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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주는 찬란한 유산 | 유광수 연세대 학부대학 교수 | 세바시 11회


강연 소개 : 빤한 주제, 평범한 소재와 인물...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속에 가끔씩 강렬한 인상과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들이 있다. 이들 이야기 속에는 '고전'에서 가져온 원천 소재가 숨겨져 빛을 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핵심을 잘 이해하여 오늘 날 되살려낼 수만 있다면 참 의미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이 될것이다.


게시일: 2011. 6. 27.



안녕하세요 

음악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있죠? 

또 어떤 소리는 들으면 어때 괜찮아요 

감동이 되고 기분이 좋은 소리가 있습니다 

사실 소리 이기는 마찬가지거든요 

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근데 아무튼 사람이 그렇게 되어져 있는 거는 맞는것 같습니다 

왜 그런 소리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소리에 그렇게 사람이 반응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음악 내기 하려는 건 아니고요 

이야기 얘기를 할려는 겁니다


오늘 제가 얘기할 거는 그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

그렇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를 조금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살면서 쌓았던 생활, 습관 이런 것들이 사실 문화지요 

그래 그 중에 좀 쓸만한 거 

아니 정확히 말하면 꽤 중심이 되는 거 

꽤 의미 있다고 하는 거 

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굉장히 우리들의 감동을 주는 것

그것을 고전이라고 부르더라구요 


고전이라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나쁜 인인지 왜 그런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 안에 뭔가가 있는 거 같더라구요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잘 찾아내면 우리들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는가'라는 걸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냥 고전 속에 있다는 것이 뻔한 것을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라는 부분과 

또 찾아낸 그 얘기를 가지고 우리는 '어떻게 잘 만들어 낼 것인가' 두 가지를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재밌는 얘기를 해 드리려고 해요 

제이콥스(Jacob's)라는 영국의 작가가 쓴 짧은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원숭이 손이라는 제목이에요 


원숭이의 손

인간의 헛된 욕망을 이야기하는

영국의 소설가인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작품


세 식구가 살았는데요 

아버지 엄마 좀 연세가 있어요 

한 50대 후반 되는 아들인데 20대 청년이에요 

셋이 단란하게 사는 집에 먼~친척이 

인도에서 근무하던 군인으로 근무하던 친척이 왔어요 

그러면서 저녁에 같이 식사를 하다가 원숭이 손 하나

이만큼 짤린 손 하나를 내놓고 이야기를 합니다 


인도의 주술사가 만든건데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예요 

믿을 수 없는 얘기죠 (에이~)

그렇지만 

'아니야 아니야 정말이야

그런데 이걸 가지고 있으면 대부분 불행해져

버리고 싶었지만 ...

휴 ... 그 소원 때문에 못 버렸어'

뭐 이런 불길한 얘기들을 계속 늘어놔요

믿을 수 없는 일이 없어요 

그리고 그 친척은 떠나구요 

이 식구 셋은 모여서 있다가 

갑자기 호기심이 동하는 거예요 

'정말일까?'

그래서 소원을 빌어 보기로 합니다 


원숭이 손을 들고요 뭐할까 하다가 제일 쉬운 거 

우리나라 식으로 말하면 한 75만 원 

'75만 원 정도가 있었음 좋겠다'

이런 소원을 빌었어요 

그 순간 정말 손이 움찔하고 움직인 거 같은 생각을 받았어요 

그래서 탁! 던졌죠 

'어! 이거 살아있는것 같아요'

'그럴리가 없잖아' 하고 주변을 봤죠 

어디에도 75만 원이 생길리는 없잖아요

그리고 다 잊어버리고 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었고요 

논에 나가고 밭에 나가고 

아들은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출근을 했어요 

그리고 하루 다 까 먹고 잊어 먹고 있었어요 

저녁이 되었구요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겁니다 

이상하고 불길한 마음에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납니다 

문을 열어 봤더니 아들은 오지 않고 아들의 상사가 왔어요 

그리고 얘기 합니다 


'오늘 공장에서 일이 있었어요 

실수로 아들이 윤전기에 끼여서 몸이 빨려 들어가서 죽고 말았어요

그 아들에 잘못이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보상을 해 주지 않지만 

우리끼리 조금 십시일반 돈을 모았어요'

자 얼만지 아시겠죠? 

