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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370회 | 시력을 잃고 10년 동안 내 곁의 사람들이 깨닫게 해준 진실 | 허우령 유튜브 채널 ‪@Youdio-wooryeong‬ 크리에이터

시력을 잃고 10년 동안 내 곁의 사람들이 깨닫게 해준 진실

 

 

  • 저는 정말 그 전날까지 모든 걸 선명하게 잘 봤어요.
  •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눈앞에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것처럼 온 세상이 뿌옇게만 보이는 거예요.
  • 엄마에게 말을 꺼냈어요. 엄마 나 눈이 안 보여라고요

 

 

하루 아침에 시력을 잃은 내게 친구가 한 말

 

 

 

네 안녕하세요.

저는 허우령입니다.

먼저 저는 여러분들에게 질문 하나를 드리려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나다움이라는 글자를 보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머릿속에 그려지는 여러분들만의 모습이 있으신가요?

나다운 모습, 나답게 살기, 나를 잃지 않기 과연 여기서 나다운 건 뭐고 진짜 내 모습을 알아가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이 질문들을 던지면서 저는 오늘 제가 제 스스로를 볼 수 없을 때, 비로소 제 자신을 봐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요. 제가 유튜브에 실명하고 처음 만났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게 조회 수가 진짜 정말 높았는데요. 

오늘은 그 이야기와 더불어서 제 곁에 늘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딱 10년 전 14살이 되던 2011년에 시각장애인이 됐어요. 

정말 단 한순간이었는데요.

 진짜 하룻밤 사이에 저는 아무런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게 말이 돼?'라고 물어보는 분들도 많은데요.

저는 정말 그 전날까지 모든 걸 선명하게 잘 봤어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니까 눈앞에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것처럼 온 세상이 뿌옇게만 보이는 거예요.

저도 정말 믿기지 않았어요.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픈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 전날까지 저는 친구랑도 아무 탈 없이 잘 놀았어요.

친구 집도 데려다줬고요. 

집에서는 동생들이랑 똑같이 게임하고, TV 보고 또 밥도 먹고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보냈죠.

그런데요. 

저녁쯤에 핸드폰을 보다가 잠깐 눈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땐 잠깐 이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실명할 신호였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근데 그땐 당연히 몰랐죠. 

그냥 이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큰 걱정 없이 잠에 든 저는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습니다.

 

아직 내가 잠에서 덜 깬 거다 눈에 큰 눈곱이 꼈나?

 

솔직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그 순간이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직 내가 잠에서 덜 깬 거다. 

눈에 큰 눈곱이 꼈나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현실을 의심했어요.

눈도 계속 비벼보고 세수도 하고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도 막 보려고 했는데요.

역시나 눈앞은 뿌옇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멍하니 있다가 엄마에게 말을 꺼냈어요.

엄마, 나 눈이 안보여...

 

"엄마 나 눈이 안 보여라고요."

그렇게 저는 바로 아빠 차를 타고 5시간을 달려서 경기도에 있는 병원에 가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1년 가까운 병원 생활이 시작됐어요.

저는 처음에 제 장애에 대해 정말 부끄러워하는 아이였는데요.

그때 전 장애라는 글자가 뗄 수 없는 저의 꼬리표라고 생각했어요.

떼고 싶지만 뗄 수 없고 감춰지지도 않는 정말 싫은 거요.

그래서 병원에 있을 때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전화가 와도요.

"우령아 너 지금 어디야? 어디 아파? 왜 학교 안 와? 무슨 일이야"

이런 말에도요.

저는 "나 그냥 좀 아파서"라는 말만 했어요.

그때까지 제가 생각하는 장애 장애인은 불쌍하고 또 감춰야 하는 거였거든요.

늘 TV 속에 나오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그랬으니까요.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고 도움만 필요로 하는 존재, 사람들에게 불쌍한 혹은 이상한 시선을 받는 존재

14살에는요.

시각장애인이 된 제 모습을 친구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병원에 있을 때도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제대로 없었거든요.

병원 복도도 혼자선 못 나갔고요. 

밥 먹는 것도 도움을 받아야 됐어요.

그러면서 제 안에 자존감과 자신감도 떨어졌죠.

 

1년 가까운 시간을 병원에 있다 보니까 사람들을 만나는 거에도 많은 망설임이 생겼는데요.

사람들을 피하거나 애초에 만남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퇴원을 하고 얼마 후 한 명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친구는요. 

제가 실명하기 딱 하루 전날 함께 만났던 친구였어요.

그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친구는요.

어느덧 중학생이 돼 있더라고요.

저는 여전히 눈이 보이지 않았던 그날에 머물러 있었는데 말이죠.

친구가 한 번 만나자고 정말 저에게 많이 말했어요.

그때 저는 정말 수만 번, 수백 번의 고민을 했는데요.

