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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시 1371회 | 행복할 이유를 찾아 드립니다 ㅣ 이동수 평범한 직장인, 유튜브 채널 ‪@무빙워터‬ 크리에이터

인생이란 게임에서 성공하는 전략

 

 

  • 우리 회사에 입사를 하면서 모니터에 써놓은 말이 있습니다.
  • 언젠가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컸어요.
  • 근데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태어난 거예요.
  • 이유식을 만들어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같이 까르르까르르 웃으면서 이 아이의 성장을 보는 거예요.
  • 회사가 나한테 줄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가? 비교를 하기 시작했어요.
  • 어떤 어떤 걸 선택해야 될까? 제가 선택한 스탠스는 뭐였냐면

 

 

언젠가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고맙습니다. 

네 저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머리만 보면 '미용실에 다니는 스텝이냐?'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금융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죠. 제가 우리 회사에 입사를 하면서 모니터에 써놓은 말이 있습니다.

언젠간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언젠가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제가 이거를 막 쓰면서 어떤 거를 저 스스로 말을 하고 싶었었냐면 사소한 거에 휘둘려서 내 행복을 놓치지 말자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사소한 거는 당연히 회사를 이야기하는 거겠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면 회사가 저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내 삶에서 회사는 그냥 극히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마인드로 막살다 보니까 얼마 전에는 혼자서 한 달간 안식월을 가지고 제주도를 갔다 왔어요.

근데 저희 팀장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야 한 두세 달 있다 가면 안 되냐? 네 안 돼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본부장님께서 가야지. 근데 조금 긴 것 같기도 하고, 한 달 짧습니다라고 하고서 이제 갔다 왔죠.

언젠가 짤리고, 회사도 망하고, 우리 다 죽을 거니까

제 행복에 되게 집중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전에는 아이와 함께 육아휴직을 해서 2년간 네덜란드에서 좋은 시절을 보내기도 했었었죠.

그러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근데 그래도 회사가 조직 생활인데,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 되고 너 혼자 그렇게 마음대로 다 해도 돼?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제 입장에서 보면 이 언젠가 잘리고 회사도 망하고 다 죽을 건데 이거를 1년 내내 모니터에서 보고 있으니까

오히려 내 삶이 더 소중해졌고, 그것이 저를 조금 행복으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행복은 무엇일까요? 

오늘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 날씨 되게 좋았죠? 오늘 산책하신 분 계신가요?

저는 정말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했고요.

근데 저는 흐린 날도 좋아하고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아이유에 좋은 날 모든 날을 다 좋아해요.

그리고 친구들하고 밥을 먹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음식을 하는 것도 좋아하고, 심지어 이렇게 여러분들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여기서 이거 좀 털면 이거 좀 나오거든요. 

그거 가지고 집에 가가지고 이렇게 한 잔 먹고, 그러니까 저한테는 행복할 이유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근데 제가 이제 다른 사람들하고 이제 뭔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그렇지마는 또 않은 것 같더라고요.

분명 내가 볼 때 이 사람은 저보다 훨씬 잘났어. 미래도 저보다 훨씬 더 짱짱하고 더 잘 나와 심지어 잘생겼어.

근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별로 행복하지 않은 거라,

그러면 나는 왜 이 사람보다 더 행복한 거지? 나는 이렇게 행복할 이유가 왜 이렇게 많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 더 깊이 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 유년 시절까지 가더라고요.

저는 1시간에 버스가 한 대 오는 시골에 살았어요.

저희 어머님은 저를 집에서 낳으셨죠. 의사도 없었고, 간호사도 없었어요. 사실 돈이 없었던 거죠. 

그리고 저가 태어나고 나서 납땜 일을 하셨어요. 이제 납이랑 이렇게 회로를 이렇게 해가지고 인두를 이렇게 지지는 건데 그걸 마셔서 병원에 입원하시기도 하셨죠. 근데 반면에 저희 아버지는 되게 행복하신 분이셨어요.

