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아이가 둘인 엄마를 채용할 회사가 없어 보였어요.
- 저는 처음부터 사업을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을 다니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죠.
- 사업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 진짜 이혼 직전까지 가게 됐어요.
- 처음에 사업 시작했을 때 매출액이 94만 원이었어요.
- 한 달에 10만 원도 못 번 거죠.
- 제가 사업의 시행착오 줄이기 위해서 극복했던 방법을 지금부터 좀 공유하려고 해요.
안녕하세요. 이혜민입니다.
작년이었어요.
남편하고 소소하게 많이 싸웠지만 이렇게까지 싸워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3년 전쯤에 창업을 했는데 좋은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을 큐레이션 해서 유통하는 회사예요. 저희 회사는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신선식품을 구해서 파는 그런 소싱 일을 했기 때문에 조금 더 범위를 넓힌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창업을 해서 자리를 잡는 건 결코 쉽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창업할 때 두렵지 않았냐고 근데 저는 반대로 두려워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사업을 생각했던 사람은 아니에요.
평범한 사람이었고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을 다니고 싶었던 한 사람이었죠.
하지만 아이가 한 명이 되고 둘이 되고 나니까. 이게 직장생활을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직장 생활할래도 그때 당시 저희 아이들이 3살 1살이었는데
감기, 중이염 등을 달고 살았던 터라 병원을 거의 매일같이 다녔어요.
정상적인 직장생활이 어려울 것 같았죠. 그래서 그만두게 됐는데 바로 불안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나름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있었는데 그만두고 보니 어린아이가 둘인 엄마를 채용할 회사가 없어 보였어요.
이대로 '경단녀'가 되겠구나 싶어 두려웠죠.
대학원도 나오고 나름 공부도 해왔는데, 엄마 '이혜민'은 남겠지만 내가 알던 인간 이해민이 사라질까 봐 그게 두려웠어요.
한 '초2'즘 되면 다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는데, 그때 회사에서 저를 받아줄 것 같지 않다는,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 이렇게 내가 사라질까 봐 나란 존재가 잊힐까 봐 그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경단녀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 두려움을 잊고자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물에 빠지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물에 빠져 죽거나, 수영을 배운다는데, 저는 물에 빠진 사람 같았고, 조금씩 수영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사업 시작했을 때 2018년도 매출액이 94만 원이었어요. 수익이 아니고 매출이요. 한 달에 10만 원도 못 번 거죠.
저는 한 달에 10만 원도 못 버는 회사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이 되었어요.
사업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초반엔 블로그로 홍보도 하고, CPC 광고도 하고, 나름 남들이 하는 비슷한 흉내는 다 낸 것 같은데 결괏값이 나오질 않더라고요.
예전에 직장생활 할 때에는 어느 정도 자리 잡힌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는 거라 그런지 한 6개월 꾸준히 하면 매출이 나오곤 했거든요.
근데 그 새 시장이 변해서지 정말 힘들더라고요. 거진 월 매출이 100만 원에서 벗어나질 못했어요.
사람들이 뭘 믿고 제 제품을 사겠나?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레퍼런스가 없다는 거 초기 사업자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죠.
일을 시작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더 두려워졌어요.
사업의 사자도 모르니 불안했죠.
그리고 또 다른 어려움은 바로 '돈'이었어요.
보통 사업하시는 분들 사업자금 필요하다고들 많이 하시잖아요.
사실 제가 해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사업 자금이 왜 자꾸 필요할까? 이해도 안 갔고
돈도 못 벌면서 왜 계속 자금만 쓰려고 할까? 저럴 거면 사업을 왜 하지?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막상 제가 사업을 시작하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사업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걸
알고 시작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성공도 실패한 사람이 한다고 하죠.
처음 퇴직금 모아두었던 걸로 시작을 했는데 상세 페이지 제품 촬영 비용 등으로 조금씩 조금씩 돈이 나가더니 금세 바닥이 나더라고요.
거기다 제가 파는 제품이 좋다는 걸 아무도 모르니, 판촉 비용이나 광고 비용, 샘플 비용 등으로 나가고 그야말로 세 판 까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어요.
