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마케팅이다 | 조서환 조서환마케팅그룹, 아시아태평양마케팅포럼 회장 @모티베이터조서환 | 경기도 지식 GSEEK | 세바시1567회
부대 내에서 수리탄 폭발 사고가 났는데요.
머리에서만 파편이 24개를 꺼냈는데요.
파편 맞아서 그런지 제가요. 얼굴에 주름살이 안 생겨요.
머리도 쉬지 않아요. 이거 염색한 거 아닙니다.
저는 파편이 이렇게 효과 좋은 줄 몰랐어요.
장영신 회장님께서 갑자기 "전공이 뭐예요?" 하 그러는 거예요 저 영문과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영어도 잘 하시겠네요.
그래서 뭐 조금
그랬지요 누가 그랬죠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 그 말이 맞은 것 같았어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모티베이터 조수환입니다.
먼저 오늘 오신 관객 여러분께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20개의 치아는 80세까지 지켜져야 합니다. 2080 치약 들어보신 분? 엄청 많네요.
혹시 이런 광고 카피도 들어보셨나요?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KT의 전신 KTF 쇼를 하라 쇼 이것도 들어보셨나요?
저는 평생 마케팅을 해왔는데요.
마케팅은 약점보다 강점을 돋보이게 하는 게 아주 중요하더군요.
우리 인생도 마케팅과 똑같습니다.
강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2080 치약을 마케팅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경쟁사의 도움이 엄청 컸습니다.
완전한 성숙 시장이었던 치약 시장에, 대기업 경쟁사들이 광고를 어떻게 했냐면요.
치주염, 치은염, 잇몸 질환, 미백 효과 무슨 무슨 치약 또 다른 경쟁사는 더 했어요.
치주염, 치은염, 잇몸 질환, 미백 효과, 중치 예방 구취 제거까지 무슨 무슨 치약 이거 소비자가 기억할까요?
이들은 모두 만병 통치약처럼 광고를 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 역지사지 해 보면 전혀 기억 안 납니다.
무슨 광고인지조차도 몰라요.
레드 오션 속에서도 기회가 있다고 한 전략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가장 늦게 나온 이공팔공 칠학은 대 성공해서 일 년 만에 레드오션 속에서 일등 브랜드가 된 것입니다.

하하 또 모든 화장품 회사들이 뭐라고 광고했어요?
화장을 바르는 걸 광고를 했어요. 근데 저는 반대로 지우는 걸 광고했죠.
우리의 강점인 화장은 목은 깊숙히 크렌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서 바로 1등 브렌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이렇게 또박또박 걸어와서 이렇게 서 있으니까 멀쩡해 보이죠? 근데 오른손이 없답니다.
어 거기 예 의수입니다. 이거는
놀랐죠?
저는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 줄기를 타고 태어났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애를 몇 명 낳았냐면요 무려 10명을 낳았습니다.
그 동네는 다산하는 지역이었는지, 일곱 여덟 명 보통 났어요.
농촌에서 가난해서 저마다 대학을 보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저를 장군감이라고 군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저도 꿈이 장군이 되는 거였죠.
그런데 일찌감치 23살 육군 소위 때 꿈이 무너져 버렸어요.
부대 내에서 수류탄 폭발 사고가 났는데요.
소대장인 죄가 수류탄을 최대로 멀리 던지는 순간 머리 위에서 수류탄이 폭발해 버렸어요.
끔찍했습니다.
그때 만약 수류탄을 1초만 늦게 올렸으면, 제 몸은 공중분해 됐을 겁니다.
머리 위에 쓰고 있던 철모가 1차 맞고, 2차로 그 밑에 있는 파이버가 맞고 3차로 머리뼈가 막아가지고 살아남은 것이죠.
정말 기적이죠.
머리에서만 파편이 24개를 꺼냈는데요.
온몸은 다 벌집이 됐고요.
참으로 다행히 얼굴에는 지금 보시다시피 파편이 한 개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파편 맞아서 그런지 제가 얼굴에 주름살이 안 생겨요.
그리고 머리도 쉬지 않아요. 이거 염색한 거 아닙니다.
저는 파편이 이렇게 효과 좋은 줄 몰랐어요.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보면 정말
직업도 잃었죠. 꿈도 잃었죠 희망도 잃었죠. 오른손잡이가 오른손도 없죠. 인생에 답이 없었습니다.
큰일 났다. 어떻게 먹고 살지?
정말 손을 잃고 나서 정말 엄청난 좌절과 실의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살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살아 있는 게 기적이긴 한데, 뭘 먹고 살아야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심지어는 그때 수류탄 폭발 사고와 함께 차라리 죽는 게 나은데...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그런데 위기 일발 직전에 저를 살려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일어나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죠.
