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입학하면 그게 다 끝이 아니더라고요. 생활비 월세 그리고 졸업하고 뭐 하지?
- 그저 열심히 이모티콘을 그렸어요. 비트윈 캐릭터를 8년 동안 키웠어요.
- 그 덕분에 지금은 프랑스 남부 여행을 갈 때도 일을 하기도 하고
- 나무 그늘 안에서 그냥 이렇게 일을 하다가 잠을 자기도 해요.
- 이게 제가 요즘 살고 있는 삶입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여기 보이는 캐릭터들 중에 혹시 눈에 익은 캐릭터가 있을까요?
저는 이 캐릭터들의 엄마입니다.
저는 비트윈 캐릭터의 창작자이자 카카오 이모티콘 작가
그리고 강사로 활동 중인 이모티콘 디자이너 10년 차 김아나입니다.
지금은 이모티콘 작가가 무슨 일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없으실 거예요.
그런데 제가 이 일을 처음 했을 때는 이 이모티콘 작가라는 직업이 정말 생소했어요.
그리고 솔직히 처음에는 이 직업 계속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도 계속 들었죠.
그런데 제가 이 일을 10년째 하고 있고요.
그리고 제가 이 일을 한 덕분에 지금은 프랑스 파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노트북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노트북 하나 들고 프랑스 남부 여행을 갈 때도
기차 안에서 노트북을 뚫고 일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이렇게 나무 그늘 안에서 그냥 이렇게 일을 하다가 잠을 자기도 해요.
이게 제가 요즘 살고 있는 삶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렇게 유학생활을 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더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제 이야기를 해드리려면 일단 제 어렸을 때 이야기를 먼저 해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저는 어렸을 때 여러분들 학창 시절 보면 이렇게 교실에서 공부 안 하고 그림 그리는 그런 애들 있죠? 그게 바로 저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십니다.
근데 이 아버지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저의 가세는 급속도로 안 좋아지기 시작해요.
저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고요. 그리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죠. "하나야 너 미술 하기 힘들 것 같아"라고
저는 현실에서 도피를 했어야 됐어요.
어디로 도피를 했냐면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저는 중학교 때만 해도 공부를 안 하던 학생이었거든요. 그림만 그리는.
근데 고등학교를 가서 제가 생각을 해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려면 나는 반드시 서울대 미대를 가야겠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서울대 미대였냐면요. 일단 국립대잖아요. 등록금이 쌀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변에 서울대 합격했는데 집에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갔대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없잖아요?
그래서 난 반드시 서울대 미대를 가고 말 거야라고 다짐을 합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떨어져요. ㅎㅎㅎ
고3 때는 떨어지는데, 다행히 제가 재수를 해서 서울대 디자인과에 가요.
디자인과를 선택한 이유도 알겠죠? 저는 원래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였잖아요.
그럼 원래는 서양화과를 가고 싶었어야 됐어요. 그런데 취업하고 돈을 바로 벌 수 있는 디자인과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이제 대학교를 갔어요. 그토록 원하는 서울대를 갔고, 이러면 모든 게 다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해피엔딩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분 대학 입학하면 그게 다 끝이 아니더라고요.
생활비, 월세 그리고 졸업하고 뭐 하지? 그리고 한창 예민한 나이잖아요. 20대
저는 저희 집이 가난하다는 거, 제가 아빠가 없다는 거를 말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또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근데 그 덕분에 제가 졸업하기도 전에 L전자에서 오퍼 제안을 받아요.
그 당시만 해도 저는 생활비 걱정 이제 그만하고 싶어 해서, 그 당시 제 꿈은 연봉을 많이 주는 대기업에 들어가자였어요.
그래서 이번에 L전자 됐으니까. 다음엔 s전자야. 그다음엔 저기 미국 실리콘밸리 가서 사과 회사를 가야지.
그게 그 당시에 제 꿈이었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졸업하고, 저는 연봉 4천 대기업을 마다하고 월 80만 원 주는 스타트업에 갑니다.
