과 긍정적인 태도
- 2008년, 의사로부터 간암 말기 가능성을 들었으나 밝게 반응.
- 결과적으로 비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고 6개월간 치료 후 5년 뒤 완치.
- 긍정과 낙관이라는 두 가지 신념이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함.
2. 인생 3막 구조
- 1막: 직업 군인 시절
- 2막: 암 완치 후 감사의 마음으로 봉사 시작
- 3막: 전역 후 중국 동포 지원 활동을 새로운 사명으로 삼음
3. 봉사 활동 사례
- 군 복무 중 중증 장애인과 한라산 등반 성공
- 복지관과 군인들이 협력하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전 완수
- 장애인과 군인 모두에게 잊지 못할 경험과 용기를 제공
- 전역 후 중국 동포 돕기 활동
- 봉사단체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행정 지원과 이미지 개선 노력
4. 핵심 메시지
- 자기 신념(긍정 + 낙관)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이 됨
- 받은 은혜를 봉사로 갚으며, 봉사 속에서 다시 은혜를 받음
- 인생의 각 단계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도전하며 살아가는 것의 가치 강조

안녕하세요.
어 여러분이 암 진단을 받는다면 그 순간 어떨 것 같으세요?
대부분은 진짜냐고 되묻거나 아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거나 앞이 캄캄해지거나 혹은 멍해지거나 그런 반응을 보일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참 밝았어요.
담담한 정도가 아니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했어요.
2008년의 일이었는데요.
저한테 의사가 간 조직 검사가 나와야 확실히 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간암 말기로 보인다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는
이 경우에는 치료는 이렇고 저렇고 말해주는데, 제가 하도 해맑게 듣고 있으니, 의사 선생님이 묻더군요.
아니 환자분, 지금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상황인데, 어떻게 그렇게 환하게 미소만 짓고 계시나요?
라고 묻는 거예요. 음 그래서 저는 그랬죠.
그럼 울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야 하나요? 그런다고 암이 낫는 것도 아니고 결과가 달라질 것도 아닌데 울면 뭐 합니까?
그런데요 저는 반드시 나을 거라고 확신이 있어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치료도 잘 받고 관리 잘하면 되는 거잖아요.
저 같은 환자는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엄마 같아서도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내 삼아 니 같은 놈은 살다 살다 처음 본다이.
그 후 두 번의 조직 검사 후에 저의 병은 비호지킨 림프종(Non-Hodgkin Lymphoma, NHL)이라는 혈액암으로 판정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은 그러더라고요. 백혈병 사촌쯤 되는 병이라고 우려했던 가난보다는 훨씬 완치율이 높다고.
아 그래요?
저는 좋아하면서
고 봐요 제가 뭐라 그랬어요?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요
라고 말하면서 내심 저도 희망이 생기더라고요.
육 개월가량 항암 치료를 열심히 받고 건강을 회복하게 됐고요. 5 년 뒤에 완치 판정도 받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나을 거라는 신념이 있었어요.
자기 신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거죠.
자기 신념은 두 가지가 필요해요.
현실을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긍정성도 필요하고요.
앞으로 잘 될 거라는 낙관성도 필요해요.
이 두 가지 신념을 동시에 가져야. 자기 신념을 힘으로 무엇이든 최선의 노력을 다 할 수 있습니다.

제 인생은 삼막으로 되어 있어요.
직업 군인으로 살다가 암 판정을 받기 전까지가 인생 1막이에요.
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부터가 2막이고요.
저는 혈액암과 싸워서 살아남았잖아요.
그러니까 새 인생을 얻은 것 같았어요.
그러니 인생 2막이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 거죠.
생각해 보면 내가 만약 군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암과의 싸움에서 이겼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군인이라서 공무원이라서 받은 혜택이 너무 커요.
군에서 모든 병원비도 대주고, 또 치료 후에 다시 복직해서 일하게 해 준 게, 너무 고마웠어요.
아마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게 너무나 고마워서, 인생 이막부터는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으며 살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결심한 후에 바로 안양시 관악 장애인 종합복지관으로 달려갔어요.
그 뒤로 전역할 때까지 열심히 봉사하면서 살았습니다.