여름 되면 이렇게 쫙 낚시 가가지고 막 돌려서 이제 큰 물고기 잡으면 막 좋아하시고,

그리고 이제 겨울만 되면 사냥개들을 데리고 사냥을 다니셨습니다.

 

이렇게 제가 초등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친구들하고 같이 이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제 친구가 제가 쌓아온 장조림을 먹으면서 막 먹다가 갑자기

"보물이다!"라고 소리를 치는 게 뭐야 애들이 막 몰려들었어

막 먹던 걸 뱉어서 딱 봤는데 동글동글하고 막 반짝반짝 뭔가 금각 진주각 이런 것들이 막 있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애들이 몰려들어가지고

"야 나 하나만 줘. 나 하나만 줘 막 그랬죠."

그때 제가 뭐라 그랬냐면, 그거 총알이야

 

아버지가 엽총으로 꿩을 잡아가지고 그 꿩고기를 도시락으로 싸간 거였거든요.

어떻게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웃긴 스토리죠. 밥에서 총알이 나왔으니까.

근데 저는 그게 되게 부끄러웠어요. 

돌이 씹힌 것도 아니고 총알이 씹혀버리니까.

 

그래서 제 유년 시절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총알 박힌 꿩고기 같은 그런 뭔가 퍽퍽한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님은 삶이 너무 힘들어서 항상 불행하다고 말씀하셨었고, 아버지는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폭력적이셨고 너무 무책임하셨어요. 그래서 제 인생에서 유일하게 불행했다고 정의하는 그 유년 시절이 지나갑니다.

근데 이제 그런 말 많이 하죠. 

 

자식은 싫어도 부모를 닮아간다.

 

저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는지, 중학교 때부터 총을 쐈습니다.

근데 제가 총을 쏜 것은 산에서는 아니었고요.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금호주유소라는 곳이었어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황금 같은 방학이 있잖아요.

왜냐하면 이제 그게 숙제가 없는 기간이니까 이게 엄청 좋은 방학이거든.

근데 저는 하루에 12시간씩 일을 했어요. 

애들하고 막 아침에 막 농구하다가 나 먼저 갈게 하고 가고 오락실에서 막 오락하다가 나 먼저 갈게 미안해 하고서 

이제 주유소에 이제 총 쏘러 갔죠.

그렇게 이제 주유소에서 일을 하는 게 어떻게 보면 살짝 부끄럽기도 했고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되지? 좀 억울하기도 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정말 명확하게 기억나는 거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게 그중에  제가 1998년 제가 중3 때죠.

그때 수원에 있는 금호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1111원이었고요. 경유값은 그 절반 540원이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시급은 1800원이었고, 제가 12시간씩 한 달에 꼬박 해서 번 돈이 48만 원이었어요.

저는 그 감동이 기억이 나요. 월급을 딱 받은 거야.

그때는 이제 5만 원짜리도 없고 이제 계좌이체도 없지 이게 현금이 이렇게 이렇게 두둑하게 있는데 중3이잖아요.

그때 당시 지금 돈으로 따지면 한 150, 200 정도 됐을 거예요.

11시에 주유소를 마치고 그거를 품속에 딱 이렇게 넣고서 자전거를 타고 이렇게 막 가면서

그 주유소 기둥을 탁 치면서 "끝났다!" 라고 외쳤던 게 너무너무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뭔가 안에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그 48만 원 48만 원의 행방 그 돈은 어디 갔을까요?

1번 1번 가다가 잃어버렸다. 

2번 가다가 깡패한테 뺏겼다.

3번 오락실 갔다 몇 번 숫자로 이렇게 표현해 주세요.

몇 번 여러분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저는 그 돈을 고등학교 입학금을 내는 데 썼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그런 건 아니었고, 엄마가 뭐 돈을 내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저는 그냥 내 스스로에게 해냈어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가 유신고를 나왔는데 유신고에 입학했던 수백 명의 학생 중에 내가 내 힘으로 해가지고 학교를 입학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사실이 저한테 엄청나게 큰 자부심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고등학교에 이제 들어온 거예요. 

