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바라보면 생기는 기적 같은 변화들 | 김영롱 '롱롱 TV' 운영, 작가 @longlongtv2023 | 추천 강연 강의 듣기 | 세바시 1921회
집에 가면 빨래 폭탄에 청소할 게 태산, 밤에는 사고가 날까 봐 잠도 잘 못 자요.
아 정말 미치겠는 거예요.
이 힘듬은 대체 언제 끝날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뭘 할까? 여행을 갈까?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까?
그런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너무 싫어졌어요.
이대로라면 저희 가족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 요약
연사: 김영롱 (롱롱TV 운영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저자)
주제: 치매 할머니와 함께 찾은 사랑과 치유의 이야기
🌱 핵심 내용 요약
- 상처 많은 가족의 시작
- 엄마는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학대받으며 자람.
- 그 상처를 안고 30년 동안 함께 지내며 항상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관계.
- 가족이 함께 살지만 마음은 서로 멀어져 있던 세 사람.
- 치매 진단 이후 찾아온 위기
- 할머니 치매가 급격히 진행되며 목욕, 기저귀, 밤중 배회, 위험 행동 등이 반복.
- 집안은 무너질 듯 힘들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화내고 지치며 모두가 소진됨.
- 어느 날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실까?”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충격을 받음.
- 유튜브 시작 – 탈출구를 찾기 위해
- 웃을 일이 필요해서 ‘롱롱 TV’ 촬영을 시작.
- 첫 촬영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짐:
할머니가 또렷하게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며 반짝이는 모습을 보여줌. - “치매라는 단어에 할머니를 덮어버리고 있었다”는 깨달음.
- 병이 아닌 ‘사람’을 보기 시작하며 찾아온 변화
- 치매가 앗아간 것만 보지 않고 남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찾아보기로 함.
- 할머니와 ‘하트 만들기’, 데이트룩 코디, 추억의 김치 만들기, MBTI 등 다양한 활동 수행.
- 그 과정에서 할머니는 웃음, 감정, 표현력을 되찾고 점점 변화함.
- 기저귀 실수도 줄어들고 인지 검사 점수도 오르는 긍정적인 효과.
- 가족 전체의 치유
- 영상 편집을 반복하며 할머니의 표정과 눈빛을 세밀하게 바라보게 됨.
- 엄마도 반복해서 영상을 보며 치매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표정과 감정을 발견.
- 결국 할머니가 딸(엄마)에게 처음으로 “미안하다”라고 울며 포옹하는 날이 찾아옴.
- 30년 묵은 상처가 서서히 녹기 시작함.
- 치매에도 불구하고 ‘반짝임’은 남아 있다
- 치매는 기억을 빼앗아가지만 그 사람이 가진 감정과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 중요한 건 병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것임을 깨달음.
- 마지막 메시지 –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라
- 매일 보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않아 잃어버린 감정들이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 주름, 눈빛을 깊이 바라보면 그 사람의 반짝임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
- “치매가 한 사람을 순식간에 없애지 않는다. 남아 있는 반짝임을 지켜보라.”


안녕하세요.
저는 치매를 앓고 계신 94세 외할머니와의 행복한 일상을 담은 채널 롱롱 TV의 운영자이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의 저자 김영롱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어 먼저 저희 가족을 간단히 소개할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엄마 이렇게 함께 셋이서 살고 있는데요.
어 구독자분들께서 종종 이런 댓글을 남겨주십니다.

할머니가 어머님과 영롱 씨에게 사랑을 많이 주셨나 봐요.
롱인의 가족은 꼭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희 가족은 그렇게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엄마는 어린 시절에 5남매 중에 가장 존재감이 없었던 넷째 딸이자 가장 사랑받지 못했던 자식이었다고 해요.
할머니는 유독 엄마를 미워하셨다는데 어린 시절에 엄마는 할머니로부터 쏟아지는 욕설과 매질을 견디며 자랐다고 합니다.