어떻게 된 거냐면요.
이게 바로 제가 처음 만든 이모티콘 작업이에요.
근데 제가 대학생 때도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랬잖아요?
내과 선배님께서 저한테 '하나야 아르바이트해' 하면서 또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던져주신 거예요.
학교에 있잖아요. 항상 이렇게 일 주면 잘하는 그런 친구. 제가 그런 친구였고
이렇게 이모티콘 작업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근데 이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제가 이걸 작업을 하는데 우는 얼굴을 그릴 때는 제가 이렇게 울고 있고 진짜 운 건 아니지만 이렇게 웃는 얼굴을 그릴 때는 제가 또 행복해서 같이 막 웃고 있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이모티콘 작업이 정말 재밌잖아
그리고 보통 여러분 아르바이트하면 다른 사람들의 니즈를 맞추는 작업을 주로 하잖아요.
그런데 이모티콘은 그 출발이 나로부터 시작을 해요.
내 감정에서부터 생각을 먼저 하고 이게 그림으로 어떻게 옮겨질까? 보는 사람이 이걸 어떻게 느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작업 정말 재밌잖아라고 생각을 했는데 반응도 너무 좋았고요.
그러다가 제가 이렇게 팬레터를 받게 됩니다.
처음이었어요.
그때 알았죠.
'내 작업이 누군가를 마음을 이렇게 움직여서 펜네터를 쓰게 하기까지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저는 연봉 4천을 마다하고 월 80에 이모티콘 작업을 하게 됩니다.
근데 이렇게 처음엔 호기롭게 시작을 했지만 처음에 저는 제 일이 부끄러웠어요.
지금이야 이모티콘 작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 너무 잘 알잖아요.
근데 그 당시만 해도 제가 하는 일이 너무 애들 장난 같은 거예요.
거기다가 제 동기들이나 주변 디자이너 분들은 너무 멋있는 작업을 하고 있죠.
그래서 처음에는 이 직업 괜찮을까? 했어요.
그런데 제가 그 일을 선택한 덕분에, 지금 제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리고 딱 일하고 싶은 시간만큼 일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한테 어떻게 제가 한 가지 일을 10년 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떤 성장을 겪었는지에 대한 얘기를 공유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가 현실과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불행 때문에 내 꿈과 타협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면 제 이야기가 그분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이걸 먼저 제가 정해야지만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더라고요.
그게 뭐냐면, 내 일에서 의미를 찾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 제 일이 부끄러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거를 계속하는데 내가 왜 부끄러운 감정을 느껴야 되지?
반발심이 들더라고요.
제가 하는 작업은 누구를 상처 주지도 않고, 누군가한테 위화감을 주지도 않아요.
그리고 쟤가 저 이모티콘인데 난 없어해서 우리가 박탈감을 느끼지도 않잖아요.
근데 이런 작업을 하는 내가 왜 이런 부끄러운 감정을 느껴야 되지?라고 이제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근데 거기서 제가 발견한 게, 이 이모티콘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귀여움이라는 가치에는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더라고요.
하나는 유치함이고요. 하나는 순진무구함이에요.
근데 제가 처음에는 이모티콘 작업이 애들이나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이게 마냥 유치해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작업을 오래 할수록, 이모티콘이 갖고 있는 그 귀여운 어떤 지점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순진무구한 무언가가 있고, 그거는 정말 무해하게 세상의 가치를 내놓고 있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저는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아주 편안하게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있어라고 정의를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모티콘을 그냥 귀여운 거라고 볼 게 아니더라고요.
이모티콘은 하나의 감정 콘텐츠예요.
그냥 캐릭터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대화 속에서 감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비트윈 작업을 할 때 재밌는 피드백을 들은 게 있어요.
한 유저분이 저한테 피드백을 주셨는데, 작가님, 저 작가님 캐릭터 덕분에 남자친구랑 10번 싸울 거 두 번 싸우고 있어요라고 말을 해요. 무슨 말인가 했더니 이렇게 연인 관계에 싸울 일이 많잖아요.
