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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방구석이야기 | 백희성 건축가, 아티스트 | 세바시 533회


강연 소개 : 저는 파리에 삽니다. 파리의 골목을 걷다가 문득 아름다운 집을 볼 때마다 그 집의 우편함에 편지를 적어 넣곤 했습니다.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건축가로부터…” 간혹 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초대를 받았고, 그 집에 숨어있는 신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수많은 파리의 저택에 발길이 닿았고…  저는 너무나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불편해 보이고 부족한 것들은 어찌 보면 깊은 사연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 오래된 고택들이 품고 있는 사람들의 흔적에 대한 것입니다.


게시일: 2015. 3. 8.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백희성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우리들의 방구석 이야기' 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해요


저희는 모두 방을 갖고 있죠?

사실 이 이라는 거는 어떻게 보면 우리의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간은 조금 더 넓게 보면요

우리의 집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해 드리고 싶은 얘기는

파리에 사는 사람들도 모르는

파리 고택에 숨겨진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들을 해 드리려고 합니다

파리는 쉽게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 지금 현재 파리에 살고 있구요

지금 8년째 살고 있습니다

부러우신가요? 

(네)

사는 건 생각 만큼 좋진 않습니다

관광이 좋죠


파리에 살면서 가끔씩 밖에서 보면 너무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꼭 들어가 보고 싶다'

'저 아름다운 건물 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런 생각을 좀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가끔식 제 시선을 빼앗는 그런 아름다운 집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안에는 어떨까? 들어갈 수 있을까?

그래서 문 앞에 서 있습니다

가끔씩 두 시간도 기다리거든요

그러면 누군가 나와요

그러면 바로 들어가진 않고 가만히 이렇게 있다가

그 사람이 들어가고 나서

문이 닫히기 직전에 발을 딱 넣는 거죠

그리고 나서 안에 들어가요


안에 들어 가면 복도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복도 안에는 또 다른 문이 있어서 집을 방문 할 수는 없어요

근데 그 복도에는 우체통이 있습니다

우체통이 한 20개에서 30개 정도 있어요

작은 게 한 10개 정도 있구요

거기다가 손편지를 썼어요

'난 건축가 입니다'

'밖에서 보니까 당신의 집이 너무 아름다운데'

'혹시 기회를 주신다면'

'당신 집안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라고 적어놨어요

그리고 나서 우체통에 모두 다 꽂아 놓고 잊어 버렸어요


근데 한 달 후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편지 한 통이 온 거예요 금요일 날 방문하라고

목요일 날 받았어요

그래서 방문할 수 있게 됐죠

너무 떨리고 긴장됐고

그렇게 해서 천천히 파리 고택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에 고택에 들어가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됬어요

그 할머니가 해 주신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차를 마시고 할머니께서 다과를 더 가져 오시는 그 사이에

할머니가 지나 가시는 그 마루바닥이 '삐그덕' 하고 소리가 나는 거예요

가까이 가서 저도 건축가니까 관심이 들어서 발로 밟아 봤더니

정말 삐그덕 하는 소리가 좀 심하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편하게 두시면 안됩니다' 라고 제가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제가 고쳐 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근데 이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절대 안 된다고 

절대 고치면 안 된다고

저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요

'왜 이걸 고치면 안 되죠?' 이랬더니 그런 말씀 해주시더라고요

창가 쪽이었는데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흔들의자를 그쪽에 놓고서

평생을 흔들흔들 의자에 앉아서 책을 보셨대요

지금은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흔들 의자도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끔씩 할머니께서 우연치 않게 그 마루바닥을 밟으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바로 옆에 계신 것 같다고

그 때 든 생각이

도대체 불편함이 뭔가?