그러면 저는 고등학교 때 완전한 자유를 얻었어요.

무관심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진짜 제가 하고 싶은 거 정말 다 했거든요.

근데 중요한 건 저는 그때도 알았습니다. 

제 고3 때가 얼마나 소중하냐는 것을 그때도 알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정말 빼곡하게 아라비안 나이트도 가고요.

그리고 코리아나 나이트도 가고요. 터널 나이트도 가고 그 빼곡하게 그 소중한 순간을 다 채웠어요.

행복했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무너무 행복했고요.

 

 

제 친구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들 덕분에 저는 학창시절에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고요.

그리고 이제 최고의 컨디션으로 수능을 받고 모두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뭔가 어닝 서프라이즈 같은 우리 좋아하죠.

어닝 서프라이즈 같은 그런 성적을 받았어요. 240점을 받았는데 수학이 12점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만약에 누가 그때 당시로 돌아가서 너 수능 만점하고 친구들하고 추억하고 둘 중에 어떤 걸 선택할래라고 하면 저는 이걸 선택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 훗날 내 친구들이 저에게 감정적으로나 아니면 금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안 될 줄도 알고 있었어. 그리고 앞으로도 안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정말 소중한 고등학교 시절이 저의 행복의 원천이 돼줬습니다.

 

 

소울 푸드라고 하죠. 

여러분들도 소울 푸드가 있나요?

저는 순댓국이에요.

저는 제일 좋아하는 게 순대고 만약 누군가 저에게 분식의 왕은 누굽니까라고 하면 정답 순대입니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순대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대학교도 순대로 갔어요.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순천향대학교라고 하는 곳이었어요.

명문대예요. 아시겠지만 명문대일수록 학점 따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게 입학에 대한 진입 장벽은 좀 낮은데, 이거 학점 따기가 너무 어려워

왜냐하면 회사가 회사를 학교가 너무 멀어가지고 통학 자체 등교 출근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시험 보러 가기도 너무 어렵고, 그래서 1학년 때 1학년 2학기를 학점 0.4점으로 마치고 학교를 떠났습니다.

전 너무 좋았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4년 새빠지게 일해 가지고 학교 다니면서 졸업하는 거 저는 1년 만에 딱 끝낸 거잖아요.

 

뭐 이렇게 해가지고 제 20살이 지내는 동안 몇 가지 해프닝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고, 어머님은 신용이 굉장히 불량해지셨어요. 신용불량자라고 하죠.

물론 파산도 하시고 회생도 하시고 하셨지만 근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좀 괜찮았어요.

내가 선택한 삶도 아니었고 저는 뭐 내 인생도 아니라는 생각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그 아들 낳아봐야 소용이 없다. 아들 뒤에 뭐가 붙죠? 아들 뒤에 새끼라는 말이 붙어요.

그래서 아들 새끼 낳아봐야 소용이 없다 새끼 하는데 대한민국의 아들로서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는 맞는 말인 것 같고 다행히 저는 딸을 낳았습니다.

너무 행복하고,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방금 여러분들한테 제가 태어나고 20대를 지나면서까지 이야기를 드렸는데 어때요?

 

이 스토리가 사실은 객관적으로 이제 제가 이야기를 해보면, 그냥 불우하게 태어나서 중학교 때부터 이제 일하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공부 안 하고 이런저런 방황하다가 그냥 지잡대에 들어가 가지고 그 학교도 못 버티고 나온 그런 스토리가 될 수도 있어요. 근데 여기에 그래도 저는 행복했습니다라고 하는 양념을 한 바퀴 탁 떨어뜨리는 순간 이게 완벽한 요리가 되는 거라

보세요.

눈을 떴어 태어났어. 근데 이제 가난해 집도 엉망이야 어쩔 수 없지.

근데 행복을 가족에서 찾은 게 아니라 친구 같아서 행복을 찾았고요.