근데 남자친구한테 화가 나서 제가 만든 캐릭터로 이렇게 화를 내는데, 그게 너무 무섭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남자친구도 여자친구가 화를 내도 사랑스러워 보이고, 그래서 그 커플이 계속 사이좋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을 해주시더라고요.
근데 그 말을 들으니까, 내가 하는 일이 그냥 피상적으로 귀엽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이게 대화 속에서 그리고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이어주고 거기에서 굉장히 윤활제 역할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일을 지속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는데요. 그건 깨지는 거예요.
내가 굉장히 강하게 믿고 있던 것이 한번 깨지고
그리고 제가 다시 한 번 그 믿음을 다시 세울 때 그때 우리는 성장을 하는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이모티콘 작가 2년 차 시절에 재밌는 일화가 있어요.
제가 비트윈 캐릭터 시안을 이렇게 만들었거든요.
이게 메리비트윈 캐릭터 초창기 시안이에요. 그런데 일본 오피스에서 연락이 옵니다.
근데 이 캐릭터 일본에서는 안 통할 거어요라고 그래서 제가 일본으로 달려가요.
"무슨 말이야 귀여움에 국경이 어딨어 사람 감정 다 똑같지"
그래서 도쿄에 있는 모든 캐릭터 스토어를 다 돌아보고요.
그리고 전문가들을 다 만나봐요.
거기서 제가 배운 게 있었어요.
근데 거기서 한 디자이너분께서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작가님 여기 이 분홍색 토끼 눈 정말 동그랗게 그리셨잖아요?
일본에서는 캐릭터 눈 이렇게 안 그려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무슨 말이에요? 일본 대표 캐릭터 리락쿠마 보세요 그 친구 눈 완전 동그랗잖아요.
해서 제가 다시 봤어요.
근데 놀랍게도 저는 동그라미라고 생각했던 그 캐릭터의 눈이 동그라미가 아니더라고요.
모든 시안마다 다 다른 눈 모양을 하고 있고요.
그 캐릭터가 취하고 있는 감정 동작에 맞춰서 그 눈에 미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출장을 통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웁니다.
일본은 확실히 한국보다 캐릭터 시장이 발전한 나라예요. 오래됐고요. 그래서 배울 점이 굉장히 많았겠죠.
그래서 이 출장에서 제가 배운 바를 토대로 이렇게 메리비트윈 캐릭터를 리뉴얼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캐릭터는 일본 홍콩, 대만 그리고 심지어 프랑스에서까지도 연락이 와요.
제가 만약에 근데 그 상황에서 고집을 부리고 제가 믿고 있던 것을 밀고 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럼 이 캐릭터도 마찬가지고 저도 성장하지 못했을 거예요.
제 작가명은 노나메예요. 왜 '노나매'냐면요.
노네임인데요.
저는 익명 작가로 카카오에 제품을 출품해 보고 싶었어요.
이모티콘 하면 우리 카카오에 제품 내야 되잖아요.
근데 나 메리비 트윈 타이틀 없이 이거 해봐야겠다.
그래서 제 작가명 노나메를 걸고 출품을 했는데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미승인이죠.
제가 첫 이모티콘 시험했는데 미승인을 받아요.
근데 너무 부끄럽고 익명으로 하길 너무 잘했다.
내가 이거 메리비틴 작가 타이틀 걸었으면 얼마나 망신을 당했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엔 너무 충격을 받아서 두 달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두 달 뒤에 다시 제안을 합니다.
또 미승인
저 지금 이모티콘 작업 10년 하고 있지만, 지금도 계속 미승인받고 있어요. 여러분
그런데 계속해서 제가 이 작업을 하고 있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미승인을 받기 전까지 제가 이 캐릭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냐면요.
내가 한 번 고꾸라져도 과거에 열심히 했던 내가 다시 날 일으켜 세워요.
