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사고로 또 아들을 먼저 보냈기 때문에, 그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한 30분을 걸어가면 공동묘지가 있거든요.
- 낮이건 밤이건 비가 오건 거기를 헤매고 다니세요.
- 답답하셔가지고, 집에 있지를 못하시겠대요. 할머니 괜찮아요 많이 우세요. 답답할 땐 울어야 돼요.
안녕하십니까?
길 작은 도서관 관장 김선자입니다.
저는 곡성에서 길 작은 도서관을 운영을 하고 있는데요.
음 어른들이 해가 져도 돌아오지 않는 텅 빈 집을 들어가기 싫어하는 우리 아이들이 안쓰러워서 작은 도서관을 시작했습니다. 2004년 8평의 공간에서 시작했는데요. 점점 책들이 불어나더라고요.
그래서 미루고 미루던 책 정리 작업을 2009년도에 시작했습니다.
마을 할머니 세 분이 지나가시다가 제가 책 정리하는 모습을 보시고, 아이고 고생하네 하면서 들어와서 도와주시더라고요.
한참 일하다 보니까 할머니 뒤편에 거꾸로 꽂힌 책이 보여요. 그래서
"할머니 거기 거꾸로 꽂힌 책 좀 빼서 옳게 꽂아주세요"
하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려?"
하시더니 옳게 꽂아진 책을 빼가지고 다시 뒤집어 꽂으시는 거예요.
"어?"
하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다시 할머니가 옳게 꽂아진 책을 빼가지고 뒤집어서 꽂는 모습을 보면서,
'아 ~ 우리 할머니들이 글을 모르시는구나'
하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제가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한데, 할머니들도 이렇게 같이 오셔서 저랑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음식도 드시고 하실래요?
한글도 배우면서요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게 그냥 아무런 준비 없이 한글 교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생전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그 할머니들 손에 연필을 쥐어드렸어요.
할머니들이 뭐라고 하시냐면
"아따 내가 호맹이질은 잘하는데 연필은 못 찍었네.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가 본당께"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18년을 할머니들과 함께 살다 보니까. 이제 사투리도 굉장히 익숙해지고 잘~ 오히려 사투리를 제가 더 잘할 때가 많아요.
할머니들을 보니까 정말로 연필 쥐고 그리는 선이 부들부들 떨리는 거예요.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그리시는데, 그 선들이 부들부들 떨리니까
어떤 할머니는 그 원을 그리시는데 한 곳에서 계속 손이 이렇게 나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어요.
일단 할머니들 모셔놓고 '가나다'만 가르치면 쉬울 줄 알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문예 교육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같이 다닌 할머니가 있는데요.
정봉덕 할머니예요. 이 할머니는 저희 학습반에서 가장 고령이셨어요.
2009년도에는 90세가 거의 가까이 되신 분이셨는데, 할머니는 연로하셔서 허리가 많이 구부러지셨어요.
그래서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고 걸음걸이가 수월치 않으셨거든요.
그런데도 할머니는 곡성에 계시는 동안 한 번도 결석해 보신 적이 없어요.
할머니 집에서 저희 도서관까지는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인데,
할머니를 모시러 가면 할머니 집에서 도서관까지 오는 거리는 한 30분 정도 걸려요.
잘 못 걸으시니까. 가다가 쉬고, 또 가다가 쉬고, 눈에 보이는 게 다 앉을자리로만 보인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나 빼놓고 다니지 마시오"
라고 부탁을 하셔요.
"나 귀찮다고 하지 마시오. 나 꼭 데리고 다니시오."
할머니하고 함께 가는 길이 참 즐거웠어요.
가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바람도 쐬고,
또 할머니 모습 보면서
'나도 나이 들면 우리 정봉덕 할머니처럼 저렇게 늙어가겠지?'
그런 생각들 하면서 할머니랑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도서관에 이렇게 한글 공부를 하러 다녔어요.
할머니는 왜 이제야 이렇게 그렇게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시냐고 여쭤보면,
나는 우리 동네에 약이 들어와서 보문짝이라도 떼보라고 두어 번 쫓아다녀봤는데,
얼마나 배우고 잡던지 거기를 갔는데, 어떻게 우리 아버지가 그 소리를 알고 그때는 '싸리비'라는 게 있어요.
그 빗자루 그 싸리비를 들고 막 때리면서 쫓아다녔대요.