저는 항상 편리한 게 제일 좋은 것이라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편리함이 우리한테 정말 나은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또 다른 집에 가게 됐습니다 또 다른 집에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큰 하얀 벽이 있는데

가운데 시커면 때줄이 뭍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순간 생각했어요

가까이 가서 문질러 보니까 지워지더라구요

손때가 분명했습니다

거기도 할머니가 사셨는데 할머니께 말씀 드렸어요

이거 지워 드리겠다고

아니면 페인트질 새로 싹 하면 아주 깨끗한 벽이 될 거라고 했더니

그 분도 역시 절대로 절대로 지우면 안 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할머니께서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하셔서

평생을 벽을 짚으시면서 화장실을 가셨다고 하더라구요

그 벽을 볼 때 마다

지금도 할아버지께서 화장실에서 나오실 것 같다고

더러운 것을 과연 없애는 게 맞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남긴 흔적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됐구요


그리고 또 다른 집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집은 대문에 대한 이야기예요

보통 우리가 집을 처음 맞닥뜨릴 때

제일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대문입니다

그리고 좀 더 가까이서 보면 손잡이구요

이 손잡이 좀 특이하게 생겼죠?

이 집의 주인은 예전에 죽었습니다

그 주인은 정치인이었어요

근데 이 가운데 얼굴 보이시죠? 사자 같이 생긴

이 집 주인의 얼굴이 이렇게 생겼다고 합니다

사자 같이 생겼구요 험상궂게 생겼구

커다란 중절모를 쓰구선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무서워 했대요

동네 아이들도 겁이 나고 무서워했고

그 중에 한 아이가 너무 무서워 덜덜덜 떨고 있으니까

이 집 주인이 가까이에 가서 중절모를 벗고

머리가 막 산발해 있었대요

중절모를 벗고 아이에게 머리를 갔다 댑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그 남자의 머리를 만지고

재미있어 하는 광경들을 이 남자가 굉장히 좋아해요

그리고 그 이후부터 그 동네 아이들은 모두 이 사람의 머리를 만지고 다닙니다

정치인인데요


이 사람은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예요

자기는 무섭게 보이지만 실제로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위의 손잡이를 둥그렇게 만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손이 이 얼굴상의 이마에 닿게 됩니다

지금 굉장히 많이 닳아 있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을 열면서 닳아진 거예요

이 사람은 이 문을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거죠


작은 손잡이 하나에도 어쩌면요

그 사람의 삶과 철학을 

가장 낮은 자세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외에도 정말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어떤 이야기들은 가슴 뭉클해서 차마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구요

그래서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걸 알리자

이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제가 건축가니까 건축가로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이 분들 만나기 전까지는

건축가가 건물을 완성시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실제로 보니까 건축가가 건물을 완성시키는 게 아니고

건축가는 한 80% 정도 완성된 건물을 주고

나머지 20%는 거기 사는 사람의 추억과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되는 거였죠


그래서 책도 그런 이야기를 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서

책에 제목을 빼버렸습니다


보이지 않는 집
국내도서
저자 : 백희성
출판 : 레드우드 2015.01.25
상세보기


저는 글을 써서 책을 만들었지만

독자분들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이 원하는, 자신의 이야기의 제목을 다는 그런 책을 만들고자 한 거죠

그래서 지금 프랑스의 그 분들은 이 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번 해 봤어요

건물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아주 자그만 요소들 중에서도

우리가 너무 쉽게 버리고

우리가 지키지 못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도 제 주변에 쓸모없는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과연 나한테 소중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이 전구는 제가 디자인 한 전구인데 필라멘트가 끊겼습니다

그래서 버릴려고 했다가

분리수거 하려고 한쪽에 모아뒀다가 잊어버렸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발견했거든요

들어보니까 필라멘트 망가졌기 때문에 쓸 수가 없습니다

이걸 버려야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 했는데


어느 날, 일요일 날

창가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햇빛이 너무 눈부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이걸 집어서 태양에 한번 갖다 대 봤습니다

필라멘트가 살아있을 때의 전구 보다 더 아름다운 전구가 되더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새상에 버려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가 조금 달리만 보면

그리고 세상에는 정말 우리가 보기에 불편해 보이고, 부족해 보이고 못나 보이는 것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요

그 안에는 깊은 사연을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여러분들께 그런 이야기도 한번 해 드리고 싶어요

집주인 중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분들도 있었어요

근데 그 분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 공간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가 들리지 않는 분들도 계셨어요

근데 그 분들도 듣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책에 모두 담았습니다

15분이란 시간에 모두 여러분들에게 해드릴 수 없어서 유감스럽긴 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그런 이야기까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상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듣고 잘못 옮겨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해당글에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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