엄마의 깊은 상처는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도 아물지 못했는데요.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안고 할머니와 30년을 함께 산다는 건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위태롭기만 했습니다.
엄마의 상처가 건드려지는 날에는 집 안에 차가운 공기만 맴돌았으니까요.
어쩌면 저희는 같이 살고 있었지만 같이 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5년 전에 치매 중기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를 집에서 돌보면서 저희는 할머니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게 됐습니다.

이야기에 앞서서 질문을 하나 드려보고 싶어요.
여러분은 '치매와 함께 살아간다'라는 말을 들으시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시나요?
네 아마도 힘들겠다 함께 사는 다른 가족의 삶도 망가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셨을 것 같아요.
물론 저희도 힘들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치매를 앓게 되신 후에야 서로에게 받았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서로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됐어요.
'아프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자다가 죽는 게 최고의 복이다'라는 흔한 말 들어보셨죠?
혹시 공감하시나요? 저는 이 말에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할머니가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면, 저희 가족에게 이런 변화는 찾아오지 않았을 테니까요.
많은 가족이 그렇듯 제가 커갈수록 저희 가족은 더욱 서먹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색한 관계 때문이기도 했는데요.
엄마는 혼자서 저를 키우시느라고 바쁘셨고, 저는 저 사느라고 바빴거든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느새 할머니는 집에 놓여 있는 폭신한 소파 같은 존재로 텅 빈 거실에 멍하니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셨습니다.
할머니의 귀와 무릎 그리고 심장이 망가지면서부터는 그나마 있던 사회적 관계도 단절됐어요.
그러자 저희 가족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점점 외딴섬이 되어가던 저희 할머니가 결국 치매에 걸리신 거죠.
어느 날 할머니 약통을 보니까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어떤 약 통에는 알약이 뒤죽박죽 다 섞여 있고, 어떤 약은 병원 진료일이 한참 남았는데 알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거예요.
아, 치매는 일상의 당연한 일도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는 병이구나 정말 막막했죠.
할머니의 치매는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씻는 것조차 힘들어지셔서 제가 할머니의 목욕을 담당하게 됐고요.
할머니는 밤마다 기저귀를 벗으셨습니다.
소변이 묻은 기저귀를 벗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기억을 하셨지만, 새 기저귀를 다시 입어야 한다는 거는 잊어버리셨던 거죠.
때로는 소변 묻은 기저귀가 세탁기에 들어가 있었던 적도 있었고, 바지만 입고 밤새 거실을 돌아다니시는 통에 매일 아침이면 방바닥에 소변 자국이 가득했습니다.
위험한 행동도 하셨어요.
목욕물을 데워야 한다고 또는 밥을 안쳐야 한다고 새벽에 가스불을 켜려고 하는 걸 제가 말린 적도 허다했죠.
저를 특히 힘들게 했던 건 치매를 진단받기 전부터 있었던 외출에 대한 집착이었는데요.
그 증상이 더 심해져서 제가 나가서 친구라도 만나는 날이면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저희 집이 2층짜리 단독주택이거든요.
해가지고 밤이 되면 할머니는 2층에서부터 외부 계단을 기다시피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1층에 계신 엄마한테 마당에서 정말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셨어요.
"숙희야 야 이 바람났나 보다. 전화해라."
외출해도 밤 9시 전에는 들어가야지 집에 가면 빨래 폭탄에 청소할 게.
태산 밤에는 사고가 날까 봐 잠도 잘 못 자요. 정말 미치겠는 거예요.
저희 엄마도 힘들어하시긴 마찬가지였어요.
늘 일어나는 이상 행동과 함께 고집이 세지는 할머니 앞에서 엄마는 늘 괴로워하셨고요.
병인 건 알지만 자꾸만 건드려지는 그 옛 상처 때문에 화로 가득 찬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늘 불안해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나마 괜찮았던 엄마와 제 사이도 틀어지기 시작했어요.

