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고 심할 때는 자살 사고까지 너무나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 오랜 고민을 하다가 전역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참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가끔 날씨가 흐리고 갑자기 추워질 때 이불속에 있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날씨가 좋으면 누구보다 반짝이는 직장인 황소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한 가지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채용 담당자라면 이런 이력서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지원했던 한 지원자분의 이력서입니다.
전 직장에서 질병으로 퇴사했습니다.
활용할 수 있는 인사제도를 다 활용해서 쉬어도 보았지만 결국 한계를 느껴 퇴사했습니다.
퇴사 이후에도 완치는 되지 않았고,
날이 추워지면 부정적인 생각과 의욕 상실, 심할 때는 자살 사고까지 너무나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저는 평생 이 기분에 극적인 변화를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이 질병을 가지고 6개월의 계약 기간을 완수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이런 이력서를 쓴 지원자를 뽑으시겠습니까? 아마 좀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제가 다니는 회사는 이런 지원자가 합격을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이 이력서는 사실 저의 1년 전 이력서입니다.
여러분들께 오늘 쓰러진 한 영혼을 함께 일으키는 친구가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제 학력과 경력은
- 외국어 고등학교 졸업
- 해군 사관학교 졸업
- 해군 장교 6년
- 사회적 기업에서 1년째 근무
중 그리고 6년 차 조울병 병력
이렇게 5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네 저는 조울병 환자입니다.
조울병을 좀 설명드리자면
조울병이란 정상적인 변화와 다르게 뇌의 기분 조절 기능이 문제가 생겨 발생한 정신질환입니다. 완치율은 낮은 편에 속하고요. 그래서 저는 당뇨나 고혈압처럼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병이라고 설명을 드리곤 합니다.
제가 이런 조울병을 앓게 된 것은 6년 전 2018년도 2월쯤이었습니다.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소위로 임관을 했고 대위 진급을 앞둔 어느 가을부터였습니다.
갑자기 식욕이 사라져서 10kg 이상 살이 빠지고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고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서 상관과 언쟁을 하고 힘이 없고 무서워서 밖을 나가지 못하고
울리는 휴대폰이 그 무엇보다 무서웠고
잠이 오지 않아 새벽 5시에 잠이 들기도 하고
갑자기 오한과 숨이 차는 현상, 그리고 동시에 엄청난 공포가 찾아오는 공항 발작도 경험했습니다.
제가 조울병을 진단을 받고 그날 이후로 수많은 휴가와 입원 치료, 그리고 휴직도 하면서 회복을 하려고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상은 무너졌습니다.
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제가 일주일 내내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밥만 먹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움직이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동생이 걱정이 돼서 제가 숨 쉬는 것조차 확인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평범한 삶의 회복은 되지 않았습니다.
남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고
제 마음과는 다르게 재발(再發)은 계속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고민을 하다가 전역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참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전역을 하고 나서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취업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숨기지 않고 싶었습니다.
병을 드러내자니 취업이 되지 않고,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 정도인데 나보다 더 심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지?"
"내가 안 아팠으면 이런 질문을 했을까?"
"나는 이런 사람들을 공감하기 위해서 이 병에 걸린 거구나."
그들을 공감하기 위해 "친구가 되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병을 마주하게 됐는지 깨닫게 되고 또 삶의 이유를 찾게 됐습니다.
제가 조울병을 처음에는 단순히 극복해야 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저는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열린 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친구가 되기를 이제 결심을 하고 친구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정신질환자들의 취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창업을 해야 되나? 어떻게 해야 되지? 고민을 하다가 검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지 시설들 중에 취업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을 고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러다 향기 내는 사람들이라는 회사를 찾게 되었습니다.
주로 정신장애인들을 채용하여 HISBEANS라는 카페 브랜드를 통해 바리스타, 로스터 커피 전문가를 양성하는 회사였습니다.
당시 제가 처음 검색을 했을 때 유일하게 정신장애인을 중심으로 채용하는 회사였고, 저는 찾자마자 "이거다! 유레카"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는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고 이력서를 쓸 때 제 질병에 대해 낱낱이 작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저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2년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눈 뜨는 아침이 너무나 행복했고 즐거웠습니다.
제 목표는 6개월 동안 아프지 않고 출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목표는 달성되었고 감사하게도 회사와 6개월의 시간을 더 연장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6개월의 시간을 지금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회사는 30% 이상의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특별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장애인 직원분들께서 제가 주문을 하면 음료를 받아주시고, 또 음료를 제조하셔서 저에게 제공을 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라고 외쳐주십니다.
