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눈으로 바라본 삼대(三代) | 김별아 소설가 | #부모 #역사 #드라마 | 세바시 1569회
소설에서는 소위 얘기하는 그 문제적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걸 좋아합니다.
강한 아버지 아래 유약한 아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인
그렇지만 그 할아버지가 나를 너무 사랑하는
아직까지도 사도세자가 왜 죽었는지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서 사실 의견이 분분하잖아요.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의 애증 애와 증에 대해서는 스토리텔링의 3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김 변호 선생님 인사 먼저 좀 해 주시죠.
김별아 :
예 안녕하세요.
저는 30년 차 소설가 소설 미실로 독자분들을 좀 많이 만났던 예 소설 쓰는 김별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혜경홍 씨가 쓴 한중록이라는 책을 읽다가, 이 대목을 좀 제가 밑줄을 그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손이 망극한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휘령전에 들어가 아비를 살려주옵소서 하니 영조께서 나가라 명하시니라.
세송께서 나와서 휘령전에 딸린 왕자의 제실에 앉아 계시니 그 정경이야. 고금 천지간에 다시없더라.
저는 이제 소설가이기 때문에 그 그림이 그려지면서 때의 11살짜리 소년이 저절로 눈앞에 떠오르더라고요.
실제로 할아버지한테 저항할 방법이 없었잖아요.
지금 여기 화성에, 화성 봉담에 되게 유명한 효자 최루백이라는 효자를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최루백 같은 경우는 15살에 아버지가 호환을 당해서 호랑이한테 진짜 물려간 거예요.
그런데 이 15살짜리 소년이 호랑이를 막 찾으러 다녀요.
잡으로 가서 실제로 잡았어요.
배를 갈라서 그 속에 아버지 뼈를 추려서 갖고 나왔단 말이에요.
그래서 화성에 굉장히 유명한 효자로 고려의 대표 효자로 이렇게 등극이 됐거든요.
그런데 그 최도백에 비하면 이 정조는 11살의 소년 정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위해서 가서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었지만 할아버지한테 씨도 안 먹혔던 거고
이런 무력감이나 패배감이나 절망감 이런 것들이 결국은 평생 동안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사부곡을 부르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러면서 관심을 좀 갖게 됐습니다.
사회자:
그 11살이 감당해야 했던 지금 이 자리에도 아마 11살 어린이들이 지금 와 있을 거예요.
저도 집에 저희 막내가 11살이라 그 아이가 만약에 저런 장면에 정말 있었다고 그러면 어떨까 지금 상상조차 되지 않는데 자 그렇다면 또 우리가 이제 소설가로서 보시면서 아무래도 캐릭터를 그냥 보시지 않잖아요?
김별아 :
소설에서는 소위 얘기하는 그 문제적 인간들을 그 주인공으로 삼는 걸 좋아합니다.
문제적 인간이라는 게 문제가 있다기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으로서의 어떤 힘을 얘기하는데, 한 분씩 얘기를 하자면 영조 같은 경우는 다들 아시겠지만 굉장히 대단한 효자였어요 이분도.
그래서 그 모친인 수빈인 최 씨의 사당에 거의 매달 방문을 했다는 기록이 있고요.
그리고 생각보다 굉장히 눈물도 많고, 다혈질이고, 그 실록에는 그렇게 표현이 됐는데 지나친 거조.
이게 뭐냐 하면, 욕도 잘하고 거친 말투를 보이셨던, 근원에는 이제 출신에 대한 깊은 콤플렉스나 의심 그리고 그러면서 양면이 다 가지고 있는데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굉장히 이성적이고 치밀한 그런 분이었고,
사도 세자의 경우는 제가 논문을 하나 봤는데 서울 아산병원 정신과학 교실에 정하은, 김창윤 선생이 쓴 논문이 있어요.
뭐냐 하면 '사도세자의 정신과적 병증 증상' 이게 이제 논문 제목입니다.
데 여기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그 우울 사파 우울한 것과 조증 사파 막 이렇게 날 뛰는 너무 신이 나거나 뭐 이렇게 너무 업된 이것이 반복해서 발현되는 그래서 정신과에서 얘기하는 것은 양극성 장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양극성 장애의 증상 중에 하나가 강박증이래요.
굉장히 강박죠.