체력이 바닥나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니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토닥여 주는 일조차 참 어려운 일이 되더라고요.
되게 바쁜 날이었는데요.
어 늦은 시간에 할머니를 목욕시켜 드리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힘듬은 대체 언제 끝날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나는 뭘 할까? 여행을 갈까? 그런데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까?'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너무 싫어졌어요.
할머니는 자식보다 저를 더 사랑해 주면서 키워주신 분이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고작 몇 년 힘들었다고, '할머니가 언제 돌아가시나?'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사람이면 다 그럴 수 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 봐도 이거는 아니다 싶었어요.
그때 참 오랜만에 할머니랑 엄마 그리고 제 얼굴을 봤습니다.
안 그래도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저희 3대의 얼굴이 4년 동안 똑같이 변했더라고요.
무표정한 얼굴로요.
이대로라면 저희 가족이 완전히 망가질 것 같아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이게 뭐 사람들이랑 소통하고 싶어서도 아니었고요.
돈을 벌고 싶어서도 아니었어요.
그냥 단지 탈출구를 찾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주기적으로 할머니랑 뭐라도 하다 보면 이 지겹고 힘든 일상에서 그나마 웃을 일이 생길 것 같았거든요.
첫 촬영 날이었습니다.
만약에 할머니가 싫어하시면 말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할머니 앞에 삼각대를 놨어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마치 누가 말을 걸어주길 기다렸던 사람처럼 할머니가 말씀을 너무 잘하시는 거예요.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상 보실게요.
안녕하세요.
나는 이렇게 오래 살았으니 당신 애들도 그냥 되는 대로 살아보면 오래 살아요.
돌아오는 대로 그냥 그냥 살면 된다고요
슬프면 슬픈 대로 살고 좋으면 좋은 대로 살고 그냥 돌아오는 대로 살면 되는 거야.
저는 할머니가 이렇게 마음 찡한 이야기를 하실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할머니는 치매 환자니까 이런 표현력은 진작에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그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나는 그간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를 치매라는 단어로 덮어버리고 있었구나.
저는 치매라는 병만 바라본 나머지 사랑하는 할머니를 잊고 있었습니다.
치매 할머니가 아닌 우리 할머니는 언제든 보려고만 하면 볼 수 있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의도치 않게 제가 외면하고 있었던 거죠.
내가 보지 못한 할머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찾는 데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된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병과 증상만 바라보던 제 시선의 방향이 한 사람에게로 향하자 돌봄의 마음가짐도 할머니에게 남아 있는 것을 지켜주자로 자연스럽게 바뀌더라고요.
병이 빼앗아 간 것만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치매가 빼앗아 가지 못한 것들 아직 남아 있는 진짜 할머니를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이것저것을 시도해 봤어요.
할머니 내일 하트 해주기, 할머니한테 데이트로 코디해달라고 하기, 추억의 요리 배워보기 심지어 MBTI 테스트까지 해봤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게요 할머니가 이 모든 엄청 즐거워하시면서 다 하셨다는 거예요.
내일 하트를 받으셨을 때는 마치 소녀처럼 기뻐하셨고요.
이건 세련됐고 저건 촌스럽다면서 제 데이트룩까지 손수 골라주셨어요.
자꾸 같은 말씀을 반복하시기는 했지만, 할머니의 손이 기억하고 있는 추억의 음식 굴 나박김치도 척척 가르쳐 주셨는데요.
먹어봤더니 옛날에 먹었던 그 맛이 그대로 나서 저 진짜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MBTI 테스트 다들 해보셨을 거예요. 그게 질문 엄청 많은 거 아시죠?
그 많은 질문에도 얼마나 대답을 잘하시는지.
그 영상에는 '할머니 치매 아니신 것 같아요'라는 댓글이 참 많이도 달렸었습니다.
