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잖아요. 40 넘은 여자 박사를 회사에서 써줄 일은 절대로 없고, 대학에 가셔야 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 저는 그때 회사 가는 게 굉장히 두려웠어요.
- 가겠다고 과감히 결정을 내리고 조직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어쨌든 열심히 하다 보니 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고...
- 가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가능성의 기회가 찾아와도 뭔가 밀어내고 싶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코칭을 하면서 개개인의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함께 찾아가는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는 윤여순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지금 뭘 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정확히 저게 뭐지?'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최근에 그 가능성을 함께 찾아간 코칭 사례 하나 여러분하고 공유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기업연구소의 개발팀 팀장 여성 팀장을 코칭하게 됐었어요.
팀장으로서 굉장히 자질도 있고 잠재력도 있는데 본인은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하기 싫어한다.
한번 코칭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첫 만남에서도, 거의 첫 만남의 대부분을 본인은 팀장 역할이 너무 부담스럽고 하기 싫고 그리고 사실은 승진도 두렵다는 얘기를 주로 하셨어요. 제가 그날 열심히 듣고 첫 만남의 마지막에 한마디만 말씀을 드렸습니다.
"조직에서는 팀장님을 굉장히 키우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치시는군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화들짝 좀 놀라는 것 같았어요. '내가 이렇게 보이는구나'라고 처음 느끼시게 된 것 같아요.
그다음 미팅에서 뵀을 때 저는 뭔가 이분한테 이렇게 적극적으로 팀장을 안 하겠다고 하는 데는 다른 무슨 이유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두 번째 만남에서 첫 질문을 이렇게 드려봤습니다.
"지금 팀장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은 어떤 게 있으실까요?"
라고 여쭤봤더니 갑자기 얼굴이 너무 어두워지면서 사실은 제가 육아 문제로 딸하고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 제 인생이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여러분 그 의사 선생님들도 함부로 손을 못 대신다는 중2병을 앓고 있는 딸이 하나 있었어요.
근데 이 딸이 눈을 마주치지 않는답니다. 엄마하고,
그리고 어쩌다가 하게 되면 아주 쌀쌀맞게
"엄마는 항상 나보다 일이 더 중요하잖아"
이렇게 쌀쌀맞게 내뱉곤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침부터 이렇게 딸하고 씨름을 하고 회사에 나오면 정말 그냥 어디 조용히 틀어박혀서 나한테 주어진 일을 하지 누구하고 이렇게 대인관계, 리더십을 찾고 하는 일 싫어질 거예요.
그래서 딸과 하고의 관계 얘기를 해보자 했더니 또 그 팀장님께서는 회사 일인데 제가 딸 얘기를 여기서 해도 되겠냐고 굉장히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괜찮습니다. 우리 한번 제일 어려운 문제부터 풀어보죠."
그리고 그 딸과의 관계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도 굉장히 힘드시겠지만 딸은 지금 뭐가 제일 힘들고 뭐를 제일 원할까요?"
이런 코칭 대화를 나누면서 이제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편안해지니까 이 편해진 팀장 엄마께서 어느 날 이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저는 팀장을 잘해본다면 한번 혼자 달려가는 팀장보다는 함께 만들어가는 팀장이 되고 싶어요."
팀장의 그 리더십 비전을 먼저 세우시더라고요.
"그렇죠 함께 만들어가는 팀장 너무 좋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실까요?"
"동기부여하고 싶습니다."
"동기부여는 어떻게 할까요?"
이제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리더십을 개발하는 코칭을 쭉 이어갔습니다.
굉장히 빨리 캐치하셨고 노력도 열심히 하시고 정말 발전하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코칭이 끝날 무렵에는 팀장으로서 일하고 싶은 욕구가 막 생긴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아주 밝은 얼굴로 이제는 딸이 저하고 눈을 마주치고 얘기해요.라는 얘기를 듣고 코칭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참 보람이 있었는데 한 7~8개월 지나서 한옥타브 올라간 목소리에 그 팀장님 전화를 받았어요.