그래서 우리가 아는 사도세자의 그 의대증, 옷을 막 벗었다 입었다 그 옷에 집착하는, 또 물론 영조에 의해서 아버지에 의해서 강화된 어떤 스트레스, 이런 것을 통해서 이런 전혀 다른 모습의 비극을 맞는 그런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 정조 대왕 같은 경우는 이 모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스토리를 잇는 3대의 손자인데,
이분의 즉위 일성이 그거잖아요.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오.
이게 굉장히 저는 인상적인 게 뭐냐 하면 지금까지 이모 화변이라고 얘기하는 그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서 죽인 얘기에 대해서 한 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고, 모든 것이 금기가 돼서 아무도 말할 수 없고, 그리고 심지어 뒤줄을 뒤주라고 말하지 못하고 일물 이렇게 부르고 막 이런 정도로 금기가 되어 있는데,
처음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이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을까?
깜짝 놀랐겠죠.
이게 무슨 피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그런데 그게 세손 때부터 저는 그 11살 때부터 이미 치밀하게 계산된 정치적인 어떤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까 뭐 그런 얘기도 했었는데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죽인 그렇지만 그 할아버지가 나를 너무 사랑하는 이 모순 속에서 굉장히 그 괴로움을 이기는 하나의 방식으로 약간의 방어적인 방어 기제의 하나로 이 효행에 더 열심히 효를 실천하지 않으셨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회자:
그렇다면 이제 좀 그 기록물들 같은 경우는 이제 두 분은 같이 이렇게 연구를 하고 계시니까.
연구하면서 정말 아 효심이 이렇게까지 정말 했구나, 좀 인상 깊었던 것을 발견하셨던 게 있다면,
임자헌 :
번역을 하다 보면 어 아주 세부적인 기록을 보는 거라서, 어떤 극적인 대목을 잘 만나게 되지는 않아요.
근데 거기 되게 재밌는 기록이
이거 화성을 축조를 할 때, 네 아버지를 기념해서 만드는 거기 때문에 욕을 먹으면 안 되잖아요.
그 여름이 돼서 더우면 인부들이 더위 먹을까 봐 정조가 전전긍긍 하는 거예요. 그것도 욕먹는 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그 성분은 알 수가 없는데, 더위를 물리치는 환약이라고 해서 척서단이라는 거를 제조를 해서 보내요.
근데 너무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라 기록을 하기 때문에 척서단 몇 알을 보냈고,
그러면 이제 받아서 거기서 이 공역 감독하는 사람이 몇 달을 받았는데,
누구를 뭐 어떻게 나누고 또 누구한테 얼마를 줬고, 이거를 총계를 내서 또 보고를 해요.
그런 섬세함 그게 재밌죠
사회자:
혹시라도 중간에 누가 띵가 먹을까 봐, 전문 용어는 아닙니다만 하하.
아 그 정도로
임자헌 :
화성도 그냥 나 짓고 싶어 돈 내 내가 그냥 옮길 거야 이게 아니고 예산을 굉장히 철저하게 세워요.
그래서 예산을 어디서 떼고 뭐 누구 어디에서 빌려오고, 또 부족한 예산 어디서 가져오고, 몇 년 안에 갚고, 이걸 또 다 기록을 해놔요.
사회자:
그냥 막 무작정 만든 게 아니고 치밀한 계획 하에 다 했다는 얘기군요.
우리 김소라 박사님은?
김소라 :
네 정조가 이제 살아서 한 행동 중에 하나가 사도세자가 살아 생전에 다녔던 공간을 찾아다니는 건데
그중에 하나가 이 근처에 길을 지나서 사도 세자가 몸이 아플 때 온천을 찾아서 간 적이 있대요.
이제 그 소식을 듣고 똑같은 길을 찾아서 가봅니다.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 지나실 때, 와서 봤던 노인이 있으면 불러달라 얘기를 해요.
그래서 이제 그 동네 노인 중에 사도 세자 본 적 있다 하는 사람들이 왔는데, 이제
"우리 아버지가 그때 어떠셨느냐 좋았지?"
이렇게 묻습니다. 당연히 이제 좋다고 얘기하죠.
"아 역시 나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아버지 좋은 사람이야."
얘기를 하고 내려갑니다.