어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에게도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내면에 간직돼 있던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아낌없이 보여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만 보면 방긋 웃으시고, 사람들이 남겨준 댓글을 읽어드리면 자랑스러운 얼굴로 '영롱이 덕분에 내가 떴다'라는 표현까지 하시고요.
목욕시켜드리고 나면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이렇게 쓰다듬으시면서 매끄럽네 라는 셀프 칭찬까지 하시더라고요.
저는 웃는 우리가 좋아서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꾸만 칭찬을 해 드렸습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아무리 달래고 애를 써도 매일 반복됐던 기저귀 실수가 확연히 줄어들었고요.
언어력과 표현력은 오히려 좋아지시더니 작년에는 '영롱이는 내 눈이야 내 눈 모든 걸 가르쳐주고 일러주는 눈'이라는 주옥같은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할머니의 변화가 너무 신기해서 담당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그러시더라고요.
치매 환자에게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겨서 우울감이 낮아지고 자존감이 올라가면 인지 능력 검사 점수도 높게 나온다고요.
치매 환자들은 방금 무슨 일이 생겼는지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때 느꼈던 감정은 남아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할머니의 행복감이 인지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제야 할머니의 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치매는 세상과의 소통이 멈춰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던 뇌가 웅크리면서 시작된 병이자 지독한 외로움에서 비롯된 병이라는 걸요.
따뜻한 변화는 엄마와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하면서 같은 장면만 수십 번을 보게 됐는데요.
그렇다 보니까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표정, 주름의 미세한 움직임, 많은 말을 담고 있는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할머니를 더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엄마도 제 영상 조회수를 올려준다고 똑같은 영상을 계속 보다 보니까 그러시더라고요.
'나의 엄마에게도 저런 표정이 있었구나' 그걸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알게 되셨대요.
상처가 많았던 엄마에게는 곧 연민이라는 감정이 스며들었고요.
자신의 상처만 바라보던 엄마의 시선은 할머니의 아픔과 상처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게 되었고, 어느새 사랑하게 됐고요.
엄마가 할머니를 조금씩 쓰다듬게 되고, 할머니와 눈을 맞추며 웃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과거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늘 피해오셨던 할머니가 작년 가을에는 엄마를 꼭 끌어안고 울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셨습니다.
이제 엄마는 더 이상 할머니가 밉지 않대요.
그리고 할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희 가족의 변화와 지금의 행복은 '내가 무엇을 보느냐?'라는 작은 질문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무조건 돌보는 게 아니라 할머니를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지를 생각하면서 돌보니까 할머니 역시 아프신 와중에도 그간 마음속에 간직했던 사랑을 아낌없이 보여주게 되신 거죠.
할머니의 사랑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고 저희 가족은 분에 넘치는 응원을 받았습니다.
이곳에도 치매 어르신을 돌보고 계신 분들이 계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저는 이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치매를 진단받았더라도 순식간에 한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요.
치매 말고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을 봐주세요. 특히 초기와 중기 단계라면 그 사람에게서 반짝이고 있는 면을 분명히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그 반짝임에 주목한다면 치매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돌봐야 할 건 병이 아니라 사랑하는 할머니라는 걸 깨닫는데 5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내게 남아 있어야 할 기억은 함께 나누었고 지금도 나누고 있는 사랑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배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 사람에게 남아 있는 반짝임을 찾고, 그 반짝임이 흐릿해지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주는 것
그건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저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사랑의 방법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매일 보는 가족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가장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익숙한 얼굴이라서, 혹은 이전에 서로 주고받았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아서, 아니면 사는 게 너무 바빠서,
그것도 아니라면 남사스럽고 부끄러워서, 가장 편안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얼굴을 우리는 너무 쉽게 지나치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웃을 때 얼굴에는 어떤 모양의 주름이 지는지,
서로 눈을 맞출 때 눈빛은 어떤지, 그 눈빛과 표정으로 어떤 마음을 전하고 있는지,
오늘 한번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제 강연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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