배우러 다니지 마라고, 그게 너무너무 서럽고 슬펐는데,
이렇게 나이 들어서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런 모습들도 참 눈에 어른어른해요.
지금은 천궁덕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몇 년이 되셨는데요.
요즘 할머니들은 파마머리를 하시는데 우리 정봉덕 할머니는 곱게 머리를 빗어서 비녀를 꽂고 다니셨어요.
수업을 할 때에도 잘 보이지 않으니까 돋보기를 쓰시고 연필에 침을 발라가면서 그걸 어떻게 보셨나 봐요?
침 발라서 이렇게 쓰는 걸, 그래서 항상 쓰면 볼펜심이 찐한 볼펜심인데도 침을 발라가지고 이렇게 글자를 쓰고는 하셨거든요.
그런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너무 가난한 시절에 태어난 탓에 배우고 싶어도 못 배웠었어요.
아들 먼저 가르쳐야 했었고, 또 동생이 줄레줄레하다고 동생들 돌봐야 했고, 막내 동생이라고 업어 키워야 했고,
또 그 당시에는 너무 가난해서 풀대죽이나 아니면 나무 껍질 벗겨 먹어야 했기 때문에 배우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어요.
어떤 할머니는 시집 가면 편지나 쓴다고, 나 이러이러해서 힘들다 돌아가고 싶다 이런 편지 쓸까 봐
아예 글씨를 못 배우게 우리 정봉덕 할머니가 그랬다고 그래요.
70, 80 넘어서 배우는 것도 참 쉽지 않았어요.
제가 우리 할머니들을 지켜보니까 농촌에서는 일손이 많이 달려요.
그래서 일할 사람이 없어서 할머니들도 나무짐 일을 많이 다니셨어요.
새벽부터 일을 나가시면 저녁에 5시 6시 정도나 돼야 일이 끝나요.
그러면 이제부터는 내 밭일, 내 논일을 할 시간이에요.
그 밭일을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눈앞이 어둑어둑해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그런 모습들을 또 보게 됐어요.
이렇게 일을 하시면서, 거기에다가 이제는 한글을 배우겠다고 도서관으로 달음질해야 하니, 얼마나 고단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땀내 나는 옷만 얼른 갈아입고, 어쩔 때는 정말 찬물에 밥 한 술도 못 뜨고 오실 때가 많았어요.
혹여 학습반에 안 오시면 전화를 드려요.
"어머니 지금 어디세요?"
그러면
"오메 어쨌을까 오메 어쨌을까"
하면서 핸드폰을 끊고 막 다름 질 하세요.
그런 어머니들을 보면서 문득, 나는 정말 살아오면서 어떤 일을 이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으르고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기면 엄살 부리듯이 주저앉고 싶은 날들이 나에게는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엄살 부릴 틈조차 주지 않는 시대를 살아야 했어요.
그 할머니들도 어떻게 보면 사랑받고 이쁨 받아야 하는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철도 들기 전에 집을 떠나 입 하나 줄이려고 시집가야 했어요.
좀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할머니들 그 가난이라는 웅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을까?
아들 때문에 아들 바라보고, 정말 자식 바라보고, 가족 바라보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서 버텨야 했던 그런 삶이지 않았을까? 엄마이기 때문에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앙당 물고 견뎌낸 세월이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지켜본 우리 한 할머니는 자녀를 먼저 보내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요. 그래서 집에 있지를 못하셨어요.
그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도로에서 좋지 않은 일로 이렇게 큰 사고로 또 아들을 먼저 보냈기 때문에 다른 마을분들이 울면 자식이 좋은 데로 못 가 이렇게 얘기를 했나 봐요.
그러니까 자식이 좋은 데로 가게 하기 위해서 그러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아들 장례식 할 때에도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어요. 저 진짜 그 모습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근데 그게 몸에서 나타나더라고요.
할머니가 낮이건 밤이건 비가 오건 개의치 않고 그냥 그 집에서 한 30분을 걸어가면 공동묘지가 있거든요.
근데 거기를 헤매고 다니세요. 이게 답답하셔가지고 집에 있지를 못하시겠대요.