저는 그저 애 키우면 일하고 싶은 게 전부였는데, 게다가 아이 엄마이다 보니까 제약도 많더라고요.
사업 시작할 당시에 저희 아이들이 3살, 1살 엄마 손이 많이 가는 나이였는데,
그때 하루 일과 중 일 50%, 육아 50%가 자리 잡고 있었고, 사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한 번은 아이들이 방학이라서 집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고객께서 클레임 전화를 주셨어요.
배송 지연으로 인한 강성 클레임이셨죠.
전화통화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면서 고객이랑 통화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엄마 이리 와~ 저리 와~ 뭐 해줘~' 자꾸 떼를 부리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재택근무가 그리 활성화되고 있던 때는 아니라서
저와 통화하고 있던 고객이 아이들 목소리를 들으시고 갑자기
"거기 뭐 하는 회사예요?"
사무실이 아니냐며 의심하시듯 물으셨고, 저는 그때 자존감이 무너져서 정말 통화가 끝나고 펑펑 울었었죠.
집안도 난장판이었어요.
처음엔 출근 전에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깨끗하게 정리해 놓고 아이들 등원시키고 그리고 일하고,
하원 시간에 맞춰서 아이들 나오면 또 받아서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번아웃이 되더라고요.
점점 집안일을 손에 놓게 되었고, 아이들 하원 시간도 늦어지고, 저녁에 퇴근하면 밥도 안 되어 있어서 남편은 매일 라면 먹는 상황의 연속이었죠.
사실 사업을 하게 된 것도 내가 대표로 있으면 출퇴근이 자유로우니까 '아이도 케어하면서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건데, 막상 사업자 내고 보니까 이게 제 생각처럼 만만하지가 않더라고요.
기존에 육아하던 시간은 그대로 하면서, 일은 덤이 됐고, 모자란 업무는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매출은 제자리였죠.
속상해서 남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고요.
진짜 지지해준 분들이 없었으면 진짜 저는 포기했을 것 같아요.
결국 점점 쌓이다가 터져서 남편이랑 크게 싸우게 됐고 진짜 이혼 직전까지 가게 됐어요.
저는 행복하고 싶어서 시작한 창업인데 왠지 불행의 끝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도 가정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도 속상했고, 문제가 뭔지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아마 그때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그제야 제가 남편이랑 소통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랑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저 자신을 포함한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하나씩 바로잡아보기로 했습니다.
두려워서 감춰두었던 것들을 드러내기로 저를 혹사시키고 있었던 집안일은 100에서 70으로 줄였고요.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늘렸어요.
남편도 제가 시행착오 겪고 있는 부분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렇게 저희 집에는 평화가 찾아왔어요.
창업에도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물건은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알아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판매하는 채널을 늘려서 소비자들이랑 만나는 접점을 많이 늘렸고요.
새로운 거래처를 물색해서 계약하기 전에 저의 가능성을 먼저 보여드렸어요.
그리고 다양한 정부 지원 사업에 보이는 대로 다 지원을 해서 현재 제 상태를 점검하면서, 그렇게 하다 보니 차츰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까 시행착오 이야기 드렸었는데요.
제가 사업의 시행착오 줄이기 위해서 극복했던 방법을 지금부터 좀 공유하려고 해요.
전 돈이 없으니까 그 헤매는 시간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데 노력을 했어요.
사업자 내고 처음 집으로 사업자 내려고 하는데 도소매는 사무실이 있어야 하더라고요.
저는 도매 거래도 해야 해서 사무실은 불가피했어요.
주변을 수소문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찾기 시작해서 했는데
어느 분이 저희 동네 근처에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북부여성발전센터'를 소개시켜주시더라고요.
바로 지원서 써서 제출을 했고 다행히 그곳에서 입주 기업으로 받아주셨어요.
물론 그때부터 피나는 노력은 시작됐지만, 그래도 임대료는 아낄 수 있어서 저같이 초기 창업자에게는 그야말로 꿈같은 혜택이었어요.
그곳에서 교육이라는 걸 통해서 사업 목표를 만들어봤고, 사업 모델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다양한 실험도 많이 해본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좌판 깔고 장사도 해보고 시식 행사도 해봤고요.