중학교 때 비록 일을 하면서 열심히 주유소에서 총을 쐈지만,

그 돈으로 고등학교 학비를 내면서 내 마음속에 그런 행복의 씨앗 같은 그런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누가 그 누가 고등학교 때 가장 중요한 게 공부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저한텐 친구였어요. 친구를 통해서 사랑과 우정, 배반과 배신을 다 받으면서 인생을 배웠고요.

그렇게 배운 걸로 그것도 대학교를 때려치고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순간이었든 간에 내가 행복할 이유를 계속 찾았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행복할 이유를 찾는 것이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만 있으면 나는 그냥 행복한 삶이 되는 거예요.

내 인생은 그냥 행복해지게 되는 거예요. 

 

 

제 회사 모니터에는 아직도 그 말이 써 있습니다.

언젠가 짤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

 

 

이거는 이제 팩트죠 이건 변하지 않아요.

근데 여기서 내가 어떤 스탠스를 갖느냐는 여러분들의 선택인 거죠.

제가 선택한 스탠스는 뭐였냐면 난 회사에서도 행복하고 싶은데 근데 저는 제가 할 일을 했을 때 내가 선택해서 했을 때 행복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 되게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프로젝트를 맡게 됐고 그래서 그걸 하면서 되게 행복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히 컸어요.

지금도 크고요. 

근데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태어난 거예요.

 

 

비교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걸 선택해야 될까?

회사가 나한테 줄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가? 승진 고가 연봉 직원들의 평판 뭐 이런 것들이 있겠죠.

근데 아 내가 아이를 모유 수유를 할 수는 없지 모유수유는 못하지만 이유식을 만들어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같이 까르르까르르 웃으면서 이 아이의 성장을 보는 거예요. 애기 태어나면 발이 요만해요. 근데 지금 이만해졌거든요.

그 성장을 보는 것을 비교했을 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게 더 큰 거예요.

그래서 바로 육아휴직을 했고 제가 2년간 아이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제 삶에서 베스트 10 안에 드는 선택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행복이라는 게 정말 참 별거 없는 것 같아요. 그렇죠?

세상에는 정말 행복할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

너무 많은데 중요한 건 무엇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느냐라는 거예요.

어떤 어려운 일을 해결했을 때, 아니면 내가 결혼을 했을 때, 내가 집을 샀는데 집값이 올랐어.

비트코인을 샀는데 이더리움 가자 이렇게 될 수도 있고,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혹은 아직 못 찾으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떤 상황에도 행복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근데 중요한 건 여러분이 지금 어떤 상황에 계시든 간에 내가 행복할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것도 아주 많이 있다. 

 

 

제가 딱 한 가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건 불행한 이유는 찾지 마라.

불행한 이유는 행복할 이유보다 훨씬 많아가지고 내가 아무리 막아도 날 막 비집고 들어올 거야.

그러니까 불행한 이유는 그냥 최대한 신경 쓰지 말고 멀리 있고, 내가 행복해야 될 이유에 집중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만 집중하다 보면 여러분의 삶이 아마 행복해질 거예요.

 

여러분들 아마 눈치 채지 못하셨겠지만 저는 오늘 제 소개를 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제가 누군지 아세요? 대부분 모르실 거예요.

왜 말씀을 안 드렸냐면, 제가 누군지가 중요한 시간이 아니에요.

오늘 여러분들이 행복할 이유를 하나라도 더 찾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뭐 그냥 이거 끝나고 돈 받고 그냥 가서 이거 한 잔 하면 그냥 끝나는 거니까요.

저는 이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생은 얼마나 더 많이, 더 빨리 행복할 이유를 찾는 게임이다

 

행복이라는 거는 내가 얼마나 더 많이 얼마나 더 빨리 행복할 이유를 찾아가는 가의 게임이라고 생각을 해요.

여러분들의 삶에서 한 개라도 더 많이 그리고 하루라도 더 빨리 행복할 이유를 많이 찾으시고,

여러분들 인생 스토리에 행복이 많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