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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566회 | 끝없는 인생의 터널에 가장 필요한 것 | 한동일 '라틴어 수업'저자,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끝없는 인생의 터널에 가장 필요한 것 | 한동일 '라틴어 수업'저자,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 #성장 #도전 #동기부여 | 경기도 지식 GSEEK | 세바시 1566회

 

지금 내 모습이 내 전부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이 어둡고 힘든 터널의 끝은 과연 있을까요? 어느 날 한 제자로부터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저 역시 몇십 년 동안 공부하는 삶 힘들거나 지겹지 않냐고요.

어른에게 더 필요한 공부와 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가정이 있는데 바로

 

 

끝없는 인생의 터널에 가장 필요한 것

 


안녕하세요.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입니다.

어느 날 한 제자로부터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이 어둡고 힘든 터널의 끝은 과연 있을까요?'

아주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먹먹해졌습니다. 

저 역시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의 시간을 지난 적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2001년 로마로 유학을 떠난 후 교황청님 라테라로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그 이후에 바티칸 대법원 로따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 뒤에 2010년 부터 16년까지 한국의 한 사립대학교에서 초급 라틴어라는 강의를 맡았습니다.

저는 정말 오랜 시간을 마치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치열하게 공부를 해 왔고, 지금도 공부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몇십 년 동안 공부하는 삶 힘들거나 지겹지 않냐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면 더 이상 공부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왜? 학교에 다니면서 이미 질린 만큼 공부에 질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른에게 더 필요한 공부와 배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과정이 있는데 바로 방황입니다.

사실 저도 방황하기 때문에 저의 방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시대는 방황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지 않고 빨리 어른이 되기를 강요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그것이 어떤 것인지, 또 자기가 선택한 것이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모르고 막연하게 길을 들어서게 됩니다.

어른으로 살다 보면 학창 시절과 같은 시험은 없지만, 매일의 사건과 고난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것이 끝없는 터널이라고 인식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질문을 던진 제자에게 또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싶은 라틴어 문장이 있습니다.

 

Omnis consummationis vidi finem

옵니스트 곤스마조니스트 비디 펴냄 

 

나는 모든 완성의 끝을 보았노라

나는 모든 완성의 끝을 보았노라.


북아프리카 히포 교구의 주교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부활 축제 때 신도들에게 한 성경 풀이 특강 중 한 구절입니다.

이왕 한번 라틴 해봤으니까. 아우구스티노스의 말을 한 번 더 가져와 보겠습니다.

 

Noli haerere in via, et non pervenire ad finem.

놀리헤레의에 on 베르베니의 아드리 냄

길에 머물러 있지 마세요, 그러면 목표에 다다르지 못할 겁니다

길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그러면 목표에 다다르지 못할 겁니다. 


Ad quidquid aliud veneris, transi usque quo pervenias ad finem

할리우드 베네리스 트시우스 베르베니아스 아드리 냄

그대가 다른 어느 곳에 도착하더라도, 목표에 도달하기 전엔 그저 지나치세요

 

그대가 다른 어느 곳에 도착하더라도 목표에 도달하기 전엔 그저 지나치십시오.


결국 성 아구스티노스는 목표까지 도달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뭐겠습니까? 끝까지 가라는 겁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자면 끝이 있다는 말입니다.

터널의 끝은 분명 존재하고, 그러니 우리는 그 끝을 향해 가는 겁니다.

끝에 도달해야 터널도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터널의 끝은 있습니다. 

 

 

 

터널 하니깐 2010년 저 자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로마에서 10년 정도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공부를 마쳤고 변호사 자격증도 땄는데,

한국에서 확실하게 보장된 미래가 없었던 아주 막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사 생활을 시작하고 밤에는 라틴어나 교회 법률 용어나 다른 사전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곱 시부터 저녁 열한 시까지 예, 건강에도 커다란 무리가 가게 됐습니다.

밤마다 혈관 확장제를 먹으며, 내가 왜 이 지난한 작업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되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우울함과 아픔의 난을 치유하게 된 계기가 바로 어느 한 대학에서 맡게 초급 라틴어 강의였습니다.

 

라틴어 문법 외에도 로마 역사와 유럽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이게 의외로 학생들이 꽤 좋아했습니다.

그 수업을 바탕으로 출간하게 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그 책이 지금 일본에 나왔는데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무수히 많은 독자들이 남긴 따뜻한 서평은 제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터널을 만납니다. 

터널은 한 번일 수도 있지만 여러 번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길고, 어두운 터널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무엇? 끝이 있다는 겁니다. 

결국 끝까지 간 사람만이 터널도 빠져나갈 수가 있는 겁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캄캄한 암묵 속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상황을 보는 우리의 마음을 바꿈으로써 우리는 한 발자국 내딛을 수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저의 유년 시절은 아주 거대하고 긴 터널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핑계는 있었습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여유가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집안 환경이 바뀌면서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시험공부를 해도 가족들은 티브이를 끄거나 티비 소리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늘 다투셨습니다. 

오늘날 수능에 해당되는 저희 때는 학력고사 시험 보는 그날도, 우리 부모님은 다투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시험 보러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늘 힘들었고,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주 끝없는 터널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을 뛰쳐나오기에는 저는 너무 어리고 힘이 없었습니다.

한 번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기까지만 버티자고만 했습니다.

 

왜? 

왜?

 

거기서 주저앉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으로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마음이 편해졌어요.

 

왜?

 

지금까지 계속 부모님에게

'왜? 우리 부모님은 이래야지?'

'왜? 우리 부모님은 이것밖에 안 되지?

'왜? 싸우지?'

