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효 |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 #과거 #미래 #효도 | 세바시 1564회
정조가 왕이 되자마자 사도 세자의 신원을 회복해야 된다는 상소가 올라와요.
그런데 그 상소를 올린 사람들을 어떻게 했을까요?
처형해요. 죽여요.
재미있는 건 정주 16년이 되면, 그때 다시 사도세자의 신원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올라오는데,
눈물을 엉엉 흘리면서
"내가 기다려왔던 것이 이거다."
정조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임자헌이라고 합니다.
소개받은 대로 저는 일성록과 지금 조선왕조 실록 현대화 사업에 참여해서 그런 관찬 사료들을 번역하고 있고요.
또 옛 서년들의 그런 지혜로운 글들을 어 제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담았다가 또 저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대중서들을 쓰고 있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효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세요?
되게 고리타분하다.
요즘 시대에 무슨 효냐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을 억압하기 위해서 만든 개념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많이 하기가 쉽고,
그래서 어린 사람들의 경우에는 벌써 효라는 얘기를 하면 그 사람하고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죠.
저도 사실 그랬어요.
왜냐하면 제가 이렇게 한문을 번역한다고 하면, 굉장히 한문에 가까운 분위기에서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사실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미술 잡지 기자를 했거든요.
그리고 미술 평론을 하려다가, 제2 외국어로 한문을 선택하면서 한문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저에게 한문은 굉장히 낯설었고, 저 역시도 그냥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아~ 한문은 되게 고리타분하고 별로 지금 시대에 보고 싶지 않은 거, 뭐 이렇게 생각을 했었거든요.
근데 조금 나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해서 그런지,
제가 직접 한문 원전을 보니까 '내가 알고 있던 게 잘못됐을지도 모르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중에서 대표적인 개념 중에 하나가 효거든요.
논어에 보면 효에 대해서 이런 얘기가 나오죠.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3년 동안은 부모님께서 살아생전에 뜻하셨고 행하셨던 길에서 돌아서지 않아야 비로소 참된 효라고 할 수 있다.
약간 숨이 막히시나요?
그런데 이 구절을 들으면 우리가 먼저 생각해 봐야 될 게 있죠.
부모님이 나쁜 분이셨으면 어떡하죠? 부모님이 다 오르시라는 법이 없잖아요.
부모님이 살아 생전에 그렇게 아름다운 인생을 안 사셨어요.
그런데 자녀더러 돌아가시고 3년 동안, 부모님께서 걸으셨던 그리고 뜻하셨던 삶을 살라고 얘기한다면, 그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되기 쉽죠.
그래서 논어에서는 또 이런 얘기도 해요.
부모님이 잘못하시는 것을 보게 되잖아요.
그럼 돌직구를 날리지 말고 돌리고, 돌려서, 감정 상하시지 않게 부드럽게 일러 드려야 돼요.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부모님께서 내 말을 따라서 고치지 않으시잖아요.
그래도 또 공경스럽게 대해야 하고 엇나가면 안 돼요.
물론 피곤하죠.
그래도 원망하면 안 되는 거예요.
부모님을 고치시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언제까지 해야 되냐면 부모님께서 고치실 때까지요.
그래야만, 그렇게 살아생전에 부모님께서 잘못하신 걸 고쳐야만,
돌아가신 뒤에 3년 동안 부모님께서 뜻하셨고, 행하셨던 것을 내가 지키는 게 말이 되잖아요.
얘기, 내치에는 또 이런 내용도 있어요.
부모님에게 잘못이 있으면 기운을 낮춰서 얼굴빛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한다.
그러니까 간한다는 건 바로 잡아 드린다는 거죠.
그렇게 말씀드려도 받아들이시지 않으면, 다시 공경하고 효도해서 마음이 다 풀리시거든 다시 간한다.
좋아하지 않으셔도, 마을과 동네에서 죄를 얻게 하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지속적으로 말씀드려서 고치게 하는 것이 낫다고 얘기를 하고 있죠.
자식은 열심히 배워서 부모님하고 끊임없이 소통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부모님께서 살아 생전의 옳은 길을 걸으셔야. 내가 부모님을 추념할 때 정말로 의미 깊게 추념할 수 있잖아요.
설사 잘못하셨더라도, 그 길을 고치시는 걸 봤기 때문에, 더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앞에 두 구절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은 돌직구를 날리지 말라는 거예요.
우리들은 보통 소통을 그렇게 하잖아요.
참고, 참고, 참다가 한 순간에 빵 이건 아니라는 거예요.
부드럽고 상량하게.
왜냐하면 부모와 자식은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는 관계잖아요.
근데 내가 돌직구를 참았다가 한 번에 터뜨리면 그건 관계를 끝내는 거죠.
서로 그렇게 갑자기 옳은 얘기하고 얼굴 보지 않겠다 이렇게 하는 부모 자녀 관계가 되게 많잖아요.