평범한 바리스타의 일상을 살아가고 계십니다.
특별함이 있다면 가끔 환절기나 비 오는 날 날씨가 궂어서 아침 인사를
"안녕하세요." 대신 "저는 힘든데, 오늘 힘든데, 괜찮으세요?" 라고 시작하기도 합니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매일 약을 먹기 때문에 약을 먹는지 안 먹는지 이런 것들이 안부 인사로 적용하기도 합니다.
비장애인이신 분 중에 한 분은 자신이 공황장애 때문에 병원을 방문했노라고 공개적으로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응원을 받기도 하고 조언을 받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합니다.
또 충분한 휴식을 할 수 있도록 휴가를 내어주시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조울 증세가 가끔 있을 때도 있는데요.
이럴 때면 아침에 제가 '못 가겠다'라고 하면 재택근무를 제공하시기도 하고,
그리고 정 힘든 날은 휴가를 바로 그날 제공해 주시기도 합니다.
제가 정기적으로 병원을 가는 날이면 잘 지냈는지, 또 잘 갔다 왔는지, 특별한 일은 없는지 여쭤보시기도 하고 배려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질병이 안전하게 공개되고 그것이 약점이 아닌 배려할 점이 되는 곳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질환이 그렇게 환영받는 질환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안전한 환경에서도 말을 못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가끔 저를 찾아와 "사실은 저도..." 하고 자신의 질병을 고백하곤 하십니다.
제가 그 고백을 듣는다고 한들, 사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한 그분의 질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서로가 바라볼 때마다 눈으로 이해를 하고 또 공감을 합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습니다.
한 분은 자신의 병을 평생에 고백한 사람이 단 세 사람이라고 고백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제가 됐고요.
그런 걸 보면서 저는 어쩌면 그렇게 말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또 그분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조울병으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내고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또 살고 있습니다.
저와 평생을 함께하게 된 이 조울병은 저에게 있었던 꿈을 앗아갔지만, 특별한 삶을 살게 해 주었고, 제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해 주었습니다. 또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조울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입니다.
혹시 이 자리에 저와 같은 병을 갖고 계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침에 일어나기 싫더라도 이불을 걷어내고
다시 눕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이불을 걷어내고 앉아 있어 보고
괜찮으면 산책도 해보고, 밤에는 자고 아침에는 일어나는
이런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게 사소하지만 이러한 규칙적인 생활들이 참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말씀 못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못 했거든요.
그렇다면 "괜찮다", "지금 괜찮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아픈 것은 사실 여러분이 뭘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와 같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다시 이력서로 돌아와 1년 전 그 이력서를 저는 다시 쓸 수 있다면 이렇게 수정해 보고 싶습니다.
저의 꿈은 '타인을 위해 대신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군인이란 직업적 수단을 통해 이를 달성하려 했지만, 조울증으로 인해 좌절됐습니다.
좌절을 만든 조울병은 이제 저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했습니다.
바로 정신질환자들의 친구가 되는 삶입니다.
제가 아픔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제가 다시 일어나는 데에 기여해 준 든든한 친구 같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이해하려고 애쓰고 믿고 기다려준
저의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 부대 구성원들, 채용해준 회사, 의료진
그 모두가 제 친구가 되어 저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 삶이 의미 있다고 저는 생각했고 정신질환자들의 친구가 되는 삶을 꿈꾸게 됐습니다.
세상엔 과거에 저처럼 쓰러져 있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많은 손길들이 필요합니다.
저를 세워준 많은 친구들처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본다면,
한 사람의 삶이 변화하고 새롭게 되는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강연을 제안받았을 때 이 구절을 꼭 해야 되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책 라틴어 수업에 나오는 말인데요.
시 발레스 베네 에스트 애고 발래요.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 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라는 뜻입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라틴어 편지의 마지막 인사말인데요.
마지막으로 강연을 마치면서
저는 과거에 저의 친구가 되었던 분들에게 잘 지내시는지 저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고,
또 현재 저의 친구들에게는 앞으로도 잘 지내자라는 인사,
그리고 미래에 또 저에게 찾아올 사람들에게 제가 친구로 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그때까지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께도 안부를 묻고 싶었습니다.
다들 잘 지내시죠? 여러분들이 잘 지내니, 저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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