그래서 그 경험을 하다 보니 그래 이번 고구라는 짐을 통해서, 이번 깨어짐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또 배울 수 있을까?라는 자세로 임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 일상에서 깨지는 순간이 분명히 필요해요.
근데 이 깨짐은 뭐냐면요. 저는 회사 다닐 때 항상 퇴근하면 업무와 상관없는 일들을 했어요.
춤을 추기도 했고요. 독서모임에 한 잔 빠져서 독서 모임을 리드하기도 했고요.
수영, 필라테스 자전거 안 해본 취미가 없었어요.
근데 왜 그렇게 해야 되냐면,
여러분 일은 결국 일이에요.
일은 아무리 재밌어도 내가 여기서 성장하려면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의 벽을 또 만나고, 그 벽을 또 넘어서는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사람은 지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선택한 건 퇴근 후에 나를 일과 완전히 분리하는 시간을 갖는 거였어요.
제가 회사를 8년 다녔습니다. 한 회사를
그리고 비트윈 캐릭터를 8년 동안 키웠어요.
얼마나 지루할까요? 얼마나 번아웃이었을까요?
그래서 8년쯤 됐을 때 이렇게 딱 퇴근하려고 이렇게 나가는데, 거울에 엘리베이터 거울에 제 얼굴이 딱 비치는 거예요.
'근데 제가 저렇게 못생긴 얼굴을 할 수 있구나.'
'저렇게 세상에서 건태로운 얼굴을 하는구나.'
'나한테 저런 표정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퇴사를 결심합니다.
여러분 한 직장에서 8년 차 그리고 저는 그 플랫폼의 대표 캐릭터 디자이너예요.
제 위에는 대표님밖에 없었어요.
연봉도 괜찮았어요.
그런데도 퇴사를 결정하는 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이었을까요?
1년을 고민했고요.
대표님께 말씀드리고 저는 프랑스로 떠납니다.
그럴 줄 알았는데 여러분 코로나가 터졌잖아요.
제가 그래서 또 한 번 그래 나를 깨뜨리는 새로운 도전을 한국에서 해보자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온라인 클래스에 도전합니다.
이모티콘 강의를 출시를 해요.
근데 처음에 제가 이게 너무 쉽지 않더라고요.
책상에서 그림만 그리던 사람이 사람들 앞에 이렇게 나와서 말을 하고 그리고 내가 암묵지로 알고 있던 것을 형식지로 바꿔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과정이 처음에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회사 다닐 때와 다르게 제가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그 당시에 저 너무 열심히 했어요. 3일 동안 두 번 잤어요. 두 번을 3시간 잤어요.
그리고 제가 밥을 먹으면 졸릴까. 봐 밥을 안 먹고 액체로 된 주스 같은 것만 마셨어요.
그렇게 해서 강의를 준비합니다.
이번에도 또 열심히 했어요.
만약에 이 강의가 안 됐을 때 내가 재도전하려고,
저는 지금 제 강의는 이모티콘 강의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가 되었어요.
제가 만약 대학생 때 졸업하고 현실에 쫓아서 연봉 4천에 대기업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요?
제가 일주일 전에 파리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세바시를 찍으러 왔습니다.
근데 비행기 안에서 굉장히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사실 지금도 너무 불안해요.
지금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언제 이게 무너질지 항상 불안한 거예요.
내 캐릭터가 인기 없어지면 어떡하지? 이모티콘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 속에서도 저는 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요.
그저 열심히 이모티콘을 그렸어요.
그래서 프랑스 도착하고 처음 3개월간은 계속 이모티콘 작업만 하는 거예요.
그럼 한국에서 있는 거랑 다를 바가 없잖아요.
근데 그 덕분에 지금은 제가 안심을 하고 프랑스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한테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만약에 여러분이 현실과 타협해야 되는 순간이 온다면,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불행으로 인해서 내 인생 전체가 주눅 들어 있다면,
여러분이 한 번 더 힘을 내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가 그런 분들께 영감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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