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원호연 감독입니다.
여러분 다큐멘터리 즐겨보시나요?
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정의는 허구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즉 가짜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있는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의미죠.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얼마 전 강원도 산골에서 선녀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선녀님 아시죠?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께 들려드릴 이야기의 주제도 '선녀님은 있다'입니다.
여러분 선녀님 정말 있습니다.
못 믿으시겠죠? 제가 그래서 그 증거를 준비했습니다.
이분이 선녀님이에요. 근데 못 믿으시는 표정들이네요.
네 그래서 다음 장 보시면 아마 이해되실 겁니다.
여기 임선녀 선녀님 맞죠?
여러분은 동화 속 선녀님을 생각하셨을 겁니다. 아마 나무꾼도 생각하셨을 거고요.
근데 사실 제가 만난 선녀님은 강원도 산골에서 평생을 살면서 소 키우고 농사지으면서 사신 분입니다.
이제 슬슬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의 영화일까?라고 궁금해졌을 텐데,
제가 만든 영화의 일부를 잠깐 먼저 보시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잘못 썼다 '임선녀'
엄마가 왜 임선녀 씨로 지으셨어요?
이름을 산 하늘에 올라가라고 임선녀를 지
'나는 어디 멀리 못 가서 여기서 나와가지고 여 시집와서 여기서 이제껏 살았다니까'
아이고 뭐 이제는 이 젖니 달코라서 세월 다 보내고 살았네요.
네 이 영화의 제목은 '한창나이 선녀님'입니다. 한창 나이 선녀님이요.
영화 속 주인공 선녀님 임선녀 씨는 2년 전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한 68세의 만학도입니다.
선녀님은 글을 배우면서 삶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변화라는 건 아주 작은 것일 수도 있고요. 또 아주 오랫동안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뤄가는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선녀님에게는 아주 중요한 존재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영상에서 조금 전에 보셨던 소입니다.
자신의 10대 때부터 키워오셨다고 하니까 한 50년 정도 소를 키워오신 거예요.
근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소를 한 식구처럼 생각하시더라고요.
옛날에는 소 20마리를 넘게 키우셨다는데, 제가 선녀님을 만났을 때는 혼자서 4마리를 키우셨습니다.
선녀님은 결혼해서 타지에 살고 있는 자녀들이
"엄마 우리 집에 좀 제발 좀 놀러 좀 오세요"라고 이렇게 졸라도,
이 소 때문에 소 때문에 자식들 집에도 한번 마음 놓고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요. 소한테 밥을 두 번을 줘야 한대요.
그래서 자신이 집을 비우면 소들이 굶으니깐, 그리고 또 누구에게 맡기지도 못하니깐 어디를 한번 제대로 가보지도 못하시는 거죠.
매일 축사에 들어가서 소똥을 치우는데 그 일이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하세요.
사실 몸을 구부리고 삽질을 해서 소똥을 퍼내야 하는 일인데, 그게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많이 들어가서
사실 저같이 건장한 남자들도 정말 하기 힘든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68세인 우리 선녀님은 그걸 매일매일 혼자서 빼놓지 않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 때문에 외출 한 번 제대로 하기 힘드셨던 분이 일주일에 세 번씩 그것도 밤낮으로 한글을 배우러 다니셨습니다.
선녀님의 집은 워낙 외지고 경사가 높은 산골 마을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통편이 많이 불편하죠.
읍내에 가려고 버스라도 타려면 30분 이상 걸어 나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낮에는 읍내로 수업을 들으러 나가실 때는 택시를 불러서 요금 2~3만 원을 내면서 읍내 학습장을 가셨고요.
밤에는 차가 아예 다니질 않으니까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하는 마을회관 학습장으로 머리에 쓰는 작은 렌턴 있죠.
석탄 깰 때 쓰는 그런 렌턴이요.
그걸 머리에 달고서 주변에 불빛도 하나 없는 캄캄한 산길을 혼자 걸어서 수업을 다니셨습니다.
제가 멀리서 그 모습을 촬영을 했는데 선녀님의 작은 렌턴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빛이
사실 모든 어둠을 뚫고 아니 어둠을 헤쳐나가는 이런 모습처럼 저는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분 정말 열심히 공부하시는구나, 너무 멋있는 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그렇게 소도 열심히 키우시고, 한글 공부도 열심히 하시던 분이, 어느 날 키우던 소를 모두 파신다는 겁니다.
사실 갑작스러운 결정에 저는 놀랐죠. 그리고 또 당황했습니다.
소를 열심히 키우는 선녀님을 찍고 있던 게 사실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하고 찍었던 건데,
갑자기 소를 다 팠다고 하시니까 촬영도 안 남은 제가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정말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걱정도 많이 들었고요.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선녀님이 소를 모두 파시고 새 집을 짓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사실 그 집이라니 선녀님이 소를 처분하시고 집을 짓는다는 건 사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던 거거든요.
그러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는데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선녀님을 처음 만나 촬영을 시작할 때인데 제가 선녀님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는 꿈이 있으세요?"
선녀님은 제가 했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근데요, 사람이요, 꿈이라는 것은 내가 뭐를 배워가지고 튼튼하게 배워가지고 뭐 이러면 꿈이 있는데,
개뿔 아무것도 모르고 돈발돈발 사는데 뭔 꿈이 있어? 아무것도 없지.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지 뭐."
들으셨죠?
사실 저는 이 대답을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선녀님은 그동안 누가 자기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나는 배우지 못해 꿈이 없다"
고 얘기하시며 평생을 살아오셨던 겁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말이죠.
그런 선녀님이 새 집을 짓겠다고 결심했다는 건, 아마 우리 선녀님에게 이제 꿈이 생긴 거겠죠.