그 팀장님 말씀이 "저 승진했어요. 연구위원으로 발탁 승진이 됐는데, 승진 대상자가 전혀 아니었었거든요"라는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런 가능성의 기회가 찾아와도 뭔가 밀어내고 싶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제대로 찾으면 지금, 이 팀장님이 하신 것처럼 한 단계 도약도 할 수 있고, 근데 만약에 그 기회를 저버렸다면 어쩌면 실패와 좌절의 기억만으로 남을 수도 있겠죠.
저는 굉장히 모든 걸 늦은 나이에 시작을 하게 됐어요.
28살 늦은 나이에 한국에서 학교를 마칠 수 없어서 미국으로, 만학을 하러 간 유학생의 와이프로 결혼생활을 시작을 했습니다. 유학생 와이프는 굉장히 지루해요.
그래서 옆에서 뭐 좀 할까 하다가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40이 넘어서 박사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서 기업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고,
제가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는 그런 역할을 맡게 됐고,
LG인화원이라는 그 회사에서 한 20년 일하고 은퇴를 하게 됐습니다.
처음에 이제 그 청강생으로 심심해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제가 첫 번 청강생으로 들었던 과목에서 A+를 받았어요. 저도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제가 정식 유학생도 아닌데 근데 교수님이 또 저를 부르시더라고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공부에 자질이 있는 것 같으니까 한번 계속해보면 어떠냐? 정식 학생으로
근데 왠지 '한번 해봐'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 시작을 하려니까 보통은 유학생 이제 하려면 한국에서 토플이니 gre 다 준비해서 가지만,
저는 이제 그때 그런 걸 준비를 하면서 또 그때 아이도 늦게 애까지 안 생겨서 심심해서 시작을 했는데,
임신을 하게 되고 또 이제 출산을 하게 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 석사 과정을 거의 끝내갈 무렵에 제 인생에 있어서는 너무 힘든 가장 어려운 문제가 닥쳤어요.
너무 늦게 공부를 시작한 남편이, 인생의 가장 긴 슬럼프 기간을 맞게 됐습니다.
지친 것 같아요.
너무 늦은 나이에 학부생으로부터 이제 시작해서 석사 박사를 하려니 그때는 너무 지쳤어요. 그래서 자꾸 막히는 겁니다.
시험도 떨어지고, 그 당시에는 제 인생이 너무 암담했고 앞이 안 보였고 저는 인생 루저라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어느 날 교수님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인생 하소연을 하면서
'저는 제 인생이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이 논문을 못 끝내겠습니다.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때 그 교수님과의 에피소드가 저한테는 제 인생에 정말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인데,
그 교수님 제 얘기를 굉장히 열심히 경청을 해 주셨어요.
다 듣고 나시더니 뜬금없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점심으론 뭘 먹었니?"
그 교수님은 아이 다섯을 웬만큼 키워놓으시고, 늦게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를 하시는 여자 교수님이셨어요.
그래서 제가 점심으로 뭘 먹었냐고 물어보시니까, '베이글을 먹었다'라고 말씀을 드렸고
"몇 개나 먹었니?"
"한 개 먹었습니다. 1개"
그랬더니,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2개는 먹어야지"
라고 얘기를 하셨어요.
그러고 나서도 한참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지금 네가 네 인생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이 논문을 끝내는 일이야"
라고 카랑카랑하고 단호하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떤 충고도 어떤 조언도 뭐 황하게 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암담했던 그 시절에
"아 뭔가를 해야겠구나! 하면 어쩌면 나도 해낼 수 있을지 몰라!"
하는 그 무언가가 저 깊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제 논문을 끝내게 됐고 논문을 끝내고도 거기까지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물론 여러분 예상하신 대로 그 교수님이 또다시 저한테 강력히 권하셨어요. 박사까지 해야 된다.
근데 이제 그 정도하고 나니까 저도 좀 배심이 생겼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해보지 뭐 박사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박사가 끝날 무렵 되니까 또 제 인생의 난관이 닥치는 게,
주위에서 모든 사람이 말리기 시작했어요.