봉사도 제 신념이자 인생의 길이 된 거죠.
이런 제 신념 덕분에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경험도 있어요.
2019년의 일이었는데요 한라산 등반을 했어요.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 한라산을 등반했습니다.

원래 저는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했냐면, 제가 봉사하는 곳의 장애인들이 제주 한라산에 가보는 게 버킷리스트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죠.
여행 경비도 경비지만 중증 장애인들을 모두 비행기에 태우고 제주에 가서 숙박하고, 한라산 오르는 일이 너무 힘들고 비장애인 도우미 장정들도 수십 명이 필요한 일이고, 모두 사람들이 말렸어요.
복지관 측도 갈 수 있다면 좋지만, 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포기하더라고요.
그런데요.
제가 바로 한 해 전에 국군 모범 용사로 선정돼서 국방부 장관 표창과 상금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요.
사 단장님이 축하해 주신다고 차담을 나눈 자리에서 제가 그 상금에 제 돈을 조금 합쳐서 부대에서 어려운 장병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하면서 용기 내어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사실은 제가 봉사하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중증 장애인 데리고 한라산 등반 계획을 하고 있는데 우리 군이 도우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사단장님이 매우 기뻐하시며 흔쾌히 진행시켜!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단장으로 모범 장병으로 선발된 삼십 명의 군인들이 사단장님을 모시고 발대식을 했고요.
정말 여러 가지 어려움과 문제를 해결하고 중증 장애인들과 함께 제주도 한라산 윗세오름까지 등반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서로이고, 지고, 부축하고, 지치면 쉬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걷고,
어쩌면 등산한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그게 장애인들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자 용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윗세오름에서 어느 장애인의 말은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 데리고 비행기 타본 적도 없고, 여행 다닌 적도 없어요.
나는 평생 산길은 오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가슴이 너무 벅차고 설레요.
지금 제가 너무 벅차고 설레는데요.
이건 원사님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도전은커녕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절망 속에서 사는데, 이제는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조금 생겼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다른 친구들도 모두 마찬가지 마음이었고요.
장애인들을 도왔던 장병들은 구슬 같은 땀방울만큼 감동적이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증언했고요.
저는 이게 자원봉사의 이유이자 기쁨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도 공감하시죠?

저의 인생 삼막은 군을 전역하면서 이번 달 즉 11월 1일부터 시작됐어요.
저는 안산에 살고 있거든요.
안산은 전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라, 사실 이민청도 꼭 설치됐으면 하는 도시이기도 해요.
외국인 중 사실 중국 동포에 대한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 않고 꺼리는 부분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러다가 전역을 얼마 뒤에 앞둔 시점에서, 우연히 중국 동포를 돕는 자원봉사단체의 회장을 만났는데,
그분이 자기 단체의 행정 일을 도울 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가 군 행정 병과였거든요.
평생 행정일을 맡아야 했으니 행정은 도사죠. 네
그러면서 그분을 통해 듣게 된 이야기는, 중국에서는 중국 동포들 너 너희 나라 가서 살라 하고,
한국에 오면 저희들은 잔개라고 그러는데, 장개라고 하고 업신여기고,
양쪽에서 서러움을 받는 분들이 중국 동포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랜 이야기 끝에 인생 삼막의 목표를 잡게 됐어요.

중국 동포들을 돕고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일을 남은 인생의 중요한 과제로 삼기로 했어요.
이들을 돕는 행정사로서의 제 커리어 진로도 잡고 김차 회장님을 도와 중국 동포를 돕는 봉사단체의 사무국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어요.
세바시 요청을 받고 어떤 메시지를 이야기할까 생각하다가 자기 신념에 대해 생각해 본 거예요.
그렇게 평생 군인으로서 또 암과의 싸움에서 또 봉사의 자리에서 제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그래도 잘 살아온 비결은 자기 신념이 확고했다는 것 같더라고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긍정과 낙관이 필요해요.
현실을 잘 파악하고, 미래를 낙관하고 도전하는 것 그게 나의 신념이 현실이 되게 만드는 비결이에요.

그 속에서 봉사는 제가 사는 이유이자 에너지가 됐어요.
내가 받은 은혜를 갚자는 취지에서 봉사를 시작했지만, 오래 해보니 봉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제게 은혜를 주더라고요.
아마 해본 분들은 모두 공감하시리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 삼막이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세바시를 통해서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은혜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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