근데 우리 다 알죠.
절대 잘못은 한 번에 고쳐지지 않아요.
끊임없이 노력해야 겨우 고쳐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세를, 말의 톤을 낮추고 부모님께 상량하게 말씀드리는 게 굉장하게 중요한 거죠.
그래서 자녀는 지식과 인격을 크게 가다듬어야만 해요.
그래야만 아름다운 부모 자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죠.
부모라는 과거를 자녀라는 현재가 반드시 바로 잡아서 지금 현재에 제대로 세운 유업을 내일로 미래로 옮겨주는 게 효잖아요.
그래서 그런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효를 이해해 볼 수 있거든요.
그렇다면 여기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런 유학의 개념을 가지고 나라를 건국했죠.
그 이념을 현실에 실현시키는 존재가 그 책임을 가장 크게 지고 있는 존재가 왕이겠죠.
그래서 왕들은 이 개념을 효라는 개념을 반드시 국정 운영에 반영해서 나라를 건강하게 유지를 시켜야만 해요.
오늘은 이제 정조 효 축제에 왔으니까.
정조가 그렇다면 이런 효의 개념을 어떻게 역사 속에서 실현시켰는지를 잠깐 생각을 해보려고 해요.
여러분들 윤건릉에 대해서는 여기 오셨으니까 잘 아시겠죠?
융릉은 사도 세자와 그 안에 혜경궁 홍 씨의 능이고 건능은 정조와 효의 왕 김 씨의 능인 거죠.
각별한 부자 관계 그다음에 특별한 할아버지와 손자 관계.
할아버지가 정조를 매우 사랑했지만, 사도세자하고 등이 졌기 때문에,
뒤주라는 어떤 굉장히 난해한 물건 속에 들어가서 죽게 했죠.
그런데 정조의 입장에서는 할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고, 아버지도 미워할 수 없는
굉장히 애매한 그런 관계
그래서 이게 드라마나 영화의 그 어떤 소재보다도 극적이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영화나 드라마로 굉장히 많이 극화됐죠.
최근에도 되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있는 거고요.
근데 이 얘기들을 보면 대체로 사적인 복수나 아니면 사적인 효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갈 때가 되게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기억해야 되는 왕은 공적인 존재거든요.
왕에게는 사가 없어요.
사생활이나 사적인 관계나 사적인 생각이나 이런 게 있을 수 없겠죠.
왕이 사적인 걸로 무언가를 처리한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왕은 그 모든 걸 공적으로 승화시켜야 되는 거거든요.
제가 처음에 고전번역원의 번역 위원이 되어서 번역을 할 때 일성록이라는 걸 맡았거든요.
이게 정조가 세손 시절에서부터 존현각 일기라는 거를 써서 그거를 체제를 잡아서 본격적인 국정 기록물로 만든 게 일성록이에요.
일성록이 정조의 굉장히 개인적인 어떤 기록일 줄 아는데, 그렇지 않고요. 국정 일기예요.
근데 이 일성록을 번역하면서 정조를 만나게 됐는데,
정조를 이렇게 직접 사료로 만나기 전에는 그냥 조선 후기에 르네상스를 이룬 군주 그 정도로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제가 일성록에서 만난 정조는 진짜 집요해요. 그리고 굉장히 철저하고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되게 깊었는데, 그리고 그것을 공적으로 승화시키는 작업도 아주 정확하게 했고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했죠.
정조는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했냐면, 제가 처음 번역을 맡았던 게 정조 18년 6월 기사였는데,
그 해가 사도 세자랑 혜경궁 홍 씨가 둘이 동갑이거든요.
근데 그 해가 육순이 되는 해였어요.
근데 이 해에 사도 세자가 현융원으로 행차를 했다가, 아버지의 무덤에서 탈진할 때까지 울어요.
탈진할 때까지 울어서, 신하들이 뭐 그 저기를 정조를 엎고 가네 어쩌네 해가지고 조보에 그게 옳게 실렸네 틀리게 실렸네 막 해서 난리가 나거든요.
탈진할 때까지 아버지의 능에서 울고 그랬는데 그 다음 날이 사조 세자의 탄신일이니까 다시 경모궁에 참배를 하겠다고 또 나가겠다고 하니까
아니 왕이 지금 몸이 다 탈진해서 쓰러졌는데, 또 나가겠다고 하니까 신하들이 제발 말려달라 이렇게 해서 해경궁 홍 씨가 말려서야 말을 듣고 뭐 이런 기록이 있거든요.
아~ 대단했구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구나
이렇게까지 아버지를 사랑했다면, 정조가 왕이 되자마자 무슨 일을 했을 것 같죠?
실제로 정조가 왕이 되자마자 사도세자의 신원을 회복해야 된다는 상소가 올라와요.
그런데 그 상소를 올린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처형해요. 죽여요.
