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한 관계를 끈끈하게 연결시키는 법 | 김찬호 '대면 비대면 외면' 저자, 성공회대학교 교수 | #성장 #외로움 #중년 | 세바시 1571회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없지요.
또래 친구들만 있어서요. 한계가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97세신데 저희 아버지는 동네에서 친구들이 한 20살 연하로 많이 있습니다.
관계가 다백면으로 이렇게 열려 있으면요. 다른 데서 또 자기 능력이 드러납니다.
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무얼 해 나가야 될까요?
혹시 여러분 경찰서에 가보신 적 있으세요? 조사받으러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보는 장면입니다만 실제로 내가 그렇게 잡혀 간다면 참 무서울 것 같아요.
그런데, 요새 아이들이 종종 경찰서에 끌려간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해도 해도 말을 안 들으니까 너 경찰서에 데려간다.
협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데려온다는 거예요.
요즘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한 20년 전까지 종종 제가 전철 같은 데서 경험한 건데 옆에서 아이 데리고 계신 어머니가 애가 말을 안 듣고 그러면 어찌하다 안 되면 저한테 갑자기 이래요.
제가 책 보고 있는데, "아저씨. 이놈! 해주세요." 아니 저는 아무런 지금 소통이 없었거든요.
난데없이 저한테 그런 악역을 해 달라고 하면 제가 얼마나 당황스러워요.
그리고 제가 왜 그런 악역을 해야 합니까?
그런데 그게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이렇게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는 건
그만큼 부모들이 훈육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할까?
무능해졌다고 할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저는 이게 부모들 개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 살아가는 환경 우리 사회적인 조건 이런 것과 관계가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비스듬한 관계라는 좀 낯선 표현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비스듬하다. 이거 어려운 말 아닌데요. 거기에 관계라는 말 붙이면 어떤 뜻일까요?
자 이렇게 봅시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른바 공동체에서 살았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든 다 대가족을 이루었고요. 대가족 바깥에 마을이 있었죠.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늘 집에 이모나 삼촌들이 계셨어요.
아니면 자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집 밖깥으로 나가면 옆집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그냥 가족처럼 늘 알고 지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분적으로 그분들이 저를 돌봐준 거죠.
이 사진을 한번 봅시다.
평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딱 봐도 가족이 아닌 걸 직감하실 수 있겠죠 굉장히 편안합니다.
저기 아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저 아이의 얼굴을 한번 보시죠.
저 아이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어른이 얼마나 될까요?
저 아이가 낮을 가리지 않는 어른 얼마나 될까요? 수십 명이었을 겁니다.
저는 저런 시절을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왼쪽을 보면 할머니하고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 안에는 가족 관계도 있겠지만 아닌 경우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얘기를 듣고 자라지요.
왼쪽에 있는 어린아이의 머리 모양 보면, 요새 저런 게 참 드문데 분수머리라고,
어 왜 왜 저렇게 묶었나 생각해 보면 '사용자 중심'이 묶기 좋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하여튼 왼쪽 오른쪽 그림 봐도요 지금 뭔가 즐거운 일이 있어서 함께 웃습니다.
요즘 동네에서 저런 사진 찍기가 어렵습니다. 일부러 연출을 하지 않으면,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건 이것이 바로 비스듬한 관계다 하는 건데요.
물론 제가 옛날에 다 좋았다 그건 아닙니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그걸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우리의 인간관계 어떻게 변화했는가 보자고요.
제가 말하는 수직 관계는 뭐냐 하면 위아래 관계입니다.
집 안에서 부모 자녀 관계 또는 조부모 그다음에 학교에 가면 선생님 이게 수직 관계이고요.
수평 관계는 자기 또래입니다.
특히 한국은 굉장히 나이가 중요하죠. 한 살만 위아래 해도 형 뭐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한테는 수직 수평 관계만 지금 거의 남은 거죠.
늘 그랬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지금 그런 상황이 됐다는 겁니다.
20세기의 추상화의 대가 두 명인데 왼쪽은 몬드리안이고 오른쪽은 칸딘스키입니다.
어느 쪽이 좀 편안하십니까? 몬드리안은 정말 절대로 대각선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건 불안하다 불확실하다 그런 이유로 거부했대요.
심지어 친구가 대각선을 그리면 절교해 버렸다고 합니다.
정말 철저하죠. 그런데 저 그림 보고 있으면 왠지 저는 좀 답답함을 느낍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칸딘스키처럼 자유롭게 사선들이 그어지는 그런 그림이 저는 좋습니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그걸 편안하게 또 느끼죠. 인간관계도 그럴 것 같아요.
부모나 교사가 아닌,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러니까 집이나 학교에서 털어놓기 힘든 그런 이야기들을 바깥에서 학교 바깥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삼촌 이모가 좀 편한 거 비슷합니다.