돈을 냈습니다 75만 원 이었어요 


첫 번째 소원이 이루어졌나 보죠? 

시간이 지났습니다 

일 주가 지나고

이 주가 지나고 

이 어머니는 새로운 생각에 빠져 들어갑니다 

'정말 그 원숭이 손이 맞는 거 같다 그렇다면 나는 두 번째 소원을 빌 거야'


아버지는 반대합니다 

'첫 번째 소원 때문에 큰 불행 일어났고 아마 불길하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

그러나 어머니는 소원을 빕니다 

소원에 내용은 아시겠죠? 

아들이 살아 왔으면 좋겠다 


저녁이였구요 

비가 많이 오고 

부슬부슬 하고요 

외딴 동산에 있는 집이었어요 

정말 그 소원을 빌자 마자 멀리서 누군가가 쫓아오는거 같은 다가오는거 같은 그런 느낌이 나는 거예요 

바람이 막 불구요 

그리고 조금 있다가는 정말 문을 툭툭 두드리는 소리가납니다 

부인은 

'아! 우리아들이 왔어!'

그러구 막 ~ 아들을 찾으러 갑니다 


자 ... 아버지는 공포의 사로잡혀요 

이유는 뭐냐 

아마도 아들은 윤전기에 끼여서 이렇게 이렇게 일그러진 모습이었고 

땅에 묻어서 썩고 있었고 

만약에 그대로 다시 되살아났다면 

어후 ... 생각하고 싶지 않은 거죠 

원숭이 손을 막 찾아서 붙들고 세번째 소원을 빕니다 

아시겠죠? 

'아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문을 활짝 연 부인은 실망감에 사로잡힙니다 

바람이 휙~ 불기만 하는 비바람만 치는거죠 


자 이야기를 놓고 그냥 보면 

아무 이야기도 아닌 우연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굉장히 재미있고 우리들의 가슴에 뭔가를 줄 것 같은 느낌인 것은 

서양에서 아주 오래된 세 가지 소원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소하고 하찮은 소원을 빕니다 

두 번째 그 소원 때문에 이루어지는 비극적인 그리고 문제적인 소원을 빕니다 

세 번째 소원은 그 문제적인 소원을 해결하는 소원입니다 

결국 세 가지 소원을 다 빌지만 행복해지는 얘기는 아닌 겁니다 

이런 보편적인 세 가지 소원 패턴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사실은 원숭이 손 이야기가 훨씬 더 의미 있고, 힘이 있고, 재미있고, 무엇인가를 주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는 굉장히 많습니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팝니다 


성냥팔이 소녀

덴마크의 동화작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1848년 발표한 성냥을 파는 한 소녀의 슬픈 이야기


성냥 하나를 툭 불 키는데 맛있는 케이크 나타나고요 

성냥을 툭 켰더니 따뜻한 벽난로가 나타나고요 

성냥을 탁 켰더니 자기가 꿈꾸던 정말 엄마가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다가 아시다시피 성냥팔이 소녀는 얼어 죽죠?

성냥팔이 소녀는 추운 겨울날 크리스마스 전에 성냥을 팔았어요 

과연 성냥을 팔았을까요? 성냥만을 팔았을까요?

그 시대에 어린이라는 관념이 없던 시대인데 

성냥팔이 소녀는 무엇을 팔았을요? 글쎄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는거 하나는 있어요 

유명한 얘기죠 헨젤과 그레텔입니다 



헨젤과 그레텔

독일에서 전해 내려온 설화를

19세기에 그림 형제가 순화하여 발표한 동화


이 이야기는요 

요즘 우리가 읽는 이야기 말고요 

고거 보다 조금 더 오래된 옛날 얘기 고것도 똑같은 헨젤과 그레텔 인데 옛날 얘기로 남아있는 기록이 있고요 

고거 보다 더 먼 옛날에 기록으로 남아있는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누가 이 두 남매를 갔다 버리죠? 숲에다 버리죠? 계모입니다 아시죠? 