 

만나도 되나? 만나면 어디서?

 

만나도 되나 만나면 어디서 만나야 하나 친구를 만나서 내가 안 보이는 걸 말해야 하나 그런 생각 끝에서 저는 결국 친구를 만나기로 했어요. 그 친구는 정말 저와 오래된 친구이기도 했고요. 

저도 사람을 만나는 거에 있어서 두려움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이 갈증처럼 남아 있었어요.

그리고 친구를 만났을 때 속에서 몇 번이고 되삼 켰던 이야기를 꺼냈죠.

나 눈이 안 보인다고 시각장애인이 됐다고, 그런데요.

 

친구는 제게 이런 말을 해줬어요. 

'왜 안 보여? 어쩌다가?'

이런 말이 아니라요.

 

그래도 우령인 우령이잖아

 

"그래도 우령인 우령이잖아."

그 한마디에 그동안 제가 보지 못했던 제 자신에 대해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시각장애인이 되고 저는 허우령이라는 사람을 스스로 감추고 제대로 보지 않으려 했더라고요.

할 수 없는 거, 못하는 거에만 초점을 두고 제 자신과 주변을 보려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친구를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내 안의 모습들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대로 있는데,

내 스스로를 움츠려 들게 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너라는 말의 의미요. 

그건 장애가 있든 없든 내가 어떤 모습이든 아무런 상관도 없었어요.

 

나다움이요. 

 

저는 그건 뭐 혼자 찾아가는 거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요.

아니더라고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봐주고 있더라고요. 아니 먼저 봐주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저와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 준 그 친구도 그렇고요.

제 주변에는 저를 항상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지금 여기 스튜디오에도 같이 와준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유튜브를 하면서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요.

언제나 묵묵하지만, 언제나 제 곁에 있어주는 가족들도,

그리고 중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그 속에서 만난 친구들 선생님들도 모두 제가 나다운 모습을 잃지 않도록 찾을 수 있도록 함께 해줬어요.

 

그리고 저와 지금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남자친구도요.

저에게는 정말 큰 존재가 됐는데요. 

저와 남자친구는 같은 시각장애를 갖고 있어요.

오빠를 만나면서 제가 알게 된 게 있다면, 우리의 연애에 있어 장애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끼리 만나서 뭘 할 수 있냐? 너보다 잘 보이는 사람을 만나라라는 말을 하지만요.

저희는 서로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 커플도 함께 하면서 힘들었던 게 아예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요.

서로에게 "넌 왜 못해?"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었어요.

 

한 번은 오빠랑 맛집 데이트를 하려고 초밥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요.

가게까지 가는 길은 장애인 복지콜을 불러서 갔어요.

그런데 기사님이 저희를 가게 문 앞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주신 거예요.

그때 남자친구랑 저는 엄청 헤맸죠. 

분명 둘 중 한 명이라도 눈이 보였다면 그 가게를 바로 찾았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누구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왜 그것도 못 찾아? 왜 못 봐?"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남자친구와 저는 같은 시각장애를 가졌지만 시력과 시야는 서로 달랐는데요.

저는 주변 시야가 정말 좁아요. 

그래서 저보다 시야가 넓은 오빠가 길을 안내해 주고 옆으로 갑자기 휙 지나가는 차들을 막아줬고요.

사람의 형태를 조금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오빠 대신에 제가 그나마 시력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게 간판을 저는 찾아보려고 했어요. 그렇게 저희는 어찌 보면 서로의 눈이 되어서 밥집도 찾고 카페도 가고 또 어떤 날엔 노래방도 갔다가 공연도 걸었다가 그렇게 데이트도 잘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낀 게 있다면요. 

함께한다는 건 서로를 채워주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한다는건 서로를 채워주는 거구나


저희가 만약 길을 잃었을 때 정말 서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싸웠다면 저희는 진작에 헤어졌겠죠.

그런 사람하고는 사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저희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주고 

그러면서 서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려줘서가 아닐까 싶어요.

저희가 장애라는 고정된 틀에 박혀서 서로의 불편한 점들, 부족한 점들만 꼬집어 냈다면 저희는 함께 했을 때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을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이해했을 때 장애는 단순히 나의 특성일 뿐 장벽이 되지 않는다라는 걸 알게 됐을 때 

그때 정말 제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도 저에 대해 모르는 부분들이 정말 많고 더 알아가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요.

14살 시각장애인이 되고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 곁을 함께해 준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저는 나다운 게 뭔지 찾아가고 있습니다.

나다운 거, 나답게 그냥 존재하는 거, 그건 나 혼자서 고민하고 혼자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만들어갈 수 있는 거더라고요.

그렇게 나다운 모습, 그 무언가에도 가려지지 않은 진정한 나의 모습들을 여러분들도 함께 찾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