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시를 쓴다고 그래서 뭐 한 2천 편 이렇게 넘게 썼는데, 우리 시를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요.
-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세련되고 멋있고 아름답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 그분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용솟음치는 그 OOO 이런 것들을 느낄 때 울컥했고 눈물겨웠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저는 실수하는 사람입니다.
16살 때부터 한 여자를 만나서, 여학생을 만나서 반해가지고 그 반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런 고민 때문에 표현을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시를 썼어요.
그것이 이제 60년 전입니다.
60년 동안 시를 썼습니다.
제가 시를 쓴다고 그래서 뭐 한 2천 편 이렇게 넘게 썼는데, 뭐 시를 그냥 죽 먹듯이 그냥 누워서 떡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날마다 서툴고, 날마다 설레고, 날마다 틀리고, 망설이고 그렇습니다.
오늘 여기 와서도 상당히 서투네요. 낯설고 이게 생명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에 우리 한글을 해독하신 그런 분들이 문예 학습자들의 소산물인 시와 작품을 다른 선생님들하고 심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제가 여러 번 다른 데서 심사를 했는데 이번 심사는 매우 특별하고 서툴고 새로웠습니다.
제가 60년 이상 글을 썼음에도 그분들이 글의 진정성과 그 힘찬 마음의 용서숨 이런 것은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세련되고 멋있고 아름답고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분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그 용솟움치는 그 생명의 어떤 힘 이런 것들을 느낄 때 울컥했고 눈물 겨웠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저는 7살 때 한글을 해득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70년 동안 한글을 알고 살은 사람인데, 우리 문예 학습자분들은 저하고 나이가 비슷한 분도 계실 것이고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계실 텐데, 그렇게 70년, 60년, 50년 그 긴 세월을 한글을 모르고 사셨다는 데 대해서 눈물겨웠습니다.
그렇죠 우리에겐 눈이 있습니다.
이 눈으로 정보의 70퍼센트가 들어간다고 그럽니다.
우리 시를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요.
이런 그 육신의 눈을 뜨는 거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하지요.
그렇지만은 그다음에 마음의 눈을 뜨고, 정신의 눈을 뜨고, 영혼의 눈을 뜨는 데는 이런 눈에 보이는 이런 육신의 눈 갖고는 좀 부족하고 글자를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기본은 제가 이제 선생을 초등학교 선생을 43년을 했습니다마는 독서산입니다.
읽고, 쓰고, 셈하고 그게 교육의 기본이에요.
학교 간다는 것은 그 세 가지 한다는 거예요.
가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뭐 그림도 그리고 뭐 여러 가지 하겠지만 기본은 독서산이에요.
읽고, 쓰고, 셈하고 그 세 가지를 공부하는 거거든요.
근데 그 세 가지를 못하시고 저 나이로 친다면 70년 동안 그렇게 사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마음이 안타깝고 미안하고 답답하고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늦게나마 마음에 눈, 정신의 눈, 더 나아가서 영혼의 눈을 뜨게 된 것을 참으로 축하하고 기쁘게 생각을 합니다.
남은 그 기간이 더 소중하고 그걸 높이 받들어서 또 글자를 해득하셨으니까
그다음 삶을 더 아름답게 더 빛나게 씩씩하게 잘 사실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촛불이 있는데 처음에 불을 켰을 때 긴 촛불이 이렇게 호를 타는 것도 아름답지만은 끝에 남은 도막 촛불이 뿌지직뿌지직 소리를 내면서 타는 그 소리야말로 그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감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해는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아름다움을 주고 벅찬 어떤 출발을 주지만,
저녁에 진운하는 참 안타깝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렇지만, 붉은 노을과 함께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그리고 돌아보는 어떤 인생의 히스토리, 인생의 어떤 회상과 아름다움과 그런 감사와 감격과 이런 것을 저는 준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나이가 드셨다 해서 거기서 멈추지 마시고 지금부터 출발하셨으니까 더 멀리까지 더 씩씩하게 잘 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한 4~5년 전에 알제리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 가서 깜짝 놀랐지 뭡니까?
그 알제리에 있는 그 팬클럽 회원 문인들, 시인들, 특히 소설가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자리에 가서 한국에서 왔습니다 하고 다른 사람이 인사를 했어요.
아 근데 놀랍게도 5명이 갔는데 오직 저한테만 어떤 그 사람이 앉아 있는데 뒤에 와서 아주 서툰 한국말로 한국에서 온 나태주 시인 맞습니까?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불꽃을 쓴 시인 맞습니까?
그래서 그렇다 그래 갖고 제가 아주 거기 가서 엄청나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까닭인즉은
그 알제리 대사관에서 이제 개설한 세종학당에 와서 공부를 한 알제리의 처녀였습니다.
이름은 샤히라 아 샤히라 그리고 대학원에서 이제 독일어 번역을 공부하는 그런 학생.
근데 이 샤이라는 프랑스 말하죠. 독일어 하지요 영어 하죠. 알제리 말하지요.
거기다 대고 한국말까지 그렇게 유창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너무 고마워 고 실시간에 나가 갖고 그 아가씨하고 이야기를 하고 가져간 책을 주고 그랬더니 그 책을 너무너무 잘하는 거예요. 우리의 그 여러 가지 소식들 이런 것들을요. 너무너무 잘 아는 거예요.
노트를 보여주는데 거기에 한국 사람들의 근왕, 시, 노래 가사 이런 것이 많이 쓰여 있어요.
김광석 씨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런 것도 있고요.
원태현 시인의 젊은 감독하는 그 사람의 시도 있고요.
나태주의 시인은 말이죠. 두 개 세 개 있어요. 제가 그냥 너무너무 그냥 기분이 좋았잖아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한글을 잘하느냐? 그랬더니 한국 오는 것이 꿈이고 한국이 너무너무 좋대요.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한국에 오는 게 꿈이고 소망스럽고
그래서 자기가 대사관에서 개설하는 세종학당에서 공부를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세종대왕은 아주 참 대단한 분이세요.
임금이 어떻게 백성들이 그 글자를 몰라서 허덕대고, 어렵고, 힘들고, 자기표현을 못하니까 글자를 만들어 줘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이게요. 집현전 학자를 시켜서 만들었다 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
임금님께서 그런 생각을 하셨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우리 민족이 한국이 복되고 아름답고 정말로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의령 선생 얘기입니다.
한글을 보면은 일과 영으로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 얘기도 참 희한하더라고요.
일과 영으로 됐다고 컴퓨터가 일과 영 으로 돼 있잖아요.
근데 이 한글이 그렇다는 거예요. 한글이라는 한자를 써볼까요?
한 동그라미죠 영이죠. 그다음에 이렇게 일 동그라미죠.
일 여기 점 영 일 일 그러니까 0과 1로 다 해결이 되는 거예요.
세종대왕께서 그때 컴퓨터를 아셨던 것 같아요.
컴퓨터의 원리를 아셨던 것 같아요. 얼마나 놀랍습니까?
제가 그 감옥에도 여러 번 갔잖아요. 강연하러
감옥에 갔다고 그러면 또 깜짝 놀라더라고요.
강연하러 들어가 봤는데 정말로 마음이 아픈 게 있어요.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얼굴이 잘생기고 멀쩡하고 선하게 생겼다는 것
그건 왜 그러냐면, 우리 마음이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데 그쪽으로 가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디 우리 마음속에 천국을 품고, 우리 자신이 천사다 이런 생각을 하시면서 살면 참으로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오면서 그 예산을 거쳐서 집이 공주라서 왔는데, 윤봉기 선생 동상인데를 찾아왔습니다.
윤봉기 선생이 독립운동만 하신 분이라고 생각하시면 조금 부족합니다.
그분은 19살 때 농촌운동을 하셨어요. 농민독분이라는 책을 3권을 쓰셔가지고 농촌운동을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독립운동의 기본 그 시작이 글자 해득하는 것이 옳다 그 말씀입니다.
까닭이 있어요. 이유가 있어요. 동기가 있습니다.
그 동네에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아버지 산소를 공동묘지에다 썼다고 그럽니다.
근데 아버지 그 글자를 모르니까 아버지 산소가 어떤 것인지를 헷갈리는 거예요.
근데 이 사람이 급한 마음으로 약간 미혹한 마음으로 공동묘지에 있는 그 팻말을 한글로 이렇게 썼는데 팻말을 다 뽑은 거예요. 그렇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그걸 다 뽑으면 어떡해요?
번호를 이렇게 메모도 한 것도 아니고 사진도 찍은 것도 아니고 그걸 뽑아가지고 다 하나로 말고 가 갖고 매연 윤봉길 선생님한테 가고 어떤 게 우리 아버지죠?
그러니까 선생님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어 알긴 알겠다 이거예요.
그 아버지 이름이 찾을 수는 있다 이거지.
근데 이걸 어디서 뽑아왔느냐? 다른 사람 무덤까지 헷갈리게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래서 윤봉길 선생님께서 안 되겠다. 농민독본 이런 걸 세 권 만드셔서 글자부터 깨우쳐야 되겠다.
그게 그분의 19살 때의 거룩한 뜻입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에요.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이런 말씀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20대 중반 되는 그 어른이 말이죠.
대장부가 출가 집을 나가서는 돌아서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겠다. 죽어서 돌아오겠다고 하는 유언을 써놓고 가신 거예요.
지금 그 예산에 가면 매연사당 거기 기념관에 그 글씨가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조상을 이렇게 선조를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용기 잃지 마시고 열심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문회 하신 어른들은 더욱 그렇다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우리 시인 나태주 님의 강연을 이렇게 쭉 들었는데 인생은 진짜 끝까지 멀리까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럼요. 그리고 인생의 끝부분이 중요합니다. 정말 유소년 청년, 장년 노년 가장 중요한 때가 노년입니다.
100세 인생이니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인생에 삼녀가 있어요.
인생의 삼녀 삼녀 세 가지 남은 거
하루에 남은 시간은 남은 것은 저녁시간이요. 중요합니다. 저녁을 잘 보내야 돼.
그리고 1년에 남은 시간은 겨울이여. 농본 시대에 농촌에서 일하니까 일하고 좀 농한기 그때를 잘 그때 놀음 하면 안 돼요.
그때 이제 좋은 생각하고 책 읽고
그리고 인생에 남는 시간은 노년기다.
청년기 청년기까지는 본인이 성장하고 본인이 배우고 본인이 돈 벌고 본인이 이제 업적을 이루고
그리고 이제 자식 낳아서 길러서 결혼시키고 그러면 이제 늙잖아요.
그때부터 자기 인생이에요. 여러분 그때부터 자기 인생이세요
저도 지금 제 인생을 사는 겁니다.
박수가 나오고 있고요. 사실
노년기가 최고 인생입니다. 김용석 선생님도 65세쯤 되니까 제일 자유스럽고 좋았다.
그래서 언제까지 70세까지 저는 근데 너무 많이 지나버렸어요.
평생을 지금 60년 가까이 글을 써오셨는데 사실 매일매일 수많은 글들 텍스트들이 막 쏟아지는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왜 선생님 글을 쓰고 또 읽고 평생 배우고 그래야 할까요?
글은 왜 써야 돼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쓰죠.
왜냐하면 그 글이 소재가 뭐냐 하면 마음속에 들어있는 감정이거나 생각이거든요.
이게 이게 콱 쌓이면 고무풍선처럼 터져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좀 빼내야 될 거 아니겠어요? 그거 빼내는 방법이 글 쓰는 겁니다.
이걸 못 빼내니까 사람들이 사고 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까 감옥에 갔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분들도 글 쓰는 재주만 있었고, 글 쓰는 것만 알았더라면,
좀 속이 울컥하고 화가 날 때 그거를요. 그거를 그냥 주먹으로 하지 말고 글에다가 맡기자는 것이 제 얘기예요.
서럽고 절망스럽고 우울하고 답답하고 뭐 그런 것들도 글에다 먹이자 그러면 훨씬 좋아지지 않겠어요?
그게 그리 좋은 그 효용이에요. 왜 그리 까닭 없이 썼겠어요?
그렇게 이렇게 마음속에 쌓인 것들을 글로 이렇게 풀어내면 참 좋겠는데 이렇게 글쓰기를 좀 이렇게 어려워하시는 분들
그거는 저기 그냥 편안하게 그냥 막 쓰면 돼요.
막 쓰면 됩니까?
이번에 문화 교육에 계신 분들이 대단히 죄송합니다마는 뭐 그냥 크게 따지지 않고서 막 썼더라고요.
여러분 저기 요즘은 개구리가 없지만, 개구리가 준비체조 하고서 물속에 들어가는 거 봤어요?
개구리는 그냥 들어갑니다.
글도요. 그냥 들어가는 거예요.
그냥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면요. 자꾸 망설이고 따지고 그렇게 하면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일단 펜을 들고 그럼요. 쓰는 것 첫마디부터 쓰라고요.
그냥 그냥 그냥 나가는 대로 쓰라고요.
풀꽃도 그렇게 나왔나요?
그럼요. 자세히 봐야 예쁘다 어려봐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애들한테 내가 잔소리를 많이 했거든요.
그림 그릴 때 자세히 안 보고 오래 안 보고 그러길래
자세히 봐라 오래 봐라 이렇게 했는데 그걸 내가 거둬 쓴 것이 그거예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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