근데 고거 보다 먼저 이야기를 읽다보면 계모가 아니에요 

네 놀랍게도 어머니구요 

그 어머니보다 사실은 더 뭘리 얘기하면 부모가 자발적으로 갖다버려요 


잘 이해가 안 되는 거지요

왠지 계모는 버릴 것 같아요 그죠? 

근데 엄마가 버리다니? 아니 아버지까지?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 

계모가 버리는 이유는 뭐였죠? 

네 가난해요. 휴년이 들었어요. 먹고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계모가 자기 자식이 아니니까 표독한 마음으로 갖다 버리는거 였어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이해합니다 (우리 시대에)


그런데 사실은 거 보다 먼저 있던 이야기는 

친엄마니까 표독스럽지 않아요. 흉년도 아니에요. 흉년이 들수도 있어요. 그런데 근본적인 가난과 궁핍 있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잘 이해가 됐어요 

우린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왜 그러냐면 

이 시대에는 실제 이야기가 들려지고 말되어지던 시대에는요 

이 어머니까지도 공장에 나가서 일해야 됄 정말 매뉴팩처(manafacture)시대가 돼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였고 

자식은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자꾸 자꾸 자식은 나오고요 얘네들은 계속 밥을 먹어 대고요 

아니 계속 귀찮게 하고요 

해결하기가 힘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이 애들을 그 마을 전체에서 공동 위탁처럼 탁아소에 둡니다 

근데 실제로 거기에서 80% 이상의 애들이 죽어나간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는 충분히 이런게 이게 될 수 있었죠 

그러나 원래 그런 얘기였을까?를 보는거죠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그게 아니라 

부모가 자발적으로 애들에 성인식을 위해서 숲에다 데려다 주는 겁니다 

거기서 일정한 의식을 거행 하고 그 마을로 다시 돌아옮으로써 성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러한 이야기 였던 겁니다 

그것이 시대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진거죠 


그래서 지금 이야기는 과자집처럼 무지무지 맛있고 진짜 기가 막히게 먹고 싶은 것이 있는 그 집에 가는게 목적인데 

사실 고거보다 먼저 얘기는 나무로 만든 집에 그냥 먹을만한 음식 

사실 원래 이야기는요 거기서 먹는건 그런게 아니라

피, 눈알, 무슨 박쥐, 뱀 이렇게 끔찍스러운 것들있죠 실제 그걸 먹기도 합니다 

그것은 배고파서 먹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죠 


이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세월을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바뀝니다 

과연 그러면 지금 우리가 있는 헨젤과 그레텔 얘기라는 곳에서 핵심을 잘 찾아서 새로운 얘기를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만들었던 이야기 한 가지를 보려고 합니다 



실제로 만들어졌던 결론이 있어요 

E.T. 를 보려고 해요 


E . T . 

1982년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으로

외계인과 지구인 꼬마의 우정을 그린 영화


E.T. 그러면 보신 분도 계시고요. 안 분도 계시겠지만. 기억나는 건 이겁니다. 

사실 스토리도 다 저는 기억이 이제 안날라고 그러는데요 큰 얘기만 남아요 

그러나 이 장면은 꼭 기억이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거요 


E.T.에 손가락 이고요 하나는 엘리엇에 손가락 입니다 

둘이 만나서 불이 번쩍 나는 거 같은 저 장면 

저거는 이상하게 우리 머리속에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새로운 존재, 정말 미지의 존재, 외계인에 존재와 지구상에 있는 어떤 존재와의 만남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운명적 만남은 그 전까지 대부분 부정적으로 외계인을 봤던거하고 완전히 다른 긍정적인 외계인에 모습을 그리게 만들었죠 


스티븐 스필버그에 E.T.에 가장 중요한 핵심은 뭐 였냐면 

'외계인이 우리를 괴롭히러 오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러 올 수도 있다'라는 거였어요 

그것에 가장 핵심이 되는 상징적인 그림이라면 이겁니다 


자 ... 스티븐 스필버그는 천재감독 이니까요 

이런것을 그 사람의 머리 속에 생각했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물어보지 못 했고요. 앞으로도 못 물어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요 아마도 

여기서 가져온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지창조

미켈란젤로가 1508~1512년까지 4년에 걸쳐

로마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린 벽화


미켈란젤로가요 천지창조를 그려야 됐어요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는 거를 만들려고 했어요. 어떻게 만들어야 됄까요? 