그래서 그런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 괜찮아요. 많이 우세요. 답답할 땐 울어야 돼요"
하면서 할머니께
"할머니 할머니 울어도 아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아요? 할머니 울어도 자식이 나쁜 데로 가지 않아요"
하고 말씀을 드렸는데, 할머니들과 같이 수업을 하면서 만난 할머니들은 대부분 다 불면증이나 우울증 그런 이 고통과 한들을 다 마음속에 쟁여놓고 살고 계셨어요.
살아온 삶에 대한 미안함이 굉장히 크신 것 같았어요.
또 젊은 날에 남편을 먼저 잃은 할머니는 그 남편을 먼저 잃은 것이 마치 모두 다 자기의 잘못처럼 생각을 하시고 늘 동네에서 얼굴을 못 들고 사셨어요.
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좀 끄집어 내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들께 숙제를 내드렸어요.
잠 안 오는 밤이면 답답하면 짓눌리면 그냥 뭐든지 우리 한글 배웠으니까 받침도 필요 없어요.
글자 틀려도 괜찮아요.
생각나는 대로 그냥 막 적어보세요.
그냥 뭐 때문에 내가 이렇게 답답하고, 뭐 때문에 숨을 못 쉬겠는지, 뭐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지,
그런 것들을 한번 다 적어보세요. 하고 말씀을 드렸어요.
살아온 삶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남에게 손가락질받는다고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할머니들은 처음에 손사래 치면서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난 창피해서 못하겠다. 부끄러워서 못하겠다
"아니에요. 할머니 할 수 있어요. 괜찮아요. 마음에서 꺼내면 가벼워질 수 있어요. 같이 한번 한번 이야기 나눠보시게요."
하면서 할머니들을 격려하면서 할머니들의 속에 있는 마음들을 끄집어내게 했습니다.
그런 할머니들의 묵은 마음들을 어렵게 꺼내서 5년 동안 써온 시를 모아서, 여러 출판사에 제가 투고를 한번 해봤습니다.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북극곰 출판사에서 할머니들의 인생쇼와 그림들을 이렇게
"눈이 사뿐사뿐 오네" 이 그림책으로 또 내주시고,
또 이번에 마을 어르신들의 삶의 흔적들을 "꽃을 좋아한 게 그림마다 꽃이여"하고 또 출간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유언 작업을 했었어요.
그래서 저희 마을에 오시면 마을 할머니들의 그 유언을 도자기에 써가지고 마을 담벼락에 붙여놨는데요.
거기 보면 대부분 말들이 참 다 마음이 아픈데
내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여. 남이 사니까 나도 살았어.
나 생각했으면 살아올 힘이 없었는데 그 똑같은 세대를 남이 사니까 같이 살 수 있었다는 말을 할 때
참 그 말이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수업시간에 할머니들이 달력에 써온 시들을 읽으면 같이 공감을 하게 되더라고요.
왜냐면 그 할머니 혼자 겪었던 일이 아니고, 다른 할머니들도 다 그렇게 살아오신 이야기라 공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울 것 같은 이야기였는데, 꺼내놓고 보니까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들이 그 말에 위로받았던 것 같아요.
괜찮아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네. 우리가 그러고 참고 살았으니까. 이렇게 시방은 좋은 세상 보고 살지.
이런 말들을 할머니들이 들으면서 힘이 나셨던 것 같아요.
문회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가능한 상태라고 해요.
그동안 저는 쓰기 읽기 쓰기가 안 된 상태를 물회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하고 수업을 하다 보니까
"그게 아니구나.
우리는 내 속에 있는 것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살아와서 혼자 마음에만 구겨놓고 감춰두면서,
그렇게 살아와서 말하기를 제대로 못하고 살았구나.
내가 말하기를 잘 못하고 살다 보니까 남의 말을 듣는 것도 어렵고 힘들었구나.
그래서 읽기 쓰기도 이렇게 버겁고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뒤늦게라도 말할 수 있게 된 할머니들 속에만 담아놓았던 것들을 말할 수 있게 된 그 할머니들이 서로가 서로를 듣게 되고,
리고 그 삶을 쓰고 있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 들여다보면서 서로 위로받았고 서로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서로 말하는 통로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입으로 하는 말이건 그림으로 하는 말이건 글로 쓰는 말이건 자기 혼자 묵혀놓고 담아놓고 아파하지 마시고 꺼내놓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듣는 귀가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아 잘 견뎠어. 잘했어."
라고 마음을 건네줄 수 있는 듣는 귀가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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