근데 문제는 앞으로 뭘 하며 살지, 어떻게 해먹고 살지,
집은 가난하고 비빌 언덕조차 없는데,
그때 먹고 사는 것보다 더 큰 걱정거리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그때 제가 끔찍히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자친구가 보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연락을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온몸이 붕대로 둘둘둘둘 감아 은 이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더 이상 여자친구를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이제는 파편마저 아픈 게 아니라 가슴이 아프기시작했어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다
그런데 만날 수가 없으니 ...
그래 고민고민하다가 드디어 연락을 했습니다.
물론 손 없다 소리 안 했고요.
그냥 보고 싶은 사람 한 번 보고 헤어지자라고 생각을 했어요.
근데 두려웠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무서운 거지요.
정말 힘들게 연락을 해서 여자친구와 통합병원으로 왔습니다.
그때 손 잃은 저의 모습을 보고요. 깜짝 놀라 우두거니가 돼버렸어요.
저는 가만히 그렇게 보고 싶어 했지만 서 있고, 장교 병실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입원에 있던 장교들은 둘이 얘기하라고 슬슬 나가자 나가자 그러고 나갔어요.
한참을 지나서, 저희 몸 상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생각할 때
주저하고 망설이고 주저하고 망설이다가 드디어 힘든 질문 하나 합니다.
아직도 날 사랑해?라고 이렇게 물어봤어요. 이게 확인돼야 살 것 같았어요.
그랬더니 그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요.
앞으로 고개를 두 번 끄떡 끄떡 하는 겁니다.
그때
저는 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으로 정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어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누가 그랬죠?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
그 말이 맞은 것 같았어요.
그때 각오를 합니다.
그래 너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내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너 하나만큼은 행복하게 해줄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내가 존재해야하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너를 위한 것이야.
이 사람을 위해서 일어서쟈.
내가 낙담할 게 아니라 이 고마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줘야 되겠다.
그리고 비장한 각오로 일어서기로 결심합니다.
정말 뚜렷한 인생의 목표가 생긴 겁니다.
이제 마음이 급해졌어요.
우선 먼저 오른손이 했기 때문에 왼손으로 글씨 연습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 강점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평소 영어를 좋아했던 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아! 영어를 잘해서, 영문과 교수가 되면 손 사용하지 않고 입으로 사용해서 먹고 살 수 있겠구나.
와우!
몸은 아팠지만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합니다.
근데 목표가 뚜렷하니깐요. 긴 문장도 세 번만 읽으면 다 웨어지는 거예요.
오 머리가 이렇게 좋아졌어요.
처음에는 파편 맞아서 머리 좋아지는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야.
몰입하고 집중했던 거죠.
몰입하고 집중할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 평상시에 나타나는 포텐셜 능력의 7배 아니 70배까지 나타난다고 봅니다.
엄청난 장인 어른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는 결혼을 강행합니다.
결혼하고, 정말 대학 졸업 전에 연년생으로 애를 두 명을 낳아요.
학생 신분으로, 자동 교수의 꿈은 사라졌고, 가족 먹여 살려야 되기 때문에 취직을 해야 했습니다.
아내가 있기에 참 가난했지만 행복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취직이 되지 않습니다.
어? 국가유공자 우대해 준다고 그랬는데,
어? 10점 가점 해 준다고 그랬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손 없는 국가유공자 본인은 싫다는 거죠.
여러 군데 취업에 실패하고 고민고민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야 이거 굳이 묻지도 않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 손 얘기를 할 필요 있을까?'
내가 또박또박 걸어 나올 때 여러분들 몰랐잖아요.
아 이 얘기 하지 말자. 국가유공자 증명서 떼어내지 말자.
그리고 애경그룹에 면제 통보가 왔을 그냥 갑니다.
몰라요.
근데 면접 두 손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으니까.
전혀 모르는데, 날카로운 면접관에 의해서 결국 오른손이 의수라는 것을 고백하고 말아요.
면접 중단
그리고 그 즉석에서 낙방 통보를 받습니다.
살기 싫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그때 마침 인천에서 회기역까지 오는 전철이 쫙 경희대 앞에까지 오는 전철이 들어서는데,
'뛰어내릴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정말 억울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거 세상에 시키는 대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이래서 안 되겠다.
다시 면접장에서도 저도 모르게 뒤돌아서 뛰기 시작합니다.
막 뛰어가지고요.
허가를 받아 주시오 잠쉬면 됩니다. 잠시면 됩니다. 하고 허가를 받아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누구나 다 두 손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 한 손으로 글시쓰지요.
저도 얼마 전까지 두 손이 있었지만 그때도 한 손, 지금도 한 손으로 글씨 썼습니다.
누가 양손으로 팬 잡고 곧 동시에 글씨 씁니까??!!"

"비록 저는 한 손밖에 없지만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 책임감도 강하고요.
어차피 어영부영 손도 없는 사람이 살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할 수밖에 없지요.
저는 나쁜 짓 하다 손 다친 사람이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기꺼이 내 손을 희생한 국가 유공자입니다.