관계가 다방면으로 이렇게 열려 있으면 자기의 능력이 또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학교에서 좀 열등해도
다른 데서 또 자기 능력이 드러납니다.
이러다 보면 그런 제3자와의 교류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 자존감을 세워갈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멘토죠.
인생의 길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은 말이죠.
우리보다 제 나이에 따른 위계 서열이 좀 덜 엄격하다 보니까. 이런 관계가 상대적으로 많이 아직도 눈에 띕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드리겠습니다.
프랑스의 교화 단체 청소년 교화단체에서 하고 있는 건데, 그 교화 단체 이름은 쇠이유입니다.
프랑스어로 쇠이유는 문턱이라는 그런 뜻인데 위기 청소년들이 인생의 중대한 어떤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그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어떤 걸 하느냐 구체적으로 이런 겁니다.
소년원에 수감된, 범죄자죠?
그런 청소년들이 외국에서 프랑스 바깥에서 석 달 동안 1,800km를 걷습니다.
뭐 걸을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게 쉽지 않죠.
물론 혼자서 그렇게 하는 건 아닙니다.
여기에 한 사람의 어른이 자원봉사자로 동행합니다.
이걸 누가 설립했냐면, 메르나르 올리비에라는 원래 언론인이었는데, 퇴직 후에 굉장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산티아고 길이 있죠? 우리 유명한 그 길을 걷고 나서 그걸 극복한 그 체험을 가지고, 아 이런 경험을 청소년들한테 나눠주고 싶다 해서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법원을 설득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범죄자들을 감옥 바깥으로, 더구나 외국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것 여행을 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 무슨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그런데 다행히 아직까지 그렇게 큰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둘이만 가다 보면, 석 달 동안 둘이만 지내다 보면,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죠.
중간에 그냥 끝나는 경우도 있대요.
그렇지만 대체로 완주를 하고, 그 과정에서 그전에 없었던 그런 경험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끝난 다음에도 사회 복귀, 학교 복귀를 위해서 직업 연수나 이런 것을 계속 지원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프랑스 비행 청소년들의 재범률이 보통 85%인데, 여기 이런 프로그램 거친 친구들은 15%에 그친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아무런 인연이 없는 어른이, 자기와 상관없는 그런 아이의 삶을 회복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는 이런 모습이요.
부모가 아이를 혼내달라고 경찰서에 데려가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죠.
저는 이게 비스듬한 관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경이로운 선물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례라고 봅니다.
외국 얘기만 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없냐? 그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는데요.
저도 한번 가봤는데 대전에 유성구에 한번 가보시면 여러분 방문할 수 있는데요.
테크노밸리에 가면 뿌리와 새싹이라는 그런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어린이집 전국에 많이 있는데 여기에 특이한 점은 바로 옆에 경로당이 있다는 겁니다.
저렇게 나란히 똑같은 한 3층짜리 건물이 똑같은 구조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기에는 매일 아침 한쪽은 어르신들 한쪽은 어린아이들이 들락달락 해요.
이 원래 경로당 하면, 다 화투치고 뭐 술 먹고 이런 분위기가 많잖아요? 텔레비전만 보고, 좀 바꿔보자
여기서는. 그래서 아이들이 저기 사진 보시다시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전통 놀이도 가르쳐주고 텃밭도 함께 가꾸고, 또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연에 들어가서 그 이름을 풀이나 벌레 새들의 이름을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배웁니다.
아이들이 해주는 게 또 있어요. 경로당 청소도 해주고 이렇게 한답니다.
이렇게 해서, 여기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애들 기다리고,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저는 이런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들과 갈등이 훨씬 적을 것 아니겠어요?
제가 지금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모들의 육아의 짐이 어떻게 좀 줄어들 수 있을까? 이건 사회가 분담해야 된다.
우리가 지금 인구 감소에 급격하게 접어들었는데, 아이들을 낳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키우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 시간이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걸 덜어주기 위해서 국가가 보조금 복지 혜택을 주고 있지만, 그걸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궁극적으로 육아의 짐을 여럿이 사회적으로 나눠야 됩니다.
이건 획기적인 발상이 아닙니다.
인류가 오랫동안 그렇게 가족보다 큰 공동체를 통해서 아이들을 함께 키웠죠.
그런데 그게 도시화, 핵가족화 이렇게 되다 보니까.
그리고 시장화 시장이 너무 확대되면서 모든 양육이 오롯이 부모의 몫이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피붙이가 아닌 아이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뿐만 아니라 거부해요.
요새 노키즈존 문제가 되고 있죠. 이런 사회 없습니다. 노키즈존, 영어 단어에 없어요.