스튜디오 대여해 주셔서 거기서 동영상 촬영도 해서 편집해서 올려보기도 하고
동영상으로 물건도 팔아보고 그리고 공용 입주 공간이 있거든요.
처음에 거기 사무실로 들어갔었는데, 그때 다른 사업 운영하시는 분들이랑 정보 공유도 하고 나름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깐깐하게 좋은 식품을 큐레이션 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사실 여전히 소비자 만나는 일은 좀 막막했는데요.
그때 정말 좋은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중소기업유통센터에서 운영하는 판로 지원 사업을 알게 된 겁니다.
평상시에는 혼자 뚫지 못했던 그런 유통 채널을 얻기 위해서 유통채널 판로 지원에 지원을 해서 선정되었고 입점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그 결과 상생방송이라는 홈쇼핑에서 50분 동안 1회의 지원을 받았는데요.
다행히 반응이 좋아서 이후에는 일반 홈쇼핑으로 전환이 되었고 3회를 더 방송한 결과 5억이라는 매출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정성스럽게 고른 물건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제조사랑 상생도 할 수 있어서 기뻤고요.
소비자들이 알아주셔서 고생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한 번 회사가 알려지자 그다음 기회도 많이 열렸고, 오늘 이렇게 새바시에도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두려움을 열어 확인해야 극복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잘 모를 때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모든 상황을 되돌아봤더니 처음에 저에게 거래를 맡기지 않았던 회사들은 제가 누군지 몰라서 두려웠던 것이고,
남편이랑 싸우게 된 계기도 제가 뭘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두려웠던 거죠.
저도 남편에게 다 얘기하지 않았던 것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두려워서 말을 못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적어도 두려운 일이 있다면 다가가서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대처하고 그로 인해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자신이 이미 가진 강점을 잊는 것 같아요.
창업 전 다니던 회사에서 좋은 물건을 골라서 팔아본 경험과 주부로서의 경험이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 안에 있던 가능성도 사실 두려움 때문에 외면했던 거죠.
지금도 두렵지 않냐고 하시면, 사실 저는 지금도 두렵습니다.
내년이 어떻게 될지, 내일 주문이 잘 들어올지 두렵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부딪히고 드러내서 해결하면 돼요.
사업 초반에는 아무래도 가진 게 없다 보니 거래처 뚫기도 쉽지 않고, 서러운 일들도 많이 겪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좌절하지 마시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또 버티고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초반에는 저처럼 정부 지원 사업을 통해 판로를 찾으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 가정, 양육 등 여러 가지 일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조건이긴 한데요.
여성과 워킹맘이라는 게 강점이 되는 분야도 있습니다. 저처럼요.
취업만 생각하지 마시고 창업 또한 충분히 가능한 길이라는 거 말씀드리고 싶고요.
대신 가능하면 저처럼 맨땅에 헤딩하지 마시고, 교육도 받고, 천천히 준비하셔서,
다양한 실험 많이 해보시고 결정하시길 바라요.
두려움을 드러냄으로써 어두웠던 내 두려움에 불을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이상으로 식품을 유통하는 올굿즈 컴퍼니 대표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올굿맘 이혜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YouTube > 세바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바시 1407회 | 잠 안 자고 밤새워봐야 소용없습니다 | 홍성돈 디아스크 홍성돈 숙면베개 대표 (26) | 2024.11.17 |
---|---|
세바시 1399회 | 나를 깨뜨릴 때 진짜 내가 된다 | 김하나 비트윈 캐릭터작가, 카카오 이모티콘 작가 (35) | 2024.11.17 |
세바시 1405회 |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두려운 연애, 당신의 '러브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요? | 이유정 @andsam_ 앤드심리상담센터 대표 (28) | 2024.11.16 |
세바시 1404회 | 할머니들이 읽고 쓰기 시작하자 생긴 놀라운 변화 | 김선자 길작은 도서관 관장 (3) | 2024.11.16 |
세바시 1403회 | 선녀님은 있다 | 원호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3) | 2024.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