"하시지 말라"
왜냐하면 제가 박사 학위를 받고 나가게 되면 마흔이 넘는 나이였어요. 마흔하나쯤 되게 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바로 요전에 38살쯤에 늦게 공부를 하고 간 여성 박사가 있었는데 대학에 자리를 못 잡고 지금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안 하시는 게 좋다
아시잖아요 40 넘은 여자 박사를 회사에서 써줄 일은 절대로 없고, 그런 일은 없을 거고,
대학에 가셔야 되는데 그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라는 얘기였어요.
현실적으로 너무나 많은 얘기였기 때문에 제가 그걸 뒤엎을 만한 무슨 능력도 없었고 앞이 또 안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때는 배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나는 최선을 다하겠고
"하나님 알아서 해주세요"
하는 그런 심정으로 끝을 내고 나왔습니다.
4 하나의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갖고 이제 가족이 같이 나왔고 시간 강사를 여러 군데 뛰면서 하고 있다가
제가 이제 LG에서 오퍼를 받게 됩니다.
두 번째 제 인생이 굉장히 결정적인 에피소드인데요. 저는 그때 회사 가는 게 굉장히 두려웠어요.
입사해서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것도 아닌 좀 물이 다른 공부를 하고 왔다는 여자가 어떻게 기업에 들어가서 솔바이브 할 수 있을까? 그 급박한 경쟁이 심한 곳인데,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계속 아니라고 하고 있었는데, 이제 제가 자꾸 이제 아니라고 하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저한테 오퍼를 하셨던 임원이 다른 임원과 그 당시 인하원 원장님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거기서 이런 질문을 받게 돼요.
그런데 "대학 교수는 왜 되고 싶어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뭔가 이렇게 한 대 딱 얻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고 그래서 대학을 가고 싶다고 하는데
한 번도 제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인생을 살 건지 그래서 대학 교수는 왜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멍해진 머리가 하얘진 상태에서 그 원장님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기업은 좀 다른 곳입니다.
기업에 오시면 무슨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을 내야 되고, 그 끝을 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곳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시다 보면 아마 전문성으로도 굉장히 성장하실 수 있고,
그리고 아마 인간적인 깊이로도 굉장히 성장하실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라고 얘기하셨는데, 제가 그때 그 말씀을 들으면서 아까 머리가 하얘진 부분이 뭔가 정리가 되고
아... 이게 어쩌면 내가 일할 곳인지도 몰라 가슴이 뛰는 것 같은 심쿵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안일하고 손사래를 쳤었는데, 그 두려움이 없어지면서,
평소에도 제가 말이나 이론보다는 행동으로 결과로 뭘 하는 걸 좋아했던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래서 가겠다고 과감히 결정을 내리고 이제 기업에서 생활 조직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열심히 하다 보니 2천 년에 제가 그룹 최초의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됐습니다.
제가 이제 흔히 쓰는 말 중에 We Never Knew라는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요.
그때 암담했던 시절에 처음 제가 그래도 공부를 계속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제 가능성을 제가 처음 눈을 뜨고 찾았고 나도 어쩌면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었던 것 같아요.
가능성은 자신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제가 기업이라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결정할 수 있었던 결단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면 잘할 수 있는지 내 강점은 뭔지 그때 처음 생각해 보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결정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시려면 자기가 잘하는 걸 하시는 게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제 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임원이 되고 나서도 그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로는 여성을 꽃처럼 상징처럼 세웠으니까
아마 4~5년이면 끼일 거야라고 생각했고, 이왕 기회가 주어졌는데, 시간이 얼마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고요.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제가 임원 생활 15년을 했고, 마지막에는 LG아트센터 대표를 역임하고, 그리고 은퇴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제 커리어 라이프를 돌이켜보면 두 가지 행운과 의미 있는 일이 있었고, 그 의미가 어쩌면 저한테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첫 번째는 제가 HR 부문에서 일한 거였습니다. 저는 교육하는 일이 참 좋았거든요.
근데 제가 일했던 그 교육 부문이, 기업에서는 교육이 제가 회사 들어갔을 때는 한 대 중에 한 대였어요.
가장 인기 없는, 왜냐하면 뭔가 생산적으로 돈을 못 버니까.