한국에서 나온 굉장히 독특한 콩글릿입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 이걸 놓고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인 것 같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동을 혐오하는데, 아이 낳아서 키우기 쉽겠습니까?
아이, 옛날에 네다섯 뭐 이렇게 낳아도 지금만큼 어렵지 않았던 건. 그만큼 분단 돼 있었던 거죠.
사회가 그걸 함께 떠안았기 때문에,
결손 가정이라는 말이 있죠?
저는 그것을 응용해서 결손 사회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처음 들어보시죠? 제가 만든 말입니다.
뭐냐 하면 부모가 온전히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것만큼 사회적인 돌봄의 교류 이것도 심각한 문제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뿐만 아닙니다.
제가 최근에 오류 중학교의 홍남 교장 선생님하고 말씀을 나누다가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그 학교 학생이 전철역에서 넘어져서 목발을 짚고 상당 기간 등교를 했어야 했대요.
그런데 걸음이 느리니까 지각을 자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는 홀로 생계를 꾸려야 하기 때문에 일찍 출근해서, 아이와 동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고민하셨죠.
어떻게 할까?
고민 끝에 학부모들한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아이 집 근처에 사는 분들 손 들어주세요.
아침에 출근할 때 태워다 주실 분 안 계신가요?
다행히 많은 부모들이 기꺼이 마음을 내주셨습니다.
학부모에서 주관해서 등하교 도움을 주는 스케줄까지 짰습니다.
이 아이는 이제 매일 아침 여러 친구의 부모들과 함께 등교를 하게 됐습니다.
하교할 때도 교감 선생님이 동참하셨다고 해요.
그런데 이게 단지 처음에는 그냥 아이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정도에서 시작한 건데, 의외의 결과가 생겼어요.
뭐냐 하면 아이의 성격이 바뀌었대요.
원래 굉장히 소심하고, 아주 위축돼 있는 그런 학생이었는데,
이렇게 매일 여러 어른들과 함께 등교하면서, 성격이 밝아지고, 스스럼없이 말도 걸고, 심지어 농담도 하고,
요즘 자기 부모가 아닌 어른한테 이렇게 농담 거는 버릇도 없이 하는 건 아니고요.
그런 아이 많지 않거든요.
이게 저는 비스듬한 관계의 선물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학부모님 굉장히 뿌듯해하셨고 눈물까지 흘리시는 그런 장면이 있었대요.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
자 이제 우리의 돌봄 이걸 다각화하고 중 충화 해야 합니다.
좀 어려운 편인데 여러 층위로 이렇게 나눠야 된다는 거죠.
가족보다 넓은 범위에서 서로 보살피는 상호 의존의 생태계라고 할까요? 이런 걸 만들어 가야 합니다.
육아만이 아닙니다.
청소년과 자녀 양육 지역사회가 함께 하면 부모가 짐을 분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기 축구에 많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배드민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면 다 어른들 뿐입니다.
학교 운동장에 애들은 없고, 어른들이 운동을 해요. 그런 풍경 많이 보시지 않으세요?
자 좀 섞여서 하면 얼마나 좋을까? 조기 축구회 하면 중학교 정도면 실력이 비슷할 겁니다.
좀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자원봉사? 부모 세대 자녀 세대 섞여서 하면 훨씬 풍성해질 겁니다.
자 이런 것은, 단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한테도 선물이 됩니다.
특히 남자들한테요.
남자들 평생 일만 했잖아요. 회사 인간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런데 이분들이 노후에 딱 퇴직하고 나서 정말 정체성에 공허함에 빠지거든요.
그런데 자기를 알아주는 자기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다면 새로운 삶의 활력이 되겠죠.
일본에서 나온 책인데 재미있는 제목입니다.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 또래 친구들만 있어서는 한계가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없죠.
저희 아버지가 97세이신데 점점 친구가 다 돌아가시니까 다행히 저희 아버지는 동네에서 게이트볼 이런 거 하시면서 친구들이 한 20살 연하로 많이 있습니다.
그 노년들한테도 이 비스듬한 관계가 참 중요하죠.
여러분은 지금 비스듬한 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습니까?
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뭘 해 나가야 할까요?
오늘부터요.
아파트에 사신다면, 대부분 아파트에 사실 텐데,
엘리베이터에서 청소년들 어린이들 만나면 눈인사라도 한번 건네 보세요.
그러다가 조금씩 전 친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을에서 어르신 뵈면 안부 인사 나눠 보세요.
저거 늘 하는 건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굉장히 하루가 달라집니다.
이런 식으로 또 직장에서 의식적으로 부서를 넘어서, 좀 다른 위아래 관계들을 맺어가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유연해지고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집니다.
자 연결망이 수직 수평만이 아니라 비스듬하게, 다방면으로 넓어지면, 우리 삶도 그만큼 풍요로워지고 부피가 넓어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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