여러분 자식들은 군대 안 갑니까?"
쭉 저 얘기하는 거를 쭉 보던 장영신 회장님께서, 용기를 가상하게 보셨던지 갑자기
"전공이 뭐예요??" 그러는 거예요.
저 영문과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러면 영어도 잘 하시겠네요."
그래서 뭐 ... 조금 그랬더만은
"그러면 그거 영어로 다시 한 번 해보세요."
오 클났어 ! 나도 무슨 얘기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거 영어로 하래.
그때 망설 망설 망설 하는데, 하나님께서 계시를 내리는 거야.
성환아 예! 영어로 말해 말해 말해 말해도 어차피 그 사람들 못 알아 듣는다.
기가 막힌 순간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예요.
그래서 영어로 막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표정들을 살펴보니까 진짜 대부분 못 알아듣는 것 같구나.
근데 한 분 그분은 알아들었는지 가운데 계신 분은요. 얼굴이 어머니와 같이 환해지셨어요.
알았어요~ 나 혼자 뽑는 건 아니니까.
그 이튿 날 오후 다섯시 반, 우체국 집배원이 전부를 갖다 주는데 애경 입사를 축하합니다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절대 절대 절대 포기하지 말자.
그렇게 힘들게 애경에 입사를 했는데, 제 인생은 왜 이러냐 진짜 산 넘어 산이야.
시키는 일이 공항에 가서 이거 들고 있는 거야 피켓 팔이 빠져
야 내가 이거 영문과 이거 들러 나왔냐? 회사 가면 번역이야
그러다가 안 들 수도 없고, 그러다가 야 이거 아프긴 한데 이 두 팔 가진 사람 바꿔내야 될 나는 한 숨밖에 없으니까
그러다가 어떻게 해야 되나 하다가 피할 수는 없고
야 이거 즐기자 어떻게 즐겨?
운동 운동했어요
오 팔이 안 아픈 거야 운동이라고 그러니까
아 이거 인생은 멘탈이구나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니까 그때부터 팔도 안 아프고요.
그때부터 외국인들이 주는 명함을 봤어요. 그런데 거기에 마케팅이라고 쓰여있었어요.
1980년대 초 우리나라에는 마케팅 용어가 아예 있지도 않은 시기인데,
이들은 다 마케팅이라고 명함에 쓰여 있다 이거죠.
아 이게 미래다 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그래서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에 주경야동으로 마케팅 공부를 했습니다.
친구들은 입사 동기들은 비아냥 대죠.
야 공부해서 뭐 하려고? 교수될 것도 아닌데,
친구들은 술 먹으러 가고 노래방 가고 했지만 저는 도서관으로 가고 밤에 학교로 가고 했죠.
참 피곤하고 견딜 수 없을 때도 있지만, 노페인 노게인 그냥 얻어지는 거 없다.
2년 뒤에 영국과 미국 두 회사가 나눠지고, 저는 마케팅으로 대형 히트 제품들을 내기 시작합니다.
업개에서 이름이 나기 시작하고 극기 국제적인 헤드언터 콘페리사가 저를 미국 다이알사로 중역으로 스카웃 합니다.
군대에서 못 단 별을 만 35살에 별을 단 거예요.
마케팅 임원이 된 겁니다.
당신의 노력은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이 정확히 맞았어요.
급기야 KTF의 마케팅 전략실장으로 발탁돼서 거기에서 부사장까지 올라갑니다.
최근 우리 사회 청년들은 어떻게 보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부족한 경제적인 여건, 부족한 일자리, 경쟁 과열, 결혼, 출산
그런데 약점 잊고 강점에 집중하십시오.
우린 통상 약점에 매달립니다.
근데 살아보니깐요. 약점은 잘 극복해도 이등 갑니다.
강점을 살리면 바로 1등 간다는 걸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오른손이 없다는 사실에 집착했다면, 아마 이 자리에 못 서셨을 겁니다.
자 여러분 10초만 눈을 감아보세요.
그리고 약점을 떠올려 보세요.
네 다시 십 초간 눈을 감고 나의 강점을 떠올려 보세요.
이것이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 될 것입니다.
제 얘기가 여러분께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힐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YouTube > 세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바시 1569회 | 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삼대(三代) | 김별아 소설가 (0) | 2025.03.21 |
---|---|
세바시 1568회 | 인구절벽에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법 | 오 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경희대학교 석좌교수 (0) | 2025.03.21 |
세바시 1566회 | 끝없는 인생의 터널에 가장 필요한 것 | 한동일 '라틴어 수업'저자,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0) | 2025.03.21 |
세바시 1565회 | 당신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법 | 신정훈 동신중학교 2학년, 특허청 청소년 발명기자단 19기 (2) | 2025.03.20 |
세바시 1564회 | 정조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효 | 임자헌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0) | 2025.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