자 왼쪽에 있는게요 벌거벗고 있는거요 아담이고요 저 위에있는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될까요? 

주물럭 주물럭 주물럭 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야 될까요?

미켈란젤로의 상상력 속에서는 이렇게 만든 거였죠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런 고전 속에 있는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의미 있게 

그리고 두 존재 

저 위에 있는 존재와 이 아래에 있는 존재 

창조자와 피조물의 만남을 표현하는 그런 모습이 였고요 


사실 그 얘기는 E.T. 에서 

E.T.와 엘리엇의 만남과 동일한 것처럼 스필버그가 가져올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고전에서 무엇인가를 가져온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자 이제 한 가지만 하고 마칠 겁니다 


비너스는 아시지요? 

비너스에 대한 그림들은 많이 많이 많이 많이 그렸어요 

너무 많아서 많이 볼 수는 없고요 한 몇 개만 보려고 합니다 

누가 비너스 인지 아시겠죠? 

한 명 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요 

하나더 볼 까요? 



여기도 한 명밖에 없네요 

두 그림의 공통점은 뭔가요? 마음속으로만 생각해 보세요 

자 그러나 비너스 그러면 정말 우리 머리 속에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거 


이거죠? 

보티첼리의 비너스입니다 


비너스의 탄생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산드로 보티첼리가 1845년경에 그린 작품


누가 비너스죠? 중간에 있어요 

지금 봤던 세 그림의 공통점 

비너스 공통점은 뭐죠? 누두라는 겁니다 

그게 제일 먼저 보였고요 

사실 두 번째 볼 건 뭐냐면요 이에요 바다입니다 


왜냐하면 비너스가 탄생한 건요 

'바다에 떨어진 피에서 나온 물거품에 의해서 탄생했다' 라는 그런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가 있어요 

아 그러니까 비너스는 이렇구나 라는 거예요 

근데 정말 그럴까요? 하나 더 볼까요?


봄(프리마베라)

1476년경에 그린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으로

사랑의 신 에로스를 거느린 비너스를 표현


네 똑같은 사람 보티첼리가 그린 다른 그림입니다 

이라는 제목인데요 

여기도 비너스가 있습니다 

어디있죠? 

일단 벗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요 

우리가 아는 비너스는 다 벗고 있었는데 

여기는 벗고 있는 사람이 없네요 

벗고있는 사람 하나 있어요 맨 위에 조금만 애기 큐피트

예 바로 큐피트 바로 밑에 있는 중앙에 있는 사람이 비너스입니다 

막 옷을 휘양찬란하게 입은 사람은 아까 그림에서 봤지만 봄에 여신이에요 비너스가 아니라요

간혹 착각하지만 아닙니다 

중간에 있는 사람이거든요 비너스거든요


저 비너스

두 그림을 그린 사람은 동일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옷을 벗은 비너스 (다른) 하나는 옷을 입은 비너스입니다 


왜 이렇게 다를까요?

예 두 이야기는 두 이야기기 자체가 다른 이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우스와 물의요정과 결혼해서 비너스라는 미의여신의 탄생했다는 이야기에 개통 속에서 있던 그러한 그림이고요 

앞에 거는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는 바로 바다거품에서 나왔다는 비너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동일한 것을 다르게 얘기하는 것

또 다르지만 동일하게 하는 것을 한쪽만 알고 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게 됩니다 

그런 걸 우리는 편견이라고 하죠 

원컨 원치 않던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보고 싶은만큼 얼만큼 깊이 있게 보냐에 따라서 

사실은 그 이야기가 깊이있는 울림을 우리에게 줄 수 있습니다 

깊이 있는 시각이 깊이는 생각을 만들고 깊이는 생각이 깊이 있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너무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는 거 같습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것을 밝은 눈으로 그리고 예쁜 눈으로 잘 찾고 

또 내 가슴 속에 또 우리의 마음속에 집어넣고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행복한 삶 또 그리고 의미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겠습니다

(박수)




END


이 글은 청각을 잃은 제 친구를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또는 일부가 잘못 듣고 잘못 옮겨 적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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