그런데 그 HR 부문이 한국뿐이 아니라 전 세계적 글로벌 수준으로 전략, 마케팅 그 중요하다는 연구개발 이 모든 것을 사람이 내는 성과다 보니,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인식이 그때 생기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는 분야가 됐습니다.
저는 그 분야에서 그 시기에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고, 전문성으로도 성장을 할 수 있었고, 너무나 의미와 보람을 찾을 수 있었고, 사람과 관련된 일이 좋다는 거로 제가 지금도 코칭을 하는 일로 연결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저한테 굉장히 의미 있는 그 여성 최초의 여성 리더라는 꼬리표였는데요.
처음에는 무거울 정도로 그 책임이 막중했어요. 다 쳐다보고 있는데 저 밑에서 올라오는 후배가 보는 것보다 주위의 남성들이 보는 눈이 더 신경이 쓰였어요. 제대로 할까? 잘 해낼까? 이런 눈들,
정말 제대로 잘 해내고 싶더라고요.
어떤 프로젝트로 어려우면 내가 이거 해내야. 나중에 저 뒤에서 저를 쫓아오는 여성 후배들한테 그 모범이 될 것 같은 생각 때문에 힘들어도 하게 되더라고요.
여성에 대해서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제가 사실은 얼마 전에 유키즈라는 프로그램을 출연했었어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 출연한 것 때문에 또 여러 매체에 기사가 났는데 그 댓글들이 이런 거였어요.
아이를 기르면서 일을 하면서 뭔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내가 일하는 것 때문에 애가 어떻게 되지 않을까?
너무 힘들었었는데 제가 유퀴즈에서 나와서 한 말 때문에 너무 힘이 됐다는 거예요.
저는 당연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일하시는 여성들 육아 딜레마 굉장히 크지만 일도 잘하시고 아이도 잘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댓글 또 혹은 경단 위로 지금 아이 때문에 쉬고 있었는데 다시 나와야 될 것 같아요.
이런 얘기들이 무수히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런 댓글을 보면 사실은 굉장히 가슴이 뭉클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여성분들에게 누군가가 정말 크게 도닥거려 주면서
"너 너무 잘하고 있어 넌 더 잘할 수 있어"라고 얘기해 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나 보구나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어요.
세바시도 나가게 됐습니다.
우리는 여성 남성 구별 안 하고 교육시키죠. 정말 똑같이 교육시키죠.
훌륭한 여성이 너무 많습니다만 여성과 관련한 데이터로는 OECD 국가 중에도 가장 낮은 수치고 심지어는 파키스탄보다도 저희가 더 열악한 수준이에요.
지금 남성은 교육받으면 다 99% 경제적인 생산인구로 일하지만, 여성은 우리 20%도 안 되거든요.
저는 일하러 나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두려워하지 마시고, 육아 어렵습니다.
아이가 한창 자랄 때 엄마 찾을 때 엄마는 중간관리자로 막 성장할 시기예요. 어렵습니다만 해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지신 가능성이 너무나 무한하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떨치시고 나오시면,
하실 수 있는 일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여성들에게는 특별히 제가 어차피 그 최초의 여성 리더이다 보니 각별한 애정이 가고 제가 모두의 코칭 사례를 말할 때도 여성 팀장 얘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이제 사실 가능성이라는 얘기는 여성 남성을 가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여성 리더로 나오셔서 열심히 일하시다 보면은, 남성 못지않은 여성 리더 아무 아무개가 아니라
인간 아무 아무개로 뭔가를 해내실 수 있고, 그 하신 일이 내 개인의 성장은 물론이고 조직의 사회에 굉장한 역할을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어려웠던 시절 그 절박한 상황에서 찾았던 가능성 제가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때는 제가 뭘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찾고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이룰 수 있었는데요.
가능성을 찾았다고 해서 탄탄대로가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꽉 막혔다고 생각할 때 전혀 다른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문이 열리기도 하더라고요.
가능성을 찾아가는 길은 지속적인 과정이고 하나의 가능성을 찾으면 그다음 또 다른 가능성으로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한번 믿어보세요.
그리고 그 가능성 위에 나만의 꿈을 한번 실어보세요.
그러면 지금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보다 더 멋진 인생이 펼쳐지실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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