그리고 이제 내려와 가지고 이렇게 묘를 둘러보는데요.
한 번은 묘를 딱 이렇게 보고 있는데, 옆에 정성스레 심은 소나무를 송충이가 막 갈아먹고 있었대요.
송충이를 덥석 집어서 자기가 먹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감히 건방지게 어디서 우리 아버지 묘소에 솔잎을 갈아 먹느냐 이럴 바에는 너를 먹겠다."
이러면서 송충이를 먹어요.
그런 걸 보면은 이제 퍼포먼스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내가 이렇게 할 만큼 아버지를 중시한다.
그런 걸 보면은 사도 세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별아 :
저도 1800년 6월에 그런 기록이 있는데,
현융원에 가서 땅을 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목매여 울먹였던 그 기록이 나옵니다.
정조 대왕이 돌아가시기 5개월 전이에요.
그리고 그때 이제 연세가 49세, 이제 거의 중장년이었던 아들인데, 여전히 아버지 무덤 앞에 가면 아버지는 젊어서 죽었잖아요.
27살의 젊은 아버지 무덤 앞에서 진짜 목매여 흐느끼고, 손으로 땅을 치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 아버지를 그리워한다는 대목이 굉장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회자:
아비보다 더 나이 먹은 본인이 ... 그렇죠?
자 또 질문을 하나 더 드리면, 정말 드라마나 영화에 정말 단골처럼 등장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뭐 뭐 이방원이라든지 그렇죠? 그 다음에 이순신 장군 뭐 이런 분들이 있는데,
특별히 영조, 정조, 사도세자 이 세 사람의 캐릭터가 이렇게 스토리텔링에 화젯거리가 되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별아 :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눠 갖지 않는 것이다.
뭐 이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런 말이 있는데,
사실 이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의 애증 애와 증에 대해서는 사실 그 스토리텔링의 3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스토리텔링을 얘기할 때 첫 번째가 캐릭터의 상징
그러니까 이 세 사람은 강한 아버지 아래 유약한 아들 그리고 그 가족의 비급 트라우마 이런 것들을 굉장히 선명하게 보여주는 상징들이고요.
두 번째는 타임라인
타임라인은 그 시기적으로 해서 어쨌든 흘러오는 이야기성을 얘기를 하는데, 사실 영조가 왕위에 등극할 때부터 이미 타임라인이 선명하게 마련이 되죠.
왕세제로서 그리고 그 이후에 사도세자 아들, 이모 하변 그다음에 이제 정조가 등극해서 이렇게 아버지를 높이는 그 과정까지 그 타임라인이 굉장히 명확하고요.
그다음에 이제 나머지 세 번째 스토리텔링의 요건이 상상을 위한 여백입니다.
꽉 차 있으면 사실은 역사에서 더 이상 우리가 해석할 것이 없는 거죠.
아직까지도 사도세자가 왜 죽었는지,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서 사실 의견이 분분하잖아요.
그 해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굉장히 각자 다른 모습의 사도세자와 또 영조가 나오고 정조가 등장하는 것은 그 상상에 대한 여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가족이라는 어떤 굉장히 특수한 상황, 그 속에서 굉장히 적나라한 욕망과 인간성 이런 것들이 드러나기 때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회자:
그렇다면 우리가 한번 그 캐릭터들의 주인공들의 한번 마음을 좀 한번 상상해 본다면, 상상이 아니지만
김소라 :
제가 봤을 때 정조는 원칙주의자예요. 그래서 이제 룰을 어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봤을 때 이 혈룡원에 올 때는 룰을 어겨요.
뭐냐 복색을 자기가 원하는 걸 입습니다. 그게 바로 군복입니다.
이 군복을 입고 묘에 온다라는 거는 어떻게 생각하시면 되냐면, 대통령이 현충원 참배를 가는데 민방위복 입고 간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당연히 예가 아니니까 신하들이 다 만류합니다. 이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정조는 매번 여기 올 때마다 군복을 입히고 자기도 입어요.
급기야 전체 유니폼을 다 군복으로 바꿉니다.
그 이유는 사도 세자가 이 근처 지날 때 군복을 입고 왔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함으로써 보여주는 거죠. 나 아버지 잊지 않았다라는 것을.
사회자:
그 원칙주의자가 그 원칙을 그렇게 깰 정도로 아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셨네요.