그렇게 생각했다가

 

아주 클리어하게, 아주 분명하게,

아 우리 부모님은 나의 부모님은 나를 낳아주신 것만으로 모든 역할이 끝났다.

그 이후의 몫은 누구의 몫? 나의 몫

 

그러니까 아주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습니다.

암흑 속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딘 겁니다.

그때, 제가 터널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멈췄다면,

오늘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도 없고 지금 제가 이 자리에서 새밭이 무대에 설 일도 없었을 겁니다. 

 

지금 나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10대의 나의 모습이 20대의 나의 모습이 30대의 나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위대하고 뛰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빛을 보여준 것은 또 다른 계기가 있었는데,

우연히 친구 집에 놀러 가다가 하버드에 간 친구 형 서재에 들어갔습니다.

거기 제가 보지 못한 수많은 책들이 있었습니다.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형 몰래 친구를 통해 책을 빌릴 수 있었 있었습니다.

책은 저에게 어떤 것을 주었냐면,

이 답답한 현실과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유일한 통로요 창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한 번에 단 번에 잘 되는 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공부를 할 때, 진도는 안 나가서 조바심이 나는데, 책을 볼수록 모르는 게 많아 불안해질 때가 많습니다.

고개를 끄떡끄떡 합니다. 예 ~

하지만 저는, 하던 공부가 안 될 때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비록 남들은 나를 지질하게 보던, 남들은 나를 보잘것 없이 보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때 한 것이 뭐냐 라틴어 단어 몇 개 더 외우거나. 오래 걸리는 작업을 조금씩 해 나가는 거였습니다.

마치 징공간에 저 자신을 가둬 놓은 것처럼.

이것이 제가 권하는 인생의 터널에서 주저하지 않고, 터널의 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뭐냐? 무언가 매듭을 지으면서 앞으로 가는 겁니다.

그 매듭이란 저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있었는데 바로 바티칸 대법원 로따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티칸 대법원 로따 로마나 사법연수원에 입학할 때 저의 동기들은 모두 40명이었습니다.

40명 가운데 저는 40등으로 입학했습니다. 

그중 최종 변호사가 변호사 자격시험을 본 사람은, 유급생을 포함해서 12명밖에 안 됐는데,

그중에서도 최종 합격자는 단 3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첫 번째 변호사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최종 변호사 시험 자격 시험 날이 왔을 때, 그때 너무 떨려서 손이 떨려서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진짜 혼이 반쯤 나간 상태로 시험을 치렀는데, 한 달 후에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노다 로마라의 변호사가 됐습니다.

 

 

아 하튼 길고 고단했던 저의 공부는 그렇게 매듭이 지어졌고, 끝날 것 같지 않던 하나의 터널이 마침내 끝났습니다.

삶이란 뭐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공부도 삶도 무엇 버텨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루를 버텨내어 매듭을 짓고, 그 하루가 뭐여 작은 목표의 매듭을 짓고, 그 매듭들이 모여 삶이라는 아주 단단하고 굵은 동화줄이 되는 거죠.

매듭을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오로지 누구? 예. 나의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은 지금 터널에 어디쯤을 가고 계신가요?

어떤 매듭을 짓고 계신가요? 

많은 순간 포기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순간도 수없이 찾아올 겁니다.

그런 때에도 매 순간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며 새로운 결심을 하고 다시 오늘의 매듭을 지어 나가는 것 

저는 그게 살아가는 것,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라틴어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Totam rem efficiamus, quandoquidem coepimus.

 

일은 한 번 손댄 이상 마쳐야 한다

 

일은 한 번 손댄 이상 모두 어떻게 해야 된다? 마쳐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오르기 힘든 산은 지금 내가 오르는 산이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산을 갖고 있습니다.

 

저 역시 오르지 못한 수많은 산이 있고 지금도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산을 앞에 두고 한숨을 쉬며, "아 저 길 어떻게 오르냐?"라는 사람이나 어두운 터널 아래서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거라는 사람에게 제 이야기가 전부 와닿을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와닿아?

하지만, 질문을 던졌던 제자에게 이런 말은 최소한 저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모든 터널의 끝은 있다. 다만, 끝까지 간 사람의 한 해"

그리고 여기에 성 아고스티누스의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바로 거기에 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끝을 위해 달리고 있고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 끝에 다다랐을 비로소 우리는 편히 쉬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건 정말 끝에 도달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일 수 있습니다.

마음과 미래의 공통점은 단순히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데만 있지 않고 

이 두 가지는 어떤 공통점이 있느냐?

불확실하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흔들리고 불확실한 마음과 미래에 확신을 주며 끝까지 터널에 끝을 갈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믿음입니다. 

종교적 믿음? 그거 말고

현대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믿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떠한 믿음이요?

끊임없이 실패하고 무너지고 흔들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지금 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누구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말입니다.

나의 최대의 유혹은 지금의 보잘것없는 나의 모습, 더 나아가 감추고 싶은 결함과 부족함을 보고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게끔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대한 문어나 예술가들의 그림과 음악, 그들의 글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일상 생애가 그들의 작품처럼 아주 근사하고 유려하게 흘러갔을까요?

아니요

그들의 일상은 얼룩과 상처, 스스로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도배된 수많은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심지어 남들에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나의 치부와 아픔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대단한 것은 

그런 와중에도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걸어가는 분에 한 획을 그었다는 겁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위대한 인물처럼 어떤 커다란 한 핵을 그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해진 생을 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한 핵을 긋는 것일 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각자의 터널을 빠져나와 더 단단한 모습으로 저희는 어디선가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곁이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으로 다음에 여러분과 함께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부족한 사람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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