선녀님은 예전부터 남편분에게, 우리 이제 산골에서 좀 벗어나서 읍내에 나가 편하게 좀 살아보자고 조르셨답니다.
아니면 새 집을 지어보자고도 하셨고요.
그럴 때면 남편분은, 집을 지으려면 돈도 많이 들어가는데, 늙어서 돈 없으면 어쩌려고 그런 걱정을 하셨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남편분께서는 몇 년 전 암으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시게 됐습니다.
남편분은 눈을 감으시면서 선녀님에게
"험한 세상 글을 모르고 어떻게 혼자 살 수 있겠어? 이제 혼자 살아가려면 글을 알아야 해. 글을 배워."
이런 유언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남편분은 왜 이런 유언을 남기셨을까요?
남편분은 자기 없이 혼자 살아갈 손녀님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글을 배우는 것이라고...
아유 참 죄송하네요.
글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겁니다.
실제로 선녀님도 남편분이 돌아가실 때 가장 겁이 났던 건
'글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혼자서 살아갈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었다고 합니다.
선녀님은 살면서 그를 알아야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남편분께서 대신해 주셨습니다.
가령 은행 업무 보는 일, 또 면사무소에서 보는 행정업무, 하다못해 작은 우편물이 와서 사인 하나를 할 때도 남편분의 도움이 필요했죠.
사실 '임선녀'라는 본인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쓰는 걸 많이 어려워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고, 당연한 일들이 선녀님에게는 당연하지 않으셨던 거죠.
남편분도 선녀님의 이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셨을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기신 말도 "글을 배워라"라는 말이었을 겁니다.
제가 선녀님을 만난 건 남편분이 돌아가시고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였습니다.
2년 동안 글을 배우면서, 선녀님은 글도 모른 채 혼자 남은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임선녀"라는 사람으로서 하고 싶은 꿈이 생긴 겁니다.
그게 바로 집을 짓는 일이었죠.
제가 선녀님을 만났을 때는 선녀님의 인생이 여러 면에서 변화를 겪는 시기였습니다.
사실 인생의 큰 축이 뒤바뀌는 상황이었죠.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선녀님은 너무 행복해하셨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매일매일 공사 현장에 나가서 일하시는 분 들하고 같이 못질도 하시고요.
삽질도 하시고요.
또 무거운 자재도 함께 날랐죠.
힘든 일도 정말 거뜬히 해내시는 모습을 보니 걸크러시 같았습니다.
집을 짓겠다고 결심한 건 꼭 자신만을 위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선녀님에게는 4명의 자제분들이 있고, 손주분들까지 합하면 한 10여 명 이상 되거든요.
그런데 그 가족들이 명절이나 또 휴가 때 집에 오면 너무 미안하다고 생각하신 겁니다.
먼 길을 힘들게 와서 낡고 좁은 집에 아이들까지 이렇게 함께 지낸다는 게 선녀님은 너무 미안하셨대요.
그래서 가족들이 왔을 때 편하게 쉬다가 갈 수 있는 집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셔서 집을 짓기로 결심하신 겁니다.
저는 처음에 선녀님의 이야기를 한 편의 영화로 만든다면 그건 아마 즐겁고 따뜻한 이야기가 되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만들고 보니 이건 정말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왜냐하면 선녀님이 자신의 행복을 찾고 또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가슴 아픈 이별들이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별들은 평생 함께했던 '소'와, 또 오래 살았던 '집'과 그리고 사랑했던 '남편'과의 이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선녀님에게 배움이란 이별을 겪고 두려움을 듣고 또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죠.
저는 영화 촬영을 준비하면서 여러 성인문의 학습장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많은 학습자분들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을 만나면서 인상 깊었던 건,
수업을 들으러 오신 분들 대부분이 여성분들이셨고 그중에는 사별하신 분들이 꽤 많다는 거였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정말 어릴 때 배우지 못한 한을 풀 한을 풀기 위해 오셨다는 분들도 계시고,
또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오신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이렇게 선녀님처럼 남편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평생 살아오시다가
혼자가 되면서 글을 모르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들도 많이 계셨던 겁니다.
갑자기 혼자가 된 순간, 이분들이 가장 걱정을 했던 건, 글도 모르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두려움은 영화를 찍기 시작할 때만 해도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배움의 기회가 없던 어머니들이 치열하게 한평생을 살아내고 혼자가 된 이후에 느끼는 그런 두려움,
그것이 얼마나 큰지를 저도 영화를 찍으면서 조금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이 우리 선녀님뿐 아니라 주위에 굉장히 많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국가평생교육원 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읽고 쓰는 일을 할 수 없는 인구가 약 2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적지 않은 숫자죠.
영화를 만들고 나서 어렴풋이 그동안 만났던 학습자분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건,
이분들 모두 각자 사연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건 바로 글을 배우면서 자신들의 삶에 변화를 맞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변화라는 것은 단지 글을 읽고 쓰는 변화일 수도 있지만, 우리 선녀님처럼 가슴에만 품고 있던 꿈을 실천하는 삶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선녀님은 제게 꿈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실 꿈이 있으셨던 겁니다.
그리고 그 꿈은 배움을 통해 실천할 수 있었던 거죠.
여러분 배움이란 결국 용기를 내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배움이 가진 진짜 가치가 아닐까요?
선녀님은 그 배움의 진짜 가치를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제 영화 "한창나이 선녀님"은 10월 중순쯤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입니다.
강원도 산골에서 소 키우고 집 지으면서 공부하는 선녀님이 궁금하시다면, 극장으로 오셔서 영화 많이 봐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배울 수 있는 지금 우리는 모두 한창 나이 선녀님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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