이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받아들이지 않고 죄를 물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건 정주 16년이 되면, 다시 한 번 영남에서 만인소라는 걸 두 차례에 걸쳐서 올려요.
만인소라는 건 1만 명이 상소를 올리는 거거든요. 연명으로 상소를 올리는 거죠.
그때 다시 사도세자의 신원을 회복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올라오는데,
정조가 그때는 눈물을 엉엉 흘리면서, 내가 기다려왔던 것이 이거다라고 얘기하면서
상소를 올린 대표자를 찬봉을 재수하는 의릉 참봉에 제수하는 파격적인 인사까지 단행을 하죠.
정조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이해하기 조금 힘든
정조가 즉위할 때 이런 말을 해요.
유명한 구절이기도 한데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근데 이렇게 끝낸 게 아니라
선대왕께서 종통의 중요함을 위해서 나에게 효장 세자를 이어받도록 명하셨거니와
내가 전일에 선대왕께 올린 글에서 근본을 둘러 하지 않는 것에 관한 나의 뜻을 크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상반된 두 가지 얘기를 한꺼번에 하고 있는 거죠.
사도세자는 죄인으로 죽은 거기 때문에 정통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영조는 사도 세자의 아들에서 정조를 그 전에 죽은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을 시켜요.
근데 듣는 사람에 따라서 정조가 왕이 되고 맨 처음 한 말이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는다면 사도 세자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피바람이 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겠죠.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만 더 들으면 종통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나를 효장세자의 뒤를 잇게 했으니라고 나오잖아요.
그럼 거기에 방점을 둔다면 영조가 시행했던 국정을 그대로 따르겠구나 그걸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정조는 두 자세를 다 취했거든요.
할아버지 영조를 이으면서, 동시에 아버지를 잊지 않는 굉장히 어려운 작업들을 진행을 해 가요.
둘 다의 옳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얼마를 드렸냐면 19년을 드려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두 세자를 신원하자고 했을 아니다고 하면서 처형을 하지만
10년에 부선복을 사사하면서 역무 사건을 정리하면서 혈류원을 짓고, 차차 차차 계획을 진행시켜 나가면서
그 유명한 정조 19년에 화성 능행차를 하잖아요.
정조는 12년 동안 13번이나 행차를 하면서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보이죠.
그러니까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가 세워놓은 원칙을 준수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추승 작업을 꾸준하게 진행을 했던 거죠.
아주 치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정조는 반정을 일으켜서 왕이 된 사람이 아니라 영조를 순하게 이었잖아요.
왕이라는 건 아까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사적인 존재가 아니죠.
내 사적인 복수든, 내 사적인 효든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내가 영조를 이었다면 영조의 국정 원칙을 잇는 모습을 보여줘야 돼요.
하지만 내가 사도세자의 아들인 걸 모두가 아는데 아무리 효장세자를 이었더라도
그런데 그걸 그냥 묻어놓고 있는다면 현재를 바로 잡을 수 없죠.
그렇게 되면 미래에 문제가 생기겠죠.
정조는 그래서 19년 동안 할아버지도 옳으면서, 사도 세자도 옳은, 그 두 가지 오름을 천천히, 반작용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면서 준비해 갔던 거죠.
사도 세자 개인이 남긴 글이 개인적으로 없는 점이 저는 좀 안타까워요.
그래서 사도세자의 생각이 정확히 어땠는지 저는 알 수 없거든요.
저는 정조를 믿으니까
정조가 사적인 존재로 움직이지 않았던, 정말 냉철한 조선의 부흥을 꿈꿨었던 군주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사도 세자를 추승하기에 적합했다고 정조는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작업을 이성적으로 해냈던 게, 정조의 치세라고 볼 수 있어요.
정조는 국왕으로서의 효를 표했던 거죠.
맨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효라는 건 이전 세대의 잘못을 지금의 바로 잡아서 내일의 혼란이 없이 물려주는 거죠.
그리고 왕에게는 사가 없고,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이어받았는지 잃는다면,
그리고 내가 무엇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잃어버린다면, 백성들은 혼란해지겠죠.
정조는 그 혼란을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자신의 효와 공적인 효와 나라의 운영과 백성을 섬기는 길을 전부 다 실행했던 군주였던 것 같아요.
되도록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옳음의 관점에서 과거를 현재에 바르게 세우는 거,
그리고 바르게 세워진 현재를 미래에 넘겨주는 거 여러분의 효는 어떠십니까?
윗사람을 섬기는 것으로만 효를 생각한다면, 효를 내 일에 물려줘야 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효가 지금을 바로 세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개인의 역사도 바로 세울 수 있고,
바로 세워진 개인을 통해서 공동체의 미래도 바로 세울 수가 있겠죠.
이런 효의 개념이라면 여러분 한번 새롭게 시도해 보실 만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효가 새롭게 이해되고, 그래서 우리의 미래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효를 앞으로 아름답게 가꿔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강의는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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