우리 이렇게 지금 정조 대왕과 또 효에 대한 이야기 나누면서 우리는 어떤 걸 좀 배우고 느껴야 할까요?
김별아 :
사실 젊은 세대가 그 효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요즘은 K 장녀, K 장남 대리 효도 이런 얘기를 하면서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잖아요.
더 이상 가족 안에서 희생되지 않겠다. 그리고 효도는 셀프 각자 하자 물은 셀프고 효도도 셀프다.
뭐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효도는 현대에서는 어쨌든 조금은 그 의미를 다시 곱씹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일방적으로 자식이 부모에게 바치는, 혹은 명분을 통해서 제도와 이념을 통해서 이 사회를 통치하는 이념 이런 것이 아니라 그걸 뛰어넘어서 인간관계의 하나이지 않은가? 인간관계에서는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그렇잖아요. 일방적인 것은 없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 가장 좋은 관계이고, 그리고 제일 성숙한 관계는 이상적으로 얘기하자면 죽어도 돌려받지 않는 것이죠.
보상 심리가 없는 것이 가장 성숙한 관계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 정조 대왕이 사도세자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 같은 경우는
사실 아버지에 대한 효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존엄성을 찾는
그래서 저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이렇게 좀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이어야만, 명분이나 도리보다 사랑이어야만 좀 세계의 확장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현대의 효도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질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순정한 사랑, 저는 이렇게 좀 정의를 하고 싶고요.
인류애로 어머니 아버지도 인간의 하나로 서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회자:
어 우리가 역사 이제 과거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현재를 살고 있고 또 우리의 미래를 살아가 있을 우리가 또 역사를 잊을 수는 없는데,
세 분은 그래도 역사에 대해서 또 남들보다 어 어느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는데,
우리가 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공통 질문으로 좀 드리면서 좀 마무리를 할까 하는데
우리 김소라 박사님부터
김소라 :
네 저는 연구를 하는 연구자인데요.
연구자한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선행 연구입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아 이렇게 하면 좋겠다 저렇게 하면 좋겠다 하면서 제 길을 새로 찾을 수 있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역사를 보면 지금 내가 힘들고 흔들릴 때, 저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이걸 한번 반주해 볼 수 있는 좋은 귀감이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 역사는 거울이다라고 했거든요. 그 의미를 되새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네 감사합니다. 박수 한 번 좀 부탁드릴게요. 우리 임자헌 의원님
임자헌 :
저는 논어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너무 여러분들도 잘 아실 텐데 온고이지신이에요.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주로 옛 어른들은 온고만 좋아하죠.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지신만 좋아해요.
우리는 사자성으로 온고지신이라고 하지만 원문을 보면 온고이지신이거든요.
접속사 이가 들어가요. 다리를 놓는 거죠. 과거와 현재는 중간에 다리가 놓아야 져야지만 미래로 갈 수 있거든요.
저는 진짜 역사라는 건 그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아무것도 인간 조건이 변한 게 없거든요.
그래서 과거에 묻혀져 있던 역사들을 통해서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습니다.
그걸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그래서 오늘을 바로 세운다면 우리 다음 세대가 우리를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미래를 바르게 세울 수 있겠죠.
김별아 :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이런 책에서 한 구절에 이런 게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에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늠될 것만 같다.
저는 이 말을 참 좋아하는데 우리가 굉장히 얄팍한 시간과 공간 속에 갇혀서 산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모르면,
그래서 지금 당장에 사는 것에 아등바등 하면서 살게 되는데, 이 시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어서, 이렇게 살 수 있는 두터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역사를 알고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저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굉장히 즐겁거든요.
그래서 어디를 가도 우리가 디디고 있는 발 밑에 층층이 쌓여 있는 이 땅을 또 우리 정조 대왕도 밟았을 테고,
누군가가 또 밟고 지나갔을 거라고 상상을 하면,
이 두터운 삶을 많은 분들과 같이 좀 즐겨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사회자:
어 정말 멋진 강연 같은 이야기 들려주신 우리 김요라 작가님께 여러분 또 특별히 감사의 박수 좀 다시 한번 부탁드리고요.
오늘 함께 또 토크에 참여해 주신 우리 두 선생님께도 여러분 다시 한 